[In Campus] 1937년, 도서관에 새겨진 교육구국의 의지 -고대신문(2019.07.27)
1937년, 도서관에 새겨진 교육구국의 의지 -고대신문(2019.07.27)
‘보성전문도서관~한국대학도서관의 첫걸음’ 전시
본교 중앙도서관(관장=김성철 교수) 1층 로비에서 ‘보성전문도서관~한국대학도서관의 첫걸음’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1937년 한국 대학 최초의 도서관 전용 건물로 완공된 보성전문도서관의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보성전문도서관은 현재 대학원 도서관으로 불리는 사적 286호 중앙도서관(대학원) 건물이다. 구자훈 중앙도서관 한적실 과장은 “1937년에 5층짜리 도서관을 만든 것은 지성의 전당을 만들겠다는 민족의 의지”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전시회 중앙에는 보성전문도서관 설계도와 기념 현판의 탁본이 자리 잡았다. 전시된 설계도에는 기존 설계에서 변경된 내용이 담겼다. 설계 초기에는 개방된 형태의 야외 옥상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구공간 확보를 위해 지붕을 씌워 지금과 같은 모습의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총 설계는 당시 최고의 조선인 석재 건축가인 박동진 선생이 맡았다.
완공기념 현판은 3.1 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 33인이자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오세창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서명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사업의 중요성과 현판의 서체로 볼 때 오세창 선생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창립 30주년 기념 도서관’이라고 적힌 현판의 탁본은 전각작품을 연상시키는 서체로 적혀있다.
탁본 아래에는 7권의 도서가 전시됐다. 그중 전화번호부를 연상케 할 만큼 두꺼운 책이 놓여있다. 책의 이름은 <보성전문학교 부속도서관 도서수입원부 제1책>. 1934년부터 1949년까지 보성전문학교로 들어온 2만4964권의 서지 정보를 정리한 책이다. 도서수입원부에는 민족사학의 도서관을 지식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다.
전시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기부받은 책도 비치됐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기증한 <지나분할의 운명(支那の分割の運命)>도 그중 하나다. 책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기재된 서표를 붙여 예우를 표했다. <지나분할의 운명>은 1912년 동북아시아 정세를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다. 몰락한 지나(중국)는 분할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다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사회주의 사상가 이청원 선생이 쓴 <조선독본(朝鮮讀本)>은 저자가 직접 기증했다. 표지에는 ‘1936년 10월 21일 동경에서 이청원이 보냄’이라고 적혔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중심에서도 그는 천황의 연호인 ‘쇼와(昭和)’를 쓰지 않았다. 기다리던 광복이 왔지만, <조선독본>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저자가 월북했기 때문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심했던 1949년 <조선독본>은 금서(禁書)로 취급돼 서고에 갇혔다. 이에 <조선독본>을 비롯해 이청원 선생의 학문적 성과도 잊혀졌다.
전시회에 비친 보성전문도서관에는 교육구국(敎育救國)을 향한 민족의 갈망이 스며있었다. 설계도, 현판, 도서에 이르기까지, 민족적 참여와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김현섭(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시 우리 건축가가 설계한 대규모 건물은 극소수”라며 “특히 보성전문도서관은 국민적 모금 운동으로 지어져 더욱 더 뜻깊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
‘보성전문도서관~한국대학도서관의 첫걸음’ 전시
본교 중앙도서관(관장=김성철 교수) 1층 로비에서 ‘보성전문도서관~한국대학도서관의 첫걸음’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1937년 한국 대학 최초의 도서관 전용 건물로 완공된 보성전문도서관의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보성전문도서관은 현재 대학원 도서관으로 불리는 사적 286호 중앙도서관(대학원) 건물이다. 구자훈 중앙도서관 한적실 과장은 “1937년에 5층짜리 도서관을 만든 것은 지성의 전당을 만들겠다는 민족의 의지”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전시회 중앙에는 보성전문도서관 설계도와 기념 현판의 탁본이 자리 잡았다. 전시된 설계도에는 기존 설계에서 변경된 내용이 담겼다. 설계 초기에는 개방된 형태의 야외 옥상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구공간 확보를 위해 지붕을 씌워 지금과 같은 모습의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총 설계는 당시 최고의 조선인 석재 건축가인 박동진 선생이 맡았다.
완공기념 현판은 3.1 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 33인이자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오세창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서명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사업의 중요성과 현판의 서체로 볼 때 오세창 선생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창립 30주년 기념 도서관’이라고 적힌 현판의 탁본은 전각작품을 연상시키는 서체로 적혀있다.
탁본 아래에는 7권의 도서가 전시됐다. 그중 전화번호부를 연상케 할 만큼 두꺼운 책이 놓여있다. 책의 이름은 <보성전문학교 부속도서관 도서수입원부 제1책>. 1934년부터 1949년까지 보성전문학교로 들어온 2만4964권의 서지 정보를 정리한 책이다. 도서수입원부에는 민족사학의 도서관을 지식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다.
전시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기부받은 책도 비치됐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기증한 <지나분할의 운명(支那の分割の運命)>도 그중 하나다. 책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기재된 서표를 붙여 예우를 표했다. <지나분할의 운명>은 1912년 동북아시아 정세를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다. 몰락한 지나(중국)는 분할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다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사회주의 사상가 이청원 선생이 쓴 <조선독본(朝鮮讀本)>은 저자가 직접 기증했다. 표지에는 ‘1936년 10월 21일 동경에서 이청원이 보냄’이라고 적혔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중심에서도 그는 천황의 연호인 ‘쇼와(昭和)’를 쓰지 않았다. 기다리던 광복이 왔지만, <조선독본>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저자가 월북했기 때문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심했던 1949년 <조선독본>은 금서(禁書)로 취급돼 서고에 갇혔다. 이에 <조선독본>을 비롯해 이청원 선생의 학문적 성과도 잊혀졌다.
전시회에 비친 보성전문도서관에는 교육구국(敎育救國)을 향한 민족의 갈망이 스며있었다. 설계도, 현판, 도서에 이르기까지, 민족적 참여와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김현섭(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당시 우리 건축가가 설계한 대규모 건물은 극소수”라며 “특히 보성전문도서관은 국민적 모금 운동으로 지어져 더욱 더 뜻깊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