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이용 > 아카이빙 > 고서전시/해제 > 고서전시

고서전시/해제

일본록

작성자
도서관
이메일
작성일
2010-04-30 11:14
조회
921
표지(表紙)
수장(首張)
본문(本文)
저자사항 : 成大中(1732-1812) 錄
판(판종) : 筆寫本
刊寫事項 : 英祖39-40(1763-4)
形態事項 : 2冊 ; 25.9 X 17.4cm
청구기호 : 귀 545
<개요>

成大中이 書記官으로 通信使 趙?을 따라 일본 왕래中의 日記와 일본의 文物制度 및 풍속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

成大中이 書記官으로 通信使 趙?을 따라 일본을 왕래하면서 기록한 ?上記와 일본의 歷史 地理 制度 文物 風俗 등을 기록한 日本錄으로 구성되었다.

?上記는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10일까지의 일기로서, 갖은 고생을 하며 對馬島를 거처 대판에 이르러 숙소에서 강도를 만나 崔天宗이 살해당하였고 질병으로 죽은 자도 있었으며 돌아오는 길에 航路를 잃고 헤매었다는 등의 내용과 교활한 대마도 사람들의 성격을 기록하였다. 끝에는 筑州의 龜井魯와 西京의 那波師曾의 일을 기록한 書日本二才子事와 書東?軸後가 있다.

日本錄은 일본의 歷史 地理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내용중 「일본은 佛敎를 숭상했고 문학은 王仁과 阿直岐에게서 나왔는데 모두가 百濟 사람이다」하였고, 「大佛寺는 평신수길이 국력을 기울여 창건하고 壬辰倭亂 때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코를 베어다가 佛像에 달아놓고 觀光所로 만들고는 鼻塚이라 이름하였으며, 우리나라 사신이 가면 그곳에서 留宿토록하고 佛像을 관람하게 하였으니 실은 욕을 보이려고 한 짓이다. 그후 사실을 알게 된 종사관 李明彦이 그 관사에 들어가지 않자, 다시 문서를 만들어 그렇지 않다고 증거를 하였으나 이는 모두 우리나라를 속이기 위한 僞造本이었고, 또 그곳에서 유숙하지 않게 된 것은 이명언의 힘이었다」고 하였으며, 또 「安龍福의 항의로 인하여 倭人들이 지금까지 鬱陵島를 그들의 海域이라고 다투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록되었다.

靑泉海遊錄?에는 일본의 封域 山水 天文 物産 飮食 衣服 宮室 官制 田制 兵制 風俗 方譯 文學 理學 禪家 醫學 女色 外俗 雜錄 등을 기록하였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국제 상황을 연구할 수 있는 史料이고 또한 일본의 역사 제도 풍속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Abstract>

This is the travel journal of Seong, Dae-Jung(성대중, 成大中), written during his trips to Japan as an official delegate. He accompanied a correspondent, Jo, Eom(조엄, 趙?) as his secretary. In this book, he wrote about the social system, history, geography, traditions, and culture of Japan. This is considered to be a valuable for studying the Japanese culture and social system at the time.
Attach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