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이용 > 아카이빙 > 고지도

고지도

고지도 이용안내

  •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중 학술적 가치와 희귀성이 높은 자료 40건(726면)을 선별하여 디지털화한 고지도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 현재 40건 726면의 고지도 원문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 교내외 로그인 없이 원문 이용이 가능합니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이용 가능)

고지도 리스트

대표이미지 지도명 작도자명 간사자명 간사년 설명
昆陽地圖 (곤양지도) Ganyang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조선후기 회화식 지방지도로, 경상도 곤양 지방 군현도이다. 곤양은 지금의 사천(泗川) 지역에 해당한다. 곤양 내 위치한 동명(洞名)과 촌명(村名)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 지명 아래에는 읍치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도 기록되어 있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필사 연기가 임신(壬申) 3월로 명기되어 있는데, 연호가 없어 년도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양식과 지질을 고려하였을 때 순조12년(1812)나 고종9년(1872) 중 하나가 간사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坤與全圖 1 (곤여전도 1) Gonyeojeondo 작도자명 南懷仁(淸)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벨기에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한자 이름 남회인南懷仁, 1623∼1688)가 중국에서 간행한 세계지도이다. [곤여전도(坤輿全圖)]는 1674년에 북경(北京) 초판이 나왔고, 1856년에 광동(廣東)에서 재판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철종11(1860)년에 광동판을 모본(母本)으로 하여 목판에 새겨서 간행 보급하였다. [곤여전도]는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에게 세계지리적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도움을 준 지도이다.
坤與全圖 2 (곤여전도 2) Gonyeojeondo 작도자명 南懷仁(淸)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상기 내용과 동일
大朝鮮國全圖 (대조선국전도) Daechosunguk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목판본. 1책(11장). 작자 미상. 1장은 대조선국전도, 2장은 한양경성도, 3장은경성부근지도, 4장부터는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순으로 편철되어 있다. 기재내용을 보면 군명(郡名) ·산 ·영(嶺) ·강 ·군계(郡界) 등을 표시하고, 특히 서울과 각 군과의 거리를 리(里) 수로 표기하고 있어 전국의 거리를 이해할 수가있다. 비교적 정밀하게 작성되었으며, 제작연대는 [한양경성도] 부분에 미국 공사관(1883년), 영국 공사관(1884년), 러시아 공사관(1885년), 프랑스 공사관(1889년), 독일 영사관(1891년)이 모두 표기되어 있으므로 1891년 이후이며, 대학원 소장본 앞표지 하단에 남아 있는 원소장자의 수증기(受贈記)에 "乙未[1895]春 芭溪所送"으로 되어 있으므로, 하한년 기준 1895(高宗 32)년으로 추정한다.
東京山川: 八道地圖 (동경산천: 팔도지도) Donggyeongsancheon : Paldo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10매). 작자 미상.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 스타일의 전도 [팔로도총八路都總] 1매와 경기(京畿), 호서(湖西), 호남(湖南), 영남(嶺南), 관동(關東), 해서(海西), 관서(關西), 관북전도(關北全圖), 관북분도(關北分圖) 9매를 한 첩으로 장정한 지도첩이다. "동경산천(東京山川)"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임의로 부여한 명칭으로 보이는데 적실하지 않은 명칭이다. 제일 앞에 나오는 전도 [팔로도총]은 1857년 이후에 판각된 것으로 추정하는 목판본 [해좌전도(海左全圖)]와 90% 이상 일치하며, 나머지 9매의 도별도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의 도별도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독특한 지도첩이다. 제작시기는 함경도 후주(厚州)가 설치되는 순조 22(1822)년 이후에서 [해좌전도]가 간행되는 1857년 이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萬頃地圖 : 儀軌圖 (만경지도의궤도) Mangyeongjido : Uigwe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전라도 만경현의 지도이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관찬(官撰) 회화식 군현지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읍성(邑城)을 중심으로 각 면(面)의 위치와 도로의 연결, 서해의 군산도(群山島) 및 야미도(夜味島)와의 지리적 관계가 충실히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영조대 말엽부터 회화식(繪畫式) 군현지도집이 축적과 각종 기호를 사용한 기호식(記號式) 군현지도집로 대체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만경지도]의 경우 63.0*81.0cm로 군현지도집에 실리기엔 다소 큰 편이어서, 군현지도집 등에 실려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존재했던 회화식 지방지도일 가능성도 있겠다.
明一統志輿地圖: 中國 (명일통지여지도중국) Myeongiltongjiyeo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 (27매). 작자 미상. 전사년 미상의 불완전본 세계지도첩이다. 반엽이 유실된 표지면(실제로는 첫 장)은 [남첨부주지도(南瞻部洲之圖)]로 추측되는데 인도를 중심에 둔 세계지도이다. 2장은 [동파지장춘추열국도]로 춘추책의 권두에 실려 있는 지도이고, 3장은 [십오국풍지리지도]로 시경에 실려있는 지도이며, 4장은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로 서경에 실려 있는 지도 등등, 이러한 방식으로 각종 서적에 실려있는 지도를 베껴 모아서, 중국 역사서와 경서의 이해에 도움을 주도록 고안된 역사지리부도이다. 지도 위와 외곽에 대명일통지 등 지리서의 인문지리 정보가 첨기되어 있다.
城部摠圖 (성부총도) Seongbuchondo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金正浩 목판본. 1첩 (2매). 김정호 作. 1861년(철종 12)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에 포함된 서울 지도 2매를 분리하여 소형으로 접어 휴대할 수 있도록 장첩(16.5 x 10.5 cm)하고 "성부총도(城部摠圖)"로 이름한 것이다. 여기서 성(城)은 한양 도성을 의미하므로 사대문 안의 지리정보를 담은 지도이고, 부(部)는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의 5부 지역 까지 포함한 한성부 전체의 지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도성과 한양오부를 총합한 지도라는 의미로 "성부총도"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輿地圖 (여지도) Yeo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 (15매). 작자 미상. 조선 후기에 유행한 동람도형 필사본 지도책이다. 표제가 "여지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형식의 목판본 지도가 보급되는 1800년 이후의 전사본으로 추정된다. 제일 첫면에는 소형 [조선전도]가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인데, 매방 200리의 방안식(方眼式) 지도인 것으로 보아 신경준의 [여지도]의 축소본으로 보인다. 그 뒤로 [천하도], [중국도], [십구사략지리지도], [일본국도], [유구국도], [동국도],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황해, 평안, 강원, 함경도 순으로 팔도의 도별지도가 붙어있다. 충청도 노성(魯城)이 등장하므로 1800년 이후이고, 평안도 초산(楚山)이 부(府)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고종32년(1895) 이전이다.
輿地圖 (여지도) Yeo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 절첩장 형식으로 꾸민 조선 후기 유행한 동람도식 여지도이다. 필사 수준이 다른 여지도에 비겨 저열한 수준이고 내용도 부실한 편이다. 절첩의 뒷면은 필첩(筆帖)으로 꾸며놓았고, 경상도(慶尙道) 양양군(壤陽郡?) 유리면(流里面) 희이곡(希夷谷) 김벽수가보(金碧洙家寶)라는 수장기가 있다.
輿地圖: 合五國圖 (여지도 합오국도) Yeojido : Ogukdo 간사자명 愛景齋 목판본. 1책 (19장). 헌종15년 (1849) 애경재(愛景齋) 간. 조선 후기에 유행한 동람도형 목판본 지도책이다. 상업용 목적으로 제작된 방각본으로 보인다. 내용의 구성은 [천하도], [중국도], [동국대총(東國大總)], [유구국], [일본국],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평안, 황해, 강원, 함경도 순으로 팔도의 도별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말미에 4장 분량의 지역별 노정기가 부록되어 있다.
沿革地圖 (연혁지도) Yeonhyeok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책. 한반도와 요동, 영고탑 지방을 도별로 15구분하고 시대별로 8분하여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지역의 국가 성립과 점유 연혁을 15개의 표로 정리하고, 이 연혁을 바탕으로 21매의 시대별 역사지도를 부록하여 만들어진 역사지도책이다. 판심(版心)에 ‘世濟堂(세제당)’이라고 판각된 사고지(私稿紙)를 사용하여 표와 지도가 작성된 것이 특징이며, 인촌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기증한 것이다. 지역구분은 경기한북지(漢北地), 경기한남지(漢南地), 충청도, 전라도, 경상좌도, 경상우도, 강원도영동지(嶺東地), 강원도영서지(嶺西地),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관남지(關南地), 함경도삼갑등지(三甲等地), 함경도관북지(關北地), 요동지방, 영고탑지방으로 15구분 하였고, 시대는 주(周), 한(漢), 위진(魏晉), 송제양(宋齊梁), 당, 송, 원, 본조(조선)로 8분 하였다. 지도는 1.[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2.[성경도(盛京圖)],3.[위씨조선도(衛氏朝鮮圖)],4.[삼한도(三韓圖)) 5.[한원봉시사군도(漢元封時四郡圖)], 6.[한시원이후이군도(漢始元以後二郡圖)], 7.[조위시현도낙랑대방급나제여삼국분계도(曹魏時玄?樂浪帶方及羅濟麗三國分界圖)], 8.[수시삼국분계도(隋時三國分界圖)], 9.[수시고구려사계도(隋時高句麗四界圖)], 10.[발해경부도(渤海京府圖)], 11.[신라통합후구주도(新羅統合後九州圖)], 12.[고려여요금대계도(高麗與遼金對界圖)]가 있다. 13.-21.의 지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는 [팔도총도]와 8도 도별도를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義州地圖 (의주지도) Uiju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청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의주부(義州府) 지도이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회화식 군현지도이다. 압록강 대안의 청나라쪽 지명은 일체 기록하지 않았고, 우리나라 쪽으로는 봉수대, 진보(鎭堡), 산성(山城), 각 면(面)의 지명, 의주 읍성과 관아, 통군정(統軍亭) 등의 전각과 민가까지 비교적 충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朝鮮古分道地圖. 一 (조선고분도지도일) Chosungobundojido 1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金正浩 필사본. 4첩. 김정호 작. 1834년(순조 34). 표지에 붉은 색으로 "조선고분도지도(朝鮮古分道地圖)"라고 명명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산자 김정호의 4책본 [청구도(靑邱圖)]의 전사본이다. 주지하다시피 [대동여지도]의 전신에 해당하는 [청구도]는 모두 필사본이어서 목판본 [대동여지도]처럼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으나, {대동지지}에 대한 자매편 지도의 성격을 가진 책이다. 전사자에 따라 2책 또는 4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고려대 도서관 소장 [조선고분도지도]는 4책본 [청구도]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朝鮮古分道地圖. 二 (조선고분도지도이) Chosungobundojido 2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金正浩 상기 내용과 동일
朝鮮古分道地圖. 三 (조선고분도지도삼) Chosungobundojido 3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金正浩 상기 내용과 동일
朝鮮古分道地圖. 四 (조선고분도지도사) Chosungobundojido 4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金正浩 상기 내용과 동일
朝鮮輿地圖 (조선여지도) Chosunyeojido 작도자명 淸水常太郞 (日本)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조선여지도(朝鮮輿地圖)]는 일본인 시미즈(淸水常太郞)가 1894년에 오사카에서 제작한 현대식 대축척지도이다. 지도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갑의 안쪽 봉면지에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이 소지했던 지도를 축소 복사하여 참고했다는 서문 형태의 기록을 인쇄해 붙였고, 지도 좌측 상단에는 국토와 국민을 보전하자는 뜻으로 "소융삼보(紹隆三寶)"라고 쓴 박영효(朴永孝)의 휘호가 붙어 있는 등 개화파 인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도이다.
朝鮮地圖 (조선지도) Chosun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목판본. 1첩(18매). 김재선 성첩. 현채(玄采)가 일본인들이 간행한 각종 조선관련 지리지등을 참고하여 번역 편집한 국한문혼용체의 지리 교과서인 "대한지지(1899)"에 삽입된 도판 자료만을 뜯어내서 [조선지도]라는 이름의 지도첩으로 성첩한 것이다. 첩으로 제작한 사람은 김재선으로 그는 일제강점기 문화재 위조범의 혐의를 받고있는 인물이다. 이 지도첩의 말미에 자필로 고인의 정신적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3차례나 방문하여 지도를 얻어 이 지도첩을 만들었다고 역설하면서도 현채의 발문에서 이름 부분은 제거하여 지도 자료의 원출전이 대한지지임을 숨기고 있다.
左海圖 (좌해도) Jwahae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12)매. 전사자 미상. 동람도 스타일의 전도와 도별도를 모은 지도첩이다. 전사(轉寫) 수준이 높고 기록된 정보도 자세한 우수한 지도첩이다. 또한 금강산을 그린 [금강도]와 총석정을 그린[총석도]를 말미에 부록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제작시기는 백두산 정계비가 표기되어 있으므로 1712년 이후이고, 대구(大邱)가 대구(大丘)로 남아 있으므로 1750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地圖 (지도) 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목판본. 1책(17장). 1895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원 소장 [대조선국전도]와 같은 지도첩이다. 다만, 치암 소장의 [조선지도]첩에는 팔도의 도별도가 끝난 뒤로 [지구전도], [대양군도도(大洋群島圖)], [아서아전도(亞西亞全圖)], [구라파전도], [아비리가전도(阿非利加全圖)], [남아묵리가(南亞墨利加)], [북아묵리가도(北亞墨利加圖)]의 세계지도가 더 붙어 있다.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함께 인쇄된 지도일 가능성이 많다.
地圖: 附八道賦 (지도: 부팔도부) Jido : Paldobu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책(14매). 전사자 미상. [팔도총도] 스타일의 도별도(道別圖)이다. 첫머리에 세계지도인 [천하지도]와 [중국지도], [일본국도], [유구국도]를 얹고, [팔도총도]를 시작으로 경기, 황해, 평안, 함경, 강원, 경상, 전라, 충청의 순서로 8도 도별도를 본문으로 하였다. [평안도] 뒤에 [평양폭원도]라는 이름의 평양 지도가 삽입된 것이 이채로운 점이다. 말미에는 우옹이라는 인물이 조선팔도 군현의 이름을 모두 삽입하여 노래로 만들었다는 "팔도부"를 부록해두었다. [팔도총도] 스타일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간사년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지명의 승강을 통해 간사년을 추정한다면, 정조의 이름을 피휘하여 이산(理山)을 초산(楚山)으로 변경한 것이 정조 즉위년 1776년인데, 이후 부(府)에서 군(郡)이 되는 것이 고종32년(1895)이므로 이 지도첩의 간사년은 1776년-1895년 사이로 추정한다.
地圖. 一 (지도일) Jido 1 작도자명 [作圖者未詳].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頃 조선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군현지도첩이다. 총 4첩으로 구성되어 있고, 책표지에는 "지도(地圖)"로 제첨이 붙어 있다. 전체 체계는 1.도리표, 2.도별전도, 3.소속 군현의 개별도의 순서이며, 지도의 여백에 각 도와 군현의 인구, 재정곡, 경지면적, 사방경계, 성곽, 창, 면의 이름과 위치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군현도의 경우 방안식 지도로 작성되어 있다. 제 1첩에 첫머리에는 전 세계를 축적에 근거해서 동서반구로 나누어 그린 서양식 지도인 목판본 [지구전도(地球全圖)]를 부착하였고, 하단에 ?지구도해(地球圖解)?와 ?지구론(地球論)?을 베껴 놓았으며, 그 외에도 지구가 태양을 도는 모양을 도해한 [지구환일도(地毬?日圖)]와 지구 공전에 의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도해한 [지구환일성세서도(地毬?日成歲序圖]와 연활자로 인쇄된 설명문을 부착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구전도]는 1883년(고종 20) 10월 1일자 『한성순보(漢城旬報)』 창간호에 부록되어 있는 것이고, [지구환일도]는 1884년 1월 30일자 제10호에 부록되어 있는 것이며, [지구환일성세서도]는 1884년 2월 17일자 제12호에 부록되어 있는 것을 지도첩에 옮겨서 장정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지도첩의 작성 시기는 1884년(고종 21)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地圖. 二 (지도이) Jido 2 작도자명 [作圖者未詳].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상기 내용과 동일
地圖. 三 (지도삼) Jido 3 작도자명 [作圖者未詳].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상기 내용과 동일
地圖. 四 (지도사) Jido 4 작도자명 [作圖者未詳].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상기 내용과 동일
地圖摠覽 (지도총람) Jidochongram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책(12매). 전사자 미상.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록된 [팔도총도] 스타일의 도별도(道別圖)이다. 첫머리에 세계지도인 [천하총도]와 [중국도], [조선총도],[유구국지도]를 얹고,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의 순서로 8도 도별도를 본문으로 하였다. 표지를 비단으로 장정하고 제첨을 따로 붙인 고급품이며, 뒷면 배접지로 가경13년 시헌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순조 8년(1808)년 이후 성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 자체의 제작시기는 순조의 이름을 피휘하여 충청도 이성(尼城)을 노성(魯城)으로 변경한 것이 순조 즉위년(1800)인데 노성의 지명이 확인되므로, 이 지도첩의 간사년은 1800년-1808년 사이로 추정한다.
天下圖 (천하도) Cheonha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 조선 후기 유행한 동람도식 팔도 도별도이다. [천하도(天下圖)], [일본국도(日本國圖)], [유구국도(琉球國圖)], [중국도(中國圖)](半缺), [경기도(京畿道)](半缺),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순으로 장정되어 있다. 뒷면 배접지에 "강희(康熙)38년(1699) 6월 20일"의 고문서가 확인되므로, 이 지도첩의 제작의 하한년을 1699년으로 추정한다. 원소장자의 의도대로 이 지도첩을 접었을 때 13.5*8.5cm의 소형 수진본(袖珍本) 크기로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 휴대용 지도첩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靑邱圖. 一 (청구도일) Cheonggudo 1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고산자 김정호가 1834년에 완성한 필사본 지도책이다. "청구"는 우리나라의 별칭이므로, "청구도"라는 명칭은 "조선지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우리나라 지도는 전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행정구역별로 구분한 도별도와 군현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청구도는 우리나라 남북을 100리 간격으로 잘라 29층으로 만들고 동서를 70리 간격으로 끊어서 22판으로 만들었으니, 대략 16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대축적지도인 셈이다. 지도책은 기·우(奇·偶) 2책으로 장정하여 기(奇)권에는 홀수층을, 우(偶)권에는 짝수층을 묶어서, 홀수층과 짝수층을 서로 잇대어 볼 수 있게 고안하였다. 고려대 도서관 소장 [청구도]는 현전하는 [청구도]류의 원고본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1594-(3)호(2009.04.22)로 지정되어 있다.
靑邱圖. 二 (청구도이) Cheonggudo 2 작도자명 金正浩(朝鮮)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상기 내용과 동일
耽羅地圖 (탐라지도) Tamrajido 작도자명 李某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목판본. 1매. 제주도와 그 주변의 섬을 포함하는 대축척 지도로 중간에 지도를 두고 상 하단에는 지리정보를 덧붙여 판각한 형태이다. 항해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지도 외곽에 24방위가 표시되어 있고, 또 제주도에서 직항으로 외부로 항해해서 도달할 수 있는 주요 지점을 외곽에 표시하고 있다. 강희(康熙) 을축년(乙丑年) 판각기가 있어, 1709년(숙종35)에 이모씨와 몇사람이 공동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목판본 제주지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統營地圖: 儀軌圖 (통영지도의궤도) Tongyeongjido : Uigwe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채색필사본. 1매. 118.0 ×71.0 cm. 간사년 미상. 임진왜란 이후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조선의 해상 방어 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했던 통영과 그 인근 도서 및 각 지역과의 교통로를 상세하게 기록한 회화식 지방지도이다. 통영을 기록한 지도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관찬(官撰) 회화식 군현지도에서도 일부 확인되지만, 고려대 도서관 소장의 [통영지도]가 그중 가장 화려하고 자세하며 대형의 지도로 알려져 있다. 행정적 용도뿐만이 아니라 감상용 회화의 기능도 함께 고려하여 제작한 지도로 보인다.
八道分圖 (팔도분도) Paldobun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책(12매). 전사자 미상.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록된 [팔도총도] 스타일의 도별도(道別圖)이다. 첫머리에 중국지도인 [천하도]와 한반도 전도인 [동국팔도대총도]를 얹은 뒤 경기, 황해, 평안, 강원, 함경, 충청, 전라, 경상의 순서로 8도 도별도를 본문으로 하고, 말미에 [유구국도]와 [일본국도]를 부록하여 총 12매로 구성되어 있다. 간사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경상도 영양현(英陽縣)이 진보현(眞寶縣)으로 합쳐져서 지명이 사라진 것이 숙종3년(1677)의 일이고, 강원도 원주목(原州牧)이 남편 살해사건으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목(牧)으로 승격된 것이 숙종18년(1692) 이므로 이 지도첩의 간사년은 1677년-1692년 사이로 추정한다. 이 지도첩의 이름인 "팔도분도" 역시 자료의 성격을 고려하여 임의로 정한 것이고, 원표제는 그냥 지도(地圖)로 되어 있다.
八道分圖 (팔도분도) Paldobundo 간사자명 浮雲墨客 목판본. 1책(10장). 부운묵객(浮雲墨客) 판사(板寫).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록된 [팔도총도] 스타일의 도별도(道別圖)이다. 첫머리에 [천하총도], [중국도]를 얹어서 총 10매로 구성되어 있다. 간사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함경도의 삼수(三水)가 부(府)로 승격되는 것이 숙종36年(1710)이고, 황해도 옹진(瓮津)이 현(縣)으로 남아 있는 것이 1718년까지 이므로 이 지도첩의 간행년은 1710년-1718년 사이의 어느 시점으로 추정한다. 이 지도첩의 이름인 "팔도분도"는 자료의 성격을 고려하여 임의로 정한 것이다.
八道地圖(草本). 一 (팔도지도초본일) Paldojido 1 작도자명 申景濬(朝鮮) 간사자명 申景濬 필사본. 영본2책(全3책). 전국의 군현(郡縣)별 지도의 초본을 모아 놓은 책으로, 上冊에는 황해, 경기, 충청의 각 군현의 지도초가, 中冊에는 경상, 평안의 지도초가 실려 있다. 전3책 중 2책만 남아 있는 영본이므로, 下冊에 실려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전라, 함경, 강원의 군현 지도초는 전하지 않는다. 제작자는 미상이지만, 中冊의 지도를 붙인 배접지가 건륭31년(영조42: 1766) 장연중기(長淵重記)라는 점에서 몇가지 유의미한 추정이 가능하다. "중기(重記)"라는 문서는 보통 지방관들의 교체시기에 작성하는 일종의 공문서인데, 건륭31년 무렵 황해도 장연의 수령은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다. 신경준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발전시켜 《팔도지도(八道地圖)》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완성시킨 인물이다. 따라서 고려대 도서관 소장의 지도초는 여암 신경준의 군현별 지도첩의 초본임을 추정할 수 있겠다.
八道地圖(草本). 二 (팔도지도초본이) Paldojido 2 작도자명 申景濬(朝鮮) 간사자명 申景濬 상기 내용과 동일
海東圖 (해동도 부일본) Haedong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필사본. 1첩(2매). 조선 전기(1463) 정척 양성지의 [동국지도]와 흡사한 한반도 윤곽을 갖추고 있는 지도로, 관서와 관북 지방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 채색 전도이다. 지도의 제작 연대는 황해도 강음(江陰)과 우봉(牛峰)이 합쳐서 신설된 금천(金川)이 있으므로 효종 3년(1652) 이후이고, 백두산 정계비가 없으므로 숙종 38년(1712) 이전이다. 대비할만한 지도로는 규장각 소장의 1683년 제작 추정의 [팔도총도]와 거의 같은 형태인데, [해동도]는 이보다 약 20년 가량 뒤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 Haedongpaldo bonghwasanak 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조선후기 전국의 봉수대를 그린 지도이다. 상단에는 붉은색의 전서체로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熢火山岳地圖)”라고 제명(題名)되어 있어, 이 지도가 개인의 힘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비변사(備邊司)와 같은 정부 기관에서 관방(關防)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각 도(道) 별로 백색(황해), 적색(전라), 분홍(경상), 황색(경기), 갈색(충청), 녹색(평안), 군청(함경), 청색(강원)의 동그라미를 사용하여 구분하고 동그라미 내부에 군현(郡縣)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봉수대는 산봉우리 위에 촛불처럼 그려져 있는데,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 및 경상도 해안 지역에 밀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방의 읍치와 도서지역을 비롯하여 산맥과 산봉우리 그리고 하계망이 자세히 그려져서 봉수의 간선로를 일목요연하게 알아 볼 수 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1652년(효종 3)에 황해도 강음(江陰)과 우봉(牛峰)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금천(金川)이 있고, 1712년(숙종 38)에 건립된 백두산 정계비(定界碑)가 없는 것으로 보아 1652년에서 1712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218.0*148cm으로 측정되는 지도의 크기는 한 장으로 구성된 조선전도 중 가장 큰 것이고, 봉수로를 정밀하게 표현한 특수 목적의 지도라는 점과 뛰어난 회화성이 돋보이는 지도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533호(2007.12.31)로 지정되어 있다.
和順郡地圖: 儀軌圖 (화순군지도의궤도) Hwasungunjido : Uigwe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조선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전라도 화순 지역을 국한하여 동 단위까지 상세한 지명 표기가 있으며, 도로와 하천망도 표기되어 있다. 화순은 광해3년(1611)에 현(縣)으로 복치(復置)되었다가 고종32년(1895)年에 군(郡)으로 승격되므로, 지도명이 '화순군'으로 명기되어 있다면, 이 [화순군지도]는 1895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黃海道地圖 (황해도지도) Hwanghaedojido 간사자명 [刊寫者未詳] 조선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지도이다. 기록된 지도명은 없지만 황해도 지역 만을 한 화면에 그렸으므로 [황해도지도]로 명명한 것이다. 상단에 황해도 감영 관할 22개 군현에서 황해감영에 이르는 도리표가 기록되어 있고, 동그라미에 군현명을 기록한 것 외에는 모두 진보(鎭堡)를 표기한 장방형의 사각형과 산성(山城)만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황해 감영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하던 지도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