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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문 닫지 않는’ 도서관 (가톨릭평화신문, 2020.08.23)

작성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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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8-24 12:27
조회
111

[석영중 평화칼럼] ‘문 닫지 않는’ 도서관

석영중 엘리사벳(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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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발행 [1577호]



도서관 하면 내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세계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 시기의 러시아 도서관이다.

1941년 9월 8일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로 통하는 모든 육상 연결 통로를 차단하면서 시작된 봉쇄는 1944년 1월 27일까지 872일 동안 지속되었다. 생필품과 의약품은 물론 식량과 연료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 쥐를 잡아먹으며 버텼다. 100만 이상의 민간인이 굶어 죽었다. 일부 전쟁사가들이 전투라는 말 대신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 학살)’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이 끔찍한 시기에 레닌그라드 시는 22개의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중 시립도서관과 과학아카데미 도서관은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도서관을 찾아 전기가 끊겨 얼음 창고처럼 되어버린 열람실에서 책을 읽었다. 영양실조로 다 쓰러져 가는 사서들은 유령처럼 서가를 헤매면서 책을 찾아다 주었다.

작가 추콥스키의 회고에 따르면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고전문학도 읽고 시도 읽었다. 죽어가는 사서들한테서 한 아름씩 건네받은 책을 그을음 내뿜는 석유 램프 아래서 읽고 또 읽었다.” 봉쇄 기간 중에만 8만 권의 책이 공식적으로 대출되었다. 사서 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문 닫지 않는’ 도서관의 개념이 인류 역사 속에 각인된 것은 그 사서들 덕분이다.

가끔 사서들이 왜 그렇게까지 도서관 개관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진다. 그토록 무서운 굶주림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사 직전까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도서관 이용자들과 사서들 간에 어떤 연대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은 해 볼 수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종말 앞에서 책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어두컴컴한 열람실 한구석에 앉아 죽음을 전 존재로 체감하며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이미 선악과 미추의 척도로는 재단할 수 없는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건, 아니면 인간의 존엄이건, 그것을 지켜주고 공유하기 위해 사서들은 목숨을 내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절대로 문 닫지 않는’ 도서관도 두 손을 들었다. 과학아카데미 도서관은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3월 20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람실과 자료실 모두 전면 휴관했다. 이제 무조건 문을 여는 것만이 도서관의 미덕은 아닌 세상이 되었다. 몸이 아프면 알아서 쉬는 것이 바람직한 사서의 요건이 되었다.

물론 도서관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운영 시간이 조절되고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될 것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전자 자원에 더 많이 의존할 것이며 디지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절멸의 순간 인간의 실존과 인접하는 공간, 책을 매개로 유한한 인간들이 물리적으로 연대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레닌그라드 봉쇄 시기 도서관 사진이 보여주는 저 처절하면서도 장엄한 공간 대신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차갑고 깨끗하고 텅 빈 공간이 팬데믹을 상징해줄 것이다.

도서관 출입이 존재의 한 방식인 사람에게 그 차이는 실로 거대할 것이다. 바흐친은 “이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문 닫지 않는’ 도서관의 흔적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