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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의 성원과 겨레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고려대-과감한 모금과 기부의 역사로 세우다

    민족의 성원과 겨레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고려대-과감한 모금과 기부의 역사로 세우다

    2019-02-07

    ▲1965년 교우들의 성금으로 제작된 호상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구한말, 민족이 처한 어둠을 밝힐 빛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가 1905년 설립되었다. 이후 개교 30주년을 맞이하여 ‘교육구국’의 뜻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펼친 모금운동을 시작으로 고려대에는 아름다운 기부 전통이 생겨났다. 거액의 자산을 쾌척한 독지가들의 기부부터 쌈짓돈과 논과 밭, 고이 간직해온 패물을 팔아 내어놓은 소중한 성금, 도서관과 박물관을 지을 때 전국에서 답지해온 수많은 가문의 가보들. 고대는 홀로 성장한 대학이 아니다. 대학의 위기가 될수 있는 역사의 변곡점마다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기부를 실천해온 기부자들이 있었다. 미래를 위해 창조하고, 인내하고, 변화시키고, 사랑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고려대의 아름다운 기부의 전통을 다시 새겨본다.   1930 누구도 생각치 못한 과감한 모금캠페인을 진행하다 개교 30주년 기념사업과 중앙도서관 건립 1930년대 고려대학교의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은 모금운동을 넘어 ‘교육구국’을 향한 민족의 결사에 가까웠다. 3년 가까이 전국에 대대적으로 펼쳐진 이 모금운동은 전국적으로 기부를 얻어 학교 건물을 건설하자는 취지였다. 고려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은 우리 민족사는 물론, 교육과 기부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반향과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공의 비결은 구체적인 사업계획, 조직적인 모금 운동, 혁신적인 모금방식에 있었다. 당시 사업계획안은 3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도서관 건축, 도서관 비치 서적의 구입 등을 위한 각 사업별 예산과 소요비용 등을 상세히 기재하고 있다. 또한 모금 활동과는 별개로 모금사업의 운영과 기부금의 보관 및 회계를 담당하도록 해서 당시로써는 앞선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금운동과 모금방식 역시 시대를 앞선 혁신으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 상황을 고려한 인촌 김성수 선생은 거금 3천 원(현재 가치 7,400만원)을 들여 자동차를 구매, 김병로, 최두선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대대적인 모금 동참을 호소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1934년 5월에는 모금액이 12만 원에 달했고, 1934년 12월 말로 정한 기부금의 마감까지 거의 20만 원이 모이게 되었다. 1_1935년 대대적인 민족의 성금으로 건설되는 중앙도서관 2_1938년 도서관 준공 이듬해 완공된 대운동장 3_개교 30주년 기념사업 모금에 참여한 기부자들의 명단과 기부금 영수증 모금만큼 열렬한 성원을 이끌어 낸 도서기증운동 기부금이 모이면서 최우선 목표인 중앙도서관 건설이 시작되었다. 개교 30주년을 맞는 1935년 6월의 일이었다. 당시의 공사비는 초기 예산인 17만 원을 넘긴 22만 원이라는 거액이 소요되었으며 1937년 9월 2일 준공 및 개관을 하게 된다. 그러나 중앙도서관 준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인촌 선생은 ‘도서관을 좌우하는 것은 건축과 장서’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도서구매비로 1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가보로 내려오는 희귀 고서부터 국내외 학자들의 해외원서, 국내 언론사 등 각계 단체와 기업 등에서 도서를 기증받는 활동을 펼쳤다. 1938년 당시 중앙도서관의 기록을 살펴보면, 양서 7천여 권, 한서 1만3천 여 권, 기타 도서 1만여 권 등 모두 3만 권의 장서와 참고품 2,419점을 갖춘 것으로 나와 있다. 국내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받은 장서는 이후 고려대학교가 학문을 진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기증받은 다수의 역사 민속자료는 오늘날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한국학의 시초를 마련하게 된다. 4_1970년대 서관 앞 잔디밭에 모인 학생들 5_1937년 중앙도서관 열람실 모습 6_안함평 여사 아름다운 헌신의 전통을 세운 기부자들 시대를 앞선 현대적 방식의 기부자 예우로 거액의 자산을 쾌척한 독지가부터 전국 각지의 무수한 기부자들에 이르기까지 기부한 돈과 물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모금운동이 한창이던 1934년 말 전남 고흥에 사는 이원례 여사가 회갑을 맞아 5백 원을 기부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내 행복에 감사하여 사회와 나누겠다’는 기부동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근검절약하며 평생 모은 전 재산 5백 원을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긴 김신일 여사도 있다. 또한,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의 안함평 여사가 주막을 운영해서 평생 모은 돈으로 구매한 70석 추수 전답을 기부했는데, 그 일화는 부동산 기부 및 관리의 본보기이자, 고려대학교의 기부와 관련된 미담으로 남아 있다. 기부 직후 작고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고려대학교는 기증한 부동산을 재원으로 삼아 여성 관련 민속품을 수집했고, 그녀가 기부한 사천리의 전답과 추수를 특별회계로 처리해서 유지를 기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금이 고려대 박물관 건립의 종잣돈이 되었다. 이처럼 기부 사연을 기록하고 기부자를 기리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현대적인 방식의 기부자 예우가 이뤄진 것도 고려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의 특징이었다. 1960~2010 특별한 이야기로 채워진 기부 전통, 천년고대의 밑거름이 되다 서관 시계탑(1968) 서관(문과대학) 꼭대기에 있는 지름 6척(약 181cm)의 초대형 시계는 캠퍼스 어디서나 보인다. 1961년 서관 완공 당시에는 없었으며, 이후 쌍용회장인 김성곤(상학30) 교우가 800만원의 거액을 들여 희사한 것으로 일본과 미국 등지에 주문해 만들었다. 호상 건립(1965)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는 젊은 고대생들의 기백을 보여주는 본교의 상징으로 1965년 2월 재학생들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지구 위에 호랑이가 앉아있는 형상을 한 이 석상에는 세계를 호령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호상 하단에는 조지훈 선생이 지은 명문장인 '호상비문'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바른 교육 큰사람 만들기 운동(1994) 고려대는 일찍부터 바른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막중하게 여겨, 1990년대 지존파 사건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질 때마다 인간성 회복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심각한 도덕성 실종에 경종을 울리고 대학이 앞장서 자성해 나가자는 움직임이었다. 1994년 10월, 21세기와 개교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대적 사명을 안고 ‘바른 교육 큰사람 만들기’ 운동이라는 교육개혁안을 선언하였다. 전 국민이 함께하는 ‘학술포럼’을 개최하고, ‘바른 교육 큰사람’ 상 제정, ‘효와 가족사랑 큰 마당’ 행사 개최, 모금 운동을 함께 추진했다. 또한 ‘Vision 2005’를 선포하고 개교 100주년 준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_2010년 천년고대 감사와 전진의 밤 2_1994년 고대 Vision 2005 바른 교육 큰사람 만들기 발기인 대회 3_1964년 호상 건립 기금 영수증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출범 (2000) 고려대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모금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2003년부터 본격적인 모금활동 전개하며 활발한 모금 운동을 벌였다. 주요 모금 사업으로는 백주년기념관 건립기금 및 외국인 기숙사 건립기금, 교육환경개선기금 및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사업기금, 국제화기금, 연구기금, 장학기금, 문화예술기금 등의 내용이었다. 2003년도에는 개교 98주년 기념 대음악회 ‘제1회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를 시작해 기부자에 대한 예우의 기반을 마련했고, 2004년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해외석탑제’를 개최해 미주지역 거주 교우들에게 개교100주년 기념 사업을 홍보하고 해외 모금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비전(Global Vision) 선포(2004)와 개교 100주년 기념 모금사업 (2005) 개교 100주년을 1년 앞둔 2004년 대외협력처와 교우회가 공동으로 ‘개교 100주년 고려대학교 글로벌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개교 100주년 기념 모금사업은 단기적인 모금이 아닌, 글로벌 KU의 기반을 마련한 모금사업이었다. 당시 모금사업은 ‘민족고대 100년, 세계고대 1천년’이라는 장기적 안목으로 진행되었으며,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 모금 사업으로 ‘백주년기념 관삼성관’과 ’CJ인터내셔널하우스(외국인기숙사)‘를 건립했다. 1_기부자를 위한 공연,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 2_KU PRIDE CLUB 라운지 ‘KU 2030’ 비전선포식(2008)과 천년고대 한마당(2009), 천년고대, 감사와 전진의 밤(2010) 2008년 KU 2030 비전선포식에서는 2015년 세계 100대 대학 진입, 2030년 50대 대학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2009년, 고려대학교의 발전계획을 공유하고, 2008년 5월 비전선포식 이후의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천년고대 한마당’ 행사는 고대인이 한 마음이 되어 세계 고대가 되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서 2010년에 개최된 ‘천년고대 감사와 전진의 밤’에는 약 600여 명의 교우가 참석하여 모교 사랑의 열기를 뜨겁게 하였으며, 약 400여 분이 200억 원 이상을 학교발전을 위해 약정했다 ▲KU PRIDE CLUB 장학금 장학증서 수여식 2011~2018 인프라를 위한 기부가 아닌 사람에 맞춰진 기부, 기부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부자 맞춤형 서비스, 체계적인 모금활동 강화(2011) 고려대는 201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기존의 모금방식에서 벗어나 기부자가 관심 있는 사업이나 의사에 따라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모금 서비스를 제공했다. 모금의 접근 또한 건물 위주의 교육시설 인프라를 구축을 위한 모금이 아닌 프로그램 중심, 즉 사람에게 투자되는 교육, 연구, 장학금을 위한 모금에 주력해왔다. 2011년부터는 기부금 연차보고서를 제작해 기부금의 사용현황 및 결과를 기부자들에게 알리며 기부로 이루어질 수많은 변화와 혁신의 이야기를 기부자와 진지하게 나누었다. 또한 2012년에는 디자인조형학부 교수들의 참여로 만년필 형태의 명패에 고액기부자의 성함을 새겨 액자로 만든 도너스월을 제작해 기부자에 대한 감사를 담아 기념했다. 이 명패는 ’아름다운 결정인 동시에 학문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액 정기 기부 캠페인 KU PRIDE CLUB 출범, 대학 발전의 조력자 전통 만들어나가(2015) 2015년 5월 5일,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학 모금캠페인 KU PRIDE CLUB을 출범시켰다. 이 캠페인은 교우, 교직원, 학부모, 고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월 1만 원(1구좌) 이상을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소액 정기기부 캠페인이다. KU PRIDE CLUB은 출범 4개월 만에 기부자 1000명을 돌파하며 큰 호응을 얻어, 2019년 1월 현재 5,000여 명의 기부자가 동참하고 있다. 이에 고려대는 2016년 교우 및 기부자, 학생들을 위한 나눔의 공간으로 중앙광장 지하 1층에 KU PRIDE CLUB 라운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고려대는 KU PRIDE CLUB 기부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해외 교환학생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KU PRIDE CLUB 장학금을 지원해 고대생들이 천원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꼭 필요한 사람에 돌아가는 장학금, 어려운 학생을 돕고자 한 기부자의 뜻 살려(2015) 고려대는 장학금 개혁을 통해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세계 고대를 이끌어갈 미래인재에게는 개척의 기회를 선물했다. 이미 아이비리그 대학을 비롯한 국외 유수 대학에는 성적장학금 제도가 없음을 사회에 알리며 우수한 학업 성취를 이룬 학생에겐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명예로움’을 부여하고, 장학금은 가장 필요한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이런 고대의 장학금개혁은 어려운 학생을 돕고자 한 기부자의 뜻과 장학금 본래의 뜻을 살리는 동시에 사회 전반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직접 기부자 조회가 가능한 디지털도너스월 나눔을 기리고 교육하는 디지털 도너스 월(2017) 고려대학교는 2017년 11월 중앙광장 지하에 특별한 공간, 디지털 도너스 월(Digital Donor’s Wall)을 마련했다. 기부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돌이나 금속판에 새기던 도너스 월을 디지털 화면으로 옮겨왔다. 디지털 도너스 월은 (주)시공테크 박기석 회장(독어 독문 69)과 LG디스플레이의 기여로 만들어졌다. 고대는 이곳을 CRIMSON HONORS CLUB으로 명명하여 미래형 캠퍼스에 걸맞게 기부자의 뜻을 기리고 우리 학생들과 고대를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전하는 최첨단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개교 111주년 기념 기부자 초청 '고대사랑 감사의 밤' 권오섭 엘엔피코스메틱 회장 1,107억, 역대 최고 모금약정액 달성, 4만 9천여 명의 기부자와 함께 이루다(2017~) 2013년부터 모금 약정액이 5년 연속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사상 최초로 1,107억 원이라는 초유의 기금 약정액을 달성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은 미래를 준비하는 고대의 혁신에 기부자들이 뜨거운 신뢰와 기대를 보내며, 모금액 규모가 두 배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 이에 고대는 성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2016년 개교 111주년을 기념하며 ‘고대사랑 감사의 밤’을 개최했다. 감사의 밤에는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이 이과대학 건축기금 120억 원을 기부해 큰 힘을 보탰다. 또한 2018년 연말을 훈훈하게 했던 뉴스, 과일장사로 평생 모은 400억 원을 쾌척한 양영애, 김영석 부부의 이야기는 나눔의 실천에 대해 또 한번 큰 울림을 전했다. 고려대는 더욱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소중한 기부금이 단 1원도 헛되이 쓰이는 일 없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사용되도록 책임을 다하고 있다. <고대투데이> 2019.01.31         
  • 소장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 책으로 전한 지혜의 나눔

    소장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 책으로 전한 지혜의 나눔

    2019-02-07

      ▲생전에 만송 선생이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여말선초의 <서수낙원도 칠폭병> 유명한 고려 불화의 대부분이 임진왜란시에 일본으로 유출되어 이런 세밀화는 국내에 흔치 않다.   고려대를 향한 기부자들의 나누는 마음에는 제한과 한계가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고서, 운동선수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운동복과 안전을 생각한 마우스가드, 인조 잔디, 평생 모은 재산으로 마련한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고대에 기꺼이 내놓은 현물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눈앞의 이익보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에 앞장선 기부자가 있었기에 고대의 문화는 더 깊어졌고, 수혜자들의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1975년 시작된 문화재 기증 만송문고, 만송장학금 조성 고려대 대학원 도서관 내에 위치한 한적실은 국내 대학 중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적실 내에서도 최고 규모는 바로 만송문고다. 故 만송 김완섭 선생이 평생 수집한 고서 1만 9,071권(선장본)을 1975년 작고한 그해 아들인 김재철 변호사가 고려대에 기증하면서 조성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어초헌  편액>   이들의 기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만송 김완섭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50여 년간 법조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모은 돈을 일본으로 반출 위기에 처한 고서들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모교에 출강하며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1975년, 모교에 이를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같은 해 만송 선생이 별세하자 아들인 김재철 변호사가 그 유지를 이어 고서 1만 9,071권을 모교에 기증했다.    만송문고의 책들은 문헌학적 가치도 매우 높다. 그 중 <동인지문사륙> 7권과 <용비어천가> 초간본 2권은 김 변호사의 기증 이후 본교 도서관의 노력으로 각각 1981년 보물 제710호, 2009년 보물 제1463호로 지정됐다. 또한, 2016년 김재철 변호사의 딸 김주현 씨는 기증식을 통해 추사 김정희의 ‘제유본육폭병’을 비롯한 고서화 334점과 현대미술품·공예품 200여 점 등 평가액 총 9억 원 상당을 고려대에 기증했다. 김재철 변호사는 2013년 12월 고려대 한적실의 만송문고에 들러 아버지의 지난날을 회고했다. “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뻔한 중요 고서들을 수집하며 문화재의 국외 반출을 막는 일에 기여하셨습니다. 당시 돈으로 200원에 나온 가치가 큰 고서를 수집할 여력이 없으셔서 간송 등 주변 분들에게 연락해 국외 반출을 막았고, 도자기 등의 비고서 종류는 간송 선생 등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만송문고를 둘러볼 때마다 아버지의 체취와 정신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선친이 평생에 걸쳐 모은 고서를 흔쾌히 기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재철 변호사는 최적의 환경과 최첨단 시설을 통해 고서를 관리하는 고대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컸다며, 자택의 서가도 고려대의 시스템을 참고했을 정도라고 했다. 만송문고 외에도 1976년에는 김완섭 선생의 뜻을 기려 5,000만 원의 재원으로 만송장학기금을 설립하고 1977년부터 현재까지도 법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故 강성욱 명예교수,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 기증 만송문고 외에도 특별한 도서 기부의 사례가 있다. 2005년 타계한 고(故) 강성욱 불문과 교수가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초판본을 고려대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희소가치가 높은 자료인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은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이다. ‘악의 꽃’은 1857년 처음 출간됐지만, 동성애 등을 다뤄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후 보들레르는 시 6편을 삭제하고 ‘악의 꽃’을 재출간할 수 있었다. 보들레르 사후 새로운 판본이 나오기도 했지만, 학계에서는 재출간된 출판본을 정본으로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욱 교수는 이 초판본을 1974년 프랑스에서 구입했다. 강성욱 교수는 초판본을 귀하게 여겨 해외도서전시회 개최를 위해 ‘악의 꽃’ 초판본 반출을 요구하는 일본 불문학자들의 요구도 거절했다고 한다. ▲故강성욱 명예교수가 기증한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 초판본은 강성욱 교수의 제자인 고(故) 황현산 교수가 보관해오다 지난 3월 고려대 도서관에 전달했다. 강성욱 교수는 ‘악의 꽃’ 외에도 불문학 관련 장서 1만 8000여 권을 고려대 도서관에 기증했고 불어불문학과측은 ‘강성욱교수장서목록 간행위원회’를 꾸려 7년간 목록 정리를 했다. 이후 고려대 출판부에서 716쪽 분량의 『강성욱교수장서목록』을 펴내기도 했다. 김완섭 선생의 만송문고와 강성욱 교수의 ‘보들레르 특수 컬렉션’ 등 고서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보다 후학들에게 학문의 등불이 되어주고자 했던 기부자들의 정신에 있다. ‘아름다운 향기는 백 세에 흐른다(遺芳百世)’는 말처럼 책의 향기가 고대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되길 바라본다.   <고대투데이> 2019.01.31           
  • 故강성욱 명예교수,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 기증

    故강성욱 명예교수,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 기증

    2018-11-22

    故강성욱 명예교수,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 기증 세계적으로 희소 가치 높은 자료, 도서관 ‘강성욱 보들레르 특수 컬렉션’ 별도 보관     2005년 타계한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故강성욱 교수가 프랑스 문학가 샤를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초판본을 고려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대표작이자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은 서구 역사에서 화제가 된 시집으로 뽑히고 상징주의에 기초한 시의 효시로 뽑히는 시집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산문시 <파리의 우울>이란 작품이 있지만 시집으로는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 유일하다. 1857년에 출간되었으나 외설 혐의로 재판에 회부, 시 6편이 삭제되어 재출간이 허용됐다. 초판은 약 80여 편 정도였지만, 6편이 삭제되자, 화가 난 보들레르가 40여 편을 넘게 추가한 덕에 시집 치고는 상당히 두껍다. 시인의 사후에 새로운 판본이 출판되기는 했지만 오늘날 시집은 두 번째의 출판 본을 정본으로 삼는다. 초판은 Alençon에서 1,100부의 사본이 인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해 출판했다. 민음사 판본도 있지만, 민음사 판본은 일부 번역이고 문학과지성사는 완역이다.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임했던 故강성욱(康星旭, 1931-2005)교수는 한국의 보들레르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연구자다. 평소에 엄정한 연구 자세를 갖출 것을 제자들에게 권고했고, 학자로서의 엄정함과 치밀함을 지니고 보들레르를 비롯한 프랑스 상징주의 연구에 임했다. 작품에 대한 세밀한 읽기를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 故강성욱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불문학의 소중한 귀중본이 소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으며, 이에 전 세계적으로 몇 권 남아있지 않은 보들레르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초판본을 1974년 경 프랑스에서 구입했다. 일본의 보들레르 연구자들이 해외도서전시회 일본 개최를 위해 「악의 꽃」의 반출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했을 정도로 평소 故강성욱 교수는 이 책을 귀중하게 여겼다. 보들레르 「악의 꽃」 초판본은 지난 3월 고려대에 전달되어 고려대 도서관에 둥지를 마련한다. 이 귀중본은 대한민국 불문학연구의 빛나는 자긍심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1821~1867) 연구의 석학으로 유명한 故강성욱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부터 96년까지 고려대 불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보들레르를 기점으로 하는 현대 프랑스 시 연구의 틀을 정립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강 교수는 생전 자신의 방과 서재·거실 등에 불문학은 물론 인문학 전반에 걸친 2만여 권의 책을 소장했다. 특히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 초판본(1857년판)은 세계적으로도 희소 가치가 높은 자료다. 故강성욱 교수는 평생 불문학 연구에만 매달린 학자였다. 일흔이 된 그가 제자들에게 “내가 요즘 하루 8시간밖에 공부를 못 한다”며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제자 故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보들레르 연구의 대가이신 선생님의 장서 목록을 보면 보들레르는 물론 불문학 연구 전반에 대한 방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할만큼 故강성욱 교수의 열정은 대단했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측은 그의 사망 직후 ‘강성욱교수장서목록간행위원회’를 꾸려 7년간 목록 정리를 했다. 이후 고려대출판부에서 716쪽 분량의 『강성욱교수장서목록』을 펴냈다. 이 목록은 강 교수가 생전 서지에 보관했던 순서대로 일련 번호를 부여해 제목·저자명·출판사명·출간연도·쪽수 등을 기록했다. 목록에 실린 책은 대부분 고려대 도서관에 기증됐다. 강 교수가 보관했던 불문학 관련 서적 등 1만 8000여 권이다. 그 가운데 보들레르 관련 책과 자료(975권의 책과 627점의 문헌 자료)는 고려대 도서관에 마련된 ‘강성욱 보들레르 특수 컬렉션’에 별도 보관 중이다.         <커뮤니케이션팀 제공 2018.11.21> 
  • 정영식 교우(의학 62) 한국학 관련 고서 10권 중앙도서관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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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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