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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1 | ▼a 정동훈, ▼g 鄭東勳, ▼d 1981- ▼0 AUTH(211009)14369 |
245 | 1 0 | ▼a 고려시대 외교문서 연구 / ▼d 정동훈 지음 |
260 | ▼a 서울 : ▼b 혜안, ▼c 2022 | |
300 | ▼a 664 p. ; ▼c 24 cm | |
500 | ▼a 부록: 1. 『東人之文四六』및『東文選』 소재 고려시대 외교문서 목록, 2. 『東文選』 소재 고려시대 외교문서 목록 | |
504 | ▼a 참고문헌(p. 629-651)과 색인수록 | |
650 | 0 | ▼a Diplomatic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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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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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4 2022z7 | 등록번호 111883964 | 도서상태 대출중 | 반납예정일 2023-12-29 | 예약 예약가능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관계가 맺어지고, 둘 사이의 관계는 의례를 통해 표현된다. 지금이야 영상통화, 전자문서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하지만 전근대에는 모든 만남은 문서를 거쳐야만 했다. 자연히 문서에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다양한 의례가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존댓말을 써야할지 반말로 얘기해야할지, 자신과 상대를 뭐라 부를지, 무슨 문자를 어떤 크기로 쓸지, 어떤 종이에 적어 어떻게 접어 어떤 봉투에 담을지, 무슨 도장을 어디에 몇 번 찍을지, 날짜는 뭐라고 써넣을지. 무엇 하나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식(書式)이다. 동아시아의 외교문서는 조(詔), 칙(勅), 제(制), 책(冊), 고명(誥命), 표(表), 주(奏), 첩(牒), 자(咨), 서(書) 등 10여 종이 확인되는데,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서식을 선택해야 했다. 이 책은 외교문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세밀한 양식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아주 미묘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고려시대 외교문서의 시기별 분석을 통해 고려 외교사 연구의 모든 것을 밝힌다!
모든 것은 문서에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관계가 맺어지고, 둘 사이의 관계는 의례를 통해 표현된다. 지금이야 영상통화, 전자문서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소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하지만 전근대에는 모든 만남은 문서를 거쳐야만 했다. 자연히 문서에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다양한 의례가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존댓말을 써야할지 반말로 얘기해야할지, 자신과 상대를 뭐라 부를지, 무슨 문자를 어떤 크기로 쓸지, 어떤 종이에 적어 어떻게 접어 어떤 봉투에 담을지, 무슨 도장을 어디에 몇 번 찍을지, 날짜는 뭐라고 써넣을지. 무엇 하나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식(書式)이다. 동아시아의 외교문서는 조(詔), 칙(勅), 제(制), 책(冊), 고명(誥命), 표(表), 주(奏), 첩(牒), 자(咨), 서(書) 등 10여 종이 확인되는데,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서식을 선택해야 했다. 이 책은 외교문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세밀한 양식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아주 미묘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고려시대 외교문서의 모든 것
918년부터 1392년까지 한반도에 고려가 있었던 동안, 중국 대륙에서 황제를 칭한 왕조는 후량(後梁)부터 송(宋), 거란(契丹), 금(金), 몽골제국, 명(明)까지 10개가 넘었다. 고려는 그들 모두를 상대했고, 각각을 대우하는 방식은 다 달랐다. 외교의 제도와 관행은 언제든 바뀌었고, 그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었다.
고려와 오대, 그리고 북송 초기에 송의 책봉을 받던 시기의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조서와 표문만이 외교문서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당시 공식적인 외교의 주체는 양측의 군주뿐이었으며, 외교는 군주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와 오대‧북송의 관계는 후대의 고려-거란‧금 관계보다는 과거 신라-당 관계와 유사한 측면을 더 강하게 드러내었다. 양국 사이의 사신은 고려 측에서는 ‘조공(朝貢)’으로 표현된 경제적 증여, 중국 측에서는 국왕 책봉 등 가장 의례적인 사안에 국한해서만 파견되었다.
고려와 거란‧금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문서 외에도 고려 군주와 거란‧금 동경(東京)의 장관 사이에서 서한식 문서를, 그리고 양국 관부들 사이에서 첩식(牒式) 문서를 비교적 활발히 주고받았다.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으며 처리해야 할 현안이 자주 발생했던 양국 관계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풀어가기 위해 여러 층위에서 소통 경로를 개설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민감한 사안일수록 낮은 단계에서부터 활발하게 의사를 교환하면서 점차 상급의 소통 경로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에, 양국 군주 사이에는 매우 의례적이고 우호적인 내용의 사신과 문서만을 교환할 수 있었다. 쉽게 긴장상태에 놓일 수 있는 상황에서 여러 단계의 완충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러한 경로에서 상하관계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첩(牒)이라는 문서가 고려-거란‧금 관계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몽골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문서, 고려국왕과 몽골제국 관부‧관인 사이의 첩식 문서 및 관문서식 문서, 그리고 양국의 다양한 주체 사이의 서한식 문서 등, 전근대 한중관계에서 사용된 대부분의 외교문서식이 두루 활용되었다. 양국 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것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14세기 이후로는 고려-몽골 관계를 기존과는 달리 국왕이 독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양측의 관부 및 유력자들이 직접 외교의 전면에 나서 개입하였다. 몽골제국의 정치 문화에서 이러한 개별적인 접촉을 허용하였던 것도 전면적인 접촉이 가능했던 한 요인이 된다. 양 측의 관부, 혹은 유력자들 사이에서 사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여 주고받았던 서한식 문서가 폭넓게 사용되었던 것이 이 시기의 외교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가장 좋은 소재이다.
고려-명 관계에서는 양국의 외교관계에 명이 설정한 관료제적 운영 원리가 강하게 적용되었던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군주 사이의 문서가 여전히 사용되었던 외에, 고려국왕은 명의 중서성‧예부‧요동도사 등과 관문서식 외교문서를 주고받았다. 반면에 상하관계 표현에 유연함을 보였던 첩식 문서는 사용이 중지되었고, 사적 관계를 전제로 한 서한식 문서는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라는 원칙 하에 철저히 금지되었다. 단순히 서식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문체나 용어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명 국내의 양식을 따랐던 관문서식 외교문서야말로 고려-명 외교관계의 제도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서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고려시대의 대중국 외교문서 서식을 분석하여 간취할 수 있는 큰 흐름에서의 변화를, 한마디로 고려 전 기간을 거치며 고려와 중국의 관료제 차원의 일체화 내지는 통합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고려사와 중국의 역대 정사(正史)는 물론,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 송대조령집(宋大詔令集) 등의 문서집, 이규보나 이색 같은 문인들이 남긴 문집 등등,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을 모두 뒤지면 양쪽이 주고받은 외교문서 1,000여 건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고려가 보냈거나 받았던 외교문서를 빠짐없이 분석하였다. 고려가 막강한 이웃에게 때로는 머리를 숙이고 때로는 허풍을 치는 모든 이야기, 중국 왕조가 만만치 않은 이웃에게 때로는 추파를 던지고 때로는 호통을 날리는 모든 이야기가 문서에 남아 이 책에 담겼다. 거기에 실린 내용만이 아니라 아주 사소해 보이는 글자 하나, 양식 하나하나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각국의 입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외교문서를 남김없이 찾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밝혀내고자 했다.
고려시대 외교사 연구의 모든 것
흔히 고려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역동성’을 꼽는다. 고려의 외교만큼 역동적인 것도 찾기 힘들다. 수도 많고 변덕이 끓는 이웃들을 상대했던 고려의 외교는 재밌는 공부 거리를 많이 제공해왔고, 그만큼 훌륭한 연구도 많이 쌓여왔다. 이 책이 참고한 700여 건의 문헌은 지금까지 밝혀진 고려시대 외교사 연구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국가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힘싸움과 협상이 일어났는지, 그 형세를 분석하는 데 주목해왔다. 그러나 형세는 형식을 통해 완성되고 고정되었다. 이 책은 각 국가들이 현실의 모습을 어떤 틀에 담아 설명하고자 했는지, 이를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어떤 줄다리기를 벌였는지 등을 외교문서에 드러나는 표현과 양식으로 추적하였다. 형세와 형식이 어떻게 연동되어 돌아갔는지, 이 책을 통해 더 풍부히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서론 1절 연구 과제와 목적 2절 연구 방법 및 자료 소개 1장 고려-오대ㆍ북송ㆍ남송 외교문서:군주 중심의 문서 교환 1절 고려-오대십국의 상호 승인을 둘러싼 외교문서 양식의 설정 1. 고려와 五代 왕조의 표문-조서 형식의 성립 2. 책봉문서 竹冊의 격식 3. 고려에서 南唐에 보낸 箋文 2절 고려와 북송의 책봉 중심의 의례적 관계와 詔書-表文 양식의 확정 1. 고려와 북송의 비정기적 사신 왕래 2. 책봉을 받은 시기의 외교문서 3. 송의 고려국왕 책봉문서 4. 책봉 이외의 황제 문서, 詔書 5. 책봉 중단 이후의 문서식 3절 고려-송 국교 재개와 詔書 양식의 조정 1. 문종 대 국교 재개를 둘러싼 사신과 문서 왕래(1068~1083) 2. 국교 재개 이후 송 황제 문서의 서식 3. 선종 대 이후 양국관계의 밀착과 황제 문서의 양식 변화(1083~1127) 4. 국교 재개 이후 송 明州와 고려 조정 사이의 牒 교환 4절 고려-남송의 연합 모색과 단절 1. 북송 말 남송 초, 고려와의 연합 모색 2. 사신 왕래 중단과 송 商人을 통한 의사소통 3. 1259년 고려 禮賓省에서 송 明州에 보낸 牒 2장 고려-거란ㆍ금 외교문서:다층위의 소통 구조 1절 고려-거란 관계 성립과 二元的 외교 의례 1. 전쟁 이전 고려-거란의 간헐적 접촉과 긴장상태 2. 성종 대 1차 전쟁과 강화 3. 漢式 책봉문서와 契丹式 책봉의례 4. 현종 대 2ㆍ3차 전쟁과 강화를 둘러싼 문서 왕래 2절 고려-거란 관계에서의 의사소통 구조 1. 고려-거란 군주 사이의 의례적 사신 왕래 2. 고려 조정과 거란 東京 사이의 정기적 실무 교섭 3. 고려 寧德鎭-거란 來遠城 사이의 상시적 문서 교환 3절 고려-금 외교관계의 설정과 誓表ㆍ책봉 문제 1.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2. 誓表 제출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과 원인 3. 고려국왕 책봉 지연의 배경과 새로운 국제질서의 탄생 4. 책봉문서의 서식:冊의 기능과 의미 4절 고려-금 관계의 안정화와 사안에 따른 교섭 경로 설정 1. 고려 조정-금 조정 사이의 정기적 사신 왕래와 의례적 문서의 교환 2. 고려 조정-금 조정 사이의 비정기적 사신 왕래와 문서 교환 3. 고려 조정-금 東京 사이의 사신 왕래와 문서 교환 4. 고려 寧德城-금 來遠城 사이의 문서 교환 5. 1140년 외교문서로 본 소통 구조 3장 고려-몽골 외교문서:외교 주체의 확대와 다양한 서식 활용 1절 고려-몽골 초기 접촉기 講和를 둘러싼 이견과 조정 1. 13세기 초반 동아시아 정세의 변동과 고려-몽골의 첫 접촉 2. 몽골군과의 첫 접촉과 문서 교환 3. 고려-몽골 강화조약의 내용 4. 東眞과의 관계 2절 고려-몽골 전쟁기 여러 주체 사이의 문서 교환 1. 고종 18년(1231), 몽골의 통첩과 고려의 대응 2. 고종 19년, 몽골 2차 침입 전후 몽골 사령부와의 書翰 교환 3. 몽골의 2차 침입 격퇴와 東眞ㆍ金과의 연합 도모 4. 고종 25~27년, 몽골의 3차 침입 종결 전후의 문서 교환 5. 1240년대, 전쟁 소강기 몽골 조정과의 외교 교섭 6. 고종 40년, 몽골의 5차 침입 이후 몽골군 사령부와의 문서 교환 7. 고종 46년, 강화의 성립의 절차와 문서 교환 3절 원종 대 양국 관계 성립과 의사소통 경로의 단일화 1. 원종 대 외교관계의 성립과 문서 형식 정리의 필요성 2. 정기적 사신 파견과 의례적 내용의 表文 제출 3. 비정기적 사신 왕래와 실무적 내용의 문서 교환 4절 충렬왕 대 고려국왕 위상 정립과 관문서식의 사용 1. 일본 원정 준비를 둘러싼 문서 왕래와 교섭 창구의 단일화 2. 征東行省의 설립과 관문서식 외교문서로의 변화 3. 국왕 책봉 문서 양식의 변화 5절 충선왕~충정왕 대 군주권의 약화와 서한식 문서 활용의 확대 1. 정기적 사신 파견과 의례적 문서 제출의 지속 2. 고려 신료들의 書翰 제출 3. 정동행성의 역할 강화 6절 공민왕 대 국제질서의 재편과 문서식의 계승ㆍ변용 1. 정기적 사신 파견의 유지 2. 征東行省의 역할 변화 3. 群雄들과의 교류와 서한식 문서의 왕래 4. 北元 세력과의 외교문서 교환 4장 고려-명 외교문서:관료제적 운영 원리의 확대 적용 1절 공민왕 대 명과의 관계 설정과 관문서식 문서의 확대 1. 첫 번째 문서 교환과 표문-조서 왕래의 성립 2. 책봉 관계의 성립과 책봉 문서 誥命의 사용 3. 관문서식 외교문서 왕래 방식의 계승과 확장 4. 宣諭聖旨의 활용 2절 우왕 대 이후 갈등과 교섭 경로의 경색 1. 우왕 책봉 이전, 황제가 주체가 된 의사소통 단절 2. 서한식 외교문서의 중지 3. 관문서식 문서의 주체 변동 4. 우왕 책봉 이후 의사소통 방식의 복원 5. 창왕, 공양왕 대의 의사소통 경색 6. 조선 태조 대, 개국 승인을 둘러싼 의사소통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