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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1 | ▼a 김백철, ▼g 金伯哲, ▼d 1978- ▼0 AUTH(211009)81980 |
245 | 1 0 | ▼a 정조의 군주상 : ▼b 허상과 실상의 경계 / ▼d 김백철 지음 |
260 | ▼a 서울 : ▼b 이학사, ▼c 2023 | |
300 | ▼a 485 p. : ▼b 삽화, 도표 ; ▼c 23 cm | |
504 | ▼a 참고문헌: p. 437-484 | |
600 | 0 4 | ▼a 정조, ▼g 正祖, ▼c 조선 22대왕, ▼d 1752-1800 |
945 | ▼a ITMT |
Holdings Information
No. | Location | Call Number | Accession No. | Availability | Due Date | Make a Reservation | Service |
---|---|---|---|---|---|---|---|
No. 1 | Location Main Library/Monographs(4F)/ | Call Number 953.058092 2023 | Accession No. 111880881 | Availability Available | Due Date | Make a Reservation | Service |
Contents information
Book Introduction
정조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1990년대부터 정조는 융성한 업적을 기반으로 ‘정조대왕’ 혹은 ‘유교적 계몽절대군주’로 칭송되어왔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1980년대까지도 정조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역사서나 사극 등에서 정조의 모습은 주로 나약한 임금이자 유약한 왕세손으로 형상화되었고, 정조 연간이 개혁의 시대로 그려지기 시작하여 ‘정조신드롬’으로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평가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어째서 동일한 군주와 그 시대가 이토록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전통시대의 재인식이 가능해진 가장 큰 원인은 규장각 도서의 활용 및 연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소수의 일본인 관학자만 실록이나 규장각 도서 등 1차 사료의 열람이 가능하였기에 오랫동안 규장각 도서에 대한 접근이 현저히 제약되어 있어 일반인은 자료를 활용하기 어려웠고, 18세기사도 후대에 집필된 야사를 바탕으로 논하기 일쑤였다. 1990년대 규장각 시설의 독립으로 자료의 대규모 간행·배포가 이루어짐에 따라 정조시대 연구에도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상세한 실증과 정교한 이론적 토대가 구축될 수 있었다.
한편 정조시대가 재조명된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인식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적 관점이 얼마나 역사학에 영향을 끼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면서 정조가 물려받은 과거의 유산, 정조 당대의 실제 모습, 후대의 전승 등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이 책은 역사 인식에 대한 허상과 실상을 점검해보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변화해온 정조시대 군주상의 진실을 추적해나간다.
정조의 군주상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허상과 실상을 가르며 정조시대 군주상의 진실을 추적해나가다
정조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1990년대부터 정조는 융성한 업적을 기반으로 ‘정조대왕’ 혹은 ‘유교적 계몽절대군주’로 칭송되어왔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1980년대까지도 정조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역사서나 사극 등에서 정조의 모습은 주로 나약한 임금이자 유약한 왕세손으로 형상화되었고, 정조 연간이 개혁의 시대로 그려지기 시작하여 ‘정조신드롬’으로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평가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어째서 동일한 군주와 그 시대가 이토록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전통시대의 재인식이 가능해진 가장 큰 원인은 규장각 도서의 활용 및 연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소수의 일본인 관학자만 실록이나 규장각 도서 등 1차 사료의 열람이 가능하였기에 오랫동안 규장각 도서에 대한 접근이 현저히 제약되어 있어 일반인은 자료를 활용하기 어려웠고, 18세기사도 후대에 집필된 야사를 바탕으로 논하기 일쑤였다. 1990년대 규장각 시설의 독립으로 자료의 대규모 간행·배포가 이루어짐에 따라 정조시대 연구에도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상세한 실증과 정교한 이론적 토대가 구축될 수 있었다. 한편 정조시대가 재조명된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인식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적 관점이 얼마나 역사학에 영향을 끼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면서 정조가 물려받은 과거의 유산, 정조 당대의 실제 모습, 후대의 전승 등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이 책은 역사 인식에 대한 허상과 실상을 점검해보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변화해온 정조시대 군주상의 진실을 추적해나간다.
18세기사를 보는 시선의 변화와 ‘정조신드롬’의 대두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정조는 일반 대중에게 그저 평범하고 나약한 왕으로 인식되었다. 이 책은 당대의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정조시대에 대한 평가 추이를 살피는 색다른 시도를 한다. 김영곤의 『왕비열전』(1973)에서 정조는 자객의 위협으로부터 겨우 왕위를 보존하는 군주, 권신 홍국영의 숙위소 설치로 인해 꼭두각시가 된 모습 등으로 등장하여 유약하고 우둔하며 전형적으로 무능한 임금으로 비친다. 큰 인기를 얻어 장편소설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신화를 만들어낸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전 5권, 1992)에서도 정조에 대한 묘사는 개혁가와는 정반대인데, 이는 저자가 1980년대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약 10여 년간 집필하여 1990년대 초반에 소설을 최종 간행했기 때문이다.
규장각 도서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자 학계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정조시대를 재조명했고, 이러한 시각은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물론 학계의 연구 성과는 대중적인 형태로도 확대되었다. 정조시대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00만부 이상 판매를 기록하여 영화로까지 제작된 이인화(류철균)의 『영원한 제국』(1993)이었다. 기존의 인식과는 근본적으로 시각을 달리한 이 소설은 1990-1992년 정조를 개혁군주의 반열에 올린 학계의 연구를 신속히 받아들여 1993년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정조는 일반 대중에게 개혁군주로 각인되었으며, 이후 정조시대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집중 방영, 영화의 제작, 잇따른 저작물의 출판, 사극의 제작·방영 등에 힘입어 정조신드롬은 일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흐름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다.
20세기 패러다임의 전환: 현재적 관점이 역사학에 끼치는 영향을 살피다
이 책은 1990년대 정조시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창된 원인을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 등의 측면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첫째, 정권교체이다. 민주화 항쟁(1987)의 결과로 신군부가 붕괴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회복되었으나 집권 세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 가장 절실했던 것은 개혁의 희망과 실천이었고, 과거 실제로 개혁을 추진한 정조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조의 개혁정치가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후로 정치권에서는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모두 국가정책을 선전하는 데 있어 정조의 이미지를 차용하기에 바빴다.
둘째,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동이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 경제는 흑자 속에서 기세등등했지만, 언제 다시 쇠락기로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또한 군부의 통제를 겪었던 민간에 자율성은 반드시 도달해야 할 이상처럼 제시되었으며, 이는 정치개혁에서 경제개혁으로 관심이 옮겨오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자본주의맹아론이 확장되면서 18세기를 경제적 번영기로 재인식하였고, 한국 경제의 도약 가능성을 과거 사례를 통해 검증하고자 정조시대에 주목하게 되었다.
셋째, 문화의 인식 변화이다.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제국의 군사적 침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은 오랫동안 붕괴의 요인이 내부에만 있는 것처럼 호도해왔고, 이는 조선왕조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국가의 주권을 회복한 뒤부터는 경제회복과 놀라운 고도성장 속에서 전통을 긍정하는 인식이 꾸준히 확산되었다. 하지만 전통의 재인식은 단지 긍정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정체성을 보존하는 최소한의 민족주의를 넘어서 때로는 배타적인 국수주의 색채를 띠는 위태로운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전통에 투영된 국민의 왜곡된 염원은 19세기 말 자주적인 근대국가 수립 운동의 좌절이 1800년 정조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그릇된 믿음으로까지 굳어졌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고 정조시대를 심도 있게 이해하다
과도한 애정은 증오로도 쉽게 바뀌었다. 2000년대 정조의 비밀 어찰이 발굴되자 한편에서는 정조의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재평가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밀실정치를 비판하며 정조를 복고주의자로 매도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정조가 남인 서학도를 보호하기 위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켜 노론 북학파 일부를 견제했으며, 국왕 자신이 바로 북학파의 영수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심지어 근대화 좌절의 원인조차 정조의 개혁이 미진했기 때문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이 일기도 했는데, 이러한 비난은 제국주의시대의 승패를 과거로 끌어와 억지로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정조를 영웅시하는 주요 배경에는 그가 즉위 초 반대파에 의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거나 이들의 반대로 개혁이 좌초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런데 무도한 반대파의 이미지는 정조가 직접 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를 『명의록明義錄』에 수록하여 전국에 반포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어떤 나약한 임금이 스스로 핍박받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대규모 숙청 뒤에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면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 왕권이 미약했다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정조는 조선의 문물제도 융성기로 평가되는 성종과 비교해도 재위 기간이나 사망 나이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조가 성종보다 오히려 10여 년 이상 더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성종은 천수를 누렸다고 여겨지는 반면에 유독 정조는 요절했다고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이러한 인식이 ‘역사적 사실’보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 과거를 이해한 결과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정조시대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통념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정조의 군주상을 허상과 실상의 경계라는 측면에서 살피지만, 이는 모두 엄중한 사료 검토와 국내외 연구의 흐름을 토대로 한다. 정조는 약자이기는커녕 즉위와 동시에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피의 숙청을 단행한 강력한 군주였으며, 탕평의 계승자이자 법치주의 통치 체제를 재정비한 국법의 수호자였다. 조선 후기사의 잘못된 전승의 연원을 찾고 이념과 편견을 넘어서 실제 18세기 모습을 추적해나가는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아줌과 동시에 정조시대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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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ntroduction
김백철(지은이)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분야는 조선시대 법사학 및 정치사상이다. 전북대학교 HK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대표저서로 『조선후기 영조의 탕평정치』(2010), 『두 얼굴의 영조』(2014), 『법치국가 조선의 탄생』(2016), 『탕평시대 법치주의 유산』(2016), 『정조의 군주상』(2023) 등이 있다. 저서를 비롯한 그간의 연구성과는 한국연구재단 우수논문(2008·2009),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세종도서(2010·2017), 역사학회 논문상(201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2015·2018),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2016), 대구경북연구원 우수논문(2022) 등에 선정되었다.

Table of Contents
서문 연구 서설 1장 현재적 시선: 1990년대 ‘정조신드롬’의 등장 배경 1. 18세기사를 평가해온 시선 1) 학계의 연구 동향 2) 일반 대중의 시선 2.‘정조신드롬’의 대두 1) 새로운 모색 2) 대중매체로의 확산 3. 패러다임의 변화와 추세 1) 재조명되는 정조시대 2) 18세기사의 역사적 가치 3) 20세기 패러다임의 전환 4) 21세기 해외 연구의 흐름 4. 현대인이 선망한 탕평군주 2장 선왕의 유산: 17-18세기 대동·균역의 위상 1. 경제구조의 전환 배경 1) 전세의 간편화 2) 신역의 화폐가치 환산 3) 공물의 간접 금납화 2. 대동의 파급력 1) 전세의 원용 2) 재원의 확보 3) 화폐의 연동 3. 균역의 추진 배경 1) 군역 개혁의 필요성 2) 재정추계의 현실화 3) 국가정책의 순문 4. 세제 개혁의 여파 제1부 탕평의 계승자 3장 정조 초반 왕권의 실상과 ‘청의淸議’의 공인 1. 『명의록』의 서술방식 1) 「존현각일기」의 핍박받는 왕세손 2) 『명의록』의 척신 토역 3) 『속명의록』의 범궐 계획 분쇄 2. 현실 속 정국 주도 과정 1) 공론의 주도 2) 척신의 일소 3) 청류의 규합 3. 의리명변서의 상징성 4장 정조 전반 시파의 등장과 ‘황극 皇極’의 회복 1. 두 편의 정조 윤음 1) 판본 현황 2) 구성 방식 2. 송덕상 사건: 노론 청류의 부침 1) 산림의 화려한 출사(정조 2-3, 1778-1779) 2) 홍국영과 동반 몰락(정조 3-4, 1779-1780) 3. 사건의 파장: 시파·벽파의 분기 1) 생전 반발 여론 2) 사후 정국 변동 4. 윤음 반포 후 변화상 제2부 국법의 수호자 5장 법치주의하 통치 체제의 재정비 1.『대전통편』의 편찬 사업 1) 법제의 통합 2) 증보의 특징 2. 국법 체계의 재구축 1) 법제 일원화 2) 상시 관리 체계 3. 법제 정비의 지향 6장 국왕 중심의 군제 개편 1. 융정의 이해 방향 2.「병전」의 탄생 1) 구성 방식 2) 관무재와 시사 3. 군제 개혁의 성격 1) 무신 선발의 특징 2) 균형 선발 정책 3) 국왕의 신변 강화 제3부 탕평시대의 기억 전쟁 7장 영남 ‘반역향’ 담론의 재검토 1. 차별 담론의 검토 1) 다양한 차별론 2) 영남 ‘반역향’의 등장 2. 영남 출사자의 실상 1) 영남인의 등과 현황 2) 영조-정조 연간 등용책 3. 가문 중심주의 문제점 1) 집단 구조화의 맹점 2) 당파성론 출현 배경 4. 차별 담론의 허상 8장 ‘실학’ 담론의 파급효과 1.『경세유표』의 등장 배경 1) 정약용의 편찬 의도 2) ‘실학’ 담론하의 재조명 2. 제도 개혁의 청사진: 서주에서 북학까지 1) 중앙·지방의 관제 개편 2) 관료제 운영의 변화 3) 재정 개혁과 신물물 수용 3. 개혁안의 지향 결론 1. 관점의 환기 2. 정조시대의 사회경제적 배경 3. 정조의 군주상: 탕평의 계승자와 국법의 수호자 4. 후대의 기억 전쟁 부표 참고문헌 수록 원고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