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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 ▼a 953.052092 ▼b 2023 | |
100 | 1 | ▼a 정두희, ▼g 鄭杜煕, ▼d 1946-2013 ▼0 AUTH(211009)87033 |
245 | 1 0 | ▼a 유자광, 조선의 영원한 이방인 / ▼d 정두희, ▼e 계승범 지음 |
260 | ▼a 서울 : ▼b 푸른역사, ▼c 2023 | |
300 | ▼a 467 p. : ▼b 삽화 ; ▼c 23 cm | |
504 | ▼a 참고문헌(p. 450-452)과 색인수록 | |
600 | 1 4 | ▼a 유자광, ▼g 柳子光, ▼d 1439-1512 |
700 | 1 | ▼a 계승범, ▼g 桂勝範, ▼d 1960-, ▼e 저 ▼0 AUTH(211009)131152 |
945 | ▼a ITMT |
소장정보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
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11879884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11880598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3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21263175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4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21263176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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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11879884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2 |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11880598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 소장처 | 청구기호 | 등록번호 | 도서상태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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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21263175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No. 2 |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 청구기호 953.052092 2023 | 등록번호 121263176 | 도서상태 대출가능 | 반납예정일 | 예약 | 서비스 |
컨텐츠정보
책소개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는 조선 초 전환기. 유자광은 임사홍, 원균 등과 더불어 조선사에 손에 꼽히는 ‘간신’이다. 실제 1908년 순종 때 복권되기까지 400년 동안 조선의 주류인 사림에 의해 나라를 그르친 간신 중의 간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고인이 된 스승과, 그 제자가 합심해 10여 년만에 그려낸 유자광의 진면목은 다르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유자광이 활동하던 15세기 후반~16세기 초는 조선에서 서얼차별이 본격화되고, ‘유교화 정풍운동’이 권력무대에 등장하던 시대적 전환기였다.
첩의 소생에서 정1품 당상관으로, 결국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유자광의 행적을 출세를 위한 미천한 출신의 안간힘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놓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조선의 기득권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를 헤치고 꼼꼼한 사료 조사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미해 보여주는 문제적 인물 유자광의 일생은 읽는 재미가 각별하다.
서얼이란 ‘멍에’…냉철한 승부사…눈 밝은 행정가…
조선사에서 손꼽히는 ‘간신’을 위한 ‘변명’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는 조선 초 전환기
유자광은 임사홍, 원균 등과 더불어 조선사에 손에 꼽히는 ‘간신’이다. 실제 1908년 순종 때 복권되기까지 400년 동안 조선의 주류인 사림에 의해 나라를 그르친 간신 중의 간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고인이 된 스승과, 그 제자가 합심해 10여 년만에 그려낸 유자광의 진면목은 다르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유자광이 활동하던 15세기 후반~16세기 초는 조선에서 서얼차별이 본격화되고, ‘유교화 정풍운동’이 권력무대에 등장하던 시대적 전환기였다. 첩의 소생에서 정1품 당상관으로, 결국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유자광의 행적을 출세를 위한 미천한 출신의 안간힘으로만 보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놓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조선의 기득권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를 헤치고 꼼꼼한 사료 조사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미해 보여주는 문제적 인물 유자광의 일생은 읽는 재미가 각별하다.
평생을 따라붙은 낙인, 얼자孽子 출신
유자광은 전 부윤 유규의 얼자다. 천민 출신 첩이 낳은 아들이란 의미다. 그러기에 만만찮은 문장 실력을 갖추고 말 타기․활쏘기에도 능했음에도 서얼 차별이 막 본격화되던 당대에는 중앙정계에서 입신하기 어려웠다. 이시애 난 때 공을 세워 세조 때 병조정랑, 성종 때 한성판윤에 등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양반 출신의 적자 혹은 과거 급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간 등의 반론에 부딪치거나 심지어 탄핵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세조의 특은으로 온양 별시문과에 장원을 했어도 얼자라는 ‘주홍글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중종반정 때 핵심인물인 3대장의 뒤를 이어 당당히 1등 공신에 올랐지만 실권을 휘두르는 요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오히려 반정 후 과거사 정리 등과 관련해 “유자광에서 잘못되었다”는 만악의 근본으로 지목되거나 “성품이 음흉하고 교활” “사특한 소인배” 등 주관적 인물평에 시달려야 했다.
임금만 바라보며 당대의 기득권과 맞서다
유자광은 승부사였다. 배경이 없었기에 오로지 임금의 총애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젊은 인재들로 원로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던 세조, 권력기반이 취약했던 예종, 친정체제 확립을 서둘렀던 성종 등에게 유자광은 총애를 받았다. 그러기에 예종 때 개국공신의 고손자이자 태종의 외손이며 이시애 난 평정에 큰 공을 세운 남이를 고발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유자광은 이로써 익대공신에 올라 중신들과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다. 성종 때는 수렴청정을 거두려는 대왕대비를 만류한 당대의 권신 한명회를 역모죄로 고발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이어 친정 초기 자연재해가 심해 고심하던 성종을 위해 공경대부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지 임금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상소로 총애를 확보한다. 그 덕에 숭정대부 무령군으로 지위가 올라갔지만 조정의 모든 관료를 적으로 삼긴 했지만 정치 상황을 읽는 유자광의 안목은 뛰어난 바가 있다.
정사에선 잊힌 뜻밖의 경륜과 능력
유자광은 권력의 풍향에 민감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었다. 성종 때는 특진관으로 경연에 참영하기도 했으며 사신으로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는 등 실무능력을 갖췄다. 당초 중앙정계에 데뷔한 계기가 이시애 난을 평정하기 위한 헌책을 세조에게 올린 것이었다. 여기에 사행을 다녀오며 본 압록강 변 국경 요충지 의주의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쌓고 군비를 강화하며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연산군 때 등청하는 관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관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던 사옹원의 제조를 맡아서는 당상관과 당하관을 차등해 주던 밥의 양을 균일하게 하는 ‘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종 때 동래로 유배 가 있는 중에도 현감 비리 고발, 과중한 공물 개선, 조선 수군 군비 강화 등을 담은 시정책을 올리기도 했다.
유자광이 도덕적으로 허물이 없고 정치적으로 과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지나치게 권력 지향적이었고,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심문관을 맡아 파장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의 기준이란 ‘비늘’을 씻어내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개인’이란 프리즘을 통해 역사를 살피는 의미일 터이고 그것이 이 책의 가치이다.
정보제공 :

저자소개
정두희(지은이)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1년 방문학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하버드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에 머물며 한국사의 ‘글로벌’화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83년에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1983)로 제6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왕조의 얼굴: 조선 왕조의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2010),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2001), 《조광조: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2000), 《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1999),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1997), 《조선시대의 대간 연구》(1994) 등이 있다. 편저로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2007), 《유교, 전통, 변용》(2005), 《장희빈: 사극의 배반》(2004), 《한국사에 있어서 중앙과 지방》(2003) 등이 있다. 역사 에세이집으로는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역사》(2004)를 남겼다.
계승범(지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워싱턴 주립대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맥락에서 보는 조선시대 정치․지성사와 한중관계사를 주로 탐구한다. 특히 양반 지식인들의 중화 인식과 유교의 한국적 특성이 결합하여 조선을 빚어낸 양상 및 그 역사적 유산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양태에 관심이 많다. 대표 저서로는 《모후의 반역: 광해군 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2021), 《중종의 시대: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2014),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2011),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2011),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2009) 등이 있다. 역주서로는 A Korean Scholar ’s Rude Awakening in Qing China(2019), 《북정록》(2018)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I부 세조 말년: 출곡천교出谷遷喬(1467~1469) 01_원각사의 낙성, 세조 13년 4월 8일 02_이시애의 반란, 세조 13년 5월 16일 03_이시애 난의 토벌에 관한 유자광의 첫 상소 04_유자광의 출생 05_세조의 신임 06_유자광, 병조 정랑이 되다 07_세조, 유자광을 과거 출신으로 만들다 08_남이와 유자광 II부 예종과 성종 초기: 좌충우돌左衝右突(1469~1477) 09_남이를 반역죄로 고발하다 10_예종 사후 왕위계승 문제와 구성군 준 11_유자광, 한명회를 탄핵하다 12_유자광의 한명회 탄핵 상소문 13_성종의 친정 시작과 유자광 14_성종 7년 8월 10일에 올린 유자광의 상소 15_조정의 모든 대신을 적으로 돌리다 III부 성종 친정 초반: 과유불급過猶不及(1478~1485) 16_출신이 다시금 문제되다 17_성종 8년 7월, 승정원 승지들의 반목 18_유자광, 현석규를 탄핵하다 19_거듭 현석규를 탄핵하다 20_유자광의 상소가 빚은 논쟁과 위기 21_도승지 임사홍 22_이심원과 남효온의 상소 23_이심원과 남효온에 대한 훈신들의 반격 24_유자광과 임사홍 25_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26_유자광의 복직 IV부 성종 후반기: 맹호복초猛虎伏草(1486~1494) 27_서자 신분이 다시 문제되다 28_중국에 사신으로 가다 29_의주 방어책을 올리다 30_다시 논란이 된 장악원 제조 임명 31_성종의 죽음과 정치적 유산 V부 연산군 전반기: 권토중래捲土重來(1494~1498) 32_모친상 중에 닥친 국상 33_성종의 장례 문제 34_삼년상 후 정계 복귀 35_유자광과 무오사화 36_무술년 옥사, 사림의 기억 조작 37_김일손의 사초를 최초로 공개한 사람 38_무오사화의 추이와 유자광의 역할 39_사화의 여진, 유자광의 ‘죽림칠현’ 공격 VI부 연산군 후반기: 불중지결不重之結(1499~1506) 40_서거정의 수직론과 유자광의 실각 41_수직론을 반박하고 대간과 전면전을 벌이다 42_총신 그러나 균열의 시작 43_폐비 윤씨의 처우를 둘러싼 논란 44_갑자사화의 실상과 성격 45_이세좌와 이극균 46_몸을 낮춘 유자광 VII부 중종 초기: 고성낙일孤城落日(1506~1512) 47_유자광, 반정에 참여하다 48_대간의 총공세와 고립무원의 유자광 49_무오년 사초 문제를 누가 누설했는가? 50_유자광에서 잘못되었습니다 51_희망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52_죽은 후에도 시빗거리 에필로그_영원한 이방인 참고문헌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