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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臺天氏五代六孝古文書

石臺天氏五代六孝古文書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단체저자명
경성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
서명 / 저자사항
石臺天氏五代六孝古文書 / 慶星大學校 鄕土文化硏究所 編
발행사항
서울 :   한국학자료원,   2022  
형태사항
12, 252, 274 p. : 영인물 ; 27 cm
총서사항
鄕土資料叢書 ;5
ISBN
9791168872042
일반주기
1995년 민족문화에서 발간되었던 것을 재발행한 것임  
권말 원문영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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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p 원본출판사항: ▼c 釜山: 民族文化,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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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173 2022 등록번호 11187236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741년(영조 17) 호구 단자에서 1918년 표창 완의문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간에 걸쳐 작성된 것이다. 100여 장이 넘는 상서와 등장은 석대 천씨 5명의 효자와 1명의 효부를 기리기 위해 1752년(영조 28)부터 1903년(고종 40)까지 150여 년에 걸쳐 동래 지역의 많은 사림(士林)이 자원하여 정려를 세우고자 올린 것이다. 이렇듯 민장과 공문 서류는 대체로 1대 효자 천성태(千聖泰)를 비롯한 천씨 가계의 역대 효행의 포상 요청을 담은 민원서류와 그 사실 여부를 각 단위의 행정 기관을 통해 조사, 보고된 서류들이다. 이를 통해 효행 포상과 관련된 복잡한 행정 절차의 전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조선 후기와 근대 동래부 석대동에 거주하던 영양 천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

필사본이며, 규격은 각 고문서의 양식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조선 시대 동래부 석대동 상리(上里)와 하리(下里)는 영양 천씨 가문의 세거지였다. 영양 천씨 가문의 중시조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조선에 온 천만리(千萬里)이다. 영양 천씨 사람들이 석대리에 정착한 것은 천만리의 4세손인 천찬석이 들어오면서부터로, 천찬석의 손자 대에 각각 상리와 하리에 자리 잡았다. 이 고문서는 상리에 거주한 영양 천씨 가문에서 전해 오는 것들이다. 이 가문에서는 5대에 걸쳐 5명의 효자와 1명의 효부를 배출했고, 이로 인해 석대가 효자 마을로 알려졌다. 석대 천씨 오대 육효 고문서(石坮千氏五代六孝古文書)는 1994년 문중에서 소장 문서의 편역을 경성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에 의뢰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2006년 문중에서 보관해 오던 자료 전부를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기증하여 보관하고 있다.

총 265건 272점으로, 오대 육효의 효행에 대해 선양을 청원하는 청원서인 소지(所志), 등장(等狀), 상서(上書)와 이를 상부 기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행정 문서들인 첩정(牒呈), 서목(書目), 수본(手本), 품목(稟目) 및 호구 단자, 준호구, 호적표가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관에서 효자와 효자 집안의 후손들에게 효행의 보상 차원에서 내린 교지(敎旨), 단자(單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석대 천씨 오대 육효 고문서』는 1741년(영조 17) 호구 단자에서 1918년 표창 완의문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간에 걸쳐 작성된 것이다. 100여 장이 넘는 상서와 등장은 석대 천씨 5명의 효자와 1명의 효부를 기리기 위해 1752년(영조 28)부터 1903년(고종 40)까지 150여 년에 걸쳐 동래 지역의 많은 사림(士林)이 자원하여 정려를 세우고자 올린 것이다. 이렇듯 민장과 공문 서류는 대체로 1대 효자 천성태(千聖泰)를 비롯한 천씨 가계의 역대 효행의 포상 요청을 담은 민원서류와 그 사실 여부를 각 단위의 행정 기관을 통해 조사, 보고된 서류들이다. 이를 통해 효행 포상과 관련된 복잡한 행정 절차의 전 과정을 살필 수 있다.

한편 이 가계에 전승되는 호적류는 1741년에서 1894년(고종 31)까지 작성된 준호구와 호구 단자 112점과 1897년에서 1907년까지의 호적표 12점, 민유가계(民有家契) 2점[1901년, 1905년]으로 전체 고문서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들 호구 관련 문서는 166년에 걸쳐 있으므로 상리 천씨 가계의 존재 형태 및 지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까지 부산 지역에서 발굴 소개된 고문서 가운데 단일 문중의 고문서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또한 효행과 관련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있어 경상도 지역 사회의 효행에 대한 포상 절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석대 천씨 오대 육효 고문서」 [石坮千氏五代六孝古文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정보제공 : Aladin

목차

합본

국문번역본 - 1 ∼252

필사본 - 1∼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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