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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 0 0 | ▼a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 ▼d 윤동주 [외] |
260 | ▼a [서울] : ▼b 리나북스, ▼c 2022 | |
300 | ▼a 202 p. ; ▼c 19 cm | |
500 | ▼a 공저자: 김소월, 이육사, 한용운 | |
700 | 1 | ▼a 윤동주, ▼g 尹東柱, ▼d 1917-1945, ▼e 저 ▼0 AUTH(211009)126515 |
700 | 1 | ▼a 김소월, ▼g 金素月, ▼d 1902-1934, ▼e 저 ▼0 AUTH(211009)54240 |
700 | 1 | ▼a 이육사, ▼g 李陸史, ▼d 1904-1944, ▼e 저 ▼0 AUTH(211009)28424 |
700 | 1 | ▼a 한용운, ▼g 韓龍雲, ▼d 1879-1944, ▼e 저 ▼0 AUTH(211009)126552 |
945 | ▼a ITMT |
Holdings Information
No. | Location | Call Number | Accession No. | Availability | Due Date | Make a Reservation | Serv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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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Location Main Library/Monographs(4F)/ | Call Number 897.1508 2022 | Accession No. 111863163 | Availability Available | Due Date | Make a Reservation | Service |
Contents information
Book Introduction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대표되는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 한용운의 대표시를 모아 한권의 시집에 담았다. 윤동주의 시 64편, 김소월의 시 38편, 이육사의 시 35편, 한용운의 시 23편 총 160편이 담겨 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 한용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 한용운의 명시 160편
우리 국민에게 항상 감동과 위로를 주었던 네 분의 시를 한권에서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 한용운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한편 한편에 담겨놓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 이별, 슬픔 그리고 나의 조국
이제는 우리가 느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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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ntroduction
김소월(지은이)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윤동주(지은이)
1917년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8~1930년(12세~14세)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1931년(15세) 3월 15일, 명동소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20세)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 11월호에 동시 「병아리」, 12월호에 「빗자루」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22세)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했다. 1941년(25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3년(27세)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었다. 1944년(28세)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45년(29세)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육사(지은이)
1904년 5월 1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 사이에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의 형제 중 다섯째는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월북 이후 1950년대 초 숙청당한 이원조다. 어릴 때 조부 이중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에 신학문을 접한 보문의숙을 졸업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대학 상과에 입학해 7개월간 다녔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었다. 일본 경찰이 장진홍이란 인물은 물론 단서조차 잡지 못하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진범을 조작해 법정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육사를 비롯해 원기·원일·원조 등 4형제가 함께 검거되었다. 원기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미결수 상태로 1년 반을 넘겼다. 그때의 수인번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 1월 3일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이활(李活)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시인 신석초를 만나 친교를 나눴다. 같은 해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간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신조선사(新朝鮮社)의 ≪신조선(新朝鮮)≫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1940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충칭과 옌안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퉁(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했다.
한용운(지은이)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Table of Contents
윤동주 서시 003 장 004 못 자는 밤 005 별 헤는 밤 006 무서운 시간 009 트루게네프의 언덕 010 새벽이 올 때까지 012 이별 013 소년 014 바람이 불어 015 산골물 016 자화상 017 돌아와 보는 밤 018 애기의 새벽 019 코스모스 020 초한대 021 아침 022 삶과 죽음 023 비 오는 밤 024 소낙비 025 사랑의 전당 026 길 028 참회록 030 쉽게 쓰여진 시 032 사랑스런 추억 034 그 여자 036 달같이 037 흐르는 거리 038 거리에서 039 봄 041 눈 오는 지도 042 새로운 길 043 공상 044 눈 감고 간다 045 황혼이 바다가 되어 046 아우의 인상화 047 남쪽 하늘 048 버선본 049 나무 050 겨울 051 편지 052 조개껍질 053 거짓부리 054 개 055 반딧불 056 둘 다 057 사과 058 기왓장 내외 059 창구멍 060 햇비 061 호주머니 062 고추밭 063 빗자루 064 무얼 먹고 사나 065 만돌이 066 빗 뒤 068 빨래 069 굴뚝 070 산울림 071 햇빛·바람 072 해바라기 얼굴 073 병아리 074 귀뚜라미와 나와 075 할아버지 076 김소월 가는 길 079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080 진달래꽃 081 가는 봄 삼월 082 먼 후일 083 못 잊어 084 그리워 085 꽃촉불 켜는 밤 086 오시는 눈 087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088 엄마야 누나야 089 오는 봄 090 잊었던 맘 092 봄비 093 밤 094 깊고 깊은 언약 095 산유화 096 님과 벗 097 님의 노래 098 눈 099 구름 100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101 강촌 102 개여울 103 새벽 104 바람과 봄 105 초혼 106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 108 우리집 109 드리는 노래 110 눈 오는 저녁 112 옛 낯 113 님에게 114 고적한 날 115 가을 아침에 116 서름의 덩이 118 꿈꾼 그 옛날 119 가시나무 120 이육사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123 청포도 125 반묘 126 광야 127 나의 뮤즈 128 춘수삼제 130 실제 131 노정기 132 해조사 133 말 136 황혼 137 강 건너간 노래 139 아편 140 소년에게 141 절정 143 광인의 태양 144 일식 145 교목 146 초가 147 소공원 149 호수 150 연보 151 서풍 153 꽃 154 파초 155 서울 157 해후 159 산 161 독백 162 아미 164 자야곡 166 바다의 마음 167 무제 168 편복 169 잃어진 고향 171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175 님의 침묵 176 알 수 없어요 177 복종 178 행복 179 꿈과 근심 180 해당화 181 당신을 보았습니다 182 나는 잊고자 183 첫 키스 184 그를 보내며 185 사랑하는 까닭 186 꿈이라면 187 칠석 188 나의 꿈 190 만족 191 나의 노래 193 가지 마셔요 195 참아주셔요 197 당신 가신 때 199 당신은 200 당신이 아니더면 201 후회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