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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찾습니다 : 진보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박찬수, 1964-
서명 / 저자사항
진보를 찾습니다 : 진보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 박찬수 지음
발행사항
서울 :   인물과사상사,   2021  
형태사항
289 p. : 도표 ; 23 cm
ISBN
9788959066247
서지주기
참고문헌: p. 28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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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a 이 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음
945 ▼a KLPA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0.953 2021z66 등록번호 51105144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진보는 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을 약자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힘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를 중시한다. 그리고 분배와 정의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명예교수는 “진보는 존재 증명을 위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실천까지 내장한 프로젝트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에게는 타협과 포용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진보는 뼈아픈 성찰과 반성과 변화의 노력을 통해 ‘진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낡은 진보’를 뛰어넘어 따뜻하고 공감할 줄 아는 진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증오의 정치를 뛰어넘는
따뜻한 진보가 필요하다
“진보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실천이다”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명제는 오래전부터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말로 여겨졌다. 진보는 도덕성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포용성을 갖고 있었다. 보수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며,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 노무현은 “미래의 역사는 진보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보는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시 말해 엘리트 중심의 진보운동과 진보 정치 세력의 집권은 ‘진보 역시 사회의 기득권층’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진보가 오랫동안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공익과 공동체주의도 약화되었다.
진보는 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을 약자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힘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를 중시한다. 그리고 분배와 정의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명예교수는 “진보는 존재 증명을 위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실천까지 내장한 프로젝트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에게는 타협과 포용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진보는 뼈아픈 성찰과 반성과 변화의 노력을 통해 ‘진짜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낡은 진보’를 뛰어넘어 따뜻하고 공감할 줄 아는 진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100일 정도 앞둔 현 시기에, 정권교체를 향한 보수의 열망이 달아오르는 반면 진보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2016년 탄핵 촛불시위 때의 보수의 위기는 곧 진보의 위기였다. 다만 그 현실을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이 불거질 때까지는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 이후 진보는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진보는 국민의 삶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도 못했다. 그 점에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진보 정치 세력이 새롭게 전진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박찬수의 『진보를 찾습니다』는 한국 정치에서 진보라는 개념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확장되어온 것인지, 진보의 위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2016년 가을과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경험했지만 진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커졌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둔 한 켠에서는 젊은 세대의 분노와 비판이 분출하는 정반대 흐름이 가시화했다. 더구나 젊은 세대의 눈에는 ‘진보나 보수나 권력을 잡으니 똑같다’는 시각이 강해졌다. 진보는 성장 정체 사회의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내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가 선거에서 보수정당을 찍는다면, 그것은 진보정당이 그들의 불만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만원버스와 노회찬의 6411번 버스

노무현과 노회찬이 버스를 통해 진보의 지향을 말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버스가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과 함께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버스 승객이 꽉 찼을 때 진보는 ‘저 사람들도 태워주자. 어렵더라도 같이 타고 가야지’라며 사람들을 헤쳐서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대, 함께 살자는 게 진보의 가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진보적인 승객들이 있는 버스라면 누구나 올라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성장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입석이라도 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아졌다. 버스 바깥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진보는 버스에 올라탄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데는 익숙했지만, 버스 바깥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깊게 인식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균등한 분배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보의 가치’를 강조했다. “연대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된 가치다. 진보라야 민주주의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7년 6월 참여정부평가포럼 월례 강연의 연설에서 노무현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진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와 어떻게 다른가.……‘시장친화적인 진보’고 ‘개방 지향의 진보’다. ‘배타하지 않는 자주를 주장하는 실용적 진보’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진보라는 개념을 사회주의와 노동과 평등에 자주라는 가치를 더해 확장시켰다. 그래서 왼쪽에 비해서 ‘나는 실용적 진보, 실현 가능한 진보주의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무현은 진보의 이념 경직성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회찬의 진보는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당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연설에 녹아 있다. 노회찬은 “새벽 4시에 구로에서 출발해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에는 50~60대 아주머니들로 가득 찹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노회찬는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고 진보주의자의 기본 덕목은 실사구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노회찬이 말한 ‘진보의 세속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과 리버럴리즘

노무현의 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버럴리즘’에 맞닿아 있다. 노무현이 말했던 진보가 사실은 미국의 리버럴(liberal)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 ‘분배와 정의’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옹호하는 것이 루스벨트가 세운 미국 민주당의 진보주의(liberalism)다. 루스벨트는 뉴딜을 통해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 미국 사회를 바꾸고 보수 우위의 정치 구도를 뒤바꾸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수많은 한계를 지녔지만,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한 점만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루스벨트는 왜 뉴딜이 필요한지 국민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서 지지를 넓혔다.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이 대표적이다. 이 라디오 연설은 화롯가에 앉아 조곤조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형식이라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불렸다. 노변정담의 평균 청취자 수는 약 5,400만 명에 달했다. 노변정담은 쌍방향 소통이었다. 일주일 동안 백악관에는 45만여 통의 편지가 쏟아졌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요약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다시 재분류되어 해당 부처로 전달되었다. 루스벨트는 “소득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으면 현 체제를 지속할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뉴딜의 목표는 흔히 ‘3R’로 표현된다. 구제(Relief), 재건(Recovery), 개혁(Reform)이다. 우리가 ‘뉴딜’ 하면 떠올리는 대규모 토목·건설사업과 일자리 창출이 바로 ‘구제’나 ‘재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국 사회를 바꾼 것은 세 번째 목표인 ‘개혁’이었다. 뉴딜 개혁 입법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루스벨트에게는 ‘사회주의자’, ‘볼세비키’, ‘독재자’라는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뉴딜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못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뉴딜은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 1935년 7월 제정된 와그너법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했다. 이로써 노동조합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실업보험과 노인연금을 담은 사회보장법도 의회를 통과했다. 연금을 납입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매우 제한적인 입법이었지만, ‘공적 복지’ 개념을 거부했던 미국 사회의 인식을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미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통령 4선은 그렇게 가능했다.
루스벨트 시대에 미국 정치 지형은 180도 바뀌었다. 1932년 루스벨트 집권 전까지 70년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단 두 사람이었다. 이 기간에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시기는 6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이후, 즉 1932년부터 1980년까지 48년간 민주당은 12차례 대선 중 8차례를 이겼고 불과 4년을 제외한 44년 동안 상하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 1900년부터 1932년까지는 ‘공화당 시대’였다가 1932년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1980년까지 반세기 동안 ‘민주당 시대’가 이어졌다. 루스벨트 시대를 거치며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재편된 것은 분명하다. 뉴딜의 진정한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뉴딜은 말 그대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응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 다수파의 시대’가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뉴딜 연합은 보여주었다.

‘낡은 진보’를 뛰어넘는 ‘진짜 진보’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초유의 압승을 거두자 언론에서는 ‘진보의 시대’, ‘진보 다수파의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이 ‘진보 다수파의 시대’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했다. 진보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을 뿐 아니라, 입법부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 총선 결과를 진보라는 개념의 확장으로 보든 또는 변질로 보든, 적어도 국민들이 우리 정치 지형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촛불 정부이자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위선을 거세게 비판했다. 지지층도 실망하거나 분열했다. 거기에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개혁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젊은 세대의 날 선 비판도 받았다. 소득주도성장의 좌절과 부동산 정책 실패, 비정규직과 일자리의 부족, 사회적 양극화 등은 단적인 예다. 특목고를 폐지하고 다양한 계층·집단의 대학 입학 기회를 확대하려 애쓰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거기에 ‘사회적 불평등 해소’ 요구에도 성공적으로 응답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사회․경제 정책에서 유능함과 정교함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계기로 폭발했다. ‘기회의 평등’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이 드러났다고 젊은 세대는 여겼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에 환호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면 그에 따른 성과와 보상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능력주의는 철저히 ‘개인적 능력주의’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는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국공 사태든 공공의대 설립 논란이든, 개인적 공정의 틀에 갇혀 사회적 ‘평등과 분배’의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고, 공공 의료서비스의 기반을 확대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진보의 가치다.

2022년 대선, 증오의 정치를 끝장내자

2016년 겨울, 촛불이 지향했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는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가 무엇을 달성하고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랐던 걸까? 지금 촛불의 염원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것인가? ‘촛불의 과제’ 또는 ‘촛불 정신’이라는 말로 한꺼번에 뭉뚱그리기에는 그 기대와 가치가 너무 광범위하고 제각각이었던 건 아닐까? 이제 열정의 구름을 걷고 좀더 냉정하게 촛불의 지향과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실망과 좌절이 아닌, 새로운 전진을 위한 도움닫기가 가능하다. ‘진보나 보수나 다를 게 없다’는 식의 환원론이나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잘못한 게 있나’라는 일방적 옹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매우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제는 희미해진 촛불의 의미를 어떻게 계승하고 되살릴 수 있을지가 2022년 대선에 달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2년 대선이 단순히 정권 교체 또는 정권 유지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다. 2022년 대선은 ‘증오의 정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양극화를 넘어서지 않고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현안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증오와 보복의 정치가 개인을 얼마나 파괴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증오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
노회찬은 “진보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운동권을 극복해야 한다. 운동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건 흘러간 옛날 이야기다. 신앙과 정치는 다르다. 신앙은 자기를 간직하면 되지만, 정치는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넬슨 만델라는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증오는 전략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박찬수(지은이)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 무렵 수많은 학생이 그랬듯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강제 징집되어, 동부전선 육군 7사단의 최전방 GP에서 군 생활을 했다. 1989년 3월 『한겨레』에 입사한 후 사회부와 국제부, 정치부에서 주로 정당과 국회를 취재했다. 지금은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쳐 대기자(大記者)로 일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와 워싱턴 특파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제 작동 방식을 비교․분석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을 썼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NL 운동의 흐름을 다룬 『NL 현대사』(2017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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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ㆍ 4

제1장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의 진보

김대중은 왜 진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진보 다수파의 시대 ㆍ 15 |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비난에 시달린 김대중 ㆍ 17 | 진보라야 민주주의다 ㆍ 20

노무현의 진보는 리버럴에 가까웠다
참여정부는?진보를?지향하는?정부 ㆍ 23 | 실용적 진보, 실현 가능한 진보주의 ㆍ 26 | 분배와?정의에 방점을 찍다 ㆍ 28

노무현은 왜 단병호 앞에서 마음이 복잡했을까?
청와대와 민주노총의 ‘네덜란드 모델 보고서’ ㆍ 31 | 진보정권과 노동계의 불화 ㆍ 33 | 노조를 ‘적절한 관리 대상’으로 보다 ㆍ 37

문재인이 뉴딜을 코로나 시대에 불러낸 이유
문재인의 ‘한국판 뉴딜’ ㆍ 40 | 디지털 뉴딜은 데이터댐을 만드는 것이다 ㆍ 43 | 뉴딜은 정치 전략이자 기획이다 ㆍ 45

‘선출된 권력’을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는가?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법관’ ㆍ 48 |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전부다” ㆍ 51 | 국민이 선택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낫다 ㆍ 53

진보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실천이다 : 강준만 인터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 ㆍ 56 | 586세대의 역사적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 ㆍ 61 | 진보의 유연성과 열린 자세 ㆍ 66

제2장 진보, 한계에 부닥치다

노회찬의 ‘진보의 세속화’
노회찬의 말과 언어 ㆍ 73 | 진보정당의 두 차례 분열 ㆍ 75 | 정치는 국민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ㆍ 78

진보정당은 왜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지 못할까?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 ㆍ 81 | 사민주의는 개량주의인가? ㆍ 84 |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또렷한 ‘사회의 상’ ㆍ 86

평등이 사라진 공정과 정의
공정은 ‘절차적 투명성’이다 ㆍ 89 | 개인주의와 능력주의 ㆍ 92 | 기회가 평등한 것은 아니다 ㆍ 94

젊은 세대에게 왜 연대가 필요한가?
사회적 상승 또는 계층의 사다리 ㆍ 98 | ‘사회적 공정’과 ‘사회적 정의’ ㆍ 100 | 세상을 바꾸지 않고 내 삶을 바꿀 수 없다 ㆍ 105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북한 인권
“한국 정부, 무관심하다”는 국제사회의 시각 ㆍ 108 | ‘인권’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우선이다 ㆍ 111 |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ㆍ 113

진보정권과 민주노총의 불편한 관계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다르지 않다 ㆍ 118 |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눈길 ㆍ 121 | 시효가 지난 민주노총의 구호 ㆍ 123

정규직을 뛰어넘은 ‘약자와의 연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자’ ㆍ 126 | 사업장에 매몰된 노조운동을 뛰어넘다 ㆍ 129 | 약자를 돕고 사회연대의 중심이 되다 ㆍ 131

페미니즘?대중화,?성찰해볼?때가?되었다 : 정희진 인터뷰
페미니즘?대중화의?시대 ㆍ 134 | ‘페미니즘에?반대한다’는?것 ㆍ 138 | 여성가족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ㆍ 141

제3장 ‘진보 재집권’은 가능한가?

한국 사회의 보수화 변곡점
‘진보 재집권’과 ‘보수 정권 교체’ ㆍ 149 | 박정희와 노무현의 호감도 ㆍ 152 | 문재인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 ㆍ 155

2022년 대선, 수도권이 승부처다
지역을 보면, 선거가 보인다 ㆍ 158 | 수도권은 ‘지역색 없는 지역’ ㆍ 161 | ‘경기도’ 지사 이재명은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까? ㆍ 164

20대는 정말 보수화한 것일까?
젊은 표가 세상을 바꾼다 ㆍ 167 |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ㆍ 170 | 20대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인가? ㆍ 174

안철수의 중도는 왜 보수로 기울어지는가?
중도가 선거 승패를 가른다? ㆍ 177 | 중도는 존립할 수 없다 ㆍ 180 | 안철수의 ‘중도 실험’ ㆍ 183

이준석의 세련된 보수 포퓰리즘
기득권이 된 제도 정치권에 대한 불만 ㆍ 187 | 진심일까, 쇼잉일까? ㆍ 190 | 2030의?언어로 말하다 ㆍ 193

‘국민과의 소통’이 뉴딜과 미국을 살렸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 ㆍ 197 | ‘사회주의자’ 또는 ‘독재자’라는 비난 ㆍ 199 |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ㆍ 202

민주당은 왜 ‘루스벨트 민주당’의 길을 가지 못했는가?
‘뉴딜 연합’과 ‘촛불 연합’ ㆍ 204 |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에서 신뢰를 잃다 ㆍ 207 | 과거의 승리가 미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ㆍ 211

제4장 새 길을 찾다

촛불, ‘혁명적’이나 ‘혁명’이라 부르기엔 변한 게 없다
“국민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ㆍ 217 | 촛불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ㆍ 220 |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ㆍ 222

세대 간 연대와 결합
민주주의의 퇴행과 포퓰리즘의 확산 ㆍ 225 | 민주주의 가치와 국민주권 회복 ㆍ 228 | 50대들이 ‘민주주의’로 돌아왔다 ㆍ 230

스페인은 ‘세대 갈등’을 어떻게 넘어섰는가?
“우리는?정치에?관심이?없다” ㆍ 233 | 진보라는?‘이념’에?얽매이지?않다 ㆍ 235 | 포데모스, 양당?정치 구도를 깨다 ㆍ 238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포퓰리즘
‘인민’과 ‘정치 카스트’의 대결 ㆍ 242 | 정치 카스트 제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특권층 ㆍ 246 |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ㆍ 249

따뜻한 진보가 필요하다
이중 엘리트 정당 체제 ㆍ 253 |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다 ㆍ 257 | “나는 당신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ㆍ 260

증오의 정치를 뛰어넘다
한국의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 ㆍ 263 | 정치적 양극화와 대통령제의 위기 ㆍ 266 |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한다” ㆍ 270

다시 민주주의로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 ㆍ 273 | 국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 ㆍ 276 | 단 하나를 바꿔야 한다면 ‘국민입법제’ ㆍ 279

참고문헌 ㆍ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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