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의료 문제 인식과 대응에 차질이 빚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판데믹이라는 중대한 공중 보건 위기에서 확인했다. 바쁜 국민은 의사들을 이해할 여력이 없다. 좌절한 의사는 무엇이 문제인지 계속 말하는 데 지쳤다. 그러나 먼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쪽은 여전히 의사다. 궤변인 것 같지만, 모든 의사는 의사가 아니었던 적이 있으니까. 지난 20년간 의료 현장에서 각종 모순을 보고 또 그 모순에 일조해 온 중견 의사로부터 진짜 병원 이야기를 듣는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처음 방영됐을 때, 시청자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주인공들에 열광했지만 동시에 ‘세상에 저런 의사가 어디 있냐’며 냉소를 지었다. 상호 존중하고 신뢰하는 의사와 환자 관계는 왜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여겨질까. 의사는 왜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에 젖은 기득권으로만 비치는 걸까.
피곤에 찌들어 내게는 무심한 듯한 얼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알아듣기 힘든 설명, 빨리 내 차례를 끝내고 다음 환자를 보려는 듯한 행동 등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의사들의 태도 때문일 거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병원에서 오감을 통해 인간적 소외감을 경험하고 이것이 쌓여 불신과 불만으로 발현한다. 상황이 이러니 의사들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원래 그래’라는 감정적 고착은 도려내야만 한다. 불친절한 의사들의 이면에 불합리한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환자들이 경험해 온 소외감의 상당 부분이 병원을 둘러싼 정책과 의료 체계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현실적인 수가 수준, 획일적인 병원 운영 방식, 무계획적인 의료 인력 운용 등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불신하는 의사를 양산해 낸 건 그들의 엘리트
주의나 특권 의식이 아닌, 하나같이 낯설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저자는 현행 의료 제도의 모순과 불합리가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를 왜곡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순과도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소위 ‘사람을 갈아 넣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의료 현장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꼬집은 거다. 정부는 병원을, 병원은 의료진을, 국민은 다시 정부를 압박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사에 대한 불신 혹은 무관심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판데믹은 ‘K방역’이라는 화려함 뒤에 가려졌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직시하게 했다. 불신을 걷어 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가 상호 이해라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의사들은 왜 그래’라는 질문을 던질 최적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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