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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걷는다 (4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Flaubert, Gustave, 1821-1880, 저 Maupassant, Guy de, 1850-1893, 저 Diderot, Denis, 1713-1784, 저 Desnos, Robert, 1900-1945, 저 Duras, Marguerite, 1914-1996, 저 Yourcenar, Marguerite, 1903-1987, 저 Proust, Marcel, 1871-1922, 저 Baudelaire, Charles, 1821-1867, 저 Stendhal, 1783-1842, 저 Camus, Albert, 1913-1960, 저 Daudet, Alphonse, 1840-1897, 저 Musset, Alfred de, 1810-1857, 저 Gide, Andre, 1869-1951, 저 Saint Exupery, Antoine de, 1900-1944, 저 Sand, George, 1804-1876, 저 Colette, Sidonie Gabrielle Claudine, 1873-1954, 저 Valéry, Paul, 1871-1945, 저 Verlaine, Paul, 1844-1896, 저 Bourget, Paul, 1852-1935, 저 Chateaubriand, François-René‏, vicomte de, 1768-1848, 저 Sagan, Françoise, 1935-2004, 저 신유진, 편역
서명 / 저자사항
가만히, 걷는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외] 지음; 신유진 엮고 옮김
발행사항
서울 :   봄날의책,   2021  
형태사항
277 p. ; 22 cm
총서사항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ISBN
9791186372845
일반주기
공저자: Gustave Flaubert, Guy de Maupassant, Denis Diderot, Robert Desnos, Marguerite Duras, Marguerite Yourcenar, Marcel Proust, Charles Baudelaire, Stendhal, Albert Camus, Alphonse Daudet, Alfred de Musset, Andre Paul Guillaume Gide, Antoine de Saint Exupéry, George Sand, Sidonie Gabrielle Claudine Colette, Paul Valéry, Paul Verlaine,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Françoise Sagan  
일반주제명
수필[隨筆] 프랑스 문학[--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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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8 ▼a 수필[隨筆]
650 8 ▼a 프랑스 문학[--文學]
700 1 ▼a Flaubert, Gustave, ▼d 1821-1880, ▼e▼0 AUTH(211009)67704
700 1 ▼a Maupassant, Guy de, ▼d 1850-1893, ▼e▼0 AUTH(211009)37726
700 1 ▼a Diderot, Denis, ▼d 1713-1784, ▼e▼0 AUTH(211009)11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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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1 ▼a Yourcenar, Marguerite, ▼d 1903-1987, ▼e▼0 AUTH(211009)77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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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1 ▼a Camus, Albert, ▼d 1913-1960, ▼e▼0 AUTH(211009)139766
700 1 ▼a Daudet, Alphonse, ▼d 1840-1897, ▼e▼0 AUTH(211009)18851
700 1 ▼a Musset, Alfred de, ▼d 1810-1857, ▼e▼0 AUTH(211009)108444
700 1 ▼a Gide, Andre, ▼d 1869-1951, ▼e▼0 AUTH(211009)90698
700 1 ▼a Saint Exupery, Antoine de, ▼d 1900-1944, ▼e▼0 AUTH(211009)67836
700 1 ▼a Sand, George, ▼d 1804-1876, ▼e▼0 AUTH(211009)77759
700 1 ▼a Colette, Sidonie Gabrielle Claudine, ▼d 1873-1954, ▼e▼0 AUTH(211009)22342
700 1 ▼a Valéry, Paul, ▼d 1871-1945, ▼e▼0 AUTH(211009)19087
700 1 ▼a Verlaine, Paul, ▼d 1844-1896, ▼e▼0 AUTH(211009)24886
700 1 ▼a Bourget, Paul, ▼d 1852-1935, ▼e▼0 AUTH(211009)107701
700 1 ▼a Chateaubriand, François-René‏, ▼c vicomte de, ▼d 1768-1848, ▼e
700 1 ▼a Sagan, Françoise, ▼d 1935-2004, ▼e▼0 AUTH(211009)139948
700 1 ▼a 신유진, ▼e 편역 ▼0 AUTH(211009)67406
830 0 ▼a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900 1 0 ▼a 플로베르, 귀스타브, ▼d 1821-1880, ▼e
900 1 0 ▼a 모파상, 기 드, ▼d 1850-1893, ▼e
900 1 0 ▼a 디드로, 드니, ▼d 1713-1784, ▼e
900 1 0 ▼a 데스노스, 로베르, ▼d 1900-1945, ▼e
900 1 0 ▼a 뒤라스, 마르그리트, ▼d 1914-1996, ▼e
900 1 0 ▼a 유르스나르, 마르그리트, ▼d 1903-1987, ▼e
900 1 0 ▼a 프루스트, 마르셀, ▼d 1871-1922, ▼e
900 1 0 ▼a 보들레르, 샤를 피에르, ▼d 1821-1867, ▼e
900 1 0 ▼a 보들레르, 샤를, ▼d 1821-1867, ▼e
900 0 0 ▼a 스탕달, ▼d 1783-1842, ▼e
900 1 0 ▼a 카뮈, 알베르, ▼d 1913-1960, ▼e
900 1 0 ▼a 도데, 알퐁스, ▼d 1840-1897, ▼e
900 1 0 ▼a 뮈세, 알프레드 드, ▼d 1810-1857, ▼e
900 1 0 ▼a 지드, 앙드레, ▼d 1869-1951, ▼e
900 1 0 ▼a 생텍쥐페리, 앙투완 드, ▼d 1900-1944, ▼e
900 1 0 ▼a 상드, 조르주, ▼d 1804-1876, ▼e
900 1 0 ▼a 콜레트, 시도니 가브리엘 클라우딘, ▼d 1873-1954, ▼e
900 0 0 ▼a 콜레트, ▼d 1873-1954, ▼e
900 1 0 ▼a 발레리, 폴, ▼d 1871-1945, ▼e
900 1 0 ▼a 베를렌, 폴 마리, ▼d 1844-1896, ▼e
900 1 0 ▼a 베를렌, 폴, ▼d 1844-1896, ▼e
900 1 0 ▼a 브루제, 폴, ▼d 1852-1935, ▼e
900 1 0 ▼a 부르제, 폴, ▼d 1852-1935, ▼e
900 1 0 ▼a 샤토브리앙, 프랑수아 르네 드, ▼d 1768-1848, ▼e
900 1 0 ▼a 사강, 프랑수아즈, ▼d 1935-2004, ▼e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44.008 2021 등록번호 11185425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 청구기호 843.8 F587 가 등록번호 15135680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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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정보

책소개

《천천히, 스미는》(영미 산문선), 《슬픈 인간》(일본 산문선) 에 이어 출간된 이 책 《가만히, 걷는다》에는 근현대 프랑스 작가 스물한 명의 산문 서른여섯 편이 실려 있다. 대가들이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에서 발굴해낸 “시간 밖에서 영원한 기쁨”의 순간들과 그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담겨 있다.

북풍이 부는 새벽 홀로 잠이 깨어 바깥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확장하는 사유로 화답하는 콜레트의 산문이 시작이다. 지병인 천식으로 빛과 향기에 민감해진 탓에 나중에는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 살았던 프루스트는 처음 사랑하는 꽃을 만났던 유년의 기억을 반짝이는 빛과 아찔한 향기에 꿰어 불러온다.

열여섯 살의 사강은 부랑자와 나눈 짧은 우정을 여름의 열기와 빗소리 그리고 그를 만나러 달려갈 때 차오르던 숨에 기대어 세밀하게 옮긴다. 해질녘 돌 위에 가만히 앉아 나무와 별을 바라보고 버려진 길을 따라 산책하는 샤토브리앙은 사실 그 정지와 고요가 비밀한 고통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해오고, 사랑에 실패한 뮈세의 편지에서는 고독이 검은 돌기처럼 만져진다. 오로지 글을 쓰고 싶어 낯선 도시로 떠나온 가난한 청년 도데가 선명하게 전하는 배고픔과 추위도 있다.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그 세번째 권 《가만히, 걷는다》
《천천히, 스미는》(영미 산문선), 《슬픈 인간》(일본 산문선) 에 이어 출간된 이 책 《가만히, 걷는다》에는 근현대 프랑스 작가 스물한 명의 산문 서른여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을 나는 호화로운 선물처럼 아껴가며 읽었다”
이 한 권의 책에는 대가들이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에서 발굴해낸 “시간 밖에서 영원한 기쁨”의 순간들과 그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담겨 있다. 작가가 되기 전, 여기에 실린 작가들은 나를 꿈을 꾸게도, 절망하게도 했다. 그런 이들의 글을 단 한 권의 책에 모아 읽는 호사를 누릴 날이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까닭에 나는 이 산문선을 호화로운 선물처럼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후 나는 조금 더 순정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 백수린(소설가)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
귀스타브 플로베르, 기 드 모파상, 드니 디드로, 로베르 데스노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마르셀 프루스트, 샤를 보들레르, 스탕달, 알베르 카뮈, 알퐁스 도데, 알프레드 드 뮈세, 앙드레 지드,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 조르주 상드, 콜레트, 폴 발레리, 폴 베를렌, 폴 브루제,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프랑수아즈 사강

“다채롭게 ‘영혼의 관능’을 자극하는 이 책”은 ~
북풍이 부는 새벽 홀로 잠이 깨어 바깥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확장하는 사유로 화답하는 콜레트의 산문이 시작이다. 지병인 천식으로 빛과 향기에 민감해진 탓에 나중에는 코르크로 밀폐된 방에 살았던 프루스트는 처음 사랑하는 꽃을 만났던 유년의 기억을 반짝이는 빛과 아찔한 향기에 꿰어 불러온다. 열여섯 살의 사강은 부랑자와 나눈 짧은 우정을 여름의 열기와 빗소리 그리고 그를 만나러 달려갈 때 차오르던 숨에 기대어 세밀하게 옮긴다. 해질녘 돌 위에 가만히 앉아 나무와 별을 바라보고 버려진 길을 따라 산책하는 샤토브리앙은 사실 그 정지와 고요가 비밀한 고통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해오고, 사랑에 실패한 뮈세의 편지에서는 고독이 검은 돌기처럼 만져진다. 오로지 글을 쓰고 싶어 낯선 도시로 떠나온 가난한 청년 도데가 선명하게 전하는 배고픔과 추위도 있다.

책에 실린 스물한 명의 작가들은 이렇듯 다채롭게 ‘영혼의 관능’을 자극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잊고 있던 감각이 불거지고 납작하던 마음은 입체적으로 변모한다. 삶의 이모저모가 보여주는 관능에 굼떠지는 때마다 나는 이 책을 유용한 연장처럼 꺼내 들 것이다.
― 한정원(작가)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귀스타브 플로베르(지은이)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내과 의사의 딸인 어머니는 플로베르의 삶과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이런의 조숙한 독자이자 셰익스피어의 광적인 팬이었던 10대의 플로베르는 여행 중에 젊고 생기 있는 연상의 여인 엘리자 슐레징거를 만나게 된다. 슐레징거는 플로베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여인으로서 평생 그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녀에 대한 오랜 사랑은 그의 삶과 작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열여덟 살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으나, 신경질환으로 인해 3년 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홀로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초기작, 특히 『성 앙투안의 유혹』에서 그는 대담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쳤으나, 이후에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예술적인 객관성을 획득하고 산문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낭만주의적인 풍성함을 혹독하게 훈련했다. 이렇게 예술적 완전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그에게 커다란 고역임은 물론 생전에 제한된 성공만을 가져왔다. 1857년에 『보바리 부인』을 출간하고 나서는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이국적인 소설 『살람보』(1862)는 고고학적인 세부사항의 외형적 묘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자기 세대의 도덕적인 역사를 다루려는 『감정 교육』(1869)은 비평가들의 오해를 샀으며, 정치적 희곡 『후보자』(1874)는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세 개의 우화』(1877)만이 완전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플로베르의 기분, 건강, 재정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였다. 그의 사후인 1880년, 미완결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와 『서한집』이 출간되는 것을 기화로 그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힘을 얻고 명성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 관습적인 도덕과 사회적인 사실성의 차원을 넘어 진리에 도달하고 미를 창조하려 했던 ‘모더니티’의 대명사 플로베르. 그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자연주의와 구조주의에 이르는 현대의 예술 사조를 이끌어내는 씨앗으로서 조르주 상드,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작가다.

드니 디드로(지은이)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 예술 이론가. 1713년 프랑스 랑그르에서 태어났다. 랑그르와 파리의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하고 1732년 파리 대학에서 현재의 바칼로레아에 해당하는 문학사 자격을 획득했다. 1735년에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현재의 학사 학위에 해당하는 신학사 자격을 획득했으나 성직을 포기했다. 지적 방랑을 하던 끝에 샤프스베리의 『가치와 미덕에 대한 에세이』 등을 번역하면서 문필가의 삶을 시작했고, 이후 『맹인에 관한 서한』을 쓰면서 무신론적 경향 때문에 투옥되기도 했다. 수많은 탄압과 검열, 분열 속에서도 20여 년에 걸쳐 『백과전서』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이 작업은 수학자 달랑베르를 감수자로 하고,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 당대 지식인들을 총동원하여 1751년에 1권을 시작으로, 1772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 18세기의 철저했던 유물론자로서, 최신 생물학이나 화학을 도입한 그의 사고 속에는 이미 진화론이나 변증법이 예고되어 있었다. 레싱이나 괴테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주요 작품으로 철학서 『달랑베르의 꿈』 등이, 희곡 「가장」 「사생아」 등이, 소설 『수녀』 『라모의 조카』 『운명론자 자크』 등이, 문학 및 예술론으로 『리처드슨 예찬』 『살롱』 『회화에 대하여』 등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지은이)

본명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1914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의 도시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이동에 따라 두 오빠와 함께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2년 프랑스로 귀국해 소르본대학에서 수학,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43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 훗날 프랑스의 대통령이 될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고, 종전 후에도 알제리전쟁 반대운동과 68혁명에 참여하는 등 프랑스 현대사의 현장에 직접 나섰다.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그는 『모데라토 칸타빌레』(1958), 『여름 저녁 열시 반』(1960), 『롤 V. 슈타인의 황홀』(1964), 『부영사』(1966) 등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독특한 문학적 색채로 인해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뒤라스 자신은 어떤 갈래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채 특유의 반복과 비정형적인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모색해갔다. 뒤라스가 1982년 발표한 『죽음의 병』은 그의 연인 얀 앙드레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구체화된 작품으로, 후대 비평가들이 ‘얀 앙드레아 연작’ 혹은 ‘대서양 연작’으로 분류하는 작품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기이한 결합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누보로망의 시대에서 결국 살아남을 단 하나의 작가는 뒤라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당대의 문학사적 흐름에서 비껴가면서도 절대 빛바래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뒤라스는 문학의 범주를 넘어 영화계에도 분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1960)의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뒤라스는 소설과 영화를 가로지르는 독보적인 작업을 펼쳐나간다. 1975년에는 자신의 소설 『부영사』를 각색한 영화 〈인디아 송〉으로 칸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한다.  1984년에는 어린 시절 인도차이나에서의 시간을 바탕으로 쓴 소설 『연인』이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반세기에 걸쳐 문학과 영화, 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칠십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그는 마지막 몇 년간의 글을 모은 『이게 다예요』(1995)로 마침표를 찍고 1996년 3월 3일, 파리의 자택에서 세상을 뜬다.

마르셀 프루스트(지은이)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 증권업자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문 콩도르세 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열여덟 살이 되던 1889년 군에 지원하여 일 년간 복무한다. 제대 후 아버지의 권유로 법과대학과 정치학교에 등록하지만 학업보다는 글쓰기에 전념하여 《월간》에 브라방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기고한다. 이후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좌,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그림을 감상한다. 1909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며 오랜 칩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여러 출판사를 찾아다니지만 출간을 거절당하고, 결국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책을 낸다. 1919년 갈리마르에서 개정판을 출간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공쿠르 상을 수상,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1922년 기관지염이 악화되어 폐렴에 걸리나 마지막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다듬다 결국 11월 18일, 쉰한 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 사후 오 년 만에 완간된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지은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청년 시절 여러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나, 무절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우려한 가족의 청원으로 금치산 선고를 받아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는데도 평생 가난과 빚에 시달려야 했다.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창작을 중단하지 않은 보들레르는 1845년 첫 책인 미술평론집 『1845년 미술전』을 출간했다. 프랑스 최초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 · 소개하여 큰 찬사를 받기도 했다. 1857년에는 보들레르의 문학과 삶의 정수가 담긴 『악의 꽃』이 출간됐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과 시 여섯 편 삭제 판결을 받았다. 이후 에세이 『인공 낙원』과 『악의 꽃』 2판을 연이어 출간하고 비평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나, 오랜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다가 1867년 46세에 영면했다. 사후에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에세이 「내면 일기」 등이 출간되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지은이)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시험에서 실패하고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1921년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면허를 땄고, 1926년 라테코에르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시험비행사, 에어프랑스의 홍보담당, <파리수아르 Paris-Soir> 기자로 일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린왕자』의 주인공과 너무나 흡사하다. 굽슬굽슬한 갈색 머리털을 가진 소년 생텍쥐페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경이와 찬탄으로 바라보았고, 유난히 법석을 떨고 잔꾀가 많은 반면, 항상 생기가 넘치고 영리했다. 감성이 풍부하고 미지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그는 1917년 6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파리로 가서 보쉬에 대학에 들어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였으나 구술 시험에서 떨어져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간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린 왕자』에 생텍쥐베리가 직접 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공부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 민간항공 회사에 각각 근무하다가 에르 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여 『야간 비행』의 주인공인 리비에르로 알려진 디디에도라를 알게 되고 다카르-카사블랑카 사이의 우편 비행을 하면서 밤에는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에 임명되면서 조종사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야간 비행』를 집필했다. 1939년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1940년 2차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1943년 연합군에 합류해 북아프리카 공군에 들어간 후 1944년 7월 31일 프랑스 남부 해안을 정찰비행하다 행방불명되었다. 2000년, 한 잠수부가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와 함께 실종됐던 정찰기 P38의 잔해를 발견했고 뒤이은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이 항공기 잔해를 추가 발견했다. <남방우편 Courrier-Sud>(1929), <야간비행 Vol de nuit>(1931),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1939), <전투조종사 Pilote de Guerre>(1942),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a un otage>(1943), <어린왕자 Le Petit Prince>(1943) 등을 썼다.

스탕달(지은이)

프랑스 근대 소설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스탕달은 남프랑스의 도피네 지방의 수도 그레노블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잃고 더욱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이것이 후의 그의 인생관인 자기중심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1799년 17세 때 이공대학 입학시험을 치루기 위해 파리로 올라갔으나 수험은 하지 않고 관극과 극작 에 몰두하였다. 다음해 친척인 드가류 백작의 주선으로 프랑스육군성에 들어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 제정하에서 경리관, 사정관으로 있다가 참의원 서기... 프랑스 근대 소설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스탕달은 남프랑스의 도피네 지방의 수도 그레노블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잃고 더욱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이것이 후의 그의 인생관인 자기중심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1799년 17세 때 이공대학 입학시험을 치루기 위해 파리로 올라갔으나 수험은 하지 않고 관극과 극작 에 몰두하였다. 다음해 친척인 드가류 백작의 주선으로 프랑스육군성에 들어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 제정하에서 경리관, 사정관으로 있다가 참의원 서기관을 지내고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이탈리아로 건너가 7년 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는데, 이 기간에 자유의 문학자들과의 교우, 메치르데와의 불행한 사랑 등 그의 문학에 결정 적인 작용을 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1821년 그가 이탈리아 경찰로부터 위험인물의 혐의를 받고 밀라노를 떠나 파리에 돌아와 쓴 것이 ≪연애론≫이다. 그가 일생 동안 쓴 작품은 전집으로 70여 권에 이르며 이것은 “잉크로 종이를 새까맣게 물들이는 것만이 가장 큰 쾌락”이라는 그의 말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알베르 카뮈(지은이)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알퐁스 도데(지은이)

남프랑스 님에서 출생. 리옹의 고등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가업이 파산하여 중퇴하고, 알레스에 있는 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857년 형이 있는 파리에 가서 문학에 전념하며 시집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 Les Amoureuses》을 발표, 이것이 당시의 입법의회 의장 모르니 공작에게 인정받아 비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문학에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 그 후에 남프랑스의 시인 미스트라르를 비롯하여 플로베르, 졸라, E. 공쿠르, 투르게네프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아내 쥘리의 내조로 행복한 57년의 생애를 파리에서 보냈다. 그는 친교를 맺은 문인들과 더불어 자연주의의 일파에 속했으나 선천적으로 민감한 감수성, 섬세한 시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적인 면이 넘치는 유연한 문체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고향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애착심을 주제로 하여 인상주의적인 자신만의 작풍을 세웠다. 그의 문장은 보여 줄 것이 많은 예술가의 문장이자 시니컬하면서도 동정심을 담은 시인의 문장이다. 익살스런 농담에서부터 더없이 섬세한 환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재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학자들부터 군중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매혹했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경험담으로 작품에 활기를 부여할 줄 알았던 그는, 세월이 흘렀어도 빛바래지 않은 다양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느끼게 한다.

앙드레 지드(지은이)

프랑스의 문인. 1869년 파리,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 폴 지드와 루앙의 부유한 개신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쥘리에트 롱도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소설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1891)를 발표하며 데뷔했고, 같은 해 스테판 말라르메가 주도하는 <화요회>에 참석하기 시작해 오스카 와일드 등 많은 문인들과 교류한다. 1893년 지드는 처음으로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 2년에 걸쳐 머물며 <낡은 인간>의 허울을 벗어던지는, <재생>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결핵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그는 생에 대한 욕망을 강렬히 체험하는 한편, 자신의 성적 지향을 직면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자유를 경험한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첫사랑인 사촌 마를렌 롱도와 결혼한 그는 이듬해 노르망디 라로크베냐르의 시장으로 당선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지상의 양식』(1897)은 이후 오랜 세월 젊은이들에게 막대한 사회적 위력을 발휘하며 그의 대표작으로 남는다. 1908년 친구들과 함께 문예지 『NRF』를 창간해 프랑시스 잠, 폴 발레리 등 유수의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하고, 자신의 대표작인 『좁은 문』(1909)을 연재하기도 한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 『배덕자』(1902), 『교황청의 지하도』(1914), 『전원 교향곡』(1919), 『위폐 제조자들』(1925), 『새 양식』(1935) 등이 있으며, 소설은 물론 시와 희곡, 일기, 평론, 여행기, 철학적인 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보여 주었다. 1947년 문학적 기여를 인정받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1년 파리의 자택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탈주와 해방의 참고서>인 『지상의 양식』은 지상에서의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결단과, 그 실천을 통해 체험한 환희를 기록한 비망록이다. 줄거리도, 연대기적 순서도 없는 이 독특한 책은 기억의 흐름과 우연한 서술에 기대어 쓰인 자전적인 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상의 양식』은 의도된 논리에 따라 쌓아 올린 매우 용의주도한 예술 작품으로, 문학이 지닌 해방의 힘을 드러내며 동시대 젊은이들, 그리고 숱한 작가들, 사르트르, 카뮈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르주 상드(지은이)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적인 가문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세느 강변의 새장수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상드는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노앙에 있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차림의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6살 연하인 시인 뮈세와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그 당시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메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이천 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었으며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남녀평등과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항의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를 주장한 데뷔작으로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중에서 대표작인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나온 소설들도 호평을 받았다. 다음으로 장 레이노, 미셸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여 그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완 씨의 죄≫(1845), 대표작이며 대하소설인 ≪콩쉬엘로≫(1842∼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44), ≪스피리디옹≫(183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상드는 다시 1844년 ≪잔느≫를 필두로 해서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소설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55),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이야기≫를 쓰면서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58)과 ≪발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등을 발표했으며 25편의 희곡과 시, 평론,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가 남긴 편지들은 파리의 클라식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조르주 뤼뱅이 26권으로 편집 완성한 방대하고 기념비적인 서간집으로 세계 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 동안 교환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 봐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폴 발레리(지은이)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1871년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세관직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몽펠리에 대학 재학 중에 시의 습작에 몰두하다가 파리에서 온 피에르 루이스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앙드레 지드와 스테판 말라르메와도 교류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이주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 “테스트씨와의 하룻밤”, “방법의 제패” 등을 발표하면서 고도의 관념성으로 독특한 비평적인 세계를 열었다. 1917년 『젊은 파르크』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1925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최대의 산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산문작품은 다방면에 걸치는 것으로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등에 관한 논고論考와 현대문명에 관한 고찰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죽을 때까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쓴 노트인 『카이에』는 1894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그가 죽은 후 29권의 사진 복제판으로 간행되었다. 3만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꼽히며, 지금도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지은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coise Quoirez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19세에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그녀는 이 작품으로 1954년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 그 뒤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신기한 구름』, 『뜨거운 연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자유분방한 생활로 유명했던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을 낳았다. 50대에는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4년 사강이 병환으로 별세하자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 중 한 사람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기 드 모파상(지은이)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미로메닐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부모의 이혼 이후 모빠상은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안의 작은 마을 에트르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세 살 때 입학한 신학교에서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당하고, 이후 루앙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이즈음 어머니, 외삼촌과 절친한 사이이던 플로베르의 지도로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모빠상은 1870년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전장에서 참혹한 패전을 겪었고, 이후 해군부와 교육부 등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그의 문학 속에 나타나는 비관적 세계의 바탕을 이룬다면, 이렇게 직접 겪은 어두운 사건들, 즉 부모의 불행한 결혼과 아버지의 부재, 패전의 치욕, 사무원 생활의 권태 등은 그 바탕을 채우는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 플로베르를 통해 여러 작가들, 특히 에밀 졸라를 알게 된 모빠상은 ‘메당’ 모임에도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을 주제로 한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발표한 「비곗덩어리」(1880)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이후 10여 년 동안 모빠상은 평생을 괴롭힌 매독의 고통, 특히 그로 인한 눈병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했고, 『텔리에 집』(1881), 『피피 양』(1882), 『두 친구』(1883), 『어느 인생』(1883), 『벨아미』(1885), 『목걸이』(1885), 『오를라』(1885), 『피에르와 장』(1888) 등 약 300여 편의 소설을 써냈다. 모빠상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에 파고드는 특유의 냉정한 묘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즈음 그는 매독으로 인한 신경쇠약이 시작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가 방랑벽에 가까울 정도로 충동적인 여행을 즐기고 때로는 요트 ‘벨아미’호를 타고 항해를 떠난 것 역시 병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결국 모빠상은 1892년 자살을 시도하고, 이듬해 마흔세 살의 이른 나이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폴 베를렌느(지은이)

1844년 3월 30일 프랑스 로렌 주(州) 메츠에서 공병 장교인 아버지와 부농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너무도 귀하게 태어나 가족으로부터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어린 베를렌은 버릇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명민한 아이였다. 열한 살이 되자, 보나파르트 고등학교(Lycee Bonaparte)에 진학했는데,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특히 언어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7년 과정의 이 학교에서 베를렌은 처음 3년 동안은 분명 모범생이었지만, 4년째 접어들자 돌연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시와 소설에 몰입한 문학 소년이 되었다. 1862년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해서 가까스로 법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대학생이 된 그는 또다시 문학에만 몰두할 뿐, 정작 법률 공부는 등한시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잠시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베를렌은 이내 대학 공부를 집어치우고, 1864년 파리 시청의 직원 채용 시험에 합격해 등초본 계원으로 근무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 덕에 1865년부터 베를렌은 마음 편히 문필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으며, 1869년 친구의 이복여동생인 마틸드 모테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1년의 교제 끝에 혼인했다. 1871년 3월, 파리에 시민 혁명 정부인 코뮌이 수립되자 베를렌은 협력자로서 홍보 관련 일을 맡기도 했는데, 두 달 만에 코뮌이 진압된 후, 그 일로 인해 처벌받을까 두려웠던 그는 외가 친척들 집을 옮겨 다니며 은신하다가 결국 시청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았다. 이 무렵, 안면부지의 열일곱 살 문학청년 랭보가 베를렌 앞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와 함께 자작시 몇 편을 보내왔다. 랭보의 시에 탄복한 베를렌은 이윽고 랭보를 불러 처가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반항적인 랭보는 보름 만에 그 집에서 쫓겨나 베를렌의 친구들 집을 전전했으며, 이때부터 베를렌은 랭보와 아내 마틸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1873년 7월,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지내던 베를렌의 부름을 받고 랭보가 찾아왔다. 격렬한 언쟁이 이어졌고 술에 취한 베를렌은 파리로 떠나겠다는 랭보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탄환 중 한 발이 랭보의 손목에 경상을 입혔고, 베를렌은 벌금형과 함께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곧장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듬해인 1874년 4월, 파리 법원은 마틸드의 청원을 받아들여 베를렌 부부의 법적 별거 선고를 내렸는데, 벨기에 몽스(Mons) 감옥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해 7월에 영성체 의식을 치렀다. 1875년 1월이 되자 마침내 베를렌은 석방되었고, 그 뒤 188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사립학교 몇 군데를 오가며 교사 일을 하는 동시에 꾸준히 시를 써 나갔다. 1882년 7월, 파리 근교의 한 호텔에 거처를 정한 베를렌은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파리의 문인들 곁으로 돌아왔는데, 그간에 완성한 그의 시들이 ≪현대적인 파리≫를 비롯한 여러 문학잡지를 통해 연이어 소개되었다. 나날이 깊어 가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베를렌은 왕성한 필력으로 여러 편의 산문집과 시집, 희곡 작품을 발표했으며, 어느덧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1892년에 들어서면서 젊은 숭배자들의 초청으로 베를렌은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를 돌며 시학 강연을 이어 갔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가장 훌륭한 시인을 뜻하는 ‘시인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빅토르 위고에게서 그 칭호를 계승한 르콩트드릴이 1894년 세상을 떠나자 시인들은 새로운 ‘시인의 왕’을 뽑아야 했는데, 400명 가까운 젊은 문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당대의 유명 시인들 중에서 베를렌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시인의 왕’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의 영광도 잠시뿐. 1896년 1월 8일, 폐울혈 증세를 보이던 베를렌은 급기야 52세를 일기로 그 자신이 표현했던 “저주받은 시인”다운 처량하고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이틀 뒤 수천 명의 장례 행렬이 애도하며 그의 유해를 파리 북쪽의 바티뇰(Batignolles) 묘지로 운구했으며, 그와 절친했던 여러 문인들이 애절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시인 말라르메는 베를렌 추모비를 건립하기 위한 기금조성위원회를 발족했고, 그 결실로 마침내 1911년 파리 뤽상부르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그의 흉상을 새긴 추모비가 세워졌다.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지은이)

1768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바닷가 도시 생말로에서 출생해서 콩부르 성에서 고독하고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북아메리카를 여행한 뒤에 독일에 편성된 반혁명 망명 군대에 가담해서 부상당하고 병든 몸으로 영국으로 망명하여 온갖 고생을 하며 『혁명론』을 발간했음, 혁명이 끝난 후 귀국해서 영국에서 초고를 쓴 『아탈라』, 『르네』, 『그리스도교의 정수』, 『나체즈 사람들』을 마무리해서 발표했고, 그리스, 유대 지방, 이집트, 카르타고 유적지를 여행하고 『순교자들』,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기』를 썼음. 프랑스의 19세기 전기 낭만주의 문필가로서, 로마교황청, 베를린, 런던 대사와 귀족의회 의원, 외무장관을 역임한 정치가로서 다난했던 일생을 보내고, 노년에 자신의 자서전 『무덤 너머의 회상록』과 고행 수도사의 전기소설 『랑세의 생애』를 쓰고 1848년 파리에서 사망했음. 그의 유언에따라서 그가 태어난 생말로 바닷가의 암초 섬에 묻혔음.

알프레드 드 뮈세(지은이)

1810년 12월 11일 파리에서 출생한 알프레드 드 뮈세는 시, 소설, 희곡 등에서 두루 두각을 나타낸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뮈세의 집안은 소 귀족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혁명에 동조하는 자유사상가였고, 장 자크 루소의 생애에 관한 저술도 집필한 박식한 인물이었다. 1828년 토마스 드 퀸씨의 작품을 번안한 『아편쟁이의 고백』을 출간한 뮈세는 빅토르 위고가 이끌던 문인들의 소모임인 ‘세나클’에 가입한다.. 당대의 문인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만, 자유분방한 뮈세는 이 유파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1833년 스물세 살인 뮈세는 당시 스물아홉 살이던 조르주 상드와 만나 열애에 빠진다. 이 둘은 함께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지만 병에 걸린 뮈세를 간호하던 상드는 의사 파젤로와 눈이 맞아 뮈세를 배신한다. 상드와의 격정적이었으나 고통스럽게 끝난 사랑은 자전적 소설인 『세기아의 고백』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1837년까지 뮈세가 격정적인 사랑을 했던 시기는 그가 가장 왕성하게 문학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와 겹친다. 1830년 7월 혁명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던 이른바 ‘세기병’의 한 원인이 되었고, 이것이 뮈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특유의 비관적 세계관을 설명해 준다. 세련된 유행의 첨단에 섰던 댄디의 전형인 뮈세는, 1839년 이후, 즉 그의 젊은 시기가 지나간 이후에는 문학적 영감을 잃게 된다. 1852년 뮈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이미 보들레르를 위시한 새로운 세대는 뮈세를 과도한 주관적 정서의 과잉을 보여주던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폄하하게 된다. 병들고 친구들에게도 잊힌 존재가 된 뮈세는 1857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지은이)

1903년 프랑스인 아버지 미셸 드 크레양쿠르와 벨기에인 어머니 페르낭드 드 카르티에 사이에서 출생한다. 브뤼셀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산욕열로 열흘 후에 사망하자 본가가 있는 프랑스 북부 릴 근처의 몽누아르 성에서 성장한다. 프랑스 노르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후예였던 아버지는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평생토록 반항, 모험, 여행, 사랑을 즐겼던 그 시대의 자유인이었다. 1980년 유르스나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상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된다. 1635년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가 프랑스어와 인문학을 진흥할 목적으로 설립한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40석의 종신회원으로 구성되는데, 345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 회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르스나르의 아카데미 입회는 페미니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마지막 영광의 시기를 함께한 사람은 제리 윌슨(Jerry Wilson)이었다. 1979년에 사망한 그레이스 프릭의 빈자리를 대신해, 미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사진 작가 제리 윌슨은 전 세계를 함께 여행했던 동반자이자 연인으로서 유르스나르의 마지막 삶의 증인이 된다. 이 시기 작가는 전 재산을 그에게 상속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지만, 1986년 에이즈로 그가 먼저 사망하자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해 전 재산을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한다.

로베르 데스노스(지은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190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초등교육만 이수하였으며, 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였다. 1922년부터는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하여 최면상태에서 자동기술법을 실천했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드러냈다. 1929년에는 점차 정치색이 짙어지는 브르통과 결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거나 라디오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점령하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1944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194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어느 수용소에서 티푸스로 사망했다. 첫 시집으로 마르셀 뒤샹이 창조한 가상의 여인에 대한 시 『로즈 셀라비』를 비롯하여 『애도를 위한 애도』, 『알 수 없는 여인에게』, 『어둠들』, 『자유냐 사랑이냐!』, 『행운』 등 많은 시집을 남겼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지은이)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브루고뉴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나 자연과 동물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독서광이었다. ‘윌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출판업자와 결혼하면서 파리 사교계와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는데, 그녀의 섬세한 감각을 알아본 남편의 독려로 자전적인 소설 『클로딘, 학교에서』(1900), 『파리의 클로딘』(1902), 『클로딘의 결혼생활』(1902)을 쓰게 된다. 남편의 이름을 빌려 출간한 소설들이 큰 화제가 되지만, 계속해서 소설을 써내라는 남편과 불화를 겪고 이혼하게 된다. 클로딘 연작에 대한 판권도 빼앗긴 채 연극배우로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는데, 시대를 앞선 선구자로서 모든 편견에 맞섰다. 결국 당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작가적 성취를 인정받으면서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이 된다. 『지지』, 『암고양이』, 『셰리』 등 모든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특히 특유의 감각적 표현과 연인들 간의 심리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45년에 공쿠르아카데미 최초 여성 회원이 되는가 하면 결국 회장까지 지내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프랑스 문학계의 영웅이 된다. 1차 세계대전 동안은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세 번째 남편인 유대인 보석상 모리스 고데케가 게슈타포에 끌려가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콜레트의 삶과 소설들이 연극과 영화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트루먼 커포티는 「하얀 장미」에서 콜레트에 대해 쓰기도 했다.

폴 브루제(지은이)

프랑스 소설가. 시인으로 데뷔하여 소설을 썼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주로 썼으며, 구성미와 심리 분석에 탁월한 작가로 알려졌다. 작품에 보수주의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대표작으로 《이혼》, 《대낮의 악마》, 《죽음의 의미》 등이 있다.

신유진(옮긴이)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파리 8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 《진정한 장소》 《사진의 용도》 《빈 옷장》 《남자의 자리》, 에르베 기베르의 《연민의 기록》을 번역했고, 프랑스 근현대 산문집 《가만히, 걷는다》를 엮고 옮겼다.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카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을 지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잠이 달콤한데
콜레트, 〈하루의 탄생〉
콜레트, 〈선인장의 편지〉
알퐁스 도데, 〈오렌지〉
마르셀 프루스트, 〈봄의 문턱에서〉
마르셀 프루스트, 〈발코니에 든 햇빛〉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
드니 디드로,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린 것에 대한 후회〉

나의 어린 바다
프랑수아즈 사강, 〈어린 시절에 만난 부랑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80년 여름, 첫 번째〉
마르그리트 뒤라스, 〈80년 여름, 세 번째〉
폴 베를렌, 〈네버모어〉
폴 발레리, 〈지중해의 영감〉
알퐁스 도데, 〈도착〉
알베르 카뮈, 〈가장 가까운 바다〉

아직 남겨진 말
알프레드 드 뮈세, 〈조르주 상드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 〈에메랄드호의 최후〉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 〈모리타니를 그리며〉
프랑수아즈 르네 드 샤토 브리앙, 〈가을의 기쁨〉
프랑수아즈 르네 드 샤토 브리앙, 〈2년 동안의 광기〉
폴 브루제, 〈진실한 감정〉
로베르 데스노스, 〈밤의 가장 깊은 곳〉
조르주 상드, 〈플로베르에게 보낸 편지〉

시선이 머무는 곳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찰즈부르크의 모차르트〉
샤를 보들레르, 〈바그너에게 보내는 편지〉
샤를 보들레르, 〈예술가, 세계인, 군중의 인간 그리고 아이〉
스탕달, 〈첫 만남에서〉
귀스타브 플로베르, 〈예술과 상업〉
폴 발레리, 〈망자를 향한 두려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과거의 힘, 미래의 힘〉
기 드 모파상, 〈권태〉
앙드레 지드, 〈나르시스론〉

다른 나라에서
기 드 모파상, 〈태양 아래에서〉
앙드레 지드, 〈아민타스〉
조르주 상드, 〈전장 중에 쓴 여행자의 일기〉
알베르 카뮈, 〈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서〉
프랑수아즈 사강, 〈눈 속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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