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세정보

상세정보

(신완역) 난중일기 : 교주본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노승석, 盧承奭, 역주
서명 / 저자사항
(신완역) 난중일기 : 교주본 / 이순신 저 ; 노승석 역주
발행사항
서울 :   여해,   2021  
형태사항
635 p. : 천연색삽화, 도판 ; 24 cm
원표제
亂中日記
기타표제
한자표제: 亂中日記 校註本
ISBN
9791197378218
일반주기
"난중일기 교주본 원문"  
부록: 1. 노량해전과 이순신의전사, 2. <난중일기> 교감대조표(p. 588-617)  
"충무공 이순신 연표" 수록  
서지주기
참고문헌(p. 618-624)과 색인수록
000 00000cam c2200205 c 4500
001 000046077010
005 20210415134220
007 ta
008 210409s2021 ulkaf 000c kor
020 ▼a 9791197378218 ▼g 93900
035 ▼a (KERIS)BIB000015810452
040 ▼a 244009 ▼c 244009 ▼d 211009
041 1 ▼a kor ▼h chi
082 0 4 ▼a 951.902 ▼2 23
085 ▼a 953.0553 ▼2 DDCK
090 ▼a 953.0553 ▼b 2021
100 1 ▼a 이순신 ▼g 李舜臣, ▼d 1545-1598
245 2 0 ▼a (신완역) 난중일기 : ▼b 교주본 / ▼d 이순신 저 ; ▼e 노승석 역주
246 0 ▼i 한자표제: ▼a 亂中日記 校註本
246 1 9 ▼a 亂中日記
260 ▼a 서울 : ▼b 여해, ▼c 2021
300 ▼a 635 p. : ▼b 천연색삽화, 도판 ; ▼c 24 cm
500 ▼a "난중일기 교주본 원문"
500 ▼a 부록: 1. 노량해전과 이순신의전사, 2. <난중일기> 교감대조표(p. 588-617)
500 ▼a "충무공 이순신 연표" 수록
504 ▼a 참고문헌(p. 618-624)과 색인수록
700 1 ▼a 노승석, ▼g 盧承奭, ▼e 역주
945 ▼a KLPA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53 2021 등록번호 11184707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역주자 노승석은 35년 동안 한문과 초서를 연구한 고전 학자로서 <난중일기> 원전을 깊이 있게 연구한 이순신 전문가이다. 그의 역서 <교감완역 난중일기>(민음사, 2010)는 최초의 교감 완역본으로서 개정 2판(여해)까지 간행되도록 학계에 가치를 인정받고 대중들에게 널리 애독되어 왔다. 특히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가 등재 될 때 심의자료로 제출되어 크게 기여한 바가 있다.

이번에는 다년간 모은 이순신과 관련된 한국과 중국의 방대한 문헌자료를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중일기>를 더욱 정밀하게 교감 역주한 교주본을 간행하였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 내용들을 소개하고, <난중일기>의 난해한 전고와 용어, 인명, 지명 등을 모두 고증하였다.

새로운 일기 36일치를 포함한 <난중일기> 93,022자를 완전 해독하고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하여 수준 높은 고전번역의 전문성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 교감주석한 원문도 함께 수록하여 번역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했다. 새로 발굴된 내용은, <독송사> 출전, 이순신의 둘째 아들 열의 이름 풀이, 고전 인용문, 노비 인물, 셋째 아들 면의 전사 기록 등이다. 부록에는 이순신의 전사와 노량해전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다.

4백여 년 전 암호같은 이순신의 초서 필적에 담긴 의미를 고스란히 밝혀내다
고전전문가의 문헌고증으로 10여 년 만에 가장 완벽한 번역서를 출간하다

1. 저자의 《난중일기》연구 업적은 어떠한가.


《난중일기》에 대한 한글 번역 작업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홍기문과 이은상의 국역본《난중일기》가 오늘날 번역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용어와 명칭에서 전고 미상과 오독 등이 남아 있어 학계에서는 새로운 교감(校勘)과 재번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노승석 저자는 《난중일기》 백여 곳을 교감하여 2008년《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논문 이후로는 교감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한국연구재단 등재논문 기준) 2010년 이를 기초로 한 《교감완역 난중일기》(민음사)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최초의 교감 완역본으로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가 등재 될 때 심의자료로 제출되었고, 개정2판이 간행되기까지 저자는 하나의 발굴 역사를 이루었다. 즉, 《충무공유사》〈일기초〉의 32일치를 난중일기에 처음 합본하고 《난중일기》에 적힌 《삼국지연의》내용과 홍기문의 《난중일기》(2013), 《태촌집》〈충무공난중일기〉의 새로운 일기 3일치, 《임진기록》의 금토패문 전문(2016), 《삼도실기》의 새로운 일기 1일치 등을 찾아 처음 소개했다. 이를 쉽게 엮은 《쉽게보는 난중일기》가 2016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대학 신입생의 추천도서로 선정하였고, 개정2판이 2020년 대구교육대학교에서 DNUE 50Greatbooks 교양도서로 선정하였다.

2. 《난중일기》해독은 초서 해독방법과 문헌고증이 관건이다

《난중일기》의 난해한 초서 글자는 간혹 해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독된다. 그러나 초서와 고전을 정통으로 연구한 학자라면 자형보다는 문맥을 중시하는 문팔초이(文八草二, 문맥 8, 자형 2) 방법으로 해독하기 때문에 견해가 거의 일치한다. 자형이 맞더라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문맥을 따르는 것이 초서해독의 원칙이다. 자형을 위주하면 오독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일본인의 판본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은 예로 병신년 9월 14, 15일자에 나오는 “여진입(女眞卄)”과 “여진삽(女眞?)”, 그리고 정유년 5월 21일자에 나오는 “일맥금전(一脈金錢)”을 각각 들 수 있다.
여진 뒤의 글자는 일본인이 “스물 입(卄)”과 “서른 삽(?)”자로 오독하여 그동안 많은 논란과 오해가 있었다. 고전과 초서분야의 많은 전문학자들도 20년 전부터 이것이 오독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하였다. 저자는 이를 “함께할 공(共)”자로 수정했는데, 이 “共”자는 병신년 7월 5일의 “忠淸虞候亦來共”의 “共”자와 자형이 일치한다. 《난중일기》에는 인명 뒤에 공(共)자가 72회 나오는데, 이는 일상에서 사람을 만났다는 의미로 관용적으로 사용된 글자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특히 명나라 학자 장자열의 《정자통(正字通)》에 “공(共)은 옛날에는 ‘두손으로받들 공(?)’자로 썼다(共, 按古作?)”는 내용을 찾아 “공(共)”은 “공(?)”자와 통용하는 글자로서 초서로 쓸 때 호용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밝혔다. 이러한 고증이 고전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해독방법이므로 다수의 학자들이 공감하였다.

또한 이번의 교주본에서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소장한 문서(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에서 1577년(만력 5)에 작성한 이순신의 형인 이요신(李堯臣)의 마정전답(馬井田畓) 매입 문건과 1602년(만력 30)에 작성한 문서에서 여자종 여진(女眞) 이름을 찾았다. 그 외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사내종(奴) 갓동(?同) 옥이(玉伊), 옥지(玉只)와 여자종(婢) 덕금(德今), 한대(漢代)”도 나온다. 홍기문은 여진을 북방의 여진족으로 보았으나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해석이다.

또한 “일맥금전(一脈金錢)”의 “맥(脈)”자를 “길 맥(陌)”자로 처음 수정하고 이 글귀의 출전이 명나라 때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라고 처음 밝히고 다른 문헌을 인용하여 일맥금전의 뜻을 정확히 고증하였다. 이 모두 일본인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형만을 따져 오독한 글자들이므로 반드시 교감해야 하는 글자들이었다. 이 두 가지의 번역 사례만 봐도 전문가의 번역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새롭게 문헌고증한 사례들도 많다. 예를 들면, 임진년 2월 1일자의 조어(?魚)는 《사문유취》와 《본초강목》등에는 “뱅어”로 나오지만, 여수지방의 기록과 전라좌수영 해안의 상황을 고려하여 “숭어 새끼(모치(毛峙))”로 비정했다. 병신년 3월 23일자의 기두(技頭)는 용례가 없어 정확한 의미를 몰랐는데, 이를 지두(枝頭)로 보고 《맹자》〈양혜왕상〉의 “절지(折枝)”에 대한 조기(趙岐)의 “안마하다(案摩)”의 뜻을 취하였다. 정유년 7월 10일자의 “정상명이 말가죽(馬革)을 종이옷[紙衣]으로 만들기를 마쳤다.(鄭翔溟馬革以紙造畢)는 내용은 《후한서》〈마원열전〉과 《자치통감》에서 유래한 것임을 밝혔다.

정유년 5월 3일자에 이순신의 둘째 아들 열(?)의 이름 풀이내용이 나온다. “아침에 둘째아들 울(蔚)의 이름을 열(?)로 고쳤다. 열(?)의 음은 열(悅)이다. 싹이 처음 생기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글자의 뜻이 매우 아름답다.(朝以蔚改名?, ?音悅, 萌芽始生, 草木盛長. 字義甚美)” 이 글은 지금까지 출전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교주본에서 처음 밝혔다. 당(唐)나라 때 혜림(慧琳)이 지은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24권 〈대방광여래 불사의경계경(大方廣如?不思議境界經)〉에서 중국 진(晉)나라 때 학자인 곽박(郭璞)이 서한(西漢)의 양웅(揚雄)이 지은 《방언》과 운서인 《고성(考聲)》의 내용을 인용하여 주석한 것임을 처음 밝혔다.

《난중일기》에는 정유년 10월 8일 이후에 나오는 〈독송사(讀宋史)〉라는 유명한 글이 있는데, 교주본에서 이글의 출처를 처음으로 밝혔다. 이글은 《송사(宋史)》를 읽고 느낌을 적은 글로 지금까지는 모두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 명(明)나라 때 대학자인 경산(瓊山) 구준(丘濬 1420∼1495)이 지은 역사서 《세사정강(世史正綱)》〈송세사(宋世史)〉25권에 실린 ‘송제환(宋帝桓) 강정원년(靖康元年, 1126(병오))’조에 실린 이강(李綱)의 내용을 이순신이 인용한 것임을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세사정강》은 성화(成化) 17년(1481) 예부시랑(禮部侍郞)이었던 구준이 춘추의 필기의식과 동중서(董仲舒)의 도의정신으로 주희의 《통감강목》과 여조겸의 《대사기(大事記)》체제를 본받아 진한(秦漢)부터 원(元)까지의 주요 사건을 기술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이상으로 교주본에서 새롭게 교감하고 발굴한 대표적인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내기까지 저자는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한국과 중국의 희귀한 책과 문서들을 수집하여 오랜 세월을 연구하였다. 그 외 교감과 관련하여 《이충무공전서》《난중일기》(1795)를 보면, 문맥과 실용성을 고려하여 간혹 긴 문장을 줄이거나 어려운 글자를 쉬운 글자로 대체한 경우가 있다. 이는 육서(六書)의 가차(假借)법과 동음가를 사용한 한자표기 방법을 적용한 것인데, 이를 모르면 오자로 착각할 수 있다. 때문에 17년 전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 DB에 실린 전서본 글자는 이본의 글자일 뿐 오독된 글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은 기존의 책과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교감완역본이 《난중일기》원문을 축자(逐字) 형태로 완역한 책이라고 한다면, 교주본은 이순신과 관련된 한중 최대규모의 문헌자료를 문헌학과 고증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중일기》를 더욱 정밀하게 교감 역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문헌내용들을 소개하고, 후대에 전하는 《난중일기》초본도 모두 수록하고 《난중일기》의 난해한 전고와 용어, 인명, 지명 등을 모두 완벽하게 고증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난중일기》판본의 오류를 교감한 내용을 모두 망라하였고, 이견과 논란이 있는 내용도 모두 바로잡았다.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반영된 교감본 《난중일기》원문을 번역문과 함께 수록하였다. 간혹 해독이 불가능한 글자나 학자들의 의견차이가 심한 글자의 경우에는 문헌 내용과 이순신이 쓴 용례로써 판단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초서를 연구한 고전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해독방법이다.

이 교주본의 특징은 문헌으로 용어와 인명, 지명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 점이다. 용어는 중국의 24사(史)를 포함한 고전적에서 관련 내용을 일일이 찾아 고증하였다. 또한 《난중일기》에는 관직만 나오고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인물의 재직 시기를 일일이 추적하여 해당 인물을 찾았다. 《선조실록》의 임면 사항과 방목류, 경상·전라도 읍지의 〈선생안〉, 교서, 《선무원종공신록》과 《호성원종공신록》등을 참고하였다. 4백여 곳의 지명과 유적지는 저자의 역저《난중일기유적편》(2019)을 토대로 향토사료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완하였다.

이제 10여 년 만에 새로운 일기 36일치를 포함한 《난중일기》93,022자를 완전 해독하고 4백여 곳을 새롭게 고증하여 가장 완벽한《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을 출간하였다. 이는 수십 년 동안 한학과 초서를 연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한 조예가 있는 전문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교주본은 고전 학자들이 통용하는 해독 방법으로 《난중일기》해독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번에 새로 발굴한 14건의 내용은 고전학자의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연구 성과이므로, 이 교주본은 역시 최고의 노작이자 불후의 명저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순신(지은이)

1545년 3월 8일 문반 가문의 셋째로 태어났다. 1576년에 병과로 급제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 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훈련원 참군, 사복시 주부,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전라순찰사 군관 겸 조방장 등을 거쳤다. 이어 1589년 정읍 현감으로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등에서 전승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593년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최초로 임명되어 1594년에도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597년 1월 조정을 기망한 죄로 통제사직에서 파직되어 투옥되었다. 출옥 후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1597년 7월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었다. 9월 16일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 척의 왜선과 맞서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1598년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 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했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1643년에는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3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노승석(역주)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를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KBS와 조선일보사, 국방부, 박물관 등에서 특강을 하였다. 국내 최초의 교감완역본인 《교감완역 난중일기》가 2014년 영화 명량 상영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5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베트남어로 번역되었으며, 중고교 교과서 27종에 수록되었다. 현재는 여해(汝諧) 고전연구소장으로 이순신의 문헌을 발굴하며 여해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한국의 차문화 천년》(공역), 《사호집》, 《이충무공종가 유물도록》, 《충무공유사》·《교서집》(현충사), 《난중일기유적편》 등이 있다. 저서로는 《충무공사료집성》,《이순신의 리더십》(여해), 〈충무공, 최후까지 충성을 다하다〉(교보문고/길위의 인문학), 《이순신의 승리비결-주역으로 풀다》가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서문
Ⅰ. 《난중일기》의 역사
Ⅱ.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해제
일러두기

《난중일기 교주본》 번역문
임진일기(1592)
계사일기(1593)
갑오일기(1594)
을미일기(1595)
병신일기(1596)
정유일기(1597)Ⅰ
정유일기(1597)Ⅱ
무술일기(1598)

《난중일기 교주본》 원문

부 록
1.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전사
2. 《난중일기》 교감 대조표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관련분야 신착자료

신동훈 (2021)
홍순석 (2021)
안팎너머 (2021)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2021)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