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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적자료집성

고려시대 전적자료집성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곽승훈, 郭丞勳, 편
서명 / 저자사항
고려시대 전적자료집성 / 곽승훈 편저
발행사항
서울 :   혜안,   2021  
형태사항
582 p. ; 27 cm
ISBN
9788984946576
일반주기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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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4 2021 등록번호 11184634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고려시대에 고려인들이 책을 간행하면서 남겨놓은 간기와 필사한 사경의 발문을 모아 정리한 자료집이다. 간기에는 책을 간행하게 된 간행 동기와 주관자와 참여자 등이 수록되었다. 사경의 발문에는 발원자와 그 뜻에 동참하여 수희한 자 그리고 발원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에 고려인들이 책을 간행하면서 남겨놓은 간기(刊記)와 필사한 사경(寫經)의 발문(跋文)을 모아 정리한 자료집이다. 간기에는 책을 간행하게 된 간행 동기와 주관자와 참여자 등이 수록되었다. 사경의 발문에는 발원자와 그 뜻에 동참하여 수희(隨喜)한 자 그리고 발원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 자료는 고려시대를 연구하는 문학‧역사‧철학은 물론 불교미술‧문헌정보학 분야에서도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기대된다. 이하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Ⅰ. 고려 전기(태조~의종: 918~1170)에는 100여 건의 전적이 조성된 사실이 찾아지지만, 오늘날 남아 전하는 자료는 매우 적다. 태조 왕건이 후손들에게 거울삼으라고 한 훈요10조는 <신서훈요(信書訓要)>라 하여, 인쇄해서 관료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오늘날 전하는 고려시대의 목판본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목종 10년(1007)에 간행한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타라니경(一切如來心秘密全身舍利寶篋印陁羅尼經)>이 있다. 조탑(造塔)의 공덕을 강조한 이 경전은 나말여초에 들어온 듯한데, 오대산 월정사, 안동 보광사에서 찾아진다. 또, 필사본으로 불국사 석가탑에 봉안된 사례가 있어 널리 유행한 듯 여겨지나, 이후 계속해서 이어졌는가는 알 수 없다. 10년 전 즈음 중국 절강지방에 갔을 때, 항주(杭州) 혜인원(慧因院)을 비롯한 여러 사찰에서 책자로 간행 보시하는 것을 보았다. 중국에서는 오늘날도 수지독송하는 듯하여 흥미롭다. 또 이보다 한 해 앞서 이루어진 <대보적경(大寶積經)> 사경이 있는데,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가 김치양과 함께 발원 조성한 것이다. 내연관계였던 둘의 사이를 잘 입증하여 주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대각국사 의천이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사업을 주도하였다. <원종문류(圓宗文類)> 간기에는 사업에 참여한 인명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화엄종 승려들과 사찰의 면면을 살필 수 있다. 또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仁王護國般若經疏法衡抄)>를 비롯한 유식학(唯識學) 서적은 금산사 광교원(廣敎院)에서 간행 보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Ⅱ. 고려 중기(명종~원종: 1170~1274)에도 100여 건의 조성 사실이 찾아졌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은 송광사에 주석하면서 교화를 펼치는 한편, 여러 저술을 남겼다. 저술의 대부분이 송광사에서 간행되었는데,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등이 있다. 또, 그의 뜻을 받들어 혜심(慧諶)을 비롯한 제자들이 <주김강반야파라밀경(注金剛般若波羅密經)>등 여러 경전들을 송광사에서 계속해서 간행 보급하였다.
이 시기는 최씨 무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발원 내용에 개인의 발원과 함께 국왕 최씨 집권자의 복을 비는 한편, 전쟁의 종식을 항시 기원하였다. 고종 58년(1258) 3월에는 집권자 최의(崔竩)가 피살되고, 고종이 왕권을 회복한다. 이 해 겨울 간행되는 <천로해 금강반야바라밀경(川老解 金剛般若波羅蜜經)>의 간기에 ‘중광무오(重光戊午)’라 하였는데, 이는 왕권회복을 기념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당시에는 중국과 외교가 단절된 때여서 그들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문인들의 저술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비롯한 <파한집(破閑集)>, <보한집(補閑集)> 등이 간행되었는데, 무인정권의 정책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안은 분사도감의 책임을 맡아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비롯한 여러 전적을 간행하고 발문을 남겼다. 한편, 최이(崔怡)가 편찬했다는 <제사원적(諸寺院籍)>이 찾아지는데, 이는 무인정권에 협조하는 사원들을 가리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생살부(生殺簿)라 하겠다. 이어 만덕산 백련사를 중심으로 한 천태종 사찰에서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科文本) <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 등을 간행하고, 사경한 사실이 자못 찾아진다.

Ⅲ. 고려 후기 상(충렬왕~충정왕: 1274~1351)에는 150여 건의 전적이 조성되었다.
충렬왕 15년(1289) 윤10월에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완성하고 왕이 공주와 함께 경찬회(慶讚會)를 열었다. 이때의 사경이 오늘날 전하는데, 그중 <불공견색신변진언경(不空羂索紳變眞言經)>은 충렬왕 원년(1275)에 조성되었다. 이로 보아, 대장경 사경에는 대략 15년의 세월이 걸린 듯하다.
충선왕도 대장경을 사경하였는데,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을 비롯한 다수의 경전이 찾아진다. 고려인들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대장경을 인쇄 보시한 사례로, 혜인원에 기진한 원관(元瓘)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충숙왕 원년(1314)의 성산군부인(星山郡夫人) 차씨, 13년의(1326) 상호군 조련(趙璉), 15년(1328)의 전주호장 박환(朴環)의 처 이씨 등 여러 사례가 있다.
충목왕 즉위년(1344) 황후 기완(奇完)이 발원하여 대장경 2부를 인쇄하여 원과 고려에 봉안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인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의 발문을 보면, 원나라에서 실력을 행사했던 고려인들로 고용복(高龍卜) 정독만달(鄭秃滿逹) 등이 살펴진다. 또한 이들은 귀한 전적들이 발굴되면, 사비를 내어 간행 보급하면서 고려에도 보내왔다. 엄야선불화(嚴也先不花)가 충숙왕 7년(1338)에 <금강반야바라밀경>을 간행하여 보내온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이 판본은 그림과 주석이 달린 도해본으로서 새로운 것이었다.
충숙왕 복위 6년(1337)에 간행된 <십초시(十抄詩)>는 고려 전기에 유학자가 가려 뽑은 것에 주(註)를 달아 새로 간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 주를 단 사람이 유학자가 아닌 신인종의 노승 자산(子山)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일이다. 한편 이 시기에 새로 조성되는 경전이나 사적의 발문을 보면 민지(閔漬)의 글이 자못 보이는데, <풍악산장안사사적기(楓岳山長安寺事蹟記)> <오대산사적(五臺山事跡)> 등이 있다.

Ⅳ. 고려 후기 하(공민왕~공양왕: 1351~1392)에도 110여 건의 전적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원나라가 쇠퇴하면서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고용복, 강금강 등의 시주로 원나라에서 간행한 책들이 연이어 고려에 들어왔다. 또 고려에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중간하였으니,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 <장승법수(藏乘法數)> 등이 파악된다. 이 시기에는 전적의 간행이 이전보다 활발한 경향이 보이는데, 그것은 홍건적의 침략과 왜구의 약탈로 경판과 전적을 잃은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초간본을 바탕으로 새로 판각한 중간본과 보존된 목판을 가지고 인쇄한 인기(印記)가 많다.
성리학의 수용에 따라, <근사록(近思錄)> <중용주자혹문(中庸朱子或問)> 등이 새로 간행 보급된 것은 주목할 일이다. 고려인들의 문장을 집성한 <동인지문사육(東人之文四六)> 등이 간행 보급된 것 또한 눈여겨진다.
한편 이색은 문장가로서 여러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발문을 지은 것이 제법 많다. 그런데 불교와 관련된 전적들의 발문을 보면, 다른 분야의 서적에 쓴 내용과 비교해 볼 때 그리 정성을 들이지 않고 있음을 본다. 그는 불교를 배척하지 않을 뿐 관심이 적었던 것 같다.
우왕 5년(1379)에는 환암선사(幻庵禪師)가 충주 청룡사에서 <호법론(護法論)>을 간행 배포한다. 이 책은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가 제기한 척불론(斥佛論)에 대해 반박한 글로서, 송나라 재상 장상영(張商英)이 지은 것이다. 장상영은 불사(佛事)의 공덕무용론(功德無用論)에 대해 유교 경전의 내용과 역사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반박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가 학문을 연마하거나 수행한 뒤 얻는 결과로서의 목표가 중생을 교화하여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처럼 같다고 하여 유불불이(儒佛不異)를 주장하였다. 그의 의도는 성리학자들에게 척불론의 불식(拂拭)을 넘어 유불불이의 취지에 공감토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환암은 당시 성리학자들의 비판에 대응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자들은 불교계의 폐단을 거듭 지적하였고, 공양왕대에 이르러서는 척불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때의 상소문에서 유학자들이 <호법론>을 단골로 비판하였는데, 아마도 이는 환암이 보급한 <호법론>의 영향 때문인 듯싶다.

이 책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간행한 목판본에 실린 간기와 불경을 필사한 사경의 발문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관련 자료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편저자는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
먼저, 고려인들의 저술로 중국에서 중간(重刊)된 서적은 물론, 고려인들의 보시로 중국에서 간행한 서적들도 수록하였다. 그 서적들이 고려에 들어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 서적의 일부만 전하거나 전하지 않더라도, 다른 문헌 속에서 그 서문이나 발문이 찾아지는 것을 수록하였다. 또, 저술이 전하지 않더라도, 다른 문헌(혹은 금석문)에 내용의 일부가 전해지는 인용 기사와 연기(緣起) 기사도 수록하였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의 자료 속에 전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수록하였다. 이외에도 저술‧편찬된 사실만을 전하는 간략 기사와 간기가 없더라도 주목할 서적들 역시 표를 만들어 연구자들이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
이 같은 편저자의 노력으로, 여기에는 500건에 이르는 항목, 20개의 표, 10건의 고이(考異) 기사가 모아졌다. 더욱 편저자는 오탈자와 이체자 교감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 이전에 생겨난 오류를 바로잡았다.
이 책은 고려사와 사상사는 물론, 불교학, 서지학, 미술사 분야의 연구에 있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자료집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곽승훈(엮은이)

서강대 사학과 졸업 후, 한림대 대학원에 진학, 이기백(李基白) 선생님의 지도를 받다. 사상사·사학사·금석문을 주로 연구하였으며, 금석문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제7회 지훈상(국학부문, 2007)을 수상하였다. [연구논저]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국학자료원, 2002) <최치원의 중국사 탐구와 사산비명 찬술>(한국사학, 2005) <신라 고문헌 연구>(한국사학, 2006) <신라 금석문 연구>(한국사학, 2006) <지리산권 불교자료 1_ 간기편>(공편, 심미안, 2009) <한국금석문집성> 12(공저, 한국국학진흥원, 2012) <중국소재 한국고대금석문>(공저,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문화로 읽는 신라·고려시대 인물>(공저, 다운샘, 2019) 「殊異傳의 撰述本과 傳承 연구」(<진단학보> 111, 진단학회, 2011) 「김영의 보조선사비문 찬술」(<신라사학사학보> 27, 2013) 「보조체징선사의 선교일체와 보현행원신앙」(<사학연구> 111, 2013) 「신라 골품제사회의 정치변동과 불교」(<한국고대사탐구> 15, 2013) 「고려시대 운문사 창건연기의 변천과 역사적 의의」(<한국사학사학보> 30, 2014) 「신라 경덕왕대 보현행원신앙과 비로자나불 조성」(<신라사학보> 30, 2014) 「해동고승전 원광전의 찬술과 사학사」(<한국사학사학보> 31, 2015)

정보제공 : Aladin

목차

緣 起
삼가 선생님께 올립니다

Ⅰ. 고려 전기(太祖~毅宗:918~1170)
제1대 太祖 王建(재위 918~943)
제2대 惠宗 王武(재위 943~945)
제3대 定宗 王堯(재위 945~949)
제4대 光宗 王昭(재위 949~975)
제5대 景宗 王?(재위 975~981)
제6대 成宗 王治(재위 981~997)
제7대 穆宗 王誦(재위 997~1009)
제8대 顯宗 王詢(재위 1009~1031)
제9대 德宗 王欽(재위 1031~1034)
제10대 靖宗 王亨(재위 1034~1046)
제11대 文宗 王徽(재위 1046~1083)
제12대 順宗 王烋(재위 1083년 7~10월)
제13대 宣宗 王運(재위 1083~1094)
제14대 獻宗 王昱(재위 1094~1095)
제15대 肅宗 王?(初名 王熙:재위 1095~1105)
제16대 睿宗 王?(재위 1105~1122)
제17대 仁宗 王楷(初名 王構:1122~1146)
제18대 毅宗 王晛(初名 王徹:1146~1170)
時期 未詳Ⅰ:고려 전기

Ⅱ. 고려 중기(明宗~元宗:1170~1274)
제19대 明宗 王晧(初名 王昕:재위 1170~1197)
제20대 神宗 王晫(初名 王旼:재위 1197~1204)
제21대 熙宗 王?(初名 王悳:재위 1204~1211)
제22대 康宗 王璹(初名 王貞ㆍ王?:재위 1211~1213)
제23대 高宗 王?(初名 王瞋ㆍ王?:재위 1213~1259)
제24대 元宗 王植(初名 王?:재위 1259~1274)
時期 未詳Ⅱ:고려 중기

Ⅲ. 고려 후기 상(忠烈王~忠定王:1274~1351)
제25대 忠烈王 王?(初名 王諶ㆍ王?:재위 1274년 6월~1298년 1월)
제26대 忠宣王 王璋(初名 王?:재위 1298년 1월~8월)
제25대 忠烈王 王?(初名 王諶ㆍ王?:복위 1298년 8월~1308년 7월)
제26대 忠宣王 王璋(初名 王?:복위 1308년 7월~1313년 4월)
제27대 忠肅王 王卍(初名 王燾:재위 1313~1330, 복위 1332~1339)
제28대 忠惠王 王禎(재위 1330년 1월~1332년 2월)
제27대 忠肅王 王卍(初名 王燾:복위 1332년 2월~1339년 4월)
제28대 忠惠王 王禎(복위 1339년 4월~1344년 9월)
제29대 忠穆王 王昕(재위 1344년 9월~1348년 12월)
제30대 忠定王 王?(재위 1348년 12월~1351년 10월)
時期 未詳Ⅲ:고려 후기 上(1274~1351)

Ⅳ. 고려 후기 하(恭愍王~恭讓王:1351~1392)
제31대 恭愍王 王?(初名 王祺:재위 1351~1374)
제32대 禑王 牟尼奴(재위 1374~1388)
제33대 昌王 王昌(재위 1388~1389)
제34대 恭讓王 王瑤(재위 1389~1392)
時期 未詳Ⅳ:고려 후기 下(1351~1392)

廻向
因緣을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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