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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와의 사랑 : 성미정 시집 / [개정판]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성미정, 1967-
서명 / 저자사항
대머리와의 사랑 : 성미정 시집 / 성미정 지음
판사항
[개정판]
발행사항
서울 :   문학동네,   2020  
형태사항
75 p. : 삽화 ; 22 cm
총서사항
문학동네포에지 ;005
ISBN
978895467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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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 청구기호 897.16 성미정 대a 등록번호 151353261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C

컨텐츠정보

책소개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문단의 래퍼’라는 독특한 호명과 함께 출발한 성미정의 시력은 삶의 주체, 여성으로서 걸어온 문학적 발자취다.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무장한 출현 이래 “문학의 첫 약속과 함께” 갈 것을 잊지 않는 시인(황현산). 그와 동시에 일, 결혼, 육아…… 삶의 내용 어디에서건 시의 자라남을 꼼꼼히 들여다볼 줄 아는 시인이다.

흔히 시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현실에서 현실 너머를 발견하는 것, 딱딱한 세계의 외피 속 꿈틀거리는 이면을 꺼내보이는 일이라면 성미정은 결코 그 덕목을 놓은 적이 없다. “일상을 갱신하는 힘”, 낯설지만 독창적인 시선으로 “세상과 진정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시”(김진희) 말이다.

시인들의 첫 시집을 ‘씨앗’에 비유한다면 <대머리와의 사랑>은 더없이 탁월한 예라 하겠다. 무한한 잠재력의 원형, 이미 그 속에 미래의 가능성―줄기와 열매까지 내포한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하며

1.
2020년 11월 문학동네 복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를 시작합니다. 1차분 열 권을 우선으로 선보입니다. 문학동네는 일찌감치 이 작업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1996년 11월 ‘포에지 2000’ 시리즈의 펴냄 아래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가던 바 있습니다.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시대의 혼돈과 상처를 노래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울림이 담긴 추억의 명시들을 독자 앞에 다시금 제시함으로써 빛나는 시의 정수를 확인하고자” 하려 함이라는 취지의 글이 떠오르는데, 그때로부터 근 24년이 흘렀습니다. 그 정신은 온전히 두고 그 매무새를 새로이 다지는 과정 가운데 문학동네포에지의 첫 행보를 내딛기까지 시간이 오래 좀 더디 걸린 것도 사실입니다.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현시되는 장을 여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선언한 책임과 의무의 말이 실은 얼마나 큰 무게인지 모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시라는 무한과 시집이라는 열림을 끌어안으려는 데 있어 한껏 오므라들었다 힘껏 펼칠 줄 아는 시리즈라는 줄자,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아무려나 사랑에 있음을 이제는 깨닫고 온전히 그 순정에 기대어 용기를 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2.
문학동네의 신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시인선이 어느덧 150번째 시집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출범하게 된 문학동네의 구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포에지는 복간의 기저를 비단 문학동네에 적을 두었던 시집만을 필두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읽어둬도 참 좋으련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랜 시간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집들이 우리에게는 꽤 있었습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시간을 거슬러 찬찬히 행하는 시로의 이 뒤로 걷기를 통해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집을 발굴하고, 숨어 있기 좋았던 시집을 골라내며, 책장 밖으로 떨어져 있던 시집을 집어 서가에 다시 꽂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한국 시사를 관통함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시의 독본들을 여러분들에게 친절히 제공해드릴 참입니다. 출발의 본거지는 제각각 달랐으나 도착의 안식처는 모두 한데로, 문학동네포에지 안에서 유연성 다해 섞이고 개연성 있게 엮인 가운데 한 차에 열 권씩 펼쳐질 시의 병풍은 저마다 다양한 개성으로 저마다 독특한 양식으로 저마다 특별한 사유로 시리즈라는 줄자에서 보다 큼지막한 테두리로 우리를 시라는 리듬 속에 재미 속에 미침 속에 한껏 춤추게 할 것입니다. 특히나 귀하디귀하다 싶은 것이 시인들의 첫 시집임을 알아 그 최전방에 첫 시집들을 앞서 배치한 것인데 김언희, 김사인, 이수명, 성석제, 성미정, 함민복, 진수미, 박정대, 유형진, 박상수 시인에 이어 출간될 2차분 역시 김옥영, 이문재, 염명순, 안도현, 정은숙, 조연호, 김민정, 최갑수, 이영주, 이현승 시인의 첫 시집임에, 복간에 있어 첫 시집을 앞서 염두에 둔다는 원칙 역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3.
문학동네포에지는 문학동네시인선과 책 사이즈가 같습니다. 세상의 시계와는 완연히 다른 시의 시간 속에 이 두 시리즈가 맘껏 뒤섞이는 난장 속에 시집 시리즈의 건강함을 기대하였고, 맘껏 뒤섞이는 자연 속에 시집 시리즈의 무구함을 기약한 것도 애초의 기획 의도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의 중심을 컬러에 놓은 것도 둘의 공통점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이 핀 꽃이거나 필 꽃이라 할 때 문학동네포에지는 꽃이 있다 떨어진 꽃자리이거나 꽃 없이 진 꽃을 기억하는 등산로 앞 의자라 할 적에 그 컬러의 생겨먹음이 필시 달라야 할 것이라는 짐작이 내내 따라붙었습니다. 힘을 빼고 또 뺐습니다. 등을 펴고 또 폈습니다. 그렇게 비우고 그렇게 꼿꼿해지는 과정 속에 문학동네포에지는 파스텔톤의 열 가지 컬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이 따로 실리지 않는 시집 시리즈, 추천사도 따로 박히지 않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약력과 시인의 자서와 시인의 시로만 꿰는 시집 시리즈, 시인의 시 가운데 미리 보기로 어떠한가 싶어 고른 한 편의 시를 책 뒷면에 새기는 일로 시집의 단장을 마치고 시집의 장단을 맞춘 시집 시리즈, 이에는 색보다는 물의 수위가 높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차에 열 권씩 출간하려는 작정은 예의 과정에서 비롯한 작정이기도 합니다.

4.
구석구석 모자람도 클 것입니다. 걸음마에 넘어짐은 자석 근처의 철심 같은 것, 하여 많은 분들이 넘어질 적마다 넘어졌구나 가리키시고 가르쳐주셔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나갈 수 있음을 압니다. 모쪼록 새롭게 시작하는 문학동네포에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사랑으로 지켜봐주시면 여한이 없을 성싶습니다. “사랑이란 죽은 이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힘입어 “사랑이란 죽은 시집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이란 우리만의 변주로 그이가 부추긴 ‘사랑의 함대’를 비유 삼아 오늘 이렇게 문학동네포에지라는 배를 물위에 띄워보는 바입니다.

■ 편집자의 책소개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문단의 래퍼’라는 독특한 호명과 함께 출발한 성미정의 시력은 삶의 주체, 여성으로서 걸어온 문학적 발자취다.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무장한 출현 이래 “문학의 첫 약속과 함께” 갈 것을 잊지 않는 시인(황현산). 그와 동시에 일, 결혼, 육아…… 삶의 내용 어디에서건 시의 자라남을 꼼꼼히 들여다볼 줄 아는 시인.
흔히 시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현실에서 현실 너머를 발견하는 것, 딱딱한 세계의 외피 속 꿈틀거리는 이면을 꺼내보이는 일이라면 성미정은 결코 그 덕목을 놓은 적이 없다. “일상을 갱신하는 힘”, 낯설지만 독창적인 시선으로 “세상과 진정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시”(김진희) 말이다. 시인들의 첫 시집을 ‘씨앗’에 비유한다면 『대머리와의 사랑』은 더없이 탁월한 예라 하겠다. 무한한 잠재력의 원형, 이미 그 속에 미래의 가능성─줄기와 열매까지 내포한 하나의 세계.

비밀 없는 행복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 거야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의 입구는 동화의 문이다. 『미운 오리 새끼』 『백설공주』 『파랑새』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을 빌려 비틀어가는 ‘동화’ 연작은 물론, ‘동화적 상상력’이야말로 이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다. 동화 속 주인공이 어느 밤 벽장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 문을 발견하듯, 시인은 현실의 틈에서 ‘시로 들어서는 통로’를 발견한다. 여느 때처럼 존재하던 벽장이 어느 날 문득 환상의 입구로 열리는 때, 시인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벽장 속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시인의 동화 나라는 신비하고 아름답기만 한 원더랜드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추위란 공기의 다른 이름일 뿐”인 곳(「쿨 월드─성냥은 있다」), “눈이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부는 ‘쿨 월드’, 냉혹한 현실 그 자체다(「쿨 월드─애완견 센터」). ‘동화 속 이야기’는 자꾸만 비극으로 달려가고, 인물들은 굴레에서 벗어날 탈출구, 존재하지 않는 먼 곳을 꿈꾼다. 환상 속에서도 환상을 꿈꿔야 할 때, 우리는 이 무대가 실은 상상의 나라가 아닌 현실의 노골적인 거울임을 깨닫게 된다. 성미정의 시에서 현실과 환상은 솔기 없이 박음질된 양면,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비추며 지상과 지하로 자라는 쌍둥이 나무(「가족 나무」)다.

(……) 처녀는 나무가 두려웠다 파내서 뿌리째 태워버리려고 했다 그 밤 처녀는 나무의 비밀을 만나게 되었다 나무는 뿌리가 없었다 한 그루의 똑같은 나무가 땅속으로 자라고 있었다 마치 정교한 거울 같았다 어둠 속에서 자란 가지 끝에는 혈색 좋은 얼굴들이 익어 있었다 처녀는 나무를 다시 심었다 땅속에 묻혀 있던 나무는 지상으로 지상의 나무는 지하로 묻어버렸다 마치 결혼식과 장례식을 함께 치른 듯 처녀는 피곤했다 날이 밝았다 아무도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잘 자란 나무 곁에 나무껍질처럼 주름진 노파가 쓰러져 있었다

─「가족 나무」 부분

1990년대 말, 『대머리와의 사랑』을 통해 성미정은 세련된 상상력, 실험적 화법으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그런데 두번째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민음사, 2003)에서 시인 스스로 「실험적이고 모더니티한 시를 쓴다는 성미정 씨의 고백」을 밝힌 바, 시인은 모더니스트라는 별명도 실험 시인의 자리도 한사코 마다한다. 가만, 이 첫 시집 속 성미정의 시들을 들여다보노라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기 이전에 그 ‘경계’가 실재하는 것인지 되물어오는 날카로운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시인이 종종 밝혀왔듯, 때때로 ‘현실이야말로 환상보다 더 환상적이며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모습’으로 일렁거린다. 말하자면 우리가 환상적이라 여기는 성미정의 시 세계는 ‘별나게’ ‘다르게 보이기’ 위해 눈속임을 시도한 결과가 아니다. 시인의 상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았을 뿐인, 현실의 기이함과 비틀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정직함’에서 온다. 시인이 정의하는 상상력이 “내게는 익숙하지만 독자들은 낯설다고 말하는 기질”인 이유다(2003 중앙대학교 문학포럼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바라만 보던 사람들은 결코 날릴 수 없는
역전의 홈런


『대머리와의 사랑』과 마주앉는 일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쌉싸래한 유머, 예리한 지성과 번뜩이는 말놀이가 총동원되는 ‘읽는 이의 기쁨’이다. 어느 하나 우위라 콕 집어 손들어주기엔 한쪽의 머리가 다른 쪽의 꼬리가 되어 물고 물리는 얽힘이다. 둥근 원, 순환하는 고리는 시집 속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둥근 달과 둥근 식탁, 둥근 손잡이는 물론, 고독과 살의마저도 둥글어지는 원의 세상. 게다가 시집의 한 허리를 받쳐든 것도 ‘야구’ 연작이라니, 야구란 원형 스타디움에서 둥근 공을 주고받으며, 필드 한 바퀴를 돌아 ‘홈인!’, 그렇게 외치는 경기 아니던가.
오고감과 주고받음, 반복과 전복은 이 불온한 환상의 세계를 이루는 큰 축일 테다. 꽃씨를 팔던 종묘상의 주인은 자신이 어린 씨앗이 되어 타인의 몸에 심기고(「심는다」), 언니 품에서 자란 동생이 도리어 영영 언니를 업어지게 되거나(「언니라는 존재」), 그림자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해 ‘그녀 행세’를 하는(「그녀와 그녀의 그림자」) 식이다. 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우리는 출구도 입구도 알 수 없는 원형의 미로, 그 한가운데다.
이 미로에서 탈출하기 위한 실마리, 시의 바깥에 매어둔 끈을 따라 시 속 세계를 따라가보는 방법도 있겠다. 시를 현실의 우화로, 현실에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로 읽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실마리를 따라밟는 길 위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숙한 미궁으로 빨려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미정의 세계에서 실과 끈이란 내부를 향해, “뇌 속으로 자라”는 머리카락(「대머리와의 사랑 2」) 혹은 “입 속으로/꾸역꾸역 스며”드는 “검고 질긴 뿌리”(「칡즙 파는 남자」)인 법이니.

성미정의 ‘동화적인 시’를 그저 그로테스크한 ‘잔혹 동화’로만 읽기란 충분치 않다. 이 시들은 탈출게임이 아니고, 힌트를 숨겨놓고 정답을 추리하는 퀴즈풀이는 더더욱 아니다. 미로에는 하나의 출구, 가르침과 깨우침으로 직진하기 위해 닦은 길이 없다. 끝없이 주고받으며 교차하는 이야기들, 층과 층, 교차와 교차가 빚어내는 생성의 리듬부터 함께해볼 일이다. “기꺼이 엉킨 나라의 제왕”을 자처하는 그때, 성미정의 미로는 끝없이 새로운 길이 자라나는 공간, 무수한 갈래를 품은 건축이 된다.

(……) 엉킨 나라를 풀어보려고 애썼지만 수학엔 소질이 없는지라 풀 수 없었다 가위로 끊어버리려 했으나 끊어지지 않았다 엉킨 나라는 끊어야 할 나라가 아니라 풀어야 할 나라였다 엉킨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길이 미로처럼 엉켜 있었다 (……) 그녀는 기꺼이 엉킨 나라의 제왕답게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엉킨 나라는 풀려가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이름은 풀린 나라다 언제부터 풀렸는지 왜 풀렸는지 풀린 나라의 제왕인 그녀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

─「동화─엉킨 나라」 부분

걷고 걸으면
다시 출구가 나오는 환한 빛을 향해


성미정이 쌓아올린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둥근”(「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미로 앞에서 다시 ‘씨앗’을 그려본다. 영원히 반복되지만 불현듯 어긋나며 전진하는 이야기들, 시인이 주로 이십대 후반에 쓰고 엮은 이 거대한 상상의 건축은 ‘끝없이 갈라질’ 가능성을 품은 씨앗이다. “두 발에 꼭 맞는 구두”(「구두를 만든 사람」)를 찾기 위해 나설 길들, 그 “모든 뿌리의 기억”(「검고 낡은 구두와의 이별」)이 미로-씨앗 속에 숨어 있다. “머리카락을 더이상 누를 수/없었던 뇌가 그를 배반”(「대머리와의 사랑 2」)하듯 터져나오는 순간, “더이상 비로 가둘 수 없던 스크린이 찢어”져 쏟아져내리는 때가 오면(「영화─해피 엔딩」), 되돌아온 현실, ‘삶이라는 구두’의 또다른 여정이 움틀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길 찾기를 놓아버려도, 자라나는 길들로 득시글거리는 이 밀림을 맘껏 헤매어도 좋겠다. 성미정의 ‘월드’에서 현실이란 환상의 출구, 환상은 곧 현실의 입구니까. “가둔 것들”과 “갇힌 것들”이 구분되지 않는,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곳이니까(「가둔다」).

대머리의 뚜껑을 열면 취한 새와 껍질 벗은 뱀과 지느러미 떨어진 물고기들이 쏟아지는 세계(「모자를 쓴 너」), 혹은 그 뚜껑 속에 담긴 희고 연한 뇌수(「그녀와 그녀의 그림자」)의 공간. 이 ‘낯선 현실’로의 초대장 『대머리와의 사랑』을 다시 띄운다. 언제든 벽장 속 입구를 열며 ‘우리 모두, 늘 그렇듯이, 홈인!’ 또 한번 외칠 수 있도록.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부분

■ 기획의 말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성미정(지은이)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동시집 『엄마의 토끼』, 산문집으로 『나는 팝업북에 탐닉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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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시인의 말

대머리와의 사랑 1 / 대머리와의 사랑 2 / 모자를 쓴 너 / 타락 천사 / 흘러간다 / 장갑 소녀 / 심는다 / 언니라는 존재 / 가축들 혹은 가죽들 / 거울을 먹는 사람들 / 비누를 훔치러 다닌 적이 있었다 / 가족 나무 / 다소 악마적인 / 동화─파랑새 / 동화─상자 / 동화─가방 엄마 / 동화─엉킨 나라 / 동화─거울 파는 노파 / 동화─엄지 공주 / 동화─토끼 만만세 / 동화─잠자는 공주 / 동화─베개 왕자님 / 동화─백 살 공주 / 동화─보통 오리 새끼 / 동화─장화 신은 슬픔 / 쿨 월드─애완견 센터 / 쿨 월드─성냥은 있다 / 쿨 월드─자장가 / 쿨 월드─지하철 침실 / 쿨 월드─헌 실 혹은 현실 / 박제된 물고기를 본 적이 있으시오 / 야구처녀의 행복한 죽음 / 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 야구에 대한 세 가지 슬픔 / 포지션 / 실험 야구 / 내 마음의 심판 / 야구 혹은 마약 / 야구와 나 / 분위기 야구 / 야구 선생님 / 야구하는 앵무새 / 그녀가 멈추었던 순간 / 가둔다 / 변신 / 동굴 속이다 / 신(新) 배비장전 / 개라는 존재 / 구두를 만든 사람 / 검고 낡은 구두와의 이별 / 머리 없는 인형 / 사슴 목장의 사슴 / 잘 저어야 한다 / 그녀와 그녀의 그림자 / 칡즙 파는 남자 / 내 마음엔 / 빨간 모자 / 영화─미스 캐스팅 / 영화─해피 엔딩 /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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