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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천안만세운동과 미주민족운동 / 개정판 (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안형주, 1937-
서명 / 저자사항
천안만세운동과 미주민족운동 / 안형주
판사항
개정판
발행사항
천안 :   성서와교회연구원,   2019  
형태사항
2책(xxvii, 300 ; xxvii, 568 p.) : 삽화 ; 23 cm
총서사항
성서와교회 총서 ;06
ISBN
9791195359080 (상) 9791195359097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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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 2019z55 2 등록번호 51104374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 2019z55 1 등록번호 511043741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천안에서의 3·1절 기념일은 사실상 3월 29일이다. 3·1만세운동은 한 날 한 시에 한번하고 끝낸 이벤트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된 일종의 움직임이었는데, 천안에서는 3월 29일에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움직임이 어떻게 미주 지역으로 이어갔고, 그것이 훗날 어떻게 역류해 다시 우리나라 본토를 강타하였는지 그 유래를 밝히는 역사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의 특징은 유명한 자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처럼 무명 한국인들의 작고 고달픈 삶의 꼴라주로 구성하였다.

천안에서의 3·1절 기념일은 사실상 3월 29일이다. 3·1만세운동은 한 날 한 시에 한번하고 끝낸 이벤트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된 일종의 무브먼트였는데, 천안에서는 3월 29일에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무브먼트가 어떻게 미주 지역으로 이어갔고, 그것이 훗날 어떻게 역류해 다시 우리나라 본토를 강타하였는지 그 유래를 밝히는 역사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의 특징은 유명한 자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처럼 무명 한국인들의 작고 고달픈 삶의 꼴라주로 구성하였다.
이를 테면 ‘사진신부’라는 챕터가 있다. 국내에서 먹고 살기에 막막했던 여성들은 선발로 이민 간 남성 노동자의 신부감으로 사진만 보고서 미국을 간다. 그런데 신랑감의 실물을 보니 사진과는 다른 사람인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주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사진신부’이다. 그런 신부 중에는 처녀뿐 아니라 과부도 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한 과부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조선에서 낳은 아이들 중 1살짜리 딸만 데리고 미국으로 간 양소사라는 과부의 이야기이다. ‘소사’(召史)는 과부란 뜻이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자 친정에 두고 온 14살짜리 아들을 호놀룰루로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방문객으로도 데려올 수 없었고, 아들이 학교를 안 다녀서 학력이 없으니 유학생으로도 초청할 수 없어 끝내는 성공하지 못 하였다. 14세 소년인 양소사 아들은 하와이 이민을 단념하고는, “아버지 제사나 지낼 수 있도록 사망일을 알려달라”는 애절한 마지막 서신을 끝으로 1917년 4월부로 모자 간의 소식은 완전히 두절되었다고 이 책은 전한다.
이런 비극은 양소사라는 여인뿐 아니라 모든 이주자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살기 어려운 미주 한인들의 동력으로 마침내는 대한민국이 건국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기독교로 비유하자면 예루살렘의 붕괴로 사실상 끝나버린 유대인의 ‘나라’가 이방에 거점을 두었던 유대인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재기에 성공을 이룬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가 된 이치와 같다. 우리가 역사라는 크로노스에서 접했을 미주, 하와이, 이승만, 김구, 한인 이주 노동자… 이런 키워드들을 이 책에서는 그 역사를 살아낸 각 이주 노동자들의 개별 카이로스로 전하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 말 개화기에 기독교로 개종해 목회자로 거듭난 우리나라 청년들이 3·1운동 주모자로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다 망명하다시피 해외 동포사회로 이주해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민 노동자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제2의 3·1 독립정신을 ‘복음’으로 펼치는 진기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다.

우리나라 근대사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초기 교회사와 겹친다. 분리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한국 초대교회사는 대개 19세기 대동강의 제너럴셔먼호나 만주의 존 로스, 매킨타이어를 초기의 접점으로 하여,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같은 교단 선교사들이 전개한 교육·의료 사업을 열거하고, 위기의 신사참배 또는 교단 정치사로 마무리 짓는 것이 해당 역사 개론의 전형이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루트를 통해 서구의 선교 역사 입장에서의 한국교회사(또는 근대사)가 아니라, 백 년 전을 살아 낸 우리 선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의 역사 재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대하는 경건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이 그런 역사 필치로 쓰였음에도, 결코 역사 서술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그 진가가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다년간 시스템 분석가로 재직한 경륜을 십분 발휘하여 충실하고도 집요한 사료 공략을 통해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입장들을 입증해나간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다면적 논제를 우리 앞에 던져 놓고 있다.

첫째, 기독교 토착화의 역류
선교는 분명 서구인 선교사의 몫이었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독자적 한국 기독교를 구축할 수 있는 생명력이 역류하였다. 저자가 이 역류를 입증해내고 있다.

둘째, 언어 토착화의 역류
미주 노동이민자들은 한글이 전혀 필요치 않은 후손들에게, 부모인 자신들도 읽고 쓸 줄 모르는 한글을 가르치려고 애썼다(그들은 적지 않은 수가 문맹이었다). 이 무모한 시도가 한국인이 세계인이 되는 역류의 중추신경이었음을 저자는 입증해내고 있다.

셋째, 삶의 토착화 역류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는 세대가 아니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삶을 복종시키고 역류시켰다. 일당 70센트 노동자의 후손이 의사, 교수, 예능인이 되어가는 격동의 역류를 저자는 담담하고 냉정한 필치로 입증해내고 있다.

이 세 가지 급류가 역류하여 흘러가는 것을 숨 가쁘게 읽는 동안, 그리고 읽기를 다 마쳤을 때 우리 마음의 중심부에는 두 가지 모상이 들어차 있으리라 확신한다. 하나는 ‘한국인’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 기독교인’.

출판사 소개

‘성서와교회연구원’은 호서대학교 대학원 및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ㆍ석사 과정을 수학한 동문 회원이 중심 되어 성서와 교회 연구를 위해 설립한 단체입니다. 지형이 달라지고 있는 한국교회를 직시하면서 성서와 교회의 본질을 수호하고, 급변하는 패러다임에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결성했습니다. 모든 회원이 자신의 목회 현장을 부속 연구소로 여기고서, 부단히 연구하며 또한 나눕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평신도 교육 교재’, ‘새 목회의 다양성과 통일성’, 그리고 ‘선구적인 성지의 탐구’, 그 외 여러 실용적인 제시를 통해 교회와 목회를 돕고 있습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안형주(지은이)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풀러턴에서 역사학 석사를 수료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록히드항공사 시트템분석가로 근무하였으며, 캘리포니아주 오랜지 사회복지부 시스템분석가로 근무하고 은퇴했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아시아계미국인 연구소 내 한국계미국인 연구소 UCLA Asian American Studies Center, Korean American Studies 총무간사, 동대학 객원연구원 visiting scholar, 단국대학 한국민족학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보훈처 미국지역 사료조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틈틈이 모은 자료들을 UCLA Special Collection ‘Hyung-ju Ahn Collection’과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안형주 문고)에 기증하였다. 지은 책으로 영문 ≪Between Two Adversaries:Korean Interpreters at Japanese Alien Enemy Detention Center During World War II≫, ≪Faithful Witness: Centennial History of Los Angeles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Remembering Our Korean Brethren: Centennial History of Olive United Methoist Church≫가 있고,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재외동포재단 수상), ≪1902년, 조선인 하와이 이민선을 타다: 안재창의 가족 생애사로 본 아메리카 디아스포라≫(한국출판문화진흥원 수상)이 있다. 그 외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v1]

추천의 글 / vi
축하의 글 / x

서문 / 001

Chapter 01 미국 감리교의 한국 진출 / 009
개항도시 인천으로 / 010
내한 미국 선교사들의 외적 배경 / 012
태평양 우편 증기선박회사 / 013
미국의 상황 / 014
한국의 상황 / 017
인천 내리교회 최봉현(崔鳳鉉) 권사 사위로 / 019
개혁파 선구자 탁사(濯斯) 최병헌(崔炳憲) 목사 / 024
우리암 선교사를 따라 공주(公州)로 / 029

Chapter 02 천안지방 만세운동 / 037
천안에 모인 애국 계몽운동 목사들 / 038
죽사(竹史) 안창호(安昌鎬) 목사의 천안교회 개척(1915-1919) / 039
진천 부흥회와 청년 현성원 / 043
천안지방 주일학교 순회 총무 한석원 목사 / 045
정재관 목사의 입장교회 부임 / 049
현석칠 목사의 공주교회 부임 / 051
유관순과 안례아 / 052
윌슨 대통령의 14개 조항을 들고 귀국한 안정수 / 054
첫 하와이 이민선 통역 안정수의 미국 본토 행적 / 055
미주 한인 통합운동 / 059
민족자결주의 복음과 국내 독립운동 전조 / 062
3·1만세운동 / 067
권서(勸書)와 천안만세운동 / 069
천안지방 만세운동의 전개와 일본 경찰 보고문 / 073
3·1만세운동과 미국 선교사들 / 078
천안지방 만세운동 주모자들의 옥고(獄苦)와 재판 / 086
3·1운동의 여파 / 087
천안 읍내 만세운동 이후 / 088
하와이 선교사로 파송된 안창호 목사 / 090

Chapter 03 하와이 한인촌 와히아와 / 095
외국인 노동자와 하와이 경제 / 096
포경산업(捕鯨産業) / 097
미국인과 한국인의 첫 만남 / 098
하와이 사탕수수 농업과 외국인 노동자 수입 / 101
하와이에 이민을 보내는 구한말 한국 사회 / 103
하와이 이민 한인과 한인 사회의 유래(1903-1926) / 105
초기 하와이 한인사회 / 106
에와(Ewa) 친목회 / 109
청파영사(淸派領事) / 111
농장에서 도시로 / 117
미국 본토로 이주 / 119
사진과는 틀려요 / 121
사탕수수 노동자 파업과 오아후 섬으로의 이주 / 124
와히아와 파인애플 농장과 배영의숙(培英義塾) / 126
중고가구상 전영택 / 128
스코필드 군영 세탁업과 와히아와 한인촌 / 135
한인들의 경제 / 141
한인 소비조합 / 145
1926년, 하와이를 지나가는 한국 유학생이 본 하와이 동포들 / 147
학생 기숙사와 사진신부의 친척 유학생들 / 149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 / 152
조미구락부의 역할 / 156
소비조합 운영과 실업진흥 / 158
2세 민족운동 후원 / 160
조미구락부의 사양길 / 164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 / 165
업처취(Up Church)의 민족대표 박동완(朴東完) 목사 / 167

Chapter 04 죽사 안창호 목사의 와히아와 민족운동 / 173
와히아와 민족운동 / 174
와히아와 올리브교회와 교인들 / 176
올리브교회 재조직 / 179
죽사 안창호 목사의 목회 / 182
올리브교회 새 건물 / 185
올리브교회 부인구제회 / 192
애국단(愛國團)과 백범(白凡) 김구 그리고 이봉창 / 195
임시정부 외히아와 후원회와 애국단 재조직 / 199
죽사 안창호 목사의 일시 귀국 / 202
와히아와 한인들의 중립 / 204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 / 206
동안구락부(東雁俱樂部) / 207
동안구락부 회원들과 와히아와 변두리 사람들 / 211
목쿠레이아 사탕수수 농장에 네 번 일하러 간 안재덕(安載德) / 213
시급 노동자에서 할당 소작인, 자작농으로 / 217
쿠니아(Kunia) 델 몬트(Del Monte) 파인애플 농장 한인들 / 217
쿠니아 파인애플 농장 한인들 / 221
올리브교회 2세들의 활동 / 223
와히아와 국민회 지방회 조직 / 216
애국단 청년 유진석(兪鎭錫) / 225
배영학교 / 228
국어학교 교과서들 / 231
국어학교 교사들 / 235
국어학교의 쇠퇴 / 237
국어학교의 영향 / 240
죽사 안창호 목사의 민족운동 성과 / 240

Chapter 05 강영각의 청년대회 / 245
이민 1세와 2세 간의 문화적 갈등 / 246
농촌 2세의 교육 문제 / 248
클레어몬트 학생 양성소 출신 강영각 / 250
2세들을 위한 영자신문 ‘영 코리안’(The Young Korean) / 253
청소년 동아리 조직자 / 255
강영각의 2세 문제 인식 / 259
농촌 오아후 학생연합(Rural Oahu Student Union) / 260
교민단 총회관 점령사건 / 263
강영각의 미국 본토 여행 / 265
청년운동 후원회 / 267
조선소년동맹단 / 268
청년대회(Mass Rally) / 270
청년전도대와 청년희락회 / 274
죽사 안창호 목사와 강영각 / 277
경제 공황과 공립학교 교사들 / 279
지방 영자신문 한인사회 홍보기자 / 282
1935년 오아후 섬 한인 국어교사들 / 285
한인기독학원 / 286
1930년 와히아와 한인사회와 청년모임들 / 288
한인 농부들과 국어학교 문제 / 290
조선소년동맹단의 쇠퇴 / 292
강영각의 청년대회가 2세에게 끼친 영향 / 298
강영각의 2세 민족운동 성과 / 299

[v2]

Chapter 06 황혜수의 형제클럽 / 303
차미리사와 황혜수 / 304
미국에서 교육 / 308
미국 감리교 해외 선교 100주년 기념회와 박람회 / 310
한인 학생들의 3·1운동 진상 발표회 / 312
호놀룰루 기독교 여자청년회(YWCA) 한인 서기로 / 315
어머니 클럽과 남풍사 / 316
‘고모’ 황혜수 / 319
호놀룰루 한인 사회와 연극 / 320
한인 여성의 새 일꾼들과 형제클럽 / 322
1934년 ‘단오놀이’와 ‘결혼예비’ / 325
16년 YWCA 봉사와 휴양 / 324
학우회(學友會)와 한국 요리 체험 / 333
무용단 / 335
발성 영화 ‘심청’을 영어 연극으로 / 336
‘고모’ 황혜수의 형제클럽 성과 / 338
호놀룰루 YMCA 한인총무, 이태성 / 340
하와이 한인학생회연보(Korean Student Annual) / 346
이태성의 2세 민족운동 결과 / 350
이한식(李漢植)과 사진신부 친척 유학생들 / 351
Chapter 07 한석원(韓錫源)목사와 아동가극 / 359
초기 캘리포니아 한인 사회의 조성 과정 / 360
1928년 캘리포니아 한인 사회 / 364
1920년대 신흥도시 로스앤젤레스 / 367
주요섭의 ‘국어학교’ 제안 / 369
세계주일학교 대회 / 371
큰샘 한석원 목사 / 376
리들리 해동학교 / 378
아동가극의 목적과 내용 / 380
아동가극에 대한 기대 / 384
리들리 아동가극대 공연 / 385
아동가극 ‘우리나라 만세’ / 388
아동가극 ‘초로인생’/ 392
아동가극 대성황 / 395
라성 국어학교 학예회 / 399
한인 아동교육기관 기성 발기위원회 / 400
이승만의 중가주 방문 / 403
광주학생 항일운동과 미국 본토 한인 공동회들/ 406
한석원 목사의 순행전도 / 407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409
재미 일본인 국어학교의 영향 / 411
국어학교 부흥운동 결과 / 413
한석원 목사의 미국유학 / 416
큰샘 한석원 목사의 미주 민족운동 성과 / 417
Chapter 08 미주민족운동의 성과 / 421
국어학교부흥운동의 쇠퇴와
한인학생회보(Korean Student Bulletin) 역할 / 422
한국 유학생의 글들 / 423
한인 고학생들 / 426
한인 학생회보 ‘2세 특집’과 그 반응 / 428
캘리포니아 2세 클럽들의 농구시합 / 434
떠돌이 농장 노동자의 딸 앤 김(Ann Kim) / 436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 / 440
재미 한족연합위원회(在美 韓族聯合委員會) / 444
국방경위대 맹호군 / 445
2세들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무용담 / 445
태평양전쟁 중 주미 외교위원부 / 447
중경특파원(重慶特派員) 파유추진(派遺推進) / 450
미국 주류 사회에 전문가로 진출한 2세들 / 452
1) 예술가로 진출한 2세들 / 452
작곡가 김을(金乙 Earl Kim) / 452
재즈단서 팻 던(Patricia Dunn) / 453
창작 무용가 룻 김(Ruth Kim 김영옥) / 455
2) 의사가 된 2세들 / 457
문덕소 박사 / 457
와히아와의 첫 의사 위인산 / 459
3) 미국 사회에 알려진 2세들 / 459
제2차 세계대전 영웅 김영옥 대령 / 459
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세미 리(Sammy Lee) / 459
할리우드 동양인 배우 안필립(Phip Ahn) / 460
4) 고시조(古時調)를 영역한
공백순(孔伯順 Inez K. Pai) / 460
5) 초기 미국 한인 사회를 글로 남긴 2세들 / 461
초기 하와이 한인 사회를 글로 남긴 김봉희(Bernnice B. Kim) / 461
부모들의 하와이 이민사정을 서술한 배 마가렛(권정숙) / 461
소설 ‘토담’(Clay Walls) 저자 김난영(Gloria Kim Hahn) / 462
‘조용한 모험’(Quiet Odyssey)의 저자 백메리(Mary Paik Lee) / 462
초기 한인들의 구비역사를 엮은 신성려(Helen Sonia Shinn Sunoo) / 463
‘만세’(Masei!) 저자 현 피터(Peter Hyun) / 463
초기 하와이 한인들 사진첩을 편집한 장확실 / 464
자서전을 쓴 정남영 / 465
6) 6.25전쟁후 한국에서 봉사한 2세들 / 465
광복 후 20년 한국 YWCA연합회 고문으로 봉사한 박 에스더 / 465
이화여대 사회사업과를 세운 신 메리 / 466
7) 광복운동의 기수를 감당한 초기이민 1.5세들 / 466
재미한인 대변인 전경무(田耕武 Jacob K. Dunn) / 466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유일한(柳一韓 Il-han New) / 468
미주 한인 특무공작 납코(NAPKO) 작전 / 471
광복과 재미 한족연위원합회 대표들의 귀국 / 472
조국 광복과 하와이 교포들 / 474
Chapter 09 맺음말 / 477
미주 한인 사회구조의 특성 / 478
미주 한인교회의 역할 / 479
하와이 한인의 집단 행동 / 480
미주 한인의 집단 행동 / 482
재미 일인(在美 日人)의 2세 문제 / 483
기독교적 유교인들의 미주 민족운동 / 485
미주 한인들의 미군 종군과 전쟁 현황 / 488
주미 외교위원부 / 489
이민 1세 민초들의 독립운동 / 493
고국에 돌아와 묻힌 애국계몽 목사들 / 495
부록 / 500
1. 죽사 안창호 목사 자필이력서
2. 최병현 <조선의 농촌문제> 靑年 1921년 9월호.
3. 안신아 권사 녹취록
4. 대한제국 유민원장정(綬民院章程)
5. 청파영사(請派領事) 황성신문 1905년6월3일
6. 웰취 감독이 일본정부 훈장을 받은 기사
7. 올리브교회 교인 명단(1927-1945)
8. 안재덕 약력과 신상카드(와이알루아농업회사)
9. 쿠니아 파인애플농장에 종사한 한인들
10. 강영각 이력서
11. 한석원 목사 이력서
12.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13. 이승만과 기규식이 서명한 50 달러 자유공채
14. 대한인국민회 의무금 영수증들 1912년, 1913년
15. 이승만과 서재필이 서명한 자유공채들
참고문헌 / 559

그림목록
1. 개항기 인천 제물포 / 011
2. 내리교회 교인들 1905년/ 019
3. 탁사 최병헌 흉상 / 025
4. 최배세 사모와 돌을 맞은 장남 철영 1911년 / 032
5. 안구례 이화고등과 졸업 1911년 / 035
6. 하르빈 현성원 목사 영문기사 1933년 / 043
7. 한석원 목사 이력서 1930년 / 046
8. 1904년 인천 내리교회 영화학교 / 049
9. 유관순, 문필례와 안례아 / 052
10. 문필레를 이화학당에 입학시킨 신흥우 1912년 / 053
11. 네브라스카 주 웨슬리안대학 안정수 1906년 / 058
12. 미주 한인 유학생들의 영문잡지 발행 발기문 / 064
13. 안정수 부인이 수 놓은 윌슨 대통령의 초상 / 066
14. 정재관 목사 1904년 / 085
15. 포경선 사우스 아메리카호 / 098
16. 사우스 아메리카호 항해 일지 겉장과 워커 선장이 기록한 용당포 도착 일기 / 099
17. 사우스 아메리카호 워커 선장이 조선인의 인상을 읊은 시(詩) / 100
18. 대한제국 1902년 하와이 여행장 / 105
19. 청파영사(請派領事)를 대한제국 외부(外部)에 제출한 이동호 1905년경 / 116
20. 윤병구 임명장 1905년 / 117
21. 하와이 군도 지도/ 119
22. 오아후 섬 지도 / 119
23. 국민회 입회증서 18호 1909년 / 129
24. 하와이 대한인 인구조사표 1911년 / 129
25. 전영택 결혼증서 일부 / 130
26. 국민회등록서 1914년 / 131
27. 전영택 가족사진 1918년 / 131
28. 와히아와 국어학교 재무 보고 1918년 / 132
29. 전영택 거주 증명 1917년 / 132
30. 시 정부 내무부 명령 하와이 대한인 인구조사표 / 133
31. 자유공채 50달러와 영수증 1920년 / 133
32. 스코필드 군영 정문 / 136
33. 간장 생산 실패를 인정한 한인 합자회사 광고 / 143
34. 조미구락부 창립 2주년 기념 1927년 / 147
35. 조미구락부 창립 10주년 기념 / 152
36. 오운 / 160
37. 조미구락부서 발행한 악보들 / 162
38. 귀국길에 오른 김메리 여사 / 164
39. 1923년 제3회 동아총회(東亞總會)에 한국 대표로 선출된 안창호, 박동완 / 168
40. 하와이 한독당 간부들 1937년 / 171
41. 임정수 1907년 / 176
42. 안창호 목사와 올리브교회 교인들-김기순 전도사와 주일학교 아이들 1927년 / 178
43. 안창호 목사와 청소년 지도자 강영각, 박신애, 주일학교 학생들 1927년 봄 / 181
44. 올리브교회 봉헌식에 참석한 하객들 1931년 / 191
45.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선생들 1934년 / 192
46. 올리브교회 교인들-박신애와 2녀 영희(Esther), 위인산의사 내외 1939년경 / 197
47. 임시정부 와히아와 후원회 기사 신한민보 1932년 / 200
48. 박동완, 임두화, 안창호 목사 1933년경 / 206
49. 백범 김구가 안창호 목사에게 보낸 이순신 장군 시 대련 / 207
50. 동안구락부 창립 5주년 기념식 겸 입회식 / 209
51. 안재덕의 일본 여권 사진 1918년 / 213
52.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학생들 1934년 / 224
53.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학생들 1940년 / 224
54. 됴션말교과셔 / 232
55. 초등소학 권일 / 233
56. 와일루아 국어학교 여학생이 그린 한반도 지도 1933년경 / 234
57. 앨리스 아펜젤라 생일 축하 1939년 올리브교회 성도들과 안창호 목사 / 243
58. 클레어몬트 군악대 1914년 / 251
59. 다뉴바 한인악대 1919년 6월 / 252
60. 클레어몬트 한인 학생양성소 학생들 1914년 / 253
61. 영코리안(한미보) 표지들/ 254
62. 재미 한인 4지도자들 / 254
63. 한글판 ‘영코리안’/ 254
64. 신한민보에 실린 한미보 광고 1931년/ 255
65. 한미보에 실린 안창호 목사 기사 / 255
66. 하와이 왕실 군악대 시가 행진 / 256
67. 강영각과 호놀룰루 한인감리교 찬양대 / 257
68. 올리브교회에서 농촌 오아후 한인학생연합 첫 모임 1930년 6월 7일 / 262
69. 와히아와 레이레후아 고등학교 농촌학생연합지부 회원들 1930년 / 262
70. 청년음악대 1932년 5월 / 271
71. 올리브교회에서 열린 6교회 웅변, 합창 경연대회를 마치고 / 272
72. 청년대회를 준비하러 호놀룰루 YMCA에 모인 각 교회 대표들 / 273
73. 강영각과 최메리 결혼 1932년 9월 / 279
74. 초기 하와이 2세들과 안형주 / 281
75. 한미 인쇄소 광고 / 293
76. 1938년 10월 청년대회 / 295
77. 샌프란시스코 한인야유회 1913년경 / 305
78. 어머니 클럽을 조직한 황혜수 1920년 / 317
79. ‘결혼예비’ 사진들 1921, 1927, 1934년 / 324
80. 호놀룰루 스타블러틴 ‘결혼예비’기사 / 327
81. 호놀룰루 YWCA 임원들 / 334
82. 해당화 클럽 무용연습 / 336
83. 영화 ‘심청’ 광고 / 337
84. 하와이 한인학생 연회보(Korean Student Annual) / 346
85. 한인 라디오, 유성기 광고 1930년 / 356
86. 호놀룰루 이올라니 고등학교에 모인 사진신부 친척 유학생들 1928년 / 357
87. 캘리포니아 한인 지역사회들 / 360
88. 콩밭 김을 매는 한인들 1915년경 / 361
89. 한인 농장 가옥 / 361
90. 한인들과 백인 안식교인들 1914년경 / 362
91. 한인 벼농장에서 말로 타작하는 광경 1915년경 / 362
92. 스탁턴 사탕무 농장 자작농 한인들 1917년경 / 363
93. 스탁턴 한인 남감리교회 교인들 1918년경 / 364
94. 장인환 의사가 석방되었을 때 한인교회에 모인 한인들 1919년 / 365
95. 로스앤젤레스 한인 잡화 소매상 1930년경 / 368
96. ‘초로인생’ 무대 배치도와 동선도 / 383
97. ‘나의사랑’ 악보 / 389
98. ‘맹호약동산해진’ 그림, ‘맹호약동산해진‘ 악보 / 389
99. ‘단심가’ 악보 / 390
100. ‘축복’ 악보 / 391
101. ‘아릅답다 열세집’ 악보 / 391
102. 리들리 아동가극대 1929년 / 392
103. 로스앤젤리스 국어학교 유치반 1930년 / 399
104.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 1920년 / 401
105. 유타주 트레몬톤 국어학교 1915년 / 402
106. 리들리를 방문한 이승만 1929년 11월 / 404
107. 신한민보에 소개된 국민회 국어학교 교재 / 407
108. 다뉴바교회 1930년 3·1절 기념사진 / 408
109.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 409
110. ‘우라키‘지에 실린 안정수의 한미무역회사 광고 / 428
111. 샌프란시스코 한인 2세 농구팀 1930년경 / 435
112. 앤 김과 그의 글 / 438
113. 국민회가 주최한 2세들 모임 1940년 / 443
114. 재미한족연합회 집행위원장 김호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보 1941년 12월 12일 / 444
115. 북미 한족연합회에서 발행한 한인 증명서와 표장들 / 445
116.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가 발행한 김호 중경 특파원 출국허가증 1942년 / 450
117. 전경무의 비판 글 / 451
118. 미시간 주 앤아버, 이승만 지지자들 1944년 / 452
119. 김을 사진들 / 454
120. 팻 던 사진들 / 454
121. 김영옥 창작무용 발표 광고와 뉴욕타임스 기사 1946년 / 456
122. 김영옥 무용 사진들 / 456
123. 문덕소 사진 1973년 / 458
124. 공백순의 고시조 영문 번역집 / 461
125. 권정숙(Margaret K. Pai)의 The Dreams of Two Yi-min (두 이민의 꿈들) / 461
126. 미국 전쟁공채 홍보를 위해 활 옷을 입은 김난영과 저서 Clay Walls (토담) / 462
127. 백메리(Mary Paik Lee)의 Quiet Odyssey(조용한 모험) 표지 / 462
128. 신성려의 Korean Picture Brides (한인사진신부들) 표지/ 457
129. 현 피터의 저서 Man Sei (만세) / 463
130. 장확실(Roberta W. Chang)의 책들 / 464
131. 사진신부 출신 지도자 이희경과 여아들 / 466
132. 전경무 사진이 실린 1948년 올림픽복권 / 468
133. 유일한의 사진 1905년 9월 / 469
134. 유일한 자서전 When I Was A Boy in Korea와 경제 월간지 ‘고려경제’ 1945년 / 469
135. 태평양국제문제연구소 모임 핫스프링 1945년 1월 / 471
136. 재미 한족연합회 서울 사무소 1946 / 473
137. 윤봉길 의사 생가를 찾은 안창호 목사와 엄항섭 1946년 / 474
138. 백범 김구의 이별 사진 1946년 /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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