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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두 번째 이야기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박홍규, 1952-
서명 / 저자사항
인문학의 거짓말 :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두 번째 이야기 / 박홍규 지음
발행사항
서울 :   인물과사상사,   2020  
형태사항
348 p. ; 23 cm
ISBN
9788959065844
일반주기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인문이 아닌 진짜 인문 이야기  
서지주기
참고문헌: p. 346-[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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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001.3 2017z5 2 등록번호 11183495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1/ 청구기호 001.3 2017z5 2 등록번호 15135246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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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001.3 2017z5 2 등록번호 11183495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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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1/ 청구기호 001.3 2017z5 2 등록번호 15135246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인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지는 중세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고대 인문에 대해 쓰면서 부처나 예수도 아나키스트라고 명명했다. 반면 서양의 주류 사상인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상가로 디오게네스를 내세웠다.

디오게네스는 예수로 이어졌으나, 예수의 아나키즘은 바울과 콘스탄티누스 등에 의해 배신당해 서양 중세 1,000년의 세월 동안 왜곡되었다. 서양이 자신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를 아나키스트 예수의 믿음으로 되돌려야 그 제국주의를 끝낼 수 있다.

탐욕과 배신의 인문학
“인간을 구속하는 종교나 사상은 백해무익하다”

우리는 인문학의 빈곤 시대에 살고 있다. 인문학은 타락했고, 탐욕과 배신과 욕망에 물들었다. 반인간적인 물질주의가 판을 치고 있음에도 물질과 반대인 정신이나 인간을 중시한다는 인문 혹은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으니 더욱더 기이하다. 가짜 인문학이 성업 중인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 특히 동서양의 지배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 없이 무조건 찬양하는 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민주적 연대 의식과 사회적 연대 의식이 이렇게까지 빈곤한 시대가 또 있었던가? 그렇다면 타락한 인문학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인문학을 읽을 것인가?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인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지는 중세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고대 인문에 대해 쓰면서 부처나 예수도 아나키스트라고 명명했다. 반면 서양의 주류 사상인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상가로 디오게네스를 내세웠다. 디오게네스는 예수로 이어졌으나, 예수의 아나키즘은 바울과 콘스탄티누스 등에 의해 배신당해 서양 중세 1,000년의 세월 동안 왜곡되었다. 서양이 자신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를 아나키스트 예수의 믿음으로 되돌려야 그 제국주의를 끝낼 수 있다.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즉, 서양 중세는 이 중세 이야기 중 4분의 1 정도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非)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한다. 우리가 흔히 중세라고 하는 6~16세기에 서양은 그 앞뒤의 시대에 비해 낙후된 반면, 비서양은 그 어떤 시대보다 앞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저자는 그동안 거의 다루지 않은 『코란』과 이슬람 사상과 예술,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동에서는 이슬람 문명이 탄생했고, 중국에서는 수·당·송의 불교문화 등이 다양하게 꽃을 피웠으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그 못지않은 찬란한 문명이 개화되었다. 그야말로 개방과 관용의 문화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찬란한 문화가 나타났다. 조선시대보다 그 이전 중세에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관용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창조되었다. 비서양 근대는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시대로 전락했다. 그런 서양 근대의 암흑에 비하면 서양 중세조차 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 세계사 속의 중세란 오직 서양의 중세였다. 비서양의 중세가 있어도 그것은 서양이 바라본 중세였다. 이러한 역사관은 서양 근대 중심 세계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흔히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이 아니라 ‘지리상의 침략’으로 시작되는 서양 중심의 근대는 마침내 2019년의 ‘코로나19’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것은 1980년대 이후의 소위 글로벌리제이션이 초래한 미증유의 팬데믹이라고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길게 보면 16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 그것을 약자인 피해자의 마조히즘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웃으며 아예 역사에서 제거하려는 가해자적 심성의 서양주의 인문학과 그 추종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21세기 초에 닥친 재난의 일상화는 그런 비웃음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이나 유럽의 대응은 서양이 세계의 으뜸이거나 희망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도 중세 이야기

2018년 1월 힌두 왕비와 이슬람 왕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 <파드마바트>가 개봉되자 인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감독과 배우를 죽이면 수십억 원을 주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인도의 주류인 힌두교도는 이슬람교도를 비롯한 달리트와 토착민 등 인도 내 소수자들을 차별해왔다. 이런 차별은 현재 인도 수상인 나렌드라 모디의 집권 이후 심해졌다. 모디는 힌두교주의를 내세우고,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며 집권했다. 배타적인 중세적 세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과 힌두교 개혁, 이슬람의 공존이 이어졌던 인도의 중세는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으며 관용과 조화가 가득했다. 델리의 쿠트브미나르는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섞여 있다. 중세 인도가 로맨틱한 공존의 세계였다면, 현재 인도는 그보다 어둡고 야만적인 배타의 세계다.
인도의 바라나시는 죄를 씻고, 죽은 이들을 화장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도인도 우리처럼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모실 아들을 낳는 것을 중시하며, 허례허식을 일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박한 관혼상제를 치른다. 인도인들은 윤회사상 때문에 다음 생에는 지금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바라나시 등에는 종교적이고 중세적인 분위기가 있다. 인도는 고대·중세·근대·현대 등의 시대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인도에는 고대와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인도인은 삶을 학생기·가장기·은둔기·방랑기로 나눈다. 학생기는 스승 밑에서 『베다』를 배우는 기간이며, 가장기는 삶의 3대 목적인 법·이익·애욕을 추구하는 시기다. 은둔기는 황야나 숲속에서 명상에 잠기는 기간, 방랑기는 정처 없이 방랑하며 자유롭게 죽음을 맞는 시기다.
인도 문학의 핵심은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흔히 인도의 특징을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어김없이 절대자에 대한 찬양이 있다. 인도 문학은 고대 연극에서 시작해 현대 영화로 이어졌다. 인도 중세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 칼리다사의 『샤쿤딸라』가 왕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인도 영화도 왕이나 부자들의 사랑을 다루며 이들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인도에도 반대자의 전통이 있었다. 불교 철학자 다르마키르티는 모든 경전을 거부하고 이성과 논리적 사고를 숭상했다. 남부 인도 타밀어 문학에서는 여성과 하위 카스트 시인들이 정통 교의와 가부장주의에 강력히 반대했다. 15세기에는 신과 개인의 직접적 관계를 강조한 카비르가 등장했다.
우리가 ‘음악’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서양에서 들어온 음악을 생각하듯, 인도에서는 ‘음악’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전통음악을 생각한다. 인도의 모든 음악은 전통음악이라서 굳이 ‘전통’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인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중세적이고,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인도 음악은 신을 찬양하고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도구로, 특정한 상태에서만 맞볼 수 있는 라사라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인도 미술은 세계 미술사에서 외면되어왔지만 5,000여 년 전 모헨조다로 시대부터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영국인들은 간다라미술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인도 고유의 마투라 조각과 결합해 발전시킨 것이다.

이슬람 중세 이야기

서구의 중세 1,000년에 해당하는 시대에 이슬람은 서구보다는 훨씬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달한 진보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중세 이슬람이 예술과 과학의 꽃을 피워 인류의 사상적 유산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유럽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중세 기독교의 눈으로 잘못 본 이슬람의 모습이 아닐까? 특히 이슬람을 적대시한 아퀴나스 시대에 지식과 문화는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 유럽은 이성이라는 개념과 이성을 사용해 추론하는 방법도 이슬람에서 배웠다. 그리스철학·경험적 방법론·수학·대학·도서관·병원도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 심지어 근대 유럽의 자유주의적 휴머니즘도 이슬람에서 왔다.
현재 아랍 세계는 독재가 만연하고 관용이 없는 비극적인 세계다. 십자군전쟁을 계기로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중세가 끝났다. 유럽의 중세는 관용이 없는 맹신의 시대였던 반면, 이슬람의 중세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달한 진보적인 시대였다. 하지만 이슬람은 중세가 끝나며 암흑에 빠졌고, 그때부터 시작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서구가 이슬람과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면서 오리엔탈리즘도 퍼져나갔다. 서양은 동양을 신비로운 마법과 범죄, 매춘부와 동성애의 천국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역시 서구가 왜곡한 오리엔탈리즘에 갇혀 이슬람 문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2018년 6월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들어오자,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바탕에는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편견이 있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부터 이슬람을 거의 다루지 않고,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등 이슬람을 폄훼하는 잘못된 사실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코란』을 읽어보면,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평화와 사랑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독교 세계는 오랫동안 이슬람교를 비롯한 타종교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슬람 세계에는 기독교와 유대교 공동체가 존재해왔다. 또한 『코란』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는 무타질리파가 성행하던 8~13세기, 이슬람은 최첨단 문명으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문제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종교를 정치화하는 이슬람의 정교일치다.
한국에서는 이슬람 문학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유명한 아랍 문학은 『아라비안나이트』인데, 정작 『아라비안나이트』는 유럽에서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 소개된 책으로, 아랍의 이야기라고 하기 힘들다. 우리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알아도, 내용의 질과 양 모두 훨씬 뛰어나다는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잘 모른다. 십자군전쟁에 관해서도 서양 측 자료와 작품 일색이다. 십자군전쟁 시대 중세 아랍 시를 국내에 소개한 김능우 교수는 이븐 할둔의 『무알라까트』도 소개했다. 할둔의 핵심 개념인 ‘아사비야’는 정의와 공감과 균형에 기초한 민주적 연대 의식으로, 지금 사회에 꼭 필요한 개념이다.
이슬람 중세 예술은 무엇보다도 책과 글자와 세밀화의 예술이다. 이슬람 중세는 책의 시대였다. 중세 초부터 수천 개의 도서관이 세워졌고 다양한 주제의 책이 엄청나게 출판되고 판매되었다. 그리고 책은 세밀화와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이슬람 예술의 정수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카펫을 들 수 있다. 카펫을 비롯한 직물은 이슬람 경제의 중심이어서 경제적으로는 물론 예술적으로도 중요했다. 카펫은 모든 계층이 사용하기 때문에 계급이 없다. 소위 정통 이슬람교는 음악을 음주처럼 타락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슬람 세계는 음악을 중시한다. 중세 이슬람 음악은 플라멩코와 블루스 등의 뿌리가 되었다.

서양 중세 이야기

예전에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중세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중세를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세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양의 중세는 고대 제국주의에서 근대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중세 제국주의’로 보아야 한다. 중세 유럽은 정복과 식민지화로 형성되었다. 잉글랜드인은 켈트족 땅을 정복했고, 게르만족은 동유럽으로 이동했으며, 스페인은 재정복을 벌였다. 로버트 바틀릿은 950~1350년 사이 로마 가톨릭 세계는 식민지 침략으로 그 영토가 2배나 넓어졌다고 했다. 이런 중세 제국주의는 18~19세기에 똑같이 일어났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국제 문제로 남아 있다.
중세 서양철학은 ‘기독교 신학의 시녀’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세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설을 발명해 인간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자 노예로 못 박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제도와 부자들의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절대군주제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노예제를 긍정하고 민주정을 멸시했다. 중세 서양철학에서 주목할 사람은 생태주의자인 프란체스코와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컴 윌리엄이다. 오컴은 아퀴나스의 실재설에 반대해 유명론을 주장했다. 그는 영적인 권리와 세속적인 권리를 구분했으며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옹호했다.
『엘 시드의 노래』의 주인공은 레콩키스타(재정복)의 영웅으로, 이 이야기는 1961년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애국심을 고양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져 현충일에 자주 방영되었다. 프랑스 무훈시 「롤랑의 노래」 역시 무슬림과의 전투를 다룬다. 주인공은 성군으로 묘사되지만 잔인한 전쟁 묘사가 계속될 뿐이다. 「니벨룽의 노래」 역시 폭력적이다. 바그너의 오페라로 유명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 지크프리트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단순함의 제국주의적 불량배’인데, 히틀러와 닮은꼴이다. 영어권에서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유명하다. 아서왕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중세 궁정 연애물로, 불륜 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중세 미술’이라고 하면 서양 중세 미술, 특히 성당 건축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유럽의 비잔틴미술까지 포함해서 언급한다. 비잔틴미술을 포함해 서양 중세 미술의 특징은 ‘개념적 미술’이다. 근대의 미술은 원근법에 입각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한 화면에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그리지만 중세 미술은 더 많은 정보를 담는 데 집중한다. 이는 중세 서양 미술이 글을 읽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종교를 가르치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중세 서양의 기독교 미술은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미술과 차이를 보이는데, 유대교·이슬람교와 달리 신이 인간으로 나타났다는 교의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리아의 존재는 어머니를 여읜 사람들, 자식을 잃은 여성들이 위안을 얻었다.

중국 중세 이야기

중국사는 보통 한족(漢族) 문명을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한족과 유목 민족이 함께 중국 역사를 구성해왔고, 특히 중세 중국의 개방성은 유목 문명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중국사에서 중세를 3~6세기 분열의 시대부터 당과 송을 거쳐 원나라까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중세의 시작인 3세기는 『삼국지』의 시대로, 외래문화인 불교가 전래되었다. 당나라는 세계적인 제국이었으며,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로마도 당나라에 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중세 이후 서서히 무너졌다. 명나라는 폐쇄적인 나라였으며, 명나라를 사대한 조선도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불교와 유교는 지난 2,000년간 동아시아의 사회와 정신을 지배해왔으나, 불교는 기복 불교로 타락했고 유교는 전제 유교로 타락했다. 불교가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전래될 때 반세속적인 본래의 성격과 달리 세속 정권을 옹호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나 당나라 때는 사원경제와 승려 지주계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해악을 초래했다. 당나라 말기부터는 유교가 불교를 비판하며 부흥했다. 중국 중세의 유교는 송나라에서 특히 번성했으며, 과거를 통해 문관 정치와 관련되었다. 남송 이학의 최고봉은 주희였다. 주희는 생전에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으나, 국제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후 적극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유교의 정통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은 자유인 전통이 빈약하다. 중국 문학사에서 자유인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루쉰 정도다. 루쉰의 문학은 ‘토니 학설 위진 문장’이라고 한다. 토니(톨스토이와 니체)의 사상을 위진 시대 문학의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위진 문장의 특징은 전통과 상식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혜강을 비롯한 죽림칠현은 이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인이자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죽림칠현 이후에는 도연명이 인민의 저항과 유토피아 사상을 보여주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보듯이 자연으로 돌아가길 원했으며, 실제로 사대부 지배계급에서 벗어나 농민의 세계로 들어갔다. 두보 역시 유교에서 벗어나 백성에게 다가간 민중 시인이었다. 백거이 역시 현실을 폭로한 시들을 지었다.
케테 콜비츠를 중국에 소개하기도 한 루쉰은 중국의 중세 미술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호방하고 강건한 미술이라고 보았다. 한대와 당대에는 거리낌 없이 외래 문물과 형상(形象)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원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미술, 특히 문인화는 은폐와 기만의 예술이라고 보았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공공 미술 전통은 절에 남아 있는데, 서양 중세의 교회처럼 동아시아 중세도 사찰이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었다. 동북아시아의 불교미술은 대체로 유사하다. 동아시아인들은 불필요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대신 동아시아 공통의 예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중국 중세 음악에 관해서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죽림칠현 중 완적과 혜강은 음악가이기도 했으며, 혜강은 당시의 유교적 음악 사상을 비판했다.

한반도 중세 이야기

한반도의 역사를 서양식으로 고대-중세-근대로 나누면 보통 고려시대가 중세에 해당한다고 보지만, 통일신라시대도 중세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중세의 특징은 대단히 개방적이었고 유불선의 공존을 인정한 다양성의 시대였다. 물론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도 그런 개방성과 다양성은 인정되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는 인정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유교에 의해 망각되기는 했지만, 한반도의 중세는 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와 함께한 시기였다. 우리는 중세 동아시아의 인문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신라는 스스로 ‘부처의 나라’라고 불렀으나, 실제로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원효마저도 골품제 개혁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력에 밀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비해 범일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체험을 강조했다. 요세의 백련결사는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불교계의 세속화와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이는 서민의 지지를 얻어 몽골 침입을 극복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고려의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으나,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박지원을 아나키즘 차원에서 조명한 저작이 나왔는데, 아나키즘 전통은 최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치원은 시를 통해 통치 계급의 야만성을 비판했으며, 자신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가야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이인로 역시 농민의 고통과 권력자들의 횡포를 노래했으며, 왕이 꺼리는 민요를 채록하기도 했다. 진화는 관리들만 없다면 우리나라 농촌은 무릉도원일 것이라고 했다. 이규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법을 부정함으로써 반권위주의로서 아나키즘에 이르렀다.
한국의 불상은 몸통이 짧고 얼굴이 큰데, 그것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탓이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사람들은 처음에는 하늘이나 산이나 강을 보고 빌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자비로운 부처상이 처음으로 나타나자 그 모습에 반해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마애불 중에서 최고는 ‘백제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이다. 삼존불은 모두 웃음을 짓고 있다. 이처럼 미소 짓는 불상이 민중이 사랑한 최초의 불상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민중은 기꺼이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중세에는 그런 불상들이 전국에 흘러넘쳤을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박홍규(지은이)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동안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내 친구 존 스튜어트 밀』,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저항하는 지성, 고야』, 『놈 촘스키』,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공저,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존 스튜어트 밀』,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불편한 인권』(2018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내 친구 톨스토이』, 『함석헌과 간디』(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마키아벨리, 시민정치의 오래된 미래』,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2015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예술, 법을 만나다』,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 전』, 『내 친구 빈센트』,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 등을 집필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모리스 예술론』, 『간디 자서전』, 『예술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유한계급론』, 『산업민주주의』, 『간디가 말하는 자치의 정신』,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유토피아』, 『인간의 전환』, 『유토피아 이야기』,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책머리에 ㆍ 5

제1장 중세 이야기 ㆍ 11
제2장 인도는 지금도 중세인가? ㆍ 27
제3장 인도 중세의 사상 ㆍ 43
제4장 인도 중세의 문학 ㆍ 58
제5장 인도 중세의 예술 ㆍ 74
제6장 이슬람 중세 이야기 ㆍ 90
제7장 이슬람 중세의 사상 ㆍ 106
제8장 이슬람 중세의 문학 ㆍ 122
제9장 이슬람 중세의 예술 ㆍ 138
제10장 서양 중세의 제국주의 ㆍ 154
제11장 서양 중세의 사상 ㆍ 170
제12장 서양 중세의 문학 ㆍ 186
제13장 서양 중세의 예술 ㆍ 202
제14장 중국 중세 이야기 ㆍ 219
제15장 중국 중세의 사상 ㆍ 235
제16장 중국 중세의 문학 ㆍ 251
제17장 중국 중세의 예술 ㆍ 267
제18장 한반도 중세 이야기 ㆍ 283
제19장 한반도 중세의 사상 ㆍ 298
제20장 한반도 중세의 문학 ㆍ 313
제21장 한반도 중세의 예술 ㆍ 332

참고문헌 ㆍ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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