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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倭館의 운영실태 연구

조선후기 倭館의 운영실태 연구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김강일 金剛一, 1955-
서명 / 저자사항
조선후기 倭館의 운영실태 연구 / 金剛一 지음
발행사항
파주 :   景仁文化社,   2020  
형태사항
301 p. ; 24 cm
총서사항
경인한일관계 연구총서 ;72
ISBN
9788949948836
일반주기
부록: 1. 종가 역대 도주 명단, 2. 역대 관수 명단  
서지주기
참고문헌과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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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7.53052 2020z3 등록번호 11182739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왜관(倭館)이란 좁은 의미로는 15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에 설치되어 있던 일본 사절을 위한 접대시설(客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객관을 포함하여 왜관 주변에 퍼져 있는 일본인을 위한 거주구역을 가리킨다.

즉 왜관은 통교와 무역을 원하며 내항하는 일본인을 접대.통제하기 위하여 조선정부가 설치한 특수시설이며, '朝貢者를 위한 공적 宿舍'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은 외교를 수반하지 않으며, 상인을 위한 시설이었던 나가사키의 도진마치(唐人町)와 데지마(出島) 등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왜관(倭館) 외부와 내부의 측면에서 보는 그 양면성

倭館이란 좁은 의미로는 15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에 설치되어 있던 일본 사절을 위한 접대시설(客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객관을 포함하여 왜관 주변에 퍼져 있는 일본인을 위한 거주구역을 가리킨다. 즉 왜관은 통교와 무역을 원하며 내항하는 일본인을 접대.통제하기 위하여 조선정부가 설치한 특수시설이며, ‘朝貢者를 위한 공적 宿舍’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은 외교를 수반하지 않으며, 상인을 위한 시설이었던 나가사키의 도진마치(唐人町)와 데지마(出島) 등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왜관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크게 작용하였다. 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왜관은 어디까지나 일본 사절을 위한 객관이었으며, 통제와 규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마번에서는 왜관을 「朝鮮屋敷」 내지는 「日本館」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대마번 屋敷의 연장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근세 왜관은 규제의 대상이라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임진왜란 이후 200여년 동안의 평화시대에 조일 간의 외교와 무역이 이루어지던 곳으로서, 조선후기 양국의 선린관계를 상징하는 곳이라는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왜관에 대한 조선정부의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과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동시에 존재했는데, 격리시키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동래부에서 지출한 왜관 유지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측 사료를 검토해 보면 경상도 세금의 상당 부분이 왜인 접대비로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왜관 유지비용은 경상도 세입의 약 22.3%였고, 접대와 외교비용은 그 절반인 10.6% 정도로 보고 있다. 이처럼 왜인들에 대한 접대에는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었다. 이러한 경비는 결국 동래지역 주민들에게서 걷어들인 것이었으며, 민중들의 과중한 부담은 결국 동래지역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왕조가 중요시했던 대일외교에서의 선린.우호도 따지고 보면 동래지역민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으로 중단된 조일관계는 조선 국왕과 막부장군을 대등한 관계로 설정하는 형태로 복구되었다. 이 시기는 양국 모두 강한 자국중심주의 의식이 있었으며, 내심으로는 상대를 조금이라도 낮게 보려는 우월감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 일개 번으로써 막부에 충성을 맹세하고, 조선에게도 조공자로서의 입장을 취했던 대마번은 양국의 자국중심주의 의식을 만족시키면서 쌍방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에도시대의 대마번이 조일간의 모든 외교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對馬口는 막부 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대마번과 왜관을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는 정보수집 루트는 간접적으로나마 막부가 중국 대륙과 연결할 수 있는 고리이기도 했다. 막부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왜관을 중요시하였다.

대외적으로 쇄국을 표방했던 조선에서도 어떠한 대일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왜관은 밖으로 열려 있는 창구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었지만, 규제 일변도의 왜관 정책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평가할 때, 왜관을 접점으로 하는 근세 조일관계는 충분히 평화적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왜관은 갈등과 타협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탄력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김강일(지은이)

1984년 2월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8년 8월 강원대학교 대학원 석사 2011년 8월 강원대학교 사학과 연구교수 2012년 8월 강원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2015년 3월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2019년 4월 22일 別世 역서 : <동아시아속의 중세 한국과 일본>(경인문화사, 2008) <조선전기 한일관계와 박다·대마>(경인문화사, 2010) <울릉도 독도 일본사료집>Ⅰ,Ⅱ(동북아역사재단.2012-3) <독도관계 일본고문서>(경상북도,2015) 논문 : 「조선후기 倭館의 정보 수집에 관한 연구」(한일관계사연구, 29) 「闌出, 조선의 고민과 그 대책」(전북사학, 36) 「전근대 한국의 해난구조와 표류민구조시스템」(동북아역사 논총, 28) 「왜관을 통해 본 조선후기 求請物品」(일본역사연구, 34) 「왜관의 범죄」(전북사학, 41) 「동래부사와 대일외교」(동북아역사논총,38) 「근세후기 왜관의 교간사건과 데지마의 유녀들」(전북사학, 46)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발간사
프롤로그

Ⅰ. 서론
1. 연구동향
2. 연구의 목적과 방법

Ⅱ. 조선후기 왜관의 성립과 성격
1. 왜관의 성립과 役員
2. 왜관의 성격
Ⅲ. 동래부와 동래부사
1. 동래부사의 교체 실태
2. 동래부의 재정과 왜관 운영비용
3. 동래부사와 館守
Ⅳ. 왜관의 기능
1. 외교무대로서의 기능
2. 무역의 장소
3. 정보유통 기능
Ⅴ. 범죄를 통해서 본 왜관의 운영실태
1. 出
2. 交奸
3. 폭행사건(喧譁 打擲)

Ⅵ. 결론

참고문헌

보론
1. 철공철시 연구
1) 머리말
2) 왜관 통제책
3) 撤供撤市의 동기
4) 撤供의 대상과 철회
5) 撤市의 범위
6) 결론

2. 대마도인 퇴거 이전의 한일교섭
1) 머리말
2) 大修參判使의 파견
3) 팔송사와 차왜
4) 요시오카(吉岡) 사절단과 大修參判使
5) 결론

부록
1. 종가 역대 도주 명단
2. 역대 관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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