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명총서 16권. 일본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현저하게 뒤처져 있다. 2017년 7월 기준으로 세계 각국 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을 조사를 보면, 일본은 193개국 가운데 164위를 기록했다. '남성은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고 하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유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현재 여성 의원이 더 많은 걸 보면 일본 고유의 사정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왜 일본에서는 여성 정치가가 이토록 적은 것일까? 그러나 일본에서 여성이 줄곧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고대부터 근대까지 여성 천황이나 황후, 황태후, 장군의 정실이나 모친 등의 여성 권력자, 즉 여제는 끊임없이 존재했다. 분명 남계 이데올로기에 의해 은폐된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일본의 천황 이외의 권력자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동시에 중국이나 한반도의 여러 왕조, 그리고 류큐(현 오키나와) 왕국 등의 역사와도 일본사를 비교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장한다.
이 책은 다양한 의미의 여성권력자 즉 '여제'의 일본사를 고대부터의 시간과 동아시아라는 공간의 양방향의 관점을 엮어가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일본에서 여성의 정치 권력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그리고 현재 왜 일본은 동아시아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가장 뒤처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오늘날 황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유익한 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 권력자의 계보를 따라 일본을 다시 읽는다
생전 퇴위와 부(父)권 중심으로 본, 일본에서 여성 정치가가 적은 이유
일본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현저하게 뒤처져 있다. 2017년 7월 기준으로 세계 각국 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을 조사를 보면, 일본은 193개국 가운데 164위를 기록했다. ‘남성은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고 하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유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현재 여성 의원이 더 많은 걸 보면 일본 고유의 사정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왜 일본에서는 여성 정치가가 이토록 적은 것일까? 그러나 일본에서 여성이 줄곧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고대부터 근대까지 여성 천황이나 황후, 황태후, 장군의 정실이나 모친 등의 여성 권력자, 즉 여제(女帝)는 끊임없이 존재했다. 분명 남계 이데올로기에 의해 은폐된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일본의 천황 이외의 권력자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동시에 중국이나 한반도의 여러 왕조, 그리고 류큐(현 오키나와) 왕국 등의 역사와도 일본사를 비교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장한다.
일본에서 권력자라 함은 고대에는 천황이나 귀족, 중세나 근세에는 주로 무가, 그리고 근대에 와서 다시 천황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천황은 세습으로 계승되고 있지만, 고대부터 근세에는 ‘생전 퇴위’를 하여 태상천황, 즉 상황에 오르는 천황이 절반 이상이었다. 국왕의 종신 재위를 원칙으로 하는 나머지 나라들과는 대조적이다. 종신 재위를 원칙으로 하는 왕조에서는 남성 황제나 국왕이 재위 중에 사망하면, 왕후 가운데 후대의 황제나 국왕의 모친 또는 조모에 해당하는 여성(황태후, 태왕태후, 대비, 대왕대비)이 권력을 잡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나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고대나 근세에 여성 천황이 10대(8명)나 있었다. 바로 이 점이 일본과 다른 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보통 중국이나 조선에서 여성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모친’이라는 것이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권력자의 생전 퇴위라는 관습이 정착한 탓에, 원정과 같이 부친이 권력을 잡는 정치 형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동시에, 퇴위한 여성 천황이나 천황의 부인, 퇴위한 장군의 부인 등이 권력을 잡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의미의 여성권력자 즉 ‘여제’의 일본사를 고대부터의 시간과 동아시아라는 공간의 양방향의 관점을 엮어가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일본에서 여성의 정치 권력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그리고 현재 왜 일본은 동아시아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가장 뒤처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오늘날 황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유익한 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천황가의 이미지 정치와 천황가의 여성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국가 재건을 위해 개혁의 길에 나서게 되는데, 그 첫걸음은 천황의 ‘인간선언’(1946.1.1. 「天皇の詔書」)이라 할 수 있다. 1946년 1월 1일 신년을 맞아 발표한 조서(詔書)에서 천황은 자신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신성’한 존재가 아님을 밝힌다. 이는 반대로 과거에는 천황이 일본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화신’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당시의 조서는 그러한 신성함을 부정했다는 뜻에서 천황의 인간선언으로 불린다. ‘비로소’ 인간이 된 천황은 현재 일본국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상징천황제의 규정에 따라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 뒤 천황을 비롯한 천황가는 새롭게 재건되는 일본의 상징 역할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이미지 전환을 이룬다. 특히 1958년 아키히토 황태자[전 헤이세이 천황]가 일반 ‘평민’ 출신의 여성 쇼다 미치코와 결혼하게 되면서 천황가는 친근함으로 무장해 ‘안방’ 속으로 파고든다. 사랑받는 천황가를 만들기 위한 황태자 부부와 국민과의 접촉은 ‘민주적 황실’, ‘열린 황실’처럼 비권위적 이미지의 황실론을 확산시켰다. 무엇보다 둘의 결혼식은 ‘성혼(聖婚)’으로 치장되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데, 이를 시청하기 위해 국민들이 구매한 텔레비전의 수가 급증하여 일본 사회 내의 매체 및 콘텐츠 발달에도 큰 도약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전환기적’ 호황을 황태자비 쇼다 미치코의 이름을 따서 ‘밋치 붐(ミッチ?ブ?ム)’이라 명명하며 사회 각계에서 기념비적 현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천황가는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어머니’로서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헌신하는 미치코 황후의 모습은 이른바 현모양처의 이미지와도 중첩된다. 이러한 모습에서는 데이메이 황후처럼 진구 황후와 일체화하여 ‘신’과 ‘천황’의 중간에 위치하는 ‘나카쓰스메라미코토(中皇令, 中天皇)’로서의 황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대 일본에 쌍계제 문화가 존재했다면, 남존여비라는 관념은 본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장자인 여성이 권력에 오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쌍계제가 폐지되고 부계제로 이행한 뒤에도 여성 연장자가 권력을 갖는 시대가 끊이지 않고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내내 설명한 바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시대가 있었다는 그 자체마저 완전히 망각되어 남계의 황통이 지속적으로 보존되어 온 것이 마치 일본의 정체성이라는 식의 언설이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본문 제2장에서 언급했던 피(血)의 ‘불결함’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여성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궁중의 관습이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유지되어 미치코 황후로 대표되듯 현모양처다우며 국민에게 따뜻한 자애를 베푸는 ‘모친’으로서의 여성상이 널리 칭송되고 있다.
일본에서 근대 이후 강화된 여성의 권력을 ‘모성’이나 ‘기원하는’ 주체로 왜소화해 버리는 경향은 황후나 황태후가 ‘신’과 천황의 중간에 위치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여성의 정치참여가 헌법에서 인정되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여성을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일본에서 여성의원이 늘어나거나 여성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계 이데올로기에 의해 은폐된 ‘여제’의 일본사를 다시금 들춰내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젠더적 역할 분업관을 역사적으로 상대화하는 관점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천황가의 황후들이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되고 받아들여질 때마다 절대 권력으로서의 근대 천황제가 완성되었고, 또 현대에 와서는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천황제가 정착된 것을 우리는 천황제 시스템의 자장 안에서만 평가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마사코 황후의 문제를 포함해 이러한 천황가 속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10월 22일 레이와 천황의 공식 즉위식을 앞두고 일본에서는 다시 여성 천황에 대한 인식 조사가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상당수 여성 천황을 지지하며 현 천황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근대화의 길에 막 들어선 일본에서 1882년에 시작된 여성 천황에 대한 논의가 이번에는 어떠한 형태로 진행될까? 앞서 보았듯이 약140여년 전의 논쟁 구도가 여전히 반복될까?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계승 형태가 제안되고 인정될까? 근대화 이래 천황이 바뀔 때마다 등장한 ‘여제론’은 어쩌면 미래의 일본 사회를 좌우할 함의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여성 권력자의 계보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 『여제의 일본사』는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기대한다. 일본 역사에서 천황가를 포함해 지도자적 권력층의 배후에 포진해 있던 여성들에게 주목해 봄으로써 현대 일본의 성감수성은 물론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 역사 서술 방식에 얽매여 온 우리의 젠더 바이어스[Gender Bias, 성역할에 대한 편견]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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