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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백년편지 : 1919 ~ 2019 (1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만열, 1938-, 저
단체저자명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편
서명 / 저자사항
백년편지 : 1919 ~ 2019 / 이만열 외 99인 지음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엮음
발행사항
서울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   삼우반,   2019  
형태사항
655 p. : 삽화 ; 22 cm
ISBN
978899074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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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60922 2019z14 등록번호 11182145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00분의 독립운동 선열에게 100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편지를 썼다. 수신인인 독립운동가의 삶과 뜻을 되새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직계후손이 보내는 편지에는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독립운동가의 숨결과 체취가 그려져 있고, 수신인이 무명 독립지사인 경우에는 인물 및 사료 발굴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독립운동사는 역사책으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문서적과 더불어,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대중서적도 필요하다. <백년편지>는 편지이다. 초등학생부터 일반 직장인, 주부도 참여한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삶과 오늘 나의 삶이 만난다. <백년편지>는 애정과 존경,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회한과 희망이 담긴 휴먼드라마이다.

<백년편지> 발신인 중에는 역사학자와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및 유관단체 관계자, 수신인의 생애와 업적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분들의 편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맥락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00분의 독립운동 선열에게 100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편지를 썼습니다. 삼천만 민족의 용기와 분노가 교직해낸 장엄한 대서사시. 인간애의 극한을 피와 땀으로 확인시켜준 감동의 휴먼드라마. 대한민국의 뿌리는 독립운동입니다. 존경과 감사 그리고 다짐의 이야기. 여러분을 <백년편지>의 독자로 모십니다.

I. 100분의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는 존경과 감사 그리고 다짐의 이야기

<백년편지>는 수신인인 독립운동가의 삶과 뜻을 되새기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직계후손이 보내는 편지에는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독립운동가의 숨결과 체취가 그려져 있고, 수신인이 무명 독립지사인 경우에는 인물 및 사료 발굴 의미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사는 역사책으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문서적과 더불어,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대중서적도 필요합니다. <백년편지>는 편지입니다. 초등학생부터 일반 직장인, 주부도 참여합니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삶과 오늘 나의 삶이 만납니다. <백년편지>는 애정과 존경,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회한과 희망이 담긴 휴먼드라마입니다.
<백년편지> 발신인 중에는 역사학자와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및 유관단체 관계자, 수신인의 생애와 업적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의 편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맥락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백년편지>의 주제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자주독립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땀을 흘렸고, 구시대가 남긴 차별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직업의 본분을 다해야 하며, 성·연령·지역을 넘어 소통과 화합이 절실합니다. 그분들의 말과 행동을 따르겠다는 다짐에서, 독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II.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삶과 오늘 나의 삶이 만납니다

독립운동은 성.나이.지역.신분이라는 구시대 차별의 벽을 허물었으며, 무대는 극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었고, 독립운동가들의 노심초사는 독립전쟁과 의열투쟁에서 정치외교.교육.문화예술.산업기술 등 근대사회가 갖춰야 할 전방위적 지적 자산 축적에 바쳐졌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백년편지>에 실린 100통의 편지를 5개의 부(部)로 구성했습니다.

제1부 피눈물로 씁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가족보다 민족이 먼저였습니다. 이 고귀한 희생정신을 잊는다면, 우리는 독립정신을 되새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 잔재 청산을 외면하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식민지 때보다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피눈물로 씁니다’는 직계후손들의 가슴에 사무치는 사부곡(思父曲).사모곡(思母曲)이자, 우리 사회에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역사의 경종(警鐘)입니다.

제2부 빛은 어디에
김구, 허위, 이상룡, 이회영, 이동휘, 안중근, 조소앙, 여운형, 김좌진, 김규식, 안창호….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숙이게 되는 이 선각자들의 피땀이 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를 닦았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주독립, 민주공화국 그리고 민족대단결. 김규식 선생의 말씀처럼 “독립과 통일을 위해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합작해야” 할 때가 아닐는지요. ‘빛은 어디에’는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 등불들에게 바치는 약속입니다.

제3부 당신은 나의 사표(師表)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으로 건너간 동포들과 함께 일하며 “오렌지 한 개를 따도 성심성의껏 따자”고 역설했습니다. 독립정신은 성심(誠心)과 신의(信義)의 표상이며, 그것이 곧 자조(自助)와 자강(自彊)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신의 활동 분야에서 이미 100년 전에 귀감(龜鑑)을 보여주신 스승에게 쓴 ‘당신은 나의 사표’는 직업윤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제4부 벽을 넘어서
<백년편지> 수신인의 출생연도는 1845년에서 1927년까지 두 세대 이상에 걸쳐 있고, 주소는 대한민국, 중국, 미주, 일본, 연해주, 카자흐스탄, 프랑스 등 한민족의 발길이 닿은 모든 곳입니다. <백년편지> 발신인 가운데 최고령자는 1924년생, 최연소자는 2002년생이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발송되었습니다. <백년편지>는 성?연령?지역?직업을 뛰어넘는 소통과 화합을 추구합니다. 독립운동에 벽은 없었습니다. <백년편지>에도 벽은 없습니다.

제5부 청년에게 용기를
“내가 죽어 청년을 살릴 수 있다면….” 강우규 의사께서 교수대에 오르기 전 남긴 유언입니다. 100년 전 일제에 맞서 싸웠던 청년이 양극화에 시달리는 오늘의 젊은이에게 용기와 지혜를 선물합니다. <백년편지> 마지막 100번째 편지의 제목 ‘광복군은 결코 죽지 않는다’처럼, 청년들이 나라의 희망으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III. 독립운동 역시 “이야기”입니다

▷ 현재진행형 시제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민족은 쇠락의 길을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치열하고 험난했던 독립운동사를 화석이나 박제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크로체가 말했듯이,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입니다. <백년편지>는 백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편지라는 1인칭의 문장 형식을 빌림으로써, 동시대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의의를 현재진행형의 시제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 쌍방향 소통 독립운동사
독립운동 역시 “이야기(story)”입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르는 다수 존재하지만, 편지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특정함으로써 보편성을 개인의 이야기에서 직접 이끌어내는 장점을 갖습니다. 백년 전 독립운동가의 삶과 오늘날 국민의 일상이 만나는 <백년편지>는 쌍방향 소통의 독립운동사로 기록되리라 믿습니다.

▷ 감정이입 극대화
직계후손이 쓰는 독립운동가 가족의 애틋하고 진솔한 이야기. 직업이나 활동 분야 등을 매칭한 수신인과 발신인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약속. 고난의 길을 헤쳐나간 분들로부터 배우는 지혜와 용기. <백년편지>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함으로써, 애국애족이 자신의 일임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폭넓은 공감대 확보
<백년편지>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연령·지역·직업·계층·학력 등을 망라한 다양성은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킴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희망의 나라를 국민 개개인의 시각에서 조망합니다.

▷ 인물로 만나는 독립운동사 다이제스트
<백년편지>에는 일백 분의 독립운동가가 수신인으로 등장하며, 각 편지마다 수신인의 약전과 주요 사건 개요 기사가 탑재됩니다. 발신인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생애와 업적에 정통한 역사학자와 전문가 및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이 쓴 편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맥락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습니다. 특히, 학생들은 교과서라는 딱딱한 텍스트의 무게에서 벗어나, 우리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들 을 만나며, 역사를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사에 살을 붙이고 피가 통하게 하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임정과 독립운동을 소개하기에 노력해 왔다. 임정 관련 자료집과 책자를 간행하거나, 유품과 사진을 수집?전시하는 행사도 치렀으며, 오래전부터 매년 독립정신답사단을 조직하여 젊은이들을 선조들의 피땀이 서린 항일유적지로 안내했다. 이는 임정 및 독립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후손들에게 독립운동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던 중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진(先進)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일종의 소통 계획도 세웠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진들을 흠모하는 후손들이 그분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임정기념사업회는 이 계획을 2010년 4월부터 구체화하기로 했다. 4월은 임정과 관련이 깊은 달이다. 1919년 4월 10일, 13도 대표 29명이 상해에 모여 ‘임시의정원’을 설립했다. ‘임시의정원’은 그 이튿날인 11일 ‘대한민국’을 세우고, 10개 조로 된 ‘임시헌장(헌법)’을 제정했으며 ‘임시정부’를 조직했다. 이렇게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된 4월을 맞아 후손들이 독립선열들에게 소통의 문을 두드렸다. 백년편지는 선진들의 업적을 살피고 그들의 행적을 역사화하여 감동적인 교훈으로 되살려내는 일이다.
백년편지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의 전통을 100년의 시공을 넘어 잇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많이 참여해 주었고, 그 편지가 쌓여 이제는 책자를 낼 정도가 되었다. 2016년에는 기념사업회 내부용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백년편지1>을 간행한 바 있다. 100년을 맞는 이 시점에 백년편지를 다시 묶어 임정 수립과 항일투쟁에 노력한 독립운동가들을 공식적으로 이 책자에 초청하게 되었다.
<백년편지>는 편지 형식을 띤 만큼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다. 편지 형식을 띠었지만, 수신자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조국 독립의 진행 상황을 하감(下瞰)하고 있다. 임정기념사업회에서 그 편지를 디지털 공간에 띄워 수신자뿐 아니라 수신자를 아는 분들에게 전달하는 형식을 취했다. 백년편지를 통해 수신자를 흠모하는 후생들은 그분의 삶과 뜻의 의미를 더욱 되새기게 되었고, 발신자와 시공을 같이하는 이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편지라고는 하지만, 게재된 내용은 후손들이 선열의 업적을 상기하면서 자신들의 각오를 다짐하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수신자의 행적과 뜻을 알고 진술한 것이 대부분이다. 독립운동사에 나타난 선열들의 행적은 물론이고, 독립운동 가문이나 기관에서만 비장(秘藏)?전승하는 일화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선열들의 위대한 충절(忠節)뿐만 아니라 자애(慈愛)스러운 인간미도 돌아보게 된다.
공식적인 독립운동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그 가문의 친족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도 있어서 자료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 백년편지를 통해 특정한 곳에 비장된 역사가 공유되었다는 것은 망외(望外)의 기쁨이요 소득이다. 또 수신자를 향한 발신자의 애틋한 심경도 진솔하게 나타나 백년편지는 공식적인 독립운동사에서 느끼지 못하는 인간적인 정의(情意)도 많이 느끼게 한다.
필자는 백년편지를 빼놓지 않고 거의 읽은 셈인데, 어떤 때는 그 편지를 읽으며 가슴 뭉클할 때도 있었고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다. 무감각하게 역사책을 대했던 것과는 달리, 백년편지를 통해 공분(公憤)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간미도 느낄 수 있었다. 백년편지 독자들도 염천(炎天)과 한설(寒雪)을 무릅쓰고 조국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선조들의 삶에 다가가면서 그와 대조되는 삶을 살아간 이들에게 분노할 줄 아는 역사의식도 갖게 되었다.
또 평소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에서 예사롭게 대했던 분들이 백년편지에 등장했던 인물과 관련된 분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쁨과 존경심 또한 컸다. 백년편지가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그만큼 백년편지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역사의식도 키워 주었다. 독립운동 선진들에게 표시하지 못한 존경과 감사를 백년편지를 통해 현실적인 삶 속에서 구체화할 수 있어서 또한 기쁘다.
2010년 4월 13일 백년편지가 시작된 이래 현재(2019년 4월)까지 347통이 디지털 공간에 상재(上梓)?발송되었다. 발신자들을 분류해 보니 후손 57명, 학자 55명, 학생 46명, 사회운동가 45명, 작가 29명, 언론인 24명, 교사 24명, 정치인 15명, 문화예술인 7명, 기업인 5명, 현역 장령(將領) 4명, 기타 36명으로 분류되고 있다.
후손들이 많은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서신에서는 독립운동 가문의 품위와 그 가문이 겪었던 신고(辛苦)까지도 엿볼 수 있어서 공감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발신자 중에는 수신자의 전기를 쓸 정도로 독립운동사에 해박한 분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젊은 학생들이 청순한 그 가슴에 독립운동 선열들의 혼을 잇겠다는 결의를 꾸밈없이 담아내고 있어서 기쁘다.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주어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간행하는 <백년편지>는 그동안에 띄운 편지 중에서 100통을 선별했다. 독립운동가 한 분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전달한 경우도 있어, 이를 조정함으로써 수신자의 범위가 넓어졌다. 독립운동의 유형을 고려하여 5부로 나누고 각 부에 20통씩 편집해 독립운동가들을 몇 가지 범주로 수렴했고, 거기에 따라 필자도 다양하게 발굴할 수 있었다.
백년편지 주인공들은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 한말(韓末)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해 서훈받은 분이 1만 명이 넘는데, 백년편지 주인공은 아직 300여 분에 불과하다. 이 시대를 사는 후예들의 발신 의지와 연구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부끄럽다.
앞으로 백년편지라는 공간을 통해 그동안 뼈대만 세워져 있는 우리 독립운동사에 살을 붙이고 피가 흐르게 하여 투쟁력 못지않게 인간미가 넘치도록 했으면 좋겠다. 우리 역사와 삶을 풍요하게 만든 주역들을 발굴해 백년편지의 주인공으로 소개하고, 그들의 삶과 정신에 더 다가가길 기대한다. 그 일은 바로 우리 민족공동체의 몫이다. 그분들의 삶은 각박한 오늘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면서, 나아가 어떤 민족의 독립운동이든 인류공영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임을 밝히는 계기도 되겠다. <백년편지>가 우리 민족의 숙원인 자주독립?민주통일의 공동체 수립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그동안 백년편지를 디지털 공간에 띄운 필자들과 그를 뒷받침한 보이지 않은 손들, 그리고 간행을 맡은 출판사에도 감사드리며, 이 책을 통해 감동받을 뜻있는 많은 분들을 상상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주요 저자

이만열
1938년, 함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숙명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 근현대사, 특히 기독교사 연구의 독보적 존재로서, 독재정권 때도 양심과 정의에 따라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등이 있다.

김정륙
1935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태어나, 충칭(重慶) 외곽 양쯔강(揚子江) 남안(南岸) 손가화원에서 자랐다. 손가화원은 중국인의 별장으로, 조선의용대가 주둔했고 민족혁명당 가족이 모여 살았다. 부친은 보름에 한 번 겨우 짬을 낼 형편이어서, 엄마를 잃은 어린 3남매는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고 땅을 뒤져 고구마를 캐서 주린 배를 채웠다.
해방 후에도 이 가족의 고난은 그치지 않았다. 반민특위원장 아버지를 둔 ‘죄’로, 연좌제에 묶여 친일경찰의 분풀이 대상이 된 그는 모두가 피하는 험한 막일을 찾아 떠돌아야 했다. 정륙은 이름이 외자여서 따돌림을 당할까, 귀국 후 부친이 새로 지어준 이름이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서 독립정신 선양에 힘쓰고 있다.

우원식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민주화운동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3선 의원이다. 2013년, 당내에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으로서 국민의 대다수인 이른바 ‘을’을 대변하며 양극화 해소에 힘썼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 독립기념관 이사를 맡고 있다.

신복룡
194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고, 건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선구적 학자다. 저서 <전봉준의 생애와 사상>은 갑오농민전쟁 연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24권에 달하는 ‘한말 외국인 기록 시리즈’를 번역해 펴냈다. <미스터 션샤인>으로 널리 알려진 맥켄지(F. McKenzie)의 <대한제국의 비극>을 처음 소개했다. 이 편지는 <대동단실기(大同團實記)> 1982년 초판 서문을 보필한 것이다.

김선현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오토인더스트리의 경영을 맡아, 국내 굴지의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로 키워내고, 금탑산업훈장(2016)을 받았다. 부친(김자동)을 도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설립,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 서울장학재단 이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

임진택
1950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졸업. 문화운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 “민족문화?민중문화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마당극, 판소리 등 민속연희(演?)의 나아갈 바를 민중운동 관점에서 정립한 <민중연희의 창조>를 썼고, 창작판소리연구원을 설립해 현재 원장 및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광대를 자칭하는 창작판소리 명창이며, 창작판소리 12바탕을 쓰고 소리하는 일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긴다. <백범 김구>, <오월 광주 윤상원가(歌)>, <다산 정약용>, <세계인 장보고>를 작창하고, 소리했다.

이항증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958~1932) 선생의 증손이다.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李濬衡, 1875~1942)가 자결하고, 아버지(李炳華, 1906~1952)는 해방이 되어서야 감옥에서 나왔다. 3대에 걸친 불령선인 집안으로 일제의 표적이 되어, 가족 모두가 형극의 길을 걸었다. 부친이 한국전쟁 와중에 객사한 뒤, 한동안 보육원에서 자랐다. 낮에는 페인트칠을 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 증조부가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때까지, 안동 임청각 아흔아홉 칸 대저택이 할아버지 집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나 사는 모습 보면 누가 애국할까 싶어서”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박용진
1971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1998년 국민승리21 언론부장을 시작으로 진보정당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주노동당 창당멤버로, 대변인 등으로 활동하며 당내 정파 대립을 극복하려 애썼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변인, 2015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거쳐 현재 제20대 국회의원(서울 강북을)으로 일하고 있다.

강기갑
195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사천농고를 졸업했다. 1976년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시작,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턱수염과 두루마기에 고무신 차림의 농민의원으로 주목을 받았고,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를 꺾고 당선, 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이명박 정권의 전횡에 맞서 싸우며 ‘강달프’라는 애칭을 얻었다. 고향 경남 사천에서 매실농장을 경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이수호
1949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국어교사. 전교조 창립 주역으로 해직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전교조 위원장(2001), 민주노총 위원장(2004)을 역임했으며, 2006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교사로 17년 만에 교단에 복귀했다. 2015년부터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맡아, 이 편지의 발신인으로 이름을 빌린 전태일 열사의 “나눔과 연대” 정신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애쓰고 있다.

이건범
1965년 경기도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로 활동하며,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 위원,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두 차례 옥살이한 경험을 <내 청춘의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했다.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우리말과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명진(明盡)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가야산 해인사를 거쳐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했다. 우리 불교 혁신과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민족21> 발행인으로 활동했으며,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 평화의 길 이사장. 참여연대 고문.

이세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티브로드에 입사했다. 통신업계 비정규 노동자들이 힘을 모은 희망연대노조에 가입, 2013년부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사를 단체협상에 불러내기 위해 고공농성까지 결행한 동지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해하는 맑은 청년이다.

김부겸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옥고를 치렀으며,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 의원을 지낸 후, 대구에서 세 번의 도전 끝에 4선에 성공했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김홍신
장편 <풍객>으로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1986), 장편 <내륙풍>으로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1987), 제52회 한국문학상(2015)을 수상했다. 건국대 문학박사. 제15?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동아일보-경실련 공동평가 16대 국회 의정평가 전체 1위에 선정됐다. 민화협 집행위원장, 평화재단 이사, 통일의병 대표 등을 맡아 활동했다. 다수의 소설집과 수필집, 역서 <삼국지> 등 130여 권의 저서를 냈다.

표명렬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육사(18기)와 고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현역 시절 “군 개혁에 미친 사람”이라 불릴 정도로 소신을 굽히지 않아, 정치장교들의 미움을 받고 준장으로 옷을 벗었다. 국군이 민족의 군대.민주군대.평화통일군대로 거듭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평화재향군인회를 창설해 상임대표를 맡았으며, 현재 상임고문이다. 천주교 인권위원, 사단법인 평화.통일.화해연구원 이사장. 저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와 <군 정신전력 강화 방향> 등 군 개혁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이기연
(주)질경이우리옷 대표이자 생활문화원 ‘무봉헌’ 주인이다. 미술과 민주화운동, 우리옷과 민족전통을 하나로 잇는 일에 40년 넘게 매달리고, 여성독립군을 예술로 되살리는 작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100인 위원회) 위원. 침뜸의학과 건강문화 전승을 위해 노력하는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이사.

김형석
196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대표적 작곡가.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 박진영, 엄정화 등의 히트곡을 작곡했으며,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무려 1천 곡이 넘는다. 한국예술원 실용음악예술학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MBC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의 패널로도 활동했다. 키위미디어그룹 회장, 케이노트 대표. 케이팝 아카데미를 중국에 설립하고, 양국간 문화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김상희
1954년 충남 공주 출생. 이화여대 재학 중 민주화운동에 가담하고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여성평우회 창립 멤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3선, 부천 소사)으로, 노무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양극화 해소에 힘을 쏟고 있다.

하성환
1959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상암고등학교 윤리 교사로 재직하며, 우리 근현대사 인물 발굴에 힘쓰고 있다. <진실과 거짓, 인물한국사>를 쓰고 이육사의 삶을 재조명했다.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근현대 인물한국사>, <사회철학 에스프레소> 등의 저서와 평론으로 <망국의 순간, 조선사회 두 얼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아나키스트 항일혁명가 이회영> 외 다수가 있다.

전원배
1962년 부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 재학 중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를 겪고 경남으로 가서, 울산과 창원의 노동자들과 함께 20년 동안 노동운동에 복무했다. 서강민주동우회 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뒤늦은 공부에 땀 흘리고 있다.

서중석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학과 4학년 때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신동아> 기자로 일했고, 서울대에서 한국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현대사 박사학위는 그가 처음이다. 1991년부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 명예교수.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현대민족운동 1?2>, <배반당한 한국의 민족주의>,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5권> 등이 있다.

임재경
1936년, 강원 김화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 1961년부터 1973년까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민주회복국민선언(1974)과 지식인 134명 시국선언(1980)에 참여했으며,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를 만들었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편집인 겸 논설주간, 초대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단재상 언론부문을 수상했다. 저서 <상황과 비판정신>과 <아랍의 거부> 등 다수의 역서와 논문을 써냈다.

김동진
1950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제이피모건(JP Morgan) 은행 한국 회장을 역임했다. 사재를 출연해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정부로부터 외자유치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2014년 미국 미시건주립대학교로부터 ‘글로벌코리아 상(Global Korea Award)’을 수상했다.

박형우
195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발생학(해부학) 전공으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1992년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교 소아과학교실 방문교수(토머스 H. 쉐퍼드 박사)를 거쳐, 모교에서 해부학교실 주임교수, 의사학과 과장, 동은의학박물관 관장을 맡았다. 대한의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의학한림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초기 의료 선교사와 관련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남재희
1933년 충북 청주 출생. 서울 법대를 나와 한국일보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민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해 네 차례 당선되었고, 민정당 정책위의장, 노동부장관(문민정부)을 맡았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좌우 모두에게 존경받는 우리 시대 대표적 문사(文士)이자, ‘진보파’에 애정 어린 고언을 아끼지 않는 정치원로다. 저서로 <양파와 연꽃>, <정치인을 위한 변명>, <진보열전> 등이 있다.

채현국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며 연극반을 만들어 배우를 지망했으나, 얼굴이 받쳐주지 않아 포기하고, 중앙방송국(현 KBS) PD로 입사했다. 박정희 찬양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상사의 지시에 사표를 내던지고, 부친의 탄광을 맡아 일약 거부가 되었다. 유신독재 밑에서 재벌로 사는 게 싫어 광부들에게 재산을 다 나눠준 뒤, 민주화운동 하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다. 정곡을 찌르는 거침없는 언표로 ‘건달할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경남 양산의 효암학원(개운중.효암고) 이사장.

황소라
1988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울 때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고, 요즘도 사랑한다는 전화를 잊지 않으시는 아빠가 제일 좋다는 ‘아빠딸’이고, 맛있는 반찬 있으면 엄마 오시기 전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밥상을 지키는 ‘엄마딸’이다. 나사렛대학교에서 수화통역을 전공하고, 손말이음센터에서 중계사(수어통역사)로 일하며 노동조합 지회장을 맡고 있다.

김서경.김운성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부부. 1993년부터 부부가 함께 조각전을 열고,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했다. 5?18추모조형물(1990, 광주대학), 동학 100주년 기념 무명농민군 추모비(1994, 정읍), 미선?효순기념비(2012), 김구 선생 기념조형물(2013, 서울 성동구), 강제징용노동자상(2017, 용산역), 항일독립여성상(2019, 배제공원) 등 우리 현대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희주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경향신문사에 입사, 미디어전략실 과장을 거쳐 후마니타스연구소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에 미쳐, 1년에도 몇 번씩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 일본, 대만, 싱가폴, 미국에 간다. 직장에서도 독립운동 답사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심상정
1959년 경기 파주에서 태어났다.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반독재투쟁에 나섰으며, 구로동에서 미싱공으로 위장취업해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지역총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조직했다. 9년간의 수배 생활을 하며 노동운동을 이어갔고,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철의 여인’이라 불렸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 현재 덕양갑 지역구 3선 국회의원이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정의당을 이끌고 있다.

이부영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74년 유신독재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 이듬해 해직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었다.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옥중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국민에게 알려 6월항쟁에 불을 붙였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역임했다. 최재형선생장학회 고문,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양연수
1996년, 제주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한라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교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학생들과 함께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박경석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3년 추락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었다. 1996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조직국장을 시작으로 장애인차별철폐운동에 뛰어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2003),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2003) 등을 역임하고,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Asia-Pacific Disabled Forum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5회 들불상(2010), 제17회 불교인권상(2011), 제1회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상(2015) 등을 수상했다. 저서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김영관
1924년, 포천에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 광복군 징모제3분처, 제1지대 제2구대에서 항일작전을 수행했으며, 귀국해서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참전 뒤 철도청에서 근무했고, 광복회 이사, 광복군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광복군동지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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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헌사(獻辭)
감사와 존경 그리고 다짐의 백년편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김자동

서문(序文)
독립운동사에 살을 붙이고 피가 통하게 하다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제1부 피눈물로 씁니다
“아버지 어머니, 뵙고 싶습니다” - 23
김상덕 반민특위원장 전상서 / 김정륙

동토의 수용소에 버려진 민족의 영웅 - 33
증조할아버지 김경천 장군님께 / 김올가

“할아버지, 저는 4월이 싫습니다” - 41
항일의병장 최구현 조부님께 / 최사묵

신출귀몰, 독립자금 모금 - 45
김찬규 할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 오영숙

그 모든 재산 조국에 바치고 귀천 - 51
영석(潁石) 이석영 할아버지께 / 이종찬

“터졌구나! 터졌구나! 독립성(聲)이 터졌구나!” - 57
발안 3·1독립만세항쟁을 이끄신 이정근 증조부님께 / 양인선

“우리들의 마음은 곧 대한의 혼이니” - 61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신규식 할아버님께 / 민영백

대한민국의 평안과 발전을 위해 - 69
이범진 열사·이위종 열사 두 분 할아버님께! / 이원갑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번영한 대한민국 - 75
대한민국공군의 아버지 노백린 조부님께 / 노영택

임정의 작은 거인 - 81
우천(藕泉) 조완구 할아버님께 / 조명숙

당신께서 평생 꿈꿔온 민족통합의 자주독립국 - 89
임정 법무부장 의산(義山) 최동오 할아버님께 / 최인국

“사람이 향상하고 진화하는 데는 혁명이라는 것이 있나니” - 95
할아버지 김한 선생님께 / 우원식

건국의 아버지 - 103
석오(石吾) 이동녕 선생 영전에 올립니다 / 이종억

독립, 통일 그리고 진보 - 109
역전(力田) 최익환 선생과 동지들에게 바칩니다 / 신복룡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영원한 비서실장 - 115
아버지 동암(東岩)께 부치는 편지 / 차영조

참교육자 학산(學山) 윤윤기 - 123
민족교육의 선구자이신 아버님을 그리며 / 윤종순

아버지의 빈 지갑 - 129
이윤철 민영애, 그리움으로 새긴 아버지 어머니 이름 / 이원표

정의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 사람 - 137
큰아들 김인이 아버지 백범에게 / 홍소연

항일에 나선 하늘의 절반 - 143
어린 딸 남겨두고 독립 외길 걸은 박치은 지사님께 / 이윤옥

장강(長江) 만리(萬里)에 청춘을 묻고 - 147
김의한 할아버님 정정화 할머님께 / 김선현

제2부 빛은 어디에
선생님께서 앞서 걸어가신 길은 다만 정도(正道)일 뿐 - 159
광대 임진택이 백범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 임진택

나는 조선의 총구다 - 171
남자현 의사에게 바칩니다 / 이상국

겨레의 역사를 바로 세워라 - 177
도성탈환작전 도원수, 왕산(旺山) 허위 의병대장님께 / 윤우

역사가 온전하게 복원돼야 - 181
항일 유림(儒林)의 거목, 백하(白下) 김대락 선생님께 / 이항증

“광복 전에는 내 유골을 조국으로 가져가지 말라” - 189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石洲) 이상룡 선생님께 / 권용우

만민의 자유와 평등을 향해 - 195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님께 이 편지를 올립니다 / 황원섭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 201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님에게 / 반병률

남만주의 호랑이 - 209
국민대표회의 의장 일송(一松) 김동삼 선생님! / 김병기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 213
천상에 계신 안중근 의사님께 / 조세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219
내 동생 조소앙을 그리며, 제65주년 제헌절에 쓴다 / 서희경

융화와 상생 그리고 통합 - 227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님의 길을 걷겠습니다 / 박용진

독립전쟁의 영원한 수호신 - 233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님을 기립니다 / 김형목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 237
광복군총영장(光復軍總營長) 오동진 장군 영전에 / 최범산

“독립과 통일을 위해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합작해야” - 247
사랑하고 존경하는 할아버지, 우사(尤史) 김규식 / 김수옥

검은 눈의 볼셰비키 - 253
김알렉산드라 님에게 드리는 편지 / 김혜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 259
전봉준 녹두장군님께 드립니다 / 강기갑

우리는 대한민국의 전략무기 - 265
신돌석함 초대함장! 신돌석 장군께 신고합니다! / 이준호

어느 혁명가의 초상 - 269
제3차 조선공산당 당수 지운(遲耘) 김철수 선생님께 / 최자웅

기나긴 어둠을 찢어버리고 - 279
전태일이 경성트로이카 선배님들께 띄웁니다 / 이수호

선공후사 무실역행 先公後私 務實力行 - 285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님 영전에 아뢰나이다 / 이만열

제3부 당신은 나의 사표(師表)
오늘은 선생님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 295
한글문화연대가 주시경 선생님께 / 이건범

침묵의 울림 - 303
소승(小僧), 만해(卍海) 큰스님에게 올립니다 / 명진

“국사(國史)가 망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 307
민족사학의 아버지, 백암(白巖) 박은식 선생님에게 / 성대경

임시정부 통신망 - 311
이세창 선생님과 당신의 교통국 연통제 동지들께 / 이세윤

“나라가 잘되려면, 파당 싸움을 말아야” - 317
존경하는 손정도 선배님에게 / 송영빈

앉은뱅이 늙은이 - 321
심산(心山), 아니 벽옹(?翁) 김창숙 선생님! / 강용주

민족의 군대를 꿈꾸며 - 325
평화재향군인회가 홍범도 장군님에게 / 표명렬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장관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에게 - 329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도산(島山)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 김부겸

[임꺽정]을 따라 - 335
벽초(碧初) 홍명희 선생 전(前) 상사리 / 김홍신

“나는 대한독립과 결혼했습니다” - 341
사랑과 존경을 담아, 김마리아 선배님에게 / 이충옥

독립운동을 하며, 육아일기를 쓴 남자 - 345
소벽(少碧) 양우조 선생님께 궁금한 게 많습니다 / 이기연

노동이 독립이다 - 357
원산총파업 조합원 선배님들에게 / 이해관

오선지 위에 독립을 수놓은 아름다운 사람 - 363
음악으로 한중(韓中)에 다리를 놓으신 정율성 선생님께 / 김형석

100년 전 ‘미투’의 소리 - 369
‘근우회’ 선배님들께 ‘여성평우회’ 후배가 / 김상희

보물 세 상자 - 375
활자를 지킨 대한민국임시정부 청년들에게 / 홍동원

3ㆍ1운동 총감독 - 383
의암(義菴) 손병희 선생님께 / 황인성

어두운 밤하늘 저항의 샛별 - 389
나의 정신적 스승! 항일혁명시인 이육사! / 하성환

“2천만 민중아, 분투하라!” - 395
약탈경제반대행동이 나석주 의사님에게 / 홍성준

“친일파 청산이 끝났는가!” - 401
마지막 독립운동가 조문기 지사님께 / 이봉원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 405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님께 / 전원배

제4부 벽을 넘어서
서간도의 바람소리 - 419
이상룡 선생 손부(孫婦) 허은 선생님에게 / 서중석

그늘에 가린 한인망명사 - 425
카자흐스탄 땅에 묻혀 계신 계봉우 선생에게 / 임재경

파란 눈의 친구 - 429
한민족을 그리도 사랑하셨던 헐버트 박사님 / 김동진

대초원의 큰 바위 - 437
제중(濟衆)과 구국(救國)의 신의(神醫), 이태준 선배님께 / 박형우

대한국민의회를 아십니까 - 445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설, 문창범 선생님께 / 조재곤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함이 절실하옵거든” - 453
참 기독교인 김교신 선생님을 추모하며 / 박상익

후대가 꼭 기억해야 할 그 시대 그 사람 - 459
소해(宵海) 장건상 선생, 그리고 혁신정당의 추억 / 남재희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 465
대륙의 항일혁명 지도자, 풍운아 김산 / 이원규

제국의 대신에서 민국의 국민으로 - 469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 동농(東農) 김가진 선생에게 / 김위현

남과 북이 모두 잊은 혁명가 - 475
한글학자 김두봉 선생께 / 정희섭

파리의 독립운동가 - 479
서영해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 원희복

절대자유와 평등사회 - 485
효창원에서 봄소식을 고대하는 백정기 의사께 / 김명섭

민족과 민중은 하나다 - 491
진보적 민족주의자 운암(雲岩) 김성숙 선생님 / 김재명

올곧게 사시다 외롭게 가신 어른 - 497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만오(晩悟) 홍진 선생님께 / 채현국

우리는 ‘어노행노’ - 505
불굴의 노동운동가, 강주룡 열사님께 / 황소라

통합과 통일의 기치 - 511
임정의 균형추, 할아버지 김붕준 선생에게 / 김창희

“옳은 일이기에 목숨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 517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님에게 드리는 편지 / 조회환

무덤도 없이 구천을 떠도는 당신 - 523
아내 박차정이 남편 약산(若山) 김원봉에게 / 박미경

“저희 왼팔에는 열사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 533
유관순 열사께 드리는 유관순함 함장의 맹세 / 유주현

평화의 소녀상 - 537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 / 김서경·김운성

제5부 청년에게 용기를
“내가 죽어 청년을 살릴 수 있다면” - 543
항일전선의 최고령 노투사 강우규 의사님께 / 이석

폭탄 두 발로 열도를 흔들다 - 549
이봉창 의사님! 당신의 의거는 대성공이었습니다! / 최희주

강보에 싸인 두 어린 병정 - 555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님께 / 정명아

“나는 꽃이되 불꽃처럼 살겠소” - 561
정미의병(丁未義兵) 동지들에게 바칩니다 / 심상정

부디 이 나라를 돌보소서 - 567
김태원 의병장 할아버지 영전에 올립니다 / 김갑제

다시 쓰는 대한독립전쟁사 - 573
손녀가 최운산 장군께 드리는 편지 / 최성주

부부가 한마음으로 - 583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님 김공순 여사님 내외분께 / 박용규

“기관총으로 겨눠도 그런 영화는 찍지 않는다” - 589
독립을 연기한 영화배우 김염 / 유인택

영원히 꺼지지 않을 광복의 난로 - 593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어른께 / 이부영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있어” - 597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허형식 장군에게 / 박도

욕하고, 때리고, 부리지 말자 - 601
아동보호로 민족운동 펼치신 방정환 선생님께 / 고용진

통곡의 미루나무야 - 605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실 할아버지 할머니께 / 양연수

의열투쟁의 마지막 증인 - 609
광복회장 청뢰(靑雷) 이강훈 선생님! / 정운현

그 돈이 내 돈이더냐? - 615
누대의 유산을 독립에 바친 일송(一松) 장현식 선생님께 / 이두엽

왜적의 심장에 칼을 꽂아라! - 619
조명하 의사에게 드리는 편지 / 구양근

‘십자가’, 윤동주 - 625
“당신의 시는 바로 지금 나의 삶입니다” / 박경석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 백범 631
청년백범 회원이 겨레의 스승에게 인사 올립니다 / 김경준

광복군 총사령 - 637
외할아버지 백산(白山) 지청천 장군께 드리는 편지 / 이준식

당신의 봄 - 643
광복군 제2지대 여군반장 이월봉 지사님께 / 최우성

광복군은 결코 죽지 않는다 - 647
동지 신의철에게 / 김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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