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나온 주요 판결에 대한 비평들을 담은 책이다. 2005~2014년 사이의 주요 판결비평을 담은 <공평한가?: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두 번째 판결비평 모음을 발간한다. 이번에는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나온 주요 판결에 대한 비평들이다. 2005~2014년 사이의 주요 판결비평을 담은 <공평한가?: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지난 5년이 한국 사회의 큰 격변기였던만큼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주목할 만한 판결이 많았다.
판결비평 15년, 2005~2019
참여연대는 줄곧 물었다. “판결은 누가 판결하는가?” 참여연대가 처음 ‘판결을 판결한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법정을 열고, ‘판결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창했던 때가 2002년이다. 판결을 사법계의 전유물로만 두지 않고, 시민들 사이 공론의 장에 올려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법원이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판결문 열람실에 열람용 컴퓨터가 4대뿐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참여연대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판결비평 작업을 진행해왔다. 덕분에 시민들에게 ‘디딤돌 판결’ ‘걸림돌 판결’이라는 어휘가 친숙해졌고, 언론사에 의한 판결비평도 확산되었다.
판결비평은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반反인권적·반민주적 판결, 이와는 반대로 인권 수호 기관으로서 법원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판결을 비평하는 작업이다. 그럼으로써 법률 전문가 층에 국한되는 판결 내용을 시민사회 내부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려는 시도다.
법정 현장에서 의견을 개진할 때처럼 실감나는 목소리를 담았다. 정치적 판결이 몰고 온 사회적 결과에 주목했을 뿐 아니라 법의 원래 취지와 인권의 바탕에 비추어 재판 과정에 도사린 비약과 비논리를 대나무 같은 펜으로 갈파했다.
◎ 판결비평이 새로운 법원을 만들 것이다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동안 피해자들이 거쳐온 지난한 소송 과정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고, 한국에서는 2005년에 소송을 시작해 13년 8개월 동안 모두 5차례 재판을 거치는데, 어떤 이유로 패소하고 승소했는지 자초지종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일반인은 판결문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법원은 세간에서 판결을 평가하는 게 꺼려지는지 보통 판결문 공개를 최대한 제한한다(법원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판결문도 있지만, 이는 전체 처리된 판결의 0.1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판결문은 비공개가 원칙인 셈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판결문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법관, 즉 판사와 대법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판사가 30년 이상 재직하는 동안 수천 건의 판결을 선고했다고 해도 시민들에게 공개된 판결문은 거의 없다.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으니 판결비평도 부족하다. 판결비평이 부족한 상황에선 판사를 평가하기가 어렵다. 만약 그 판사가 훗날 대법관 후보자가 되더라도 최고 법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럴 때 검증은 온통 경력과 재산 관계로만 쏠리기 마련이다.
이제 시민들이 판결문을 읽고 판결비평을 하기 시작하면 사법부는 변화의 요구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판결비평에는 어떠한 자격도 필요 없다. 주권자이기만 하면 된다. 판결비평이 대중화되어 시민들이 판결문을 읽고 판결비평을 시도하면, 법조계에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다.
◎ 책의 취지와 구성
유무죄 결과와 여론 동향을 제시하던 수준에서 벗어났다: 역사 ‘다시 쓰기’로서 판결비평
2016년 11월 역사적인 촛불 집회는 하마터면 경찰의 금지통고로 좌절되거나 반쪽짜리 집회에 그칠 뻔했다. 특히 서울 사직로와 율곡로에서의 집회는 그간의 관행에 비춰보면 경찰의 금지통고는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11월 5일과 12일 각각의 집회에 관한 경찰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그 덕분에 촛불 집회는 역대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이면서 평화적으로 또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법원의 결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집시법 제12조에 따라 내려진 경찰의 금지처분은 계속 유효하게 집행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 불법 집회라며 해산시키려는 경찰과 100만 국민이 대치하고 충돌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역사를 가정해보는 방식으로 비평을 하면, 판결의 의미와 기능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렇게 판결비평은 법원의 판결과 결정의 의미를 당시 국면에 국한하지 않고 시간의 지평을 넓혀 봄으로써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확보했다. 지난 사건을 되돌아보고 다시 쓰기를 시도한 것은 해당 재판부의 특수성과 사법부 전체의 지나치게 느린 흐름을 상대화함으로써, 혹시나 인권의 바탕에 어긋남이 있었는지를 반추하기 위해서다.
법리를 살폈다: 국민들의 상식에 부합한가
‘시민이 수긍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판사가 결론에 이르는 근거와 논리, 생각의 흐름이다.’ 판결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사회는 모든 문제를 끌고 법원으로 간다. 그렇게 사회적 갈등이 해결되는 장이 사법부로 옮겨올수록 법리가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재판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저버리는 판결을 내릴 때는 그들만의 법 해석, 법 문안을 따른다는 구실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견강부회를 감추기 위해 그들이 앞세우는 것이 법리이기 때문이다. 그때 시민이 수긍할 수 있는지는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 상식에 비춰보면 구색 맞추기 외에 다른 설명이 불가능한데도, 그들은 법 문안을 위헌적으로 해석하고 기존 대법원 판례를 들며 시대의 요청을 거스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법리를 파고드는 재판부의 모습에 맞서, 판결비평의 저자들은 정확한 정의를 찾아내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함으로써 새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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