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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 1948, 여순항쟁의 역사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 1948, 여순항쟁의 역사 (5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주철희 朱哲希
서명 / 저자사항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 1948, 여순항쟁의 역사 / 주철희
발행사항
전주 :   흐름,   2017   (2018 2쇄)  
형태사항
368 p. : 삽화 ; 23 cm
ISBN
9791155221310
서지주기
참고문헌(p. 354-360)과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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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67072 2017 등록번호 11180016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여순사건 69주년을 앞두고 출간한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의 책이다. 이 책은 "사건의 성격상 반란이 아니라 '항쟁'이라며 정명(正名)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순사건 발발 당시의 1차 사료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국군 제14연대 봉기군이 수도 점령이나 정부 전복, 권력자 축출 등의 계획이 없었고, 새로운 권력 주체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반란과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주 박사는 '반란'과 '항쟁'의 목적이나 행위 자체에 대한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추적했다. 그리고 "사건의 주체인 제14연대 군인이 제주도 출동명령을 거부한 핵심이 군인의 사명에 부합하지 않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며 "이것이 명령의 거부로 끝나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민중 봉기로 촉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 군인들의 봉기 “여순항쟁”
국가는 왜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나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여순항쟁’은 아직 생소한 단어 중 하나다. ‘여수순천사건’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한 구절 정도가 스쳐 지나갈 것이고, ‘빨치산’ 혹은 ‘빨갱이’에 이르면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여순사건은 여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 등으로도 불리며 제주4·3사건과 함께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이다.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해 나갔다.
여순사건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그 누구도 섣불리 진실을 얘기하기 어려웠다.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이 사건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여수·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 등을 비롯한 37개 시·군의 광범위한 지역이 죽음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독재정권은 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용기를 필요로 했다. 반공국가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인한 정국혼란이 있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주홍글씨였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소외된 부분을 찾아 과감하게 문제제기했다. 이미 한 차례 『불량 국민들 : 여순사건 왜곡된 19가지 시선』을 세상에 선보인 적 있는 저자는 4년 만에 여순사건의 다른 이야기로 돌아왔다. ‘반란’ 또는 ‘항쟁’이라는 세간의 엇갈린 평가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제14연대의 반란은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였는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역사 기록은 대체로 승자가 남겼다. 승자의 문서로 작성된 여순사건은 왜곡된 역사의 전형이다. 사건의 주체인 제14연대 군인이 제주도 출동명령을 거부한 핵심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명령의 거부로 끝나지 않고 봉기로 촉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왜 항쟁인가
저자는 세간에 널리 퍼진 여순사건 대신 ‘여순항쟁’이라는 어휘를 제안한다. 많은 단어에는 권력 이데올로기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예컨대,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혁명’이라고 지칭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역사 기록에서 적합한 용어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용어의 선택이 역사적 성격은 물론 대중의 역사 인식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항쟁이라는 표기는 ‘부당하게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법적 행위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항쟁에는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다수 또는 복수의 주체들이 함께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대중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둘째, 대체로 집단적 저항 실천이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널리 의미가 확인되어 기록될 만한 사건임을 의미한다. 셋째, 항쟁은 언제나 지배적 위치의 타자 억압에 대한 주체의 대항적 움직임을 함의한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대략 15,000~20,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 호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정부는 여순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비난하였으나 그들이 명명한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와 무관한 민간인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이는 1950년 초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반란이 성립되려면 수도 점령이나 정부 전복, 권력자 축출 등의 계획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권력 주체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여수에 주둔했던 제14연대 군인이 주도한 이 사건은 그런 조건들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봉기의 주체가 군인의 신분을 지녔다는 이유로 이들을 반란으로 규정하려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 군인에게 동족을 학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1980년 5월의 대한민국 군인은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출동하였다. 그리하여 광주에서는 피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반면 1948년 10월의 제14연대는 명령에 저항하고 출동을 거부하였다. 이에 저자는 묻는다. “어떤 군인이 올바른 군인인가? 어떤 군인이 국민의 군인인가?” 그리고 나아가서 “어떤 군인이 대한민국에 존재해야 하는가?”

여순사건에서 여순항쟁으로
저자는 내년으로 70주년을 맞는 여순사건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시민강좌를 앞두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4·3사건’, ‘5·18항쟁’ 진실규명처럼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순사건이 4·3사건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도 여전히 왜곡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를 법적, 제도적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여순항쟁 전문 연구기관의 필요성과 지방정부의 적극적 참여, 행정적 지원시스템의 마련, 지역사회와의 연대활동을 남은 과제로 언급하였다.
제14연대 군인은 국민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올바른 군인이었다. 민중은 그에 호응하여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돌변한 관료와 경찰의 부정부패, 부조리에 저항으로 맞섰다.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여순사건은 사건의 본질인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는 목적을 위해 일어난 항쟁으로 명명되어야 적합할 것이다. 여순항쟁은 묻는다. 1948년 10월, 국가 권력은 정당하였고 국민의 동의를 얻었는가?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주철희(지은이)

사대주의 사관과 국가주의 관점의 역사 서술체계에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자주적 관점과 사람 중심의 관점을 바탕으로 역사를 연구하며 강연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저항운동, 국가폭력, 민간인 학살, 반공문화 등이다. 특히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여순항쟁과 제주4·3항쟁의 역사 재정립에 진력하면서 지역의 근현대사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역사 연구자이다. 저서로 『불량 국민들』,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흐름),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흐름), 소설 『탄압이면 항쟁이다』(흐름) 『주철희의 여순항쟁 답사기1』(흐름)가 있으며, 공저로 『주암호의 기억』(흐름), 『인물로 본 전라도 역사이야기』(선인), 『지리산의 저항운동』(선인), 『여순항쟁 자료집Ⅰ~Ⅳ』(선인), 『국가폭력과 정체성』(역락)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예술작품을 통해 본 여순항쟁 연구」, 「고초도위치 비정에 대한 재검토」, 「여순항쟁 주도인물에 관한 연구」, 「여순항쟁과 지역의 기억」, 「빨치산 사령관 ‘이영회’의 삶과 투쟁」, 「한국전쟁 전후 반공문화의 형성과 그 의미」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프롤로그 : 항쟁과 반란
일러두기

1부 여순항쟁, 그 역사를 말한다
1장. 항쟁(抗爭)을 말한다
1. ‘항쟁’이란 용어는 정당한가
2. ‘난(亂)’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2장. 역사를 통해서 본 반란
1. 성공한 반란과 실패한 반란
2. 반란 규정의 조건
3장. 여순항쟁, 정말 반란인가
1. 권력자 축출과 새로운 권력자는
2. 수도를 점령했는가
3. 봉기군은 누구인가
4. 반란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
4장. 잘못된 명령을 거부한 봉기
1. 권력의 잘못된 명령에 저항하다
2. 부대원 선동을 위한 또 다른 작전
5장. 불의에 저항한 민중의 힘
1. 인민위원회와 그 사람들
2. 민중의 배고픔과 부정부패
6장. 여순항쟁은 역사이다

2부 여순항쟁, 그들은 누구인가
1장. 그들은 왜 봉기했는가
2장. 여순항쟁, 정부의 첫 발표는
1. 정부의 첫 발표
2. 혁명의용군 사건
3장. 주도 인물의 변화와 정부의 의도
1. 공산주의자의 오래 계획된 반란
2. 민중이 주도한 반란
3. 제14연대 장교 주도 아래 반란
4. 남로당 지령에 의한 반란
4장. 주도세력과 총지휘자는
1. 주도세력 40여 명
2. 항쟁의 총지휘자
5장. 빨갱이 등장의 의미

3부 여순항쟁과 지역사회의 기억
1장. 여순항쟁, 지역의 기억을 찾아
1. 역사와 기억
2. 지역의 기억을 찾아
2장. 항쟁의 도시, 여수.순천의 기억
1. 항쟁의 불씨를 피운 여수
2. 성난 민심의 동요에 술렁인 순천
3장. 빨치산의 무대, 광양.구례의 기억
1. 백운산의 울음소리가 퍼진 광양
2. 큰 산 아래 사람들 구례
4장. 외곽 지역, 보성.고흥의 기억
1. 부용교의 핏빛 물결 보성
2. 팔영산의 반공 그림자 고흥
5장. 전라남도의 인식과 피해 규모
1. 남도 사람의 인식
2. 여순항쟁의 피해 규모
6장. 박제된 기억에서 올바른 기억으로

4부 여순항쟁과 기독교
1장. 기독교의 눈으로 여순항쟁을 읽다
2장. 종교위문단의 활약
3장. 기독교인의 상황 인식
1. 윤을수의 <경향잡지>에 나타난 종교인의 피해
2. 유호준의 회고록에 나타난 협력자 색출과 처형
3. 김형도의 기고문에 나타난 사건일지
4. 황두연과 반란사건의 사실관계
5. 정규오의 회고록에 나타난 ‘관제 빨갱이’
5. 차남진의 회고록에 나타난 기독교인의 모습
6. 나덕환의 회고록에 나타난 왜곡의 이데올로기
4장. 교회사 등에 나타난 인식과 사실관계 추적
1. 지역 교회사에 나타난 여순항쟁
2. '오페라 손양원', 왜곡의 서사
5장. 동인과 동신의 죽음과 ‘순교’의 진실
6장. 새로운 시선으로 여순항쟁을 기억한다

에필로그:항쟁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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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제공 : Ala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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