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에 기꺼이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친 이들이 1945년 이후에도 또다시 이 땅에서 설움과 가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임시정부의 비서장 차리석 선생의 아들은 차(車)씨 성을 버리고 신(申)씨로 한동안 살아야 했다. 임시정부가 환국하고 나서도 중국에 남은 동포들을 마저 귀환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광복군 양승만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1986년에서야 조국 땅을 밟았다.
이외에도 조국 독립과 민족 해방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호명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내고 불러주어야 한다.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기억에서 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잃어버린 36년의 시간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9인의 삶을 엮은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숨은 역사 속의 주인공들
안중근과 유관순, 김구, 윤봉길…… 역사에 기록되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암울한 시대의 영웅들이다. 그러나 역사는 한 사람이 써내려간 영웅담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스러져간 숨은 영웅들 또한 숱하게 많다. 다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세월의 풍파에 그 흔적이 사라질 뿐이다. 우리는 다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야 한다.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안녕을 뒤로 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씨줄 날줄이 되어 역사를 만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9인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잊혀져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임시정부에서 비서장으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차리석 선생(그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항일 투쟁을 하다 부상을 당하고 끝내 세상을 뜬 박차정 의사(의열단장 김원봉의 아내), 양평의 천석지기였으나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한 양건석?양승만 부자…… 일제 치하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은 이후에도 극심한 이념 대결,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 6.25전쟁, 숨 막혔던 군사독재 정권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잃어버린 36년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망각의 늪에서 잠들어 있어야 했다. 이제 그들의 이름을 누구라도 나서서 다시 불러줘야 할 때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임시정부의 비서장 차리석 선생은 1942년에서야 늦은 결혼을 했고 중국에서 아들을 낳았다. 애석하게도 그는 광복 이후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 생을 마감하고 그의 아내와 아들만 조국 땅을 밟는다. 마땅히 국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그들이었지만 시대는 혼탁했고 그들에게 여전히 엄혹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을 당하자 임시정부 비서장의 아들은 차(車)씨 성을 버리고 신(申)씨로 한동안 살아야 했다. 임시정부가 환국하고 나서도 중국에 남은 동포들을 마저 귀환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광복군 양승만 상사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1986년에서야 조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독립운동 공훈증을 받기 얼마 전 비운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중국에 살고 있던 양승만의 딸 양옥모 여사는 아버지의 나라가 그리워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귀화시험을 치르고 한국에 돌아왔으나 작은 단칸방에서 얼마 안 되는 보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봉사활동으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전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고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안녕마저 포기한 그들의 위대하고 숭고한 삶은 제대로 보상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고 그들의 후손을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보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존경과 애정으로 그들을 보듬고 보살피는 일이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 사라진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므로 우리는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투쟁으로 조선 청년들의 마음에 작은 파도라도 일어나길 바라오!”라고 했던 강우규 의사의 말씀이 공허한 외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먼 훗날 우리나라가 다시 시련에 빠져 있을 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젊은이들에게 역사는 나침반이 되어 그들을 안내할 것이다.
정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