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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 (Loan 1 times)

Material type
단행본
Personal Author
藤田省三, 1927-2003 윤인로 尹仁魯, 1978-, 역
Title Statement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 / 후지타 쇼조 지음 ; 윤인로 옮김
Publication, Distribution, etc
서울 :   삼인,   2018  
Physical Medium
230 p. ; 20 cm
Varied Title
異端論斷章
ISBN
9788964361429
General Note
원서총서표제: 藤田省三著作集. 第10卷  
Subject Added Entry-Geographic Name
Japan --Intellectual life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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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s Information

No. Location Call Number Accession No. Availability Due Date Make a Reservation Service
No. 1 Location Main Library/Monographs(3F)/ Call Number 301.0952 2018 Accession No. 111794068 Availability Available Due Date Make a Reservation Service B M

Contents information

Book Introduction

현대 일본의 마지막 사상가로 불리는 후지타 쇼오조오의 대표적인 저서로 종교적 화두로서의 이단의 총체성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책으로 인간의 사회적 신념 체계의 갈등과 분화를 고찰한다. 후지타는 천황제의 일본 사회를 그리스도교의 서구 사회와 비교·분석하며, 그리스도교 사회의 정통·이단 논쟁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삼위일체에 대해 살펴본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인은 신앙의 신비로 받아들이는 교리이지만 비기독교인에게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도그마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啓示)한 하느님은 성부(聖父)·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세 위격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며 유일한 실체’라는 교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이 있었다.

근대 이후 서방 세계에서 활동한 정치·사회사상가 중, '이단'의 문제를 후지타 쇼조처럼 심도 있게 파고든 사람이 있을까. 지적 관능과 충격을 담고 있는 책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를 통해서 확인해 보십시오


정통과 이단, 인류사의 끝없는 다툼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는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최고의 정신적 차원과 무엇보다 원시적인 권력적 차원이 뒤얽혀 있는 다툼이 이어져왔다. ‘궁극적 이념’이나 ‘세계의 근본원리’나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신’ 등을 추구하고 사색하는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철학상의 논쟁은, 그때 그 장소의 상황에서 특정 집단을 종합하고 조작함으로써 다른 특정 집단과 권력적으로 다투는 가장 현세적이고 매우 특수주의적인 정치적 항쟁과 상호 이행하여 서로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어왔다. 그 역설적이며 동적인 상태에는 일정한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 사상은 스스로를 올바른 사상이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傳道)하려는 사도(使徒)를 낳는다. 그 사도의 전도는 당연히 기존의 관습이나 사회의 신념체계 사이에 모순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사상은 사회적 차원의 존재가 되고 동시에 사회적 다툼의 원인이 된다. 그렇게 사상적 문제는 사회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정치적 다툼과 동일한 차원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둘째, 정치적 통합자는 물리적인 지배를 통해서만은 오래도록 정치적 통합을 재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일정한 사회적 신념체계에 의거하고 그것에 의해 정당한 정치지배로 승인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베버가 말하는 ‘지배의 정당성 근거’가 모든 정치적 지배·지도·통합에서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는 ‘정치’가 자기의 유지를 위해 일정한 ‘사상’적 정초를 원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후지타 쇼조는 이러한 역사의 혼탁한 미로에서 우리 인간을 놓여나게 하는 길은, 먼저 그 미로의 구조를 궁구하려는 노력으로부터만 열린다고 보았다. 그러한 노력을 보증하려는 정신이야말로 우리의 내면적 정통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의 구분, 주술로부터 해방될 것인가, 주술을 합리화할 것인가

이 책은 󰡔근대 일본사상사 강좌󰡕 제2권 󰡔정통과 이단󰡕에서 후지타 쇼조가 담당한 테마 「근대 일본의 이단 유형들」을 집필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것이지만, 후지타 쇼조의 영국행으로 논고는 미완성인 채로 중단되었고 「보고」와 「토론」 기록은 녹음테이프에서 풀어놓은 원고 상태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근대 일본에서의 최대 이단, 곧 마르크스주의 운동 내부에서 발생했던 정통과 이단에 대한 검토가 애초 후지타의 분담 주제였다. 그러나 곧 그는 일본의 사상사를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검토하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나 그리스도교를 둘러싼 서양 사상사 전체에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후지타는 다양한 유형의 사회에 모두 이단이 존재하고 그 이단의 존재 형태나 특징이 제각기 다르므로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 우선 사회의 문화적 유형과 거기서 생겨나는 이단의 유형 사이에서 보이는 상관관계의 세 가지 기본적 이념형을 추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이념형 중 하나는 초월적 종교 아래서 베버가 말하는 ‘주술로부터의 해방(Entzauberung)’을 사회적으로 관철하려는 것이고, 거기서 당연히 사회의 혁신적인 합리화가 발생함으로써 제도가 형성되는 경우(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이다. 다른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주술 그 자체를 ‘제의(祭儀)’로서 합리화’하고 그로써 사회적 통합을 수행하려는 사회(일본의 천황제 사회)이다. 이를 ‘주술제의(Magie)로부터의 해방’에 대비되는 ‘주술의 합리화’ 경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베버가 중국의 유교를 특징지었던 것으로 ‘질서의 합리주의’ 사회이다.

삼위일체의 신앙 또는 도그마

후지타는 천황제의 일본 사회를 그리스도교의 서구 사회와 비교·분석하며, 그리스도교 사회의 정통·이단 논쟁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삼위일체에 대해 살펴본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인은 신앙의 신비로 받아들이는 교리이지만 비기독교인에게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도그마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啓示)한 하느님은 성부(聖父)·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세 위격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며 유일한 실체’라는 교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이 있었다.
아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하여, ‘아들’은 아들인 이상 ‘태어난 것’이고 ‘태어난 것’인 한에서 그 존재에는 ‘시작점’이 있고, 그 존재에 ‘시작’이 있는 것은 논리적 필연으로 ‘비(非)존재’였던 때가 있었음을 뜻하며 따라서 그것은 ‘영원’한 신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훌륭한 논리적 규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미묘한 차이를 파고드는 논리는 ‘신의 아들’ 예수를 다만 역사적 존재로 함몰시켜버린다. 그 경우에 예수는 거대한 정신사적 변혁을 이룩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고작 역사적 인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회의 교의적 기초인 ‘삼위일체’를 요동치게 하기에 이른다. 교회 전체의 통일에 심혈을 기울이던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논리에 반대해 ‘아버지와 아들’의 일체성을 확보하려고 분투했다.
삼위일체야말로 현세적인 ‘보이는 집단’으로서의 교회(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 교회)에 대비해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언제나 어느 장소에서도 ‘성령’이 깃들 수 있는 곳이다. 그것에 의해서만 교회는 다른 정치적 조직과 구별된다. 따라서 혹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통일성이 그 3자 사이의 어딘가에서 한 치라도 깨지게 된다면, (1) 교회는 아버지인 신과의 연속성을 잃고 이 세상 속 인간 예수를 교조로 하는 오직 세속적인 집단이 되어버리거나, (2) 신도 중 누군가가 함부로 ‘신’ 혹은 ‘신과 예수’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것을 허가하게 되거나, (3) 교회에 깃든 ‘영(靈)’이 ‘성령’이라는 보증을 잃게 됨으로써 각 지역을 배회하는 숱한 주술적 정령과의 구별 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각종의 주술제의적 신앙이 교회로 흘러들어가 악령이 거꾸로 교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교회가 세속적 집단이 되어버리면 전통적 주술은 자유롭게 유입될 것이며 신도는 교회를 벗어나 함부로 신과 예수를 믿고 받들게 될 것이므로 그것은 곧 교회의 해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균열은 그리스도교회에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란 단지 광신적인 망상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비합리적 교설이 아니라 ‘주술제의로부터의 해방’을 감행하고 물신숭배를 타파했던 초월적 보편종교가 자기를 실정적인 형태로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고 복고적 반동과 인간의 자연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의 정신적 존재를 지켜나가기 위해 불가결했던 교의였다. 삼위일체가 교회 제도에서 사활의 문제였던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그리스도교 국가의 역사적 도정을 따라 나타난 수많은 이단과의 대결에서 이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피해왔던 과정은 늘 아슬아슬한 모험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교회정치의 발달은 또다시 정통과 이단의 대결을 부르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천황과 신들, 그 형용모순의 관계

현세의 통치자로서 일본의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다. 그러나 천황은 자연의 위협이나 전쟁의 위기에서 사회를 구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존재가 아니다. 천황의 신성성은 그러한 원천이 아니라 그의 혈통적 배후에 신들이 있음으로부터 도출된다. 천황은 신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신성화되는 것이다. 천황은 신들을 모시는 존재이지만 모셔지는 신들 또한 다른 신을 모시는 존재이다. 천신조차도 영매자이지 신이 아니다. 제의의 대상인 영은 끝내 증발하고 만다. 소급해 올라간 끝에 천신은 이름마저 없어지고 천신 일반이 되며 그 신이 절하던 대상은 그 존재성 자체를 상실한다. 신들은 단지 천황의 신성성을 보증해주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 최후의 지점에서 신은 사라지고 구체적 제의 행위만이 남기 때문에 모셔지는 신보다 모시는 신 쪽이 강한 존재가 된다. 거기로부터 제사 공동체의 수장인 천황의 신성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느 영(靈)이든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신으로부터 왔는지 아닌지를 시험하라’(「요한1서」 [4:1])라고 하는 정신은 없다. 영이 특정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영을 구별하고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구별이 가능한 것은 영 위에 혹은 영 바깥에 절대적인 신이 군림하는 경우뿐인 것이다. 따라서 거기서는 여러 영을 구별하고 정신세계를 조직적으로 질서 짓는 과정은 생겨날 여지가 없다. 질서화가 가능한 것은 영의 체계가 아니라 주술적 제의의 체계뿐이다. ‘제사장=영매자’는 당연한 것이면서 ‘이 세상’의 것이므로 주술적 제의의 체계는 현세적 질서이며 정치질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천황제의 제정일치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의 관념과 의식의 자각적 독립이 없는 비정치적인 질서원리인 것이다. 그렇게 주술제의적인·정치적인·비정치적인 현세적 통합체로서만 체계적 질서화가 생겨난다.
천황제의 주술적 제의 아래서는 상대가 부정(不定)으로 막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상대에 대한 관계의 방식을 원리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제의의 존재방식의 ‘옳고 그름’이 체계적으로 문제시되는 일이 없다. 이 경우에 ‘취해야 할 태도’는 ‘삿된 마음이 아니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제의에 접하라’는 주관적 심정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는 상대가 무엇이든 막론하고 타당한 가르침이다. 이리하여 천황제적 의식구조에서는 신 곁에 보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예배하는 자의 자연적 심정 곁에 보편적 상태가 요구된다. 심정의 곧음만을 가르치는 교설은 객관적인 양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사색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전자는 태도의 자연스러움만을 요구하고 후자는 무엇보다도 진리에 합치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문제 삼는다.
거기에선 결코 도그마는 태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또한 객관적으로 타당해야 한다고 절대적으로 확신된 규범체계에 따라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정치사회의 통합에서 제의 이상의 규칙 체계가 필요해지자마자, 그것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세계적 사상의 여러 체계가 아주 간단히 수용된다. 유교는 물론 불교, 기리시탄,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조차 그런 관점에서는 수용이 허락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국체(國體)의 무한포옹성’(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의 사상󰡕)과 세계적 사상체계들의 ‘잡거성(雜居性)’(마루야마, 같은 책)이 일본 사회의 특징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수용된 사상체계가 한번 제사공동체로서의 국민적 통일을 와해시킬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자마자 그것은 즉각 가이쿄(外敎)와 아다시카미(他神)로 이단시된다.
전통적 정치질서가 안정되어 있는 경우, 수용된 여러 사상과 종교는 멋스러운 이국의 교설로서 진귀하게 여겨지고 존경을 받기까지 한다. 외국문화를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존경받는 교양인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교의 단계에서는 존경받고 봉행되던 것이 전통적 정치질서의 안정이 무너지면서 천황제적 의식구조에서 인지되는 위기감이 높아지면, 이교는 이단으로 간주되면서 비난과 박해를 받는다. 일반인에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교는 질투 섞인 복수의 성격을 띠는 박해의 과정을 거치며 공정한 이론적 대결은 사라지고 일본 사회는 갈수록 무사상(無思想)의 사회가 되어간다.

마루야마 마사오와의 토론

후지타는 일본 정치사상사의 거목인 스승 마루야마 마사오와의 토론(제3장)에서 일본의 사상사 속에서 성립된 ‘자연적 이단’에서 ‘사상적 이단’에 이르는 다양한 이단 형태를 언급한다. 고대와 중세의 여러 이단에서 근대의 메이지유신과 내란, 소요, 운동 등 사회의 흐름과 이단의 변화 과정, 노농파와 강좌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단 형태의 분류와 그들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이단을 입체적이고 동적으로 파악하며 ‘이단의 부랑적 형태’로부터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스스로 정통의 자부를 가진 이단’을 분기시켜가는가에 대해 답을 찾고 있다.

우리의 내면적 정통사상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원제 異端論斷章)󰡕가 구상되었던 것은 ‘의제(擬制)의 종언’(요시모토 다카아키)이나 ‘이데올로기의 종언’(대니얼 벨)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시대였다. 무릇 ‘사상’이 본래 담당해야 할 ‘참된 것’에 대한 진지한 접근의 노력이 후퇴하고 일체의 정신적 관계를 ‘가장 원초적인 정치적 관계로 환원’하는 경향이 널리 퍼지는 상황이 그 시대의 심층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정통과 이단’이라는 테마를 ‘사상’의 세계에서의 ‘권력투쟁’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외양으로부터 벗겨내어 그 기저에 있는 ‘역설적인 정신의 태동’에까지 소급하고 ‘혼탁한 미로’로부터의 탈각의 ‘현대적 방법’을 ‘정통과 이단’을 둘러싼 인류 정신사의 드라마 속에서 다시 파악하려는 후지타의 장대한 입장 설정의 반(反)시대적 비판성은 명확하다.
본디 정통도 이단도 이 세상 질서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선택하는 것에 의해 현세적 정치를 상대화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것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거꾸로 정치적 항쟁에 다양한 형태로 관련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 ‘혼탁한 미로’로부터 탈각하려는 시도 속에서 정통과 이단의 대립은 어떠한 사상적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 절실한 물음의 탐구에서 후지타를 이끌었던 것은 ‘우리의 내면적 정통사상’에 대한 의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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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ntroduction

후지타 쇼조(지은이)

사상사가, 비평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6년 호세이 대학 법학부 교수가 되었다. 1971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9년간 재야의 지식인으로 출판사의 고전·시민 세미나 조직에 참여하며 활동하다가 이후 같은 대학에 복직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천황제론을 계승한 첫 논문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1956)는 천황제 파시즘 분석을 중심으로 한 전후사상사의 획기적인 비평으로 평가받는다. 1967년 5월 영국의 계약직을 얻어 일본을 떠나기 직전까지 '정통과 이단' 연구회의 멤버로서 스승 마루야마, 선배 이시다 다케시와 함께 발제·토론을 했으며, 쓰루미 슌스케 등과 더불어 '공동연구 전향'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이후 '사상사보다는 정신사'라는 모토 아래 작업했으며, 과작이지만 마루야마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현대 일본 최후의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2003년 직장암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1966), <유신의 정신>(1967),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1975), <정신사적 고찰>(1982), <전체주의의 시대경험>(1995), <전후정신의 경험>(1?2, 1996)을 썼고, 생전과 사후에 각각 <후지타 쇼조 저작집>(전10권, 1997~1998), <후지타 쇼조 대화집성>(전3권, 2006)이 간행되었다.

윤인로(옮긴이)

독립출판 “파루시아” 편집주간, 『신정-정치』 『묵시적/정치적 단편들』을 지었고, 『이단론 단편: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 『국가와 종교』 『파스칼의 인간 연구』 『선(善)의 연구』 『일본 이데올로기론』 『일본헌법 9조와 비폭력』 『정전(正戰)과 내전』 『유동론(遊動論)』 『세계사의 실험』(공역) 『윤리 21』(공역) 『사상적 지진』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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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저작집 머리말 - 뒷모습에 대하여 
머리말 - 보주(補註)를 겸하여 
서문 

제1장 이단의 유형들 - 문화사회의 유형들과의 상관성에서 

제2장 일본 사회에서의 이단의 ‘원형’ 
제1절 주술적 제의로서의 천황제와 ‘이교의 이단화’ 
제2절 공적 주술제의를 위협하는 것으로서의 ‘주술이단’ - 그 원형과 분극화 과정 

제3장 근대 일본에서의 이단의 여러 유형 - 보고와 토론 
1. 보고 (후지타 쇼조) 
2. 토론 (마루야마 마사오, 이시다 다케시, 후지타 쇼조) 

해제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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