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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불 외교자료

근대 한불 외교자료 (5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이지순, 역 박규현, 역 김병욱, 역
서명 / 저자사항
근대 한불 외교자료 / 이지순, 박규현, 김병욱 옮김
발행사항
서울 :   선인,   2018  
형태사항
3책 : 삽화 ; 23 cm
총서사항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연구소) 한불외교자료총서 ;01-03
원표제
Correspondance politique et commercial : Nouvelle Série 1895~1907
ISBN
9791160681741 (v.1) 9791160681758 (v.2) 9791160681765 (v.3) 9791160681734 (세트)
일반주기
색인과 해제수록  
본 자료집은 "Correspondance politique et commercial(정치·통상 공문)/ Nouvelle Série, 1895~1907"을 번역한 것임  
내용주기
1. 1895. 12~1906. 12 (552 p.) -- 2. 1907. 01~1910. 08 (479 p.) -- 3. 1910. 08~1917. 06 / 1897~1917 (60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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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a 본 『근대 한불 외교자료 I·II·III』은 한국학진흥사업단의 토대연구지원사업에 의해 수행되었음 ▼g (S-2013-0986-000)
700 1 ▼a 이지순, ▼e▼0 AUTH(211009)126794
700 1 ▼a 박규현, ▼e▼0 AUTH(211009)13842
700 1 ▼a 김병욱, ▼e▼0 AUTH(211009)136325
945 ▼a KLPA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7.53044 2018 1 등록번호 11179328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7.53044 2018 2 등록번호 11179327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7.53044 2018 3 등록번호 11179327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1895년부터 1917년까지 주한 프랑스 공관이 한국 국내정치에 관해 작성·보고한 방대한 자료들을 번역한 결과물이다. 해당 자료들은 지금까지 프랑스 외교문서 보관소에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자료들 중에서 남한 문서철에 보관되어왔으며, 그중에서 본 자료집은 “Correspondance Politique et Commerciale(정치·통상 공문)/Nouvelle Serie, 1895~1907”을 번역한 것이다.

개항 이래 한국은 서양의 열강 각국과 조약을 체결하였고, 체약국들은 주한 공관을 설치하였다. 체약국들의 주한 공관들은 본국에 한국의 상황을 꾸준히 보고하였으며, 이렇게 보고된 문서들은 당시 그들과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교류 관계를 알려주고 있다. 프랑스 역시 주요 체약국 중 한 국가로 한국에 진출해 있었고, 다른 열강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국내정치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주한 프랑스 공관은 이러한 한국의 국내정치 상황을 프랑스 외무부로 그때그때 보고했다. 특히 1896년 주한 프랑스 공사관이 완공되며 본격적으로 방대한 양의 문서를 작성하였다. 본 자료집 <근대 한불 외교자료 Ⅰ~Ⅲ권>은 1895년부터 1917년까지 주한 프랑스 공관이 한국 국내정치에 관해 작성·보고한 방대한 자료들을 번역한 결과물이다. 해당 자료들은 지금까지 프랑스 외교문서 보관소에 아시아-오세아니아(Asie-Oceanie) 지역 자료들 중에서 남한(Coree du sud) 문서철에 보관되어왔으며, 그중에서 본 자료집은 “Correspondance Politique et Commerciale(정치·통상 공문)/Nouvelle Serie, 1895~1907”을 번역한 것이다. 이전의 1854년부터 1901년까지의 자료들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프랑스외무부문서 1권~9권>(2002~2010)으로 발간된 바 있다.
아관파천 이후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그해 8월 광무란 연호를 쓰기 시작하면서 대한제국 시대를 열었다. 이때는 열강들 간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면서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였다. 유럽 내의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외교 노선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까지 반영되었고, 유럽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차적 제휴를 서슴지 않았다. 대한제국과 관련해서도 프랑스·러시아 동맹, 러시아·일본 동맹, 영국·일본 동맹 등 열강들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이에 외교관계의 중요성을 인지한 고종은 특명전권공사로 민영환을 임명하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파견하였다. 고종은 대한제국 내 러시아나 일본 세력의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때로는 반일 정책과 반러 정책을, 때로는 두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청, 미국, 프랑스 등과 국제 관계를 형성하며 다양한 대외정책을 실시하였다.
고종의 적극적 외교정책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중립정책을 통해 나라의 자주권을 확립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으나, 결국 대한제국은 여러 사건들과 을사늑약 등을 거쳐 일본의 통치 체제 하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1897년부터 1917년까지의 시기는 한국 근대사의 대대적 전환기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약 20년간 대한제국 시기(1897~1910), 일제 통감부 시기(1906~1910), 병합 이후의 시기(1910~1917)가 이어졌다. 본 자료집은 일본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해 통감부 시기를 지나 마침내는 병합을 이루어 총독부를 설치해 본격적인 식민통치를 실시하는 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심 내용은 대한제국부터 통감부 시기 국내정치 상황과 일본의 정책 시행, 병합 후 국내정치 상황과 일본의 정책 시행, 대한제국과 황실의 대내외 문제, 한불관계 및 주한 프랑스인들 관련사항 및 제주도 교안사건 등에 관한 것이다. (해제 中)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이지순(지은이)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메스(Metz)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소장이다. 프랑스어권연구소장, 프랑스문화예술학회장, 한국퀘벡학회장 등을 지냈다. 페미니즘 문학과 문화, 20세기 여성 작가들, 문학과 영화의 조우 등 프랑스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들을 해왔다. 최근에는 캐나다 퀘벡 문학으로 그 영역을 넓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프랑스 소설>, <프랑스 명작 살롱>(공저), <키워드로 풀어보는 퀘벡 이야기>(공저) 등의 저술과 <퀘벡 영화>, <방랑하는 여인> 등의 번역서가 있다. 그의 문턱 없는 강의실에서는 ‘사랑과 문학’을 테마로 한 청춘들과의 뜨거운 소통이 지금도 한창이다.

박규현(지은이)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파리 8대학에서 '모리스 블랑쇼에게 있어서의 광기의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모리스 블랑쇼에게 있어서 광기의 글쓰기」「재난의 경험으로서의 글쓰기」「비-현전으로서의 책의 문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 등이 있다.

김병욱(지은이)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보제공 : Aladin

목차

[V.1]
ㆍ해제 

1895~1897년 

[1]	을미사변 이후 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해 뮈텔 주교가 상하이 외방선교회 재무담당관 로베르 사제에게 보낸 편지(1895. 12. 12) 
[2]	을미사변에 관해 뮈텔 주교가 상하이 로베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누군가의 보고(1896. 1. 2) 
[3]	국왕을 러시아 공사관에서 탈취하려는 음모에 관한 보고(1897. 1. 12) 
[4]	베베르 공사의 개입에 따라 한규설을 석방한 사실에 대한 보고(1897. 1. 16) 
[5]	베베르 공사의 개입으로 국왕 탈취 음모 가담자들에게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음을 보고함(1897. 2. 3) 
[6]	뮈텔 주교가 상하이 로베르 신부에게 보낸 을미사변 관련 편지에 대해 상하이 총영사관에 보고함(1896. 1. 2) 
[7]	유생 및 신료들의 간청으로 고종이 경운궁으로 이어함(1897. 2. 20) 
[8]	고종의 경운궁 이어 사실을 알리는 콜랭 드 플랑시의 전보 전달(1897. 2. 20) 
[9]	신궁에 정착하게 된 고종은 김병시를 의정부의정으로 임명하고 백성들에게 조칙을 발표함(1897. 2. 24) 
[9-1]	별첨 1ㅡ환궁에 동의하는 국왕의 조칙 
[10]	고종의 신궁 입궐, 러시아 공사로 스페에르 씨의 서울 복귀 가능성, 서울 주재 청 총영사로 당소의 임명을 보고함(1897. 2. 27~28) 
[11]	한규설의 복직 문제와 의정부 회의 주재에 대한 조선의 상황(1897. 3. 15) 
[12]	서울에 게시된 익명의 벽보 내용을 친러파의 소행으로 추측하여 보고함(1897. 5. 25) 
[13]	1987년 6월 18일 모의사건에 관한 보고(1897. 6. 18) 
[14]	모의사건의 전말과 모의자들의 처벌(1897. 7. 29) 
[15]	측근을 구하기 위한 대원군의 내정 개입으로 야기된 혼란(1897. 8. 5) 
[16]	대한제국의 새 내각 구성과 활동(1897. 11. 8) 

1898년 

[17]	대한제국 내의 반러 감정과 반외세 움직임(1898. 4. 16) 
[18]	고종의 반러시아 감정과 고관들의 임명(1898. 4. 26) 
[19]	서재필의 행보와 논란이 된 『매일신문』의 기사들(1898. 6. 2) 
[19-1]	별첨 1ㅡ프랑스 회사의 권리를 주지시키기 위해 조병직에게 쓴 편지 
[19-2]	별첨 2ㅡ콜랭 드 플랑시가 외부대신 조병직에게 외교문서 내용 공개는 국제관례 위반이라는 편지를 보냄 
[19-3]	별첨 3ㅡ외부대신 조병직이 프랑스 공사에게 보낸 답신 
[19-4]	별첨 4ㅡ플랑시가 외부에 보낸 공문 내용에 관한 『매일신문』 기사 
[19-5]	별첨 5ㅡ독립협회가 외국 공사들에 대한 외부대신의 대응에 대해 문의함 
[19-6]	별첨 6ㅡ프랑스와 러시아 공사의 공문 관련 문의에 대해 외부대신 조병직이 독립협회에 보낸 답신 
[19-7]	별첨 7ㅡ『매일신문』의 프랑스 외무부 공문 게재에 대해 프랑스가 외부대신서리 유기환에게 조병직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고 조치를 취하길 바라는 편지를 보냄 
[20]	고종의 황국협회 구성 계획과 ‘청년애국회’ 결성 음모(1898. 7. 23) 
[20-1]	별첨 1ㅡ황태자에게 권력을 이양하려는 청년애국회의 선언 
[21]	독립협회의 이용익 반대 운동과 고종의 외국인 친위대 구성 움직임(1898. 9. 8) 
[22]	반개혁적인 부패 각료들의 사임을 요구하는 독립협회 회원들의 시위(1898. 10. 15) 
[23]	서울에서의 불교 사찰 건축 계획과 그 의의에 관한 보고(1898. 10. 23) 
[24]	독립협회의 중추원 개편 요구와 고종의 독립협회 말살 시도(1898. 11. 6) 
[25]	만민공동회의 집회와 독립협회의 공식적 재건(1898. 11. 12) 
[26]	독립협회의 재건에 대한 민중 봉기와 헌의6조 요구(1898. 11. 28) 
[26-1]	별첨 1ㅡ독립협회와의 무력 대립을 중재하는 고종의 칙유 
[26-2]	별첨 2ㅡ보부상단과 독립협회의 물리적 대립을 중재하는 고종의 칙유 
[27]	독립협회의 중추원 개편 요구(1898. 12. 7) 
[27-1]	별첨 1ㅡ개편되는 중추원 정관 
[28]	중추원 개편, 보부상단 해체, 헌의6조 이행 등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불만으로 계속되는 집회와 내정 불안(1898. 12. 17) 

1899년 

[29]	만민공동회의 해산에 대한 프랑스 공사의 상황 보고(1899. 1. 10) 
[29-1]	별첨 1ㅡ만민공동회의 도심 집회를 해산하라는 칙령 
[29-2]	별첨 2ㅡ만민공동회 해산에 대한 1898년 12월 27일자 『독립신문』 기사 
[30]	순헌황귀비 엄씨와 그 측근들의 계략에 대한 프랑스 공사의 상황 보고(1899. 4. 12) 
[31]	의정부참정 신기선의 유교적 법령 복원 시도(1899. 6. 6) 
[31-1]	별첨 1ㅡ연좌율(連坐律) 복원에 반대하는 외교사절단 공동 서한 
[32]	남부(전라도)지역에서 발발한 영학 운동(1899. 6. 8) 
[33]	대한제국의 퇴보 조치를 예방하기 위한 외교단의 노력의 결과(1899. 6. 14) 
[33-1]	별첨 1ㅡ1899년 6월 5일 외교단 공동 서한에 대한 외부대신 박제순의 답변 
[34]	주모자가 밝혀지지 않은 서울 폭탄 테러 사건의 경과에 대한 상세 보고(1899. 6. 15) 
[35]	서울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주모자 체포와 일본이 취한 조치 등 경과 보고(1899. 6. 30) 
[36]	전라도 소요사태와 현지 외국인 거주민들의 안전 조치에 대한 보고(1899. 7. 3) 
[37]	서울 도심 폭파사건의 진상 조사 및 광인 황의수의 궐내 침입 사건 경위와 그 처벌(1899. 7. 17) 
[38]	대한제국의 독립신문 탄압과 엠벌리의 반발(1899. 7. 24) 
[39]	서울에서의 폭발 사건 연루자 처벌(1899. 8. 17) 
[40]	대한제국 황제의 원수부 설립 계획(1899. 8. 22) 
[40-1]	별첨 1ㅡ대한국 국제 내용 확정 

1900년 

[41]	통신원 발족 경위(1900. 3. 28) 
[42]	민비 시해 관련 두 정치인의 처형과 이에 대한 일본의 항의(1900. 6. 7) 
[43]	청국에서의 외국인 학살과 대한제국 정부의 대응(1900. 6. 28) 
[44]	국경 주변 중국인들의 약탈과 한반도의 치안상태(1900. 8. 25) 
[45]	대한제국에서 반(反)외세, 반(反)기독교 성향의 분출(1900. 11. 28) 

1901년 

[46]	제주도 소요사태에 대한 프랑스 해군성의 개입(1901. 5. 28) 
[46-1]	별첨 1ㅡ제주 소요사태를 보고하는 해군성 전보 
[47]	제주도 소요사태에 따른 군함 파견에 관한 보고(1901. 5. 30) 
[48]	제주도의 소요사태와 프랑스 군함의 활동에 관한 보고(1901. 5. 31) 
[48-1]	별첨 1ㅡ제주도 소요사태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뮈텔 주교의 메모 
[49]	쉬르프리즈호의 함장이 보낸 전보와 제물포 도착 보고(1901. 6. 4) 
[50]	극동함대 사령관이 보낸 전보의 전달(1901. 6. 7) 
[50-1]	별첨 1ㅡ동일 전보 사본을 파리 해군성 참모부에 전달 
[50-2]	별첨 2ㅡ동일 전보 사본을 프랑스 해군성 참모총장에게 전달 
[51]	제주도 소요사태의 해결 과정과 현 상황(1901. 6. 12) 
[52]	극동함대 사령관이 보낸 전보 전달(1901. 6. 13) 
[53]	극동함대 사령관이 보낸 전보 전달(1901. 6. 19) 
[53-1]	별첨 1ㅡ제주민란 수습을 위한 프랑스 포함의 활동 보고 
[54]	제주 민란 수습을 위한 프랑스 포함의 활동 보고 전달(1901. 6. 24) 
[55]	제주도 소요사태에 대한 종합적 보고(1901. 6. 28) 
[56]	제주도 소요사태에 대한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의 보고서에 대한 환기(1901. 8. 7) 
[57]	제주도 소요사태 재판 과정과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1901. 9. 20) 
[58]	지도에서 발생한 천주교도 박해 사건(1901. 9. 30) 
[58-1]	별첨 1ㅡ드에 신부의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한 지도섬 천주교도 박해 사건 
[59]	제주도에서 발생한 천주교도 박해 사건 해결 방침에 대한 의견(1901. 11. 6) 
[60]	제주도 소요사태 관련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의 보고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의 답변(연월일 미상) 

1902년 

[61]	황궁 확장으로 초래된 외국 공관들의 불편과 그 대응책(1902. 6. 6) 
[61-1]	별첨 1ㅡ외국 공사들이 대한제국 외부대신서리에게 보낸 집단 각서 
[62]	엄비 측근 이근택의 이용익 축출 시도와 이용익의 러시아 공사관 은신(1902. 12. 2) 
[62-1]	별첨 1ㅡ이용익이 황귀비를 양귀비에 빗대 말한 데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의정부가 황제폐하께 올린 집단 보고 
[63]	이용익과 관계하여 고종의 입장과 열강의 입장 표명 및 대처(1902. 12. 18) 

1903년 

[64]	황제의 통치 40주년 축하연 연기와 황실의 칩거(1903. 5. 7) 
[65]	황실의 칩거 마감과 국사의 재개(1903. 5. 18) 
[66]	황제의 칩거 연장과 이근택의 계속된 이용익 살해 및 황제 고립 음모(1903. 6. 28) 
[67]	계속되는 대한제국 황궁의 업무 중단 상태(1903. 7. 23) 
[68]	대한제국의 군대 문제와 불안한 상황(1903. 12. 24) 

1904년 

[69]	동학 교도들의 반란과 사태의 심각성(1904. 3. 8) 
[70]	친일 성향 일진회와 진보회의 활동을 규제하지 못하는 황실의 권위(1904. 11. 4) 
[71]	일진회 및 다른 여러 단체들의 활동과 황제의 처세(1904. 12. 15) 
[72]	제주 민란 희생자 묘지 조성과 선교사의 보호조치 부탁(1904. 12. 22) 

1905년 

[73]	일본 정부에 의해 외부(外部) 신임 고문으로 지명된 스티븐스의 서울 부임(1905. 1. 8) 
[74]	공진회와 일진회의 소요에 따른 내각 개편(1905. 1. 14) 
[75]	일본 정부가 대한제국 상무 고문으로 지명한 미국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 대한제국에 도착한 이주민들에 대해(1905. 1. 17) 
[76]	이용익의 귀국과 하세가와의 대한제국 군대 개편 계획(1905. 1. 21) 
[77]	일본인 재정 고문 메가다가 주도한 대한제국 화폐ㆍ군대ㆍ통신 체계의 개혁(1905. 1. 24) 
[78]	내각 구성, 지방행정조직 개편, 외교권 제한 등과 관련한 일본의 동향(1905. 2. 15) 
[79]	대한제국의 화폐 개혁과 경무청 재구성(1905. 3. 18) 
[80]	통신원 통제 및 외교권 박탈을 위한 일본의 압박과 이에 대한 저항 조짐(1905. 4. 20) 
[81]	대한제국의 통신협정 수정 요구와 일본의 국제 우편 업무 장악(1905. 5. 30) 
[82]	일본의 한반도 연안 항행 특권 요구(1905. 5. 30) 
[83]	이용익의 근황, 대한제국 내의 계엄령 강화 움직임(1905. 5. 31) 
[84]	강대국들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일본의 외교 전략(1905. 7. 22) 
[85]	일본의 대한제국 연해 및 내하 항행에 관한 약정서 조인과 이에 대한 저항(1905. 8. 20) 
[86]	대한제국의 위기와 이용익의 행보(1905. 8. 29) 
[87]	고종이 프랑스에 일본의 부당한 행위들을 알리려고 함(1905. 10. 7) 
[88]	대한제국의 상황과 박제순의 복귀(1905. 10. 8) 
[89]	이용익의 훈장 철회(1905. 10. 24) 
[90]	포츠머스 조약과 제2차 영일동맹에 대한 대한제국 정부의 항의(1905. 10. 27) 
[91]	서울의 미군 병사들이 마닐라로 떠난 것에 대한 보고(1905. 11. 2) 
[92]	대한제국의 일본군에 대한 보고(1905. 11. 4) 
[93]	보호조약 체결을 위한 이토 후작의 대한제국 방문(1905. 11. 7) 
[94]	이토 후작의 보호조약 비준 요구와 고종 황제의 저항(1905. 11. 17) 
[95]	1905년 11월 17일 한일 간 체결된 밀약(1905. 11. 17) 
[96]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1905. 11. 18) 
[97]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1905. 11. 18) 
[98]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1905. 11. 19) 
[99]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1905. 11. 20) 
[100]	을사 보호조약의 체결을 전후한 상황 보고(1905. 11. 20) 
[100-1]	별첨 1ㅡ보호조치 내용 
[101]	민영찬이 우회 경로로 입수한 대한제국 전보를 프랑스 외무부에 전달함(1905. 11. 21) 
[102]	일본 공사가 보낸 보호조약의 전달을 알리는 전보(1905. 11. 21) 
[103]	보호조약의 부당성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 서울발 상하이 경유 전보(1905. 11. 23) 
[104]	파리 주재 대한제국 공사에게 받은 서울발 전보의 사본 발송(1905. 11. 24) 
[105]	파리 주재 일본 공사가 보호조약에 관한 일본 정부의 각서를 프랑스 외무부에 전달함(1905. 11. 24) 
[105-1]	별첨 1ㅡ1905년 11월 22일의 구상서 
[105-2]	별첨 2ㅡ대한제국과 일본이 체결한 새로운 협약에 관한 일본제국 정부의 각서 
[105-3]	별첨 3ㅡ동봉된 영문판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 
[105-4]	별첨 4ㅡ대한제국의 공관 폐쇄를 알리는 신문 기사들 
[106]	(상하이의) 전보문(1905. 11. 25) 
[107]	통감부 및 이사청 설립을 알리는 일본 황제의 칙령에 대한 보고(1905. 11. 27) 
[107-1]	별첨 1ㅡ1905년 11월 22일자 일본 황제의 칙령 제240호 
[108]	일본 정부의 보호조약 관련 각서 및 조약 사본 전달(1905. 11. 28) 
[109]	일본 정부의 보호조약 관련 각서, 조약 사본, 일본 공사의 편지 사본 전달(1905. 11. 28) 
[110]	일본 공사가 보낸 보호조약 관련 각서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의 수령증(1905. 11. 29) 
[111]	보호조약 조인이 무력에 의한 것임을 항의하는 문서(1905. 11. 29) 
[112]	을사조약 관련 일본 황제의 칙령과 러시아 대사관으로부터 전달 받은 문서 사본 발송(1905. 11. 30) 
[113]	보호조약과 관련하여 일본 공사관에 접수된 전보 요약(1905. 11. 30) 
[114]	보호조약 사본, 각서 등의 문서 사본을 워싱턴으로 발송(1905. 11. 30) 
[115]	보호조약 프랑스어 번역문의 발송(1905. 12. 1) 
[115-1]	별첨 1ㅡ보호조약 불어 번역본 
[116]	보호조약 사본, 각서 등의 문서 사본을 일본으로 발송(1905. 12. 1) 
[117]	일본 정부가 보낸 전보 요약문의 재발송(1905. 12. 5) 
[118]	보호령의 공식화에 대한 보고(1905. 12. 6) 
[119]	보호조약 타결 과정과 그 여파(1905. 12. 6) 
[119-1]	별첨 1ㅡ일본의 대한제국 보호령 발전 단계 
[119-2]	별첨 2ㅡ대한제국 내의 외국 조계(租界) 
[119-3]	별첨 3ㅡ대한제국 내의 외국 조계 
[120]	협약 조인 후 대한제국에서의 이토 후작의 활동(1905. 12. 7) 
[121]	이완용이 주불 대한제국 명예 총영사에게 전보를 보냄(1905. 12. 15) 
[122]	외국 주재 대한제국 공관의 폐지와 대한제국 주재 외국 공관들의 동향(1905. 12. 16) 
[123]	민영환과 조병세의 자결에 대한 보고(1905. 12. 20) 
[123-1]	별첨 1ㅡ을사보호조약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조약임을 호소하는 조병세의 편지 
[123-2]	별첨 2ㅡ조병세를 체포한 일본의 만행을 프랑스 공사에게 호소하는 편지 
[123-3]	별첨 3ㅡ프랑스 공사에게 대한제국의 자유와 독립을 호소하는 민영환의 유서 
[123-4]	별첨 4ㅡ프랑스 공사에게 열강의 도움을 죽음으로 호소하는 조병세의 편지 
[124]	대한제국 내 일본 통감부 및 이사청 구성(1905. 12. 26) 
[124-1]	별첨 1ㅡ대한제국 내 일본 통감부와 이사청의 구성에 관한 천황 칙령 
[125]	프랑스 외무부가 한일협약 사본을 방콕 주재 프랑스 공사에게 보냄(1905. 12. 30) 

1906년 

[126]	프랑스 외부부에 대한제국 내 통감부와 이사청 설치를 알리는 파리 주재 일본 공사의 구상서(1906. 1. 18) 
[127]	모노토 일본 공사의 구상서 사본을 런던과 러시아로 발송(1906. 1. 20) 
[128]	대한제국 내 일본 통감부와 이사청의 구성에 관한 천황 칙령 번역문 전달(1906. 2. 10) 
[129]	하세가와 장군의 통감서리 취임과 고종의 수동적 저항(1906. 3. 16) 
[130]	이토 후작의 통감 취임과 통감부 경영 전략(1906. 3. 30) 
[130-1]	별첨 1ㅡ이토 후작의 통감 직무 개시 통보 
[130-2]	별첨 2ㅡ이토 후작의 통감 직무 개시 통보에 대한 베르토 부영사의 답신 
[131]	이토 후작의 차관도입 시행과 시정개혁(1906. 5. 4) 
[132]	이근택 일가 암살 시도와 그에 대한 경과 보고(1906. 5. 5) 
[133]	통감부 경영의 어려움과 이토 후작의 일본 귀국(1906. 5. 8) 
[134]	여권 발급 문제에 대한 통감부와의 협상과 그 결과 보고(1906. 5. 28) 
[134-1]	별첨 1ㅡ일본 통감부에 프랑스 선교사들의 특별 여권을 요청하는 공문 
[134-2]	별첨 2ㅡ프랑스 선교사들의 통감부 특별 여권 발급 통지문 
[134-3]	별첨 3ㅡ프랑스 신부들의 특별 여권 발급에 대한 뮈텔 주교의 감사 편지 
[135]	일진회와 천도교(1906. 6. 4) 
[136]	지방의 소요사태ㅡ홍주 “의병”의 반란과 진압(1906. 6. 6) 
[137]	이토 귀국 전의 혼란스런 대한제국 상황(1906. 6. 23) 
[138]	대한제국에 주둔하는 일본군의 만행과 그에 대한 대응(1906. 6. 6) 
[139]	한국인의 대(對)일본인 관계와,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통감부령 제10호(1906. 7. 6) 
[139-1]	별첨 1ㅡ통감부령 제10호 
[140]	서울에 위생 관련 조치들이 채택되었음을 알리는 영사국의 각서(1906. 7. 6) 
[141]	통감부가 시행한 대한제국 내 일본인 인구조사의 문제점과 그 실상 보고(1906. 7. 10) 
[142]	서울의 위생 관련 조치 채택을 알린 영사국의 각서에 대한 정치국의 답변(1906. 7. 10) 
[143]	이토 후작의 귀국과 구류(拘留) 상태에 처한 고종 황제(1906. 7. 12) 
[144]	보호통치에 대한 항의의 뜻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대나무의 전설(1906. 7. 18) 
[145]	모반 핵심인물로 간주된 강 내관의 실종과 일본 측의 수사(1906. 7. 24) 
[145-1]	별첨 1ㅡ프랑스 총영사관 경내 수색을 요청하는 일본 헌병대장의 편지 
[145-2]	별첨 2ㅡ일본헌병대의 수색 요청에 대한 영사관의 답변 
[146]	대한제국 내의 소요사태와 이토의 개혁 정책에 대한 외국 언론들의 시각(1906. 8. 4) 
[147]	일본 당국이 서울 주재 프랑스 영사관에 취한 조치와 경과(1906. 8. 7) 
[147-1]	별첨 1ㅡ일본 당국이 서울 주재 프랑스 영사관에 취한 조치에 대한 항의 
[147-2]	별첨 2ㅡ일본 군부의 프랑스 공관 감시에 대한 공식 항의 
[147-3]	별첨 3ㅡ일본 군부의 프랑스 공관 감시에 대한 일본 측의 해명 
[148]	대한제국 국유재산 관리 규정 반포에 대한 보고(1906. 8. 14) 
[148-1]	별첨 1ㅡ대한제국 칙령 제32호 국유재산 관리 규정 
[149]	월미도에 있는 대한제국 포대의 폐지가 주권 침해임을 알리는 보고(1906. 8. 16) 
[150]	대한제국의 국유재산을 통제하기 위해 통감부가 취한 조치들(1906. 8. 18) 
[150-1]	별첨 1ㅡ황실 소속 불모지 개간에 관한 7월 27일의 칙령 
[151]	일본에 의한 법무원의 설립(1906. 8. 26) 
[151-1]	별첨 1ㅡ법무원 설립을 프랑스 영사관에 통보함 
[151-2]	별첨 2ㅡ통감부 법무원 관제를 통보함 
[152]	월미도 및 소월미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신설 군용철도 개통(1906. 8. 28) 
[153]	베르토 부영사가 보낸 공문 수령증(1906. 8. 28) 
[154]	일본의 대한제국 식민화 시도 방식에 대한 베르토의 보고서 전달(1906. 8. 30) 
[155]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진해와 영흥만을 임의 수용한 이토의 술책(1906. 9. 1) 
[155-1]	별첨 1ㅡ진해만과 영흥만 군항 건설 예정지 약도 및 관련 조항 
[156]	통감부가 시행하려는 대한제국의 소유권 체제 개혁(1906. 9. 2) 
[157]	외국어학교를 위협하는 새로운 규정의 공포(1906. 9. 6) 
[157-1]	별첨 1ㅡ외국어학교들에 대한 규정 
[158]	급증하는 일본인 이주민들의 수와 대한제국 식민지화에 대한 전망(1906. 9. 9) 
[159]	베르토 부영사의 외교적 대응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의 평가(1906. 9. 16) 
[160]	베르토 부영사의 제물포항 공사 관련 보고서를 해군성으로 발송함(1906. 10. 26) 
[161]	진남포와 마산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일본의 계획에 대한 보고(1906. 11. 14) 
[162]	이토 후작의 귀국에 대한 프랑스 총영사의 해석(1906. 11. 21) 
[163]	총영사관 경내에 투척된 보호통치에 항의하는 편지(1906. 11. 27) 
[163-1]	별첨 1ㅡ총영사관 경내에 투척된 보호통치에 항의하는 편지 
[164]	대한제국 관보 전달 요구(1906. 11. 28) 
[165]	대한제국의 특사 파견(1906. 11. 28) 
[166]	영국함대가 대한제국에 도착했음을 보고(1906. 12. 4) 
[167]	이토 후작의 은퇴와 시민파의 쇠락(1906. 12. 9) 
[168]	통감 자리 안정을 위한 이토 후작의 인터뷰에 대한 보고(1906. 12. 10) 
[168-1]	별첨 1ㅡ통감 자리 안정을 위한 이토 후작의 인터뷰 기사 요약 
[169]	대한제국 내 일본 해군기지 관련 보고서 전송(1906. 12. 14) 
[170]	대한제국과 일본의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 산림협동경영 약관 조인(1906. 12. 14) 
[170-1]	별첨 1ㅡ1906년 10월 19일 일본과 대한제국 간의 압록강 지역 산림에 관한 협약 

ㆍ찾아보기

[V.2]
ㆍ해제 

1907년 

[1]	스토리 더글라스의 주장을 실은 『대한제국 관보』에 대해(1907. 1. 18) 
[2]	『코리아데일리뉴스』에 실린 기사와 반향들(1907. 1. 22) 
[2-1]	별첨 1ㅡ『코리아데일리뉴스』의 1907년 1월 16일자 영문기사 복사본 
[2-2]	별첨 2ㅡ『코리아데일리뉴스? 1907년 1월 16일자 기사의 불어번역문 
[2-3]	별첨 3ㅡ1907년 1월 21일의 『관보』 요약문 
[3]	대한제국 통감부에 대한 반박문을 각국에 전달함(1907. 1. 23) 
[3-1]	별첨 1ㅡ권재형의 청원서 원문 
[3-2]	별첨 2ㅡ권재형의 청원서 번역문 
[4]	대한제국에서 일본병력의 감축 보고(1907. 2. 23) 
[5]	이토 후작의 복귀(1907. 3. 21) 
[6]	일본 정부의 보호국 통치 개입 정황에 대한 보고(1907. 3. 30) 
[7]	대한제국 주둔 일본 병력의 감축(1907. 4. 23) 
[8]	대한제국 행정 개혁에 대한 보고(1907. 5. 22) 
[8-1]	별첨 1ㅡ『대한제국 행정 개혁』 사본 
[9]	통감부의 대한제국 개혁과 내각 교체에 대한 보고(1907. 5. 23) 
[10]	이완용 내각의 구성과 성격 및 식민지 체제 가속화에 대한 보고(1907. 5. 28) 
[10-1]	별첨 1ㅡ대한제국 행정 개혁 영문 번역본 
[11]	사임한 의정부 구성원들에 대한 조치(1907. 6. 2) 
[12]	만주와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보고(1907. 6. 14) 
[12-1]	별첨 1ㅡ헤이그 밀사사건 관련 프랑스 언론 기사들 
[13]	고종의 양위를 알리는 급보 사본(1907. 7. 19) 
[14]	고종의 양위 경과를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19) 
[15]	황태자의 황제 대리 임명을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19) 
[16]	고종의 보호국 조약 서명을 전하는 전보(사본)(1907. 7. 20) 
[17]	고종의 양위를 통지하는 일본 대사관의 공문(1907. 7. 21) 
[18]	고종 양위에 따른 보호통치 강화 움직임에 대한 전보(사본)(1907. 7. 21) 
[19]	고종 양위 소식을 해외 공관들에 전하는 전보(1907. 7. 22) 
[20]	고종 양위에 따른 대한제국 내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보고(1907. 7. 24) 
[20-1]	별첨 1ㅡ관보에 실린 황제 칙령 불어 번역본 
[21]	고종의 양위를 통지한 일본 대사관의 공문 수령증(1907. 7. 24) 
[22]	?한일신협약? 체결과 그 내용에 관한 보고(1907. 7. 25) 
[22-1]	별첨 1ㅡ1907년 7월 25일 관보 부록에 게재된 ?한일신협약? 번역본 
[23]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사본)(1907. 7. 25) 
[24]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사본)(1907. 7. 25) 
[25]	새로운 보호조약 체결을 알리는 전보를 해외 공관으로 발송함(1907. 7. 25) 
[26]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대한제국의 위기와 일본 정부의 대응 및 향후 정세 보고(1907. 7. 25) 
[26-1]	별첨 1ㅡ?한일신협약? 번역본(영문판) 
[26-2]	별첨 2ㅡ?한일신협약?을 게시한 관보 원문 
[26-3]	별첨 3ㅡ『재팬 타임즈』에 게재된 ?한일신협약? 영문판 
[27]	일본이 프랑스 외무부에 한일협약에 대해 보고함(1907. 7. 25) 
[27-1]	별첨 1ㅡ?한일신협약? 영문판 
[28]	일본 외무성이 파리 주재 일본 대사관에 한일협약 사실을 알리는 전보(1907. 7. 26) 
[29]	외무부 장관이 페테르부르크 주재 프랑스 대표(133호)와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표(114호)에게 보내는 전보(1907. 7. 26) 
[30]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보내는 전보(1907. 7. 26) 
[30-1]	별첨 1ㅡ?한일신협약? 관련 하야시 자작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프랑스 언론 기사 
[31]	일본 참사관이 ?한일신협약? 제7항의 연도 수정 통지함(1907. 7. 28) 
[31-1]	별첨 1ㅡ?한일신협약? 관련 프랑스 언론 기사 
[32]	황제 폐위 및 군대 해산 등 대한제국의 사건들에 대한 보고(1907. 7. 30) 
[33]	대한제국의 일들과 일본 통감부의 업무수행에 대한 보고(1907. 8. 6) 
[34]	한일신협약 조약에 따른 대한제국 내 사건에 대한 보고(1907. 8. 12) 
[35]	이토 후작의 일본 출국과 통감부의 개편 계획(1907. 8. 21) 
[36]	대한제국 주교 뮈텔 신부의 편지 요약문(1907. 9. 16) 
[37]	대한제국 의병의 동향에 대한 보고(1907. 9. 17) 
[38]	이토 후작의 시정개혁 계획 및 간도 문제와 관련된 도쿄의 동향 보고(1907. 9. 18) 
[39]	대한제국 상황에 대한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관점 보고(1907. 9. 22) 
[40]	통감부 개편 내용에 대한 보고(1907. 9. 24) 
[41]	이토의 서울 복귀와 일본 황태자의 대한제국 여행에 대한 보고(1907. 10. 3) 
[42]	일본 황태자의 서울 방문에 대한 보고(1907. 10. 20) 
[43]	일본 황태자의 서울 방문이 갖는 정치적 의의에 대한 보고(1907. 10. 24) 
[43-1]	별첨 1ㅡ일본 황태자의 서울 체류에 관한 『서울 프레스』, 『재팬 타임즈』 기사 
[44]	대한제국 내의 점점 격화되는 폭동 동향에 관한 보고(1907. 11. 6) 
[44-1]	별첨 1ㅡ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황제께 상주한 보고 
[45]	순종의 대신민 선언문에 대한 보고(1907. 11. 19) 
[45-1]	별첨 1ㅡ순종의 대신민 선언문 

1908년 

[46]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8. 1. 15) 
[46-1]	별첨 1ㅡ재판소구성법 반포 
[47]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대한제국 사법 개혁 관련 공문을 프랑스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1908. 3. 23) 
[48]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안의 일본 의회 통과와 일본의 여론에 대한 보고(1908. 4. 3) 
[49]	『타임즈 오브 인디아』에 실린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관련 기사문에 대한 보고(1908. 4. 30) 
[49-1]	별첨 1ㅡ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을 다룬 『타임즈 오브 인디아』 기사 원본 
[49-2]	1908년 4월 30일 『타임즈 오브 인디아』에 실린 기사 내용 요약문: 일본의 대한제국 수탈 계획 
[50]	대한제국에서의 폭동과 일본의 조치에 대한 보고(1908. 5. 18) 
[50-1]	별첨 1ㅡ대한제국의 평화를 호소하는 순종의 칙령 
[51]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상황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문의(1908. 5. 19) 
[52]	대한제국 정부의 내각 개편에 대한 보고(1908. 6. 5) 
[52-1]	별첨 1ㅡ대한제국 내의 폭동과 관련하여 일본 대사가 수집한 메모 
[53]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8. 8. 1) 
[54]	대한제국의 경제 상태에 대한 보고(1908. 8. 3) 
[55]	대한제국에 있는 일본 행정구역 대표 임명과 관련한 통감부의 행정명령에 대한 반발(1908. 8. 7) 
[56]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시행을 허가하고 그 규약을 승인하는 황명이 공포된 데 대한 보고(1908. 9. 3) 
[57]	동양척식주식회사 정관 발송(1908. 9. 7) 
[57-1]	별첨 1ㅡ법률 제22호. ?동양척식주식회사법? 
[58]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구성과 대한제국에서의 일본의 정책에 대한 보고(1908. 9. 28) 
[58-1]	별첨 1ㅡ대한제국의 부에 대한 다카하시의 평가를 게재한 영문기사 
[59]	『타임즈 오브 인디아』가 게재한 고베 통신원 기사의 전달(1908. 10. 1) 
[59-1]	별첨 1ㅡ1908년 10월 1일자 『타임즈 오브 인디아』 기사 
[60]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정관 번역문을 발송한다는 보고(1908. 10. 23) 
[60-1]	별첨 1ㅡ동양척식주식회사 정관 번역문 
[61]	전라도 태인에서 발생한 시천교도 학살 사건과 이토의 임박한 서울 복귀(1908. 10. 31) 
[61-1]	별첨 1ㅡ1908년 10월 28일자 『재팬 타임즈』 기사 및 29일자 『재팬 크로니클』 기사 
[62]	『타임즈 오브 인디아』에 게재된 일본 통신원 기사의 발송에 대한 보고(1908. 11. 30) 
[63]	대한제국 내의 폭동 진압 관련 문서의 전달(1908. 12. 16) 
[64]	『타임즈 오브 인디아』에 게재된 일본 통신원 기사 전달(1908. 12. 21) 

1909년 

[65]	황제의 남쪽 지방 시찰에 관해 보고함(1909. 1. 6) 
[65-1]	별첨 1ㅡ남부 지방 시찰에 임하는 순종의 칙령 
[66]	대한제국의 개혁과 발전에 대한 1907년 연차보고서(1909. 1. 8) 
[67]	대한제국에서의 사업을 위한 일본의 차관이 결정됨을 보고(1909. 1. 12) 
[68]	대한제국 황제의 남서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1. 14) 
[69]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임명에 대한 보고(1909. 1. 16) 
[70]	대한제국에서 수행된 개혁 및 발전에 대한 연차보고서 발송과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한 보고(1909. 1. 19) 
[71]	대한제국 황제의 한반도 북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1. 22) 
[72]	이토의 통감 사임 계획에 대한 보고(1909. 2. 4) 
[73]	대한제국 황제의 한반도 북쪽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09. 2. 4) 
[74]	대한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보고(1909. 2. 5) 
[75]	대한제국 황제의 이토 히로부미 친왕 관저 방문에 대한 보고(1909. 2. 8) 
[75-1]	별첨 1ㅡ황제의 이토 친왕 관저 방문 건배사 
[75-2]	별첨 2ㅡ이토 친왕의 답례 건배사 
[76]	이토 친왕의 일본행에 대한 보고(1909. 2. 10) 
[77]	이토 친왕의 출국 당시 분위기와 소네 자작과의 관계 보고(1909. 2. 12) 
[78]	1908년 9월 5일자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보고 논점에 대한 보고(1909. 2. 14) 
[79]	내부대신의 해임 결정(1909. 3. 1) 
[80]	대한제국의 개혁과 발전에 관한 1907년의 분석(1909. 3. 22) 
[81]	황제의 농업 장려 제의식에 대한 보고(1909. 4. 6) 
[82]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발족에 대한 보고(1909. 4. 6) 
[82-1]	별첨 1ㅡ우사가와 남작의 동양척식회사 발족 기념 연설문 
[82-2]	별첨 2ㅡ일본과 대한제국의 일본인들에 대한 프랑스 신문기사 
[83]	통감 이토 공과 부통감 소네 자작의 관계에 관한 분석 정보 전달(1909. 5. 1) 
[83-1]	별첨 1ㅡ대한제국의 일본인들에 관한 프랑스 신문기사 
[84]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 강탈을 우려하는 현지 주민들의 불안과 회사의 대응(1909. 5. 6) 
[84-1]	별첨 1ㅡ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우사가와의 선언문 
[85]	이토 공이 일본 통감 직에서 물러나 일본제국 추밀원 의장에 임명되었다는 보고(1909. 5. 23) 
[86]	이토 공이 대한제국에서 편 정책과 행정에 관한 기사가 『타요Tayo(太陽)』지에 게재됨을 보고(1909. 6. 11) 
[86-1]	별첨 1ㅡ이토 통감의 정책과 행정을 비판한 시마다(사부로)의 글 전문 
[87]	소네 자작이 통감으로 임명되었다는 보고(1909. 6. 15) 
[88]	대한제국 황제가 이토 공과 소네 자작에게 칙서를 보냈다는 보고(1909. 6. 17) 
[88-1]	별첨 1ㅡ이토 공에게 보낸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 
[88-2]	별첨 2ㅡ소네 자작에게 내린 대한제국 황제의 칙서 
[89]	소네 자작의 서울 도착을 보고(1909. 6. 22) 
[90]	대한제국 황제가 이토 공에게 친서를 내렸음을 보고(1909. 6. 25) 
[90-1]	별첨 1ㅡ히로부미 공에게 내린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 
[91]	이토가 대한제국 황제에게 하직을 고하며 행한 여러 행사들에 대한 보고(1909. 7. 15) 
[91-1]	별첨 1ㅡ이토 공의 연설문 
[92]	일본 보호국 구성을 위한 결정적 조치들에 대한 보고(1909. 7. 18) 
[92-1]	별첨 1ㅡ보호국 구성 관련 주요 조치들을 특필한 언론 기사들 
[93]	파리 주재 일본대사가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각서’ 전달을 알리는 구상서(1909. 7. 19) 
[93-1]	별첨 1ㅡ‘각서’ 영역본 
[93-2]	별첨 2ㅡ‘각서’ 불역본 
[94]	사법 행정에 관한 한일 간의 각서가 외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보고(1909. 7. 21) 
[94-1]	별첨 1ㅡ파리 주재 일본 대사에게 각서 수령을 통지하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 
[95]	사법과 형무에 관한 한일 간 협정이 이루어졌음을 보고(1909. 7. 22) 
[95-1]	별첨 1ㅡ‘각서’ 영역본을 전하는 이시즈카 총무장관의 편지 
[95-2]	별첨 2ㅡ‘각서’ 
[96]	대한제국 정부 해체의 신호탄인 군부폐지에 대한 보고(1909. 8. 2) 
[96-1]	별첨 1ㅡ군부폐지를 알리는 대한제국 황제의 조서 
[96-2]	별첨 2ㅡ대한제국 황제의 칙령(勅令) 제68호 
[96-3]	별첨 3ㅡ일본의 대한제국 통제 강화 소식을 전하는 『타임즈』지 기사 
[97]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관한 우사가와 총재의 인터뷰를 보고(1909. 9. 7) 
[97-1]	별첨 1ㅡ『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보도된 우사가와 총재 인터뷰 
[98]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에 관한 보고(1909. 10. 8) 
[99]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 과정에 대한 보고(1909. 10. 15) 
[100]	코콥초프 재무장관의 만주 방문 소식을 전하는 기밀 문서(1909. 10. 15) 
[101]	대한제국의 도량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0. 20) 
[102]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가 일본에 위임됨을 보고(1909. 10. 22) 
[103]	일본이 대한제국의 내각 인사에 참여함을 보고(1909. 10. 22) 
[104]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가 일본에 위임됨을 보고하는 전보문(1909. 10. 22) 
[105]	이토의 암살 소식을 전하는 프랑스 신문 기사(연월일 미상) 
[106]	프랑스의 조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전보문(1909. 10. 29) 
[107]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0. 29) 
[107-1]	별첨 1ㅡ1909년 10월 20일자 『황성신문』 기사 번역문 
[107-2]	별첨 2ㅡ통감부 공보에 게재된 ‘통감부 재판소’에 관한 칙령 제28조, 29조, 30조 
[107-3]	별첨 3ㅡ이토 히로부미 암살 원인에 관한 프랑스 신문 인터뷰 기사 
[108]	대한제국에서 벌어진 폭동에 대한 보고(1909. 11. 6) 
[109]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와 관련된 동향 보고(1909. 11. 23) 
[110]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와 관련된 소문 보고(1909. 11. 23) 
[111]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관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1909. 11. 28) 
[112]	대한제국 사법 개혁 관련 답신의 전달(1909. 11. 28) 
[113]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 관련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답신 원본(1909. 11. 28) 
[114]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문제에 대한 보고(1909. 12. 7) 
[114-1]	별첨 1ㅡ일진회의 한일병합성명서 
[114-2]	별첨 2ㅡ국민대회 성명서 
[115]	일진회의 한일병합운동과 일본 통감부의 상황에 대한 보고(1909. 12. 11) 
[116]	일진회의 한일병합운동에 대한 일본 통감부의 공식 입장에 대한 보고(1909. 12. 13) 
[117]	대한제국의 사법 개혁에 대한 보고(1909. 12. 14) 
[118]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테러 사건에 대한 보고(1909. 12. 23) 
[118-1]	별첨 1ㅡ1909년 12월 23일 『서울 프레스』 번역문 

1910년 

[119]	외무부 장관이 파리 주재 일본 대사에게 보낸 서한의 복사본 전달(1910. 1. 3) 
[120]	합방운동과 대한제국의 일본 통감부 상황에 대한 보고(1910. 1. 7) 
[120-1]	별첨 1ㅡ통감 소네 자작의 한국 내 동향을 전하는 『재팬 타임즈』 기사 
[121]	대한제국에서의 일본 보호통치와 관동 조계지의 행정에 대한 보고(1910. 2. 2) 
[122]	이완용 총리에 대한 보고(1910. 2. 5) 
[123]	안중근의 유죄 판결에 대한 보고(1910. 2. 16) 
[124]	대한제국 보호통치와 관동의 행정 분석에 대한 보고(1910. 3. 19) 
[125]	소네 자작에 대한 보고(1910. 5. 12) 
[126]	대한제국 외교 및 식민지 문제에 관한 프랑스의 견해(프랑스 외무부 소장 자료)(1910. 5. 16) 
[126-1]	별첨 1ㅡ대한제국의 병합을 거론한 프랑스 신문 자료 
[127]	이완용 암살을 시도한 이재명의 재판에 대한 보고(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전달)(1910. 5. 19) 
[128]	통감 소네 자작의 은퇴와, 보호국체제를 양국 병합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려는 일본 정부의 구상에 대한 보고(1910. 5. 23)
[129]	통감부가 작성한 연차보고서 내용에 대한 보고(1910. 5. 30) 
[130]	서울 주재 신임 일본 통감과 부통감 임명에 대한 보고(1910. 5. 31) 
[131]	서울의 신임 통감 지명에 대한 보고(1910. 6. 1) 
[131-1]	별첨 1ㅡ통감 및 부통감의 약력 
[132]	대한제국 병합 소문에 대한 보고(1910. 6. 10) 
[133]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편지 사본을 여러 대사관에 전달함(1910. 6. 15) 
[134]	일본인 행정 관리 재편성에 대한 보고(1910. 6. 15) 
[135]	신임 통감 및 부통감 임명과 보호국의 앞날에 대한 보고(1910. 6. 17) 
[136]	대한제국, 타이완, 사할린, 관동의 행정을 관할하는 척식국의 설립에 대한 보고(1910. 6. 23) 
[137]	경찰 위임 협정과 일본 헌병대 보강에 대한 보고(1910. 6. 25) 
[137-1]	별첨 1ㅡ경찰 위임 각서 
[138]	대한제국의 일본 병합을 예고하는 함부르크 통신원의 보고(1910. 6. 25) 
[139]	통감부경찰서관제에 관한 일본 천황의 칙령과 데라우치 장군의 서울 방문에 대한 보고(1910. 7. 5) 
[139-1]	별첨 1ㅡ경찰 위임 각서 
[139-2]	별첨 2ㅡ통감부경찰서관제(1910년 6월 30일자(일본) 『관보』) 
[140]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편지 사본을 여러 대사관에 전달(1910. 7. 16) 
[141]	데라우치 장군의 서울 도착에 대한 보고(1910. 7. 23) 
[142]	대한제국에서 이루어진 발전을 요약한 소책자의 발송에 대한 보고(1910. 8. 3) 
[143]	대한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보고(1910. 8. 11) 
[144]	대한제국 황제의 황위 포기 소문에 대한 보고(1910. 8. 23) 
[145]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 접수에 대한 보고(1910. 8. 21) 
[145-1]	별첨 1ㅡ대한제국의 일본 병합 저지를 당부하는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 
[145-2]	별첨 2ㅡ대한제국의 일본 병합 저지를 당부하는 ‘대한인국민회’의 청원서(불문) 
[145-3]	별첨 3ㅡ‘대한인국민회’의 외무위원회가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ㆍ찾아보기

[V.3]
ㆍ해제 

1910년 

[1]	한국의 정치 상황(1910. 8. 24) 
[2]	일본 대리 공사가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한국 병합 관련 문서들의 전달(1910. 8. 25) 
[2-1]	별첨 1ㅡ파리 주재 일본 대리 공사가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8월 22일자 각서 
[2-2]	별첨 2ㅡ한일병합 조약 
[2-3]	별첨 3ㅡ일본 정부 선언문 번역본 
[2-4]	별첨 4ㅡ일본 천황 칙령 번역본 
[3]	한일 병합에 대한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의 전보(1910. 8. 25) 
[4]	한일 병합에 대한 서울 주재 프랑스 대사의 전보(1910. 8. 26) 
[5]	한일 병합에 대한 보고(1910. 8. 27) 
[5-1]	별첨 1ㅡ한일 병합 조약 번역 사본 
[5-2]	별첨 2ㅡ일본 정부 선언문 번역 사본 
[5-3]	별첨 3ㅡ한일 병합 소식을 전하는 영문 저널 
[6]	한국 병합에 대한 보고(1910. 8. 30) 
[6-1]	별첨 1ㅡ1910년 8월 30일자 『서울 프레스』 영문 기사 
[6-2]	별첨 2ㅡ일본 천황 조칙 분석 및 조선총독부령 제2호 
[6-3]	별첨 3ㅡ1910년 8월 29일의 제319호 천황 칙령 
[7]	한국 병합에 대한 서울 주재 프랑스 총영사의 전보(1910. 8. 31) 
[8]	대한제국 병합에 대한 황제의 칙령과 명령 공포와 이것의 시행을 위한 조치들에 대한 전보(1910. 9. 1) 
[8-1]	별첨 1ㅡ일본 언론에 실린 대한제국 병합에 대한 황제의 칙령, 명령 공포 등의 영문 번역본 
[9]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보고(1910. 9. 3) 
[10]	병합 예산의 결과에 대한 보고(1910. 9. 5) 
[10-1]	별첨 1ㅡ1910년 8월 29일자 조선총독부 관보 
[11]	대한제국의 상황에 대한 보고(1910. 9. 7) 
[12]	서울에 있는 정치단체의 해산에 대한 보고(1910. 9. 13) 
[12-1]	별첨 1ㅡ대한인국민회의 항의문 
[13]	데라우치 자작이 총독으로 임명되었음을 보고(1910. 10. 1) 
[14]	한국의 총독부 조직에 대한 보고(1910. 10. 4) 
[14-1]	별첨 1ㅡ1910년 9월 30일자 황제 칙령 제354호 영문 번역본 
[14-2]	별첨 2ㅡ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 
[14-3]	별첨 3ㅡ조선총독부중추원관제 
[14-4]	별첨 4ㅡ조선총독부중추원 조직 
[14-5]	별첨 5ㅡ여러 칙령들의 분석 
[14-6]	별첨 6ㅡ데라우치 총독의 담화문 
[15]	한국인에게의 귀족 작위 부여에 대한 보고(1910. 10. 11) 
[15-1]	별첨 1ㅡ타임지 기사 ?한일병합과 그 이후? 
[16]	9월의 보고서에 이은 한국 병합에 대한 보고(1910. 10. 12) 
[16-1]	별첨 1ㅡ제354호 칙령 영어 번역문, 인사 목록, 귀족 목록 
[16-2]	별첨 2ㅡ일본 주간지에 실린 기사, ?병합 이후 몇 가지 주의사항들? 불어 번역문 
[17]	한국 병합의 국제적 결과에 관한 각서(1910. 10. 11) 
[18]	조선총독부의 삭발령 소식을 전하는 10월 12일자 통신문(1910. 10. 12) 
[19]	한국 소식을 전하는 10월 23일자 독일 신문기사(1910. 10. 23) 
[20]	한국에서의 금서(禁書) 조치에 대한 서울 주재 프랑스 총영사의 전보(1910. 11. 22) 
[21]	금서(禁書) 목록을 담은 조선총독부 경무총감 고지(告知) 제72호(1910. 11. 19) 
[22]	조선 속주(屬州, province)의 상황(1910. 12. 7) 
[23]	한국에서의 부동산 소유권 문제에 대한 보고(1910. 12. 18) 
[24]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보내는 파리 주재 일본 대사의 편지(1910. 12. 22) 
[25]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보고(1910. 12. 30) 

1911년 

[26]	한국에서의 토지 대장 구성에 대한 보고(1911. 3. 2) 
[26-1]	별첨 1ㅡ토지 조사법(1910년 8월 24일에 공포된 법 제7호) 
[26-2]	별첨 2ㅡ토지 조사법 강화를 위한 규정(1910년 8월 24일에 공포된 탁지부령 제26호) 
[26-3]	별첨 3ㅡ토지 관련 정보 제공에 관한 규정(1910년 8월 24일에 공포된 탁지부령 제26호) 
[27]	한국인 양기탁 체포에 대한 보고(1911. 3. 4) 
[28]	한국인들이 꾸민 음모에 대한 보고(1911. 3. 23) 
[29]	한국 병합에 대한 통지문 수령을 보고함(1911. 4. 8) 
[30]	도쿄 대사관으로 전달한 토지 수용 관련 총독 명령(1911. 4. 24) 
[30-1]	별첨 1ㅡ토지 수용에 관한 1911년 4월 17일자 행정 명령 제186호(번역문) 
[31]	한국의 개혁과 진척 상황에 대한 제3차 연차보고서(1911. 5. 10) 
[32]	조선총독부재판소령에 대한 보고(1911. 5. 12) 
[32-1]	별첨 1ㅡ조선총독부재판소령 
[33]	한국에서 일본 법조항의 적용에 대한 보고(1911. 5. 22) 
[34]	한국 개혁에 대한 일본의 3차 보고서 발송건에 대한 보고(1911. 5. 30) 
[35]	총독부의 담화문 발송에 대한 보고(1911. 7. 10) 
[35-1]	별첨 1ㅡ지방장관회의에서의 데라우치 총독의 담화문 영문 번역 
[36]	토지수용에 대한 법규 발송에 대한 보고(1911. 7. 10) 
[36-1]	별첨 1ㅡ토지수용령시행규칙 
[37]	토지수용에 대한 명령 시행에 대한 보고(1911. 7. 19) 
[37-1]	별첨 1ㅡ1911년 7월 14일 제87호 총독부령 번역본 
[38]	안명근과 양기탁 재판에 대한 보고(1911. 7. 24) 
[38-1]	별첨 1ㅡ양기탁 공소장 요약(1911년 7월 12일자 『서울 프레스』 기사) 
[39]	한국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보고(1911. 8. 24) 
[40]	한국의 공공교육에 대한 보고(1911. 8. 29) 
[40-1]	별첨 1ㅡ한국 공교육의 개혁 관련 칙령 번역문(1911년 8월 27일자 『서울 프레스』 기사) 
[40-2]	별첨 2ㅡ공교육 개혁 지침서(1911년 8월 29일자 『서울 프레스』 기사) 
[41]	한국의 공공교육에 관련한 칙령의 오류를 보고함(1911. 8. 30) 
[42]	한국 병합 기념일 행사에 대한 보고(1911. 8. 30) 
[43]	한국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보고(1911. 8. 31) 
[43-1]	별첨 1ㅡ데라우치 총독과의 회견 번역문(1911년 8월 31일자 『서울 프레스』 기사) 
[44]	한국병합 기념일에 대한 보고(1911. 10. 10) 
[45]	데라우치 총독의 귀환에 대한 보고(1911. 10. 10) 
[46]	한국에 있는 일본인 인구에 대한 보고(1911. 10. 14) 
[47]	일본 정부의 축제 천황(메이지) 탄신축제에 대한 보고(1911. 11. 7) 
[48]	데라우치 백작이 큐슈의 대규모 군사작전에 참여하러 감을 보고(1911. 11. 10) 
[49]	한국 학교조직법규에 대한 보고(1911. 11. 13) 
[49-1]	별첨 1ㅡ조선교육령 
[49-2]	별첨 2ㅡ조선총독의 성명서 
[49-3]	별첨 3ㅡ한국 교육 관련 지침서(『서울 프레스』 기사 발췌) 
[50]	사립학교 규칙에 대한 보고(1911. 11. 28) 
[50-1]	별첨 1ㅡ사립학교 규칙 
[51]	데라우치 백작이 서울로 돌아왔음을 보고(1911. 12. 26) 

1912년 

[52]	1월 11일 데라우치 백작의 조선총독부 중추원 연회 연설에 대한 보고(1912. 1. 18) 
[52-1]	별첨 1ㅡ데라우치 백작의 중추원 연회 연설 번역문 
[53]	간도의 조선 이주민들에 대한 보고(1912. 1. 23) 
[54]	총독부 개편에 의한 행정비용 축소 계획에 대한 보고(1912. 2. 4) 
[55]	데라우치 백작 살해 음모와 중신(重臣) 윤치호 체포에 대한 보고(1912. 2. 18) 
[56]	맥큔 선교사 사건 및 정부에 대한 개신교 포교관들(장로교와 감리교)의 상이한 태도에 대한 보고(1912. 3. 2) 
[57]	조선 주민의 다양성에 대한 보고(1912. 3. 6) 
[57-1]	별첨 1ㅡ1911년 말 기준 조선 내 주민 및 가구 수 
[58]	켄도 신시 건설에 대한 보고(1912. 3. 19) 
[58-1]	별첨 1ㅡ켄도 신시와 건설 예정 철도의 위치를 나타낸 약도 
[59]	맥큔 선교사 사건 및 조선 내 일본 정부에 대한 개신교 포교관들의 태도에 대한 보고(1912. 3. 26) 
[60]	행정개편과 사법개혁에 대한 보고(1912. 4. 17) 
[61]	조선의 교육 관련 자료집 보고(1912. 4. 18) 
[62]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관한 보고(1912. 4. 18) 
[63]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관한 보고(1912. 4. 22) 
[63-1]	별첨 1ㅡ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를 다룬 『서울 프레스』 기사 번역문 
[64]	켄도 신도시에 대한 보고(1912. 4. 22) 
[65]	병합 기념 메달에 관한 보고(1912. 4. 25) 
[65-1]	별첨 1ㅡ병합 기념 메달 도안 
[66]	데라우치 백작의 도장관 회의 연설에 관한 보고(1912. 5. 13) 
[66-1]	별첨 1ㅡ데라우치 백작의 도장관 회의 연설 번역문 
[67]	국유지와 산림의 수호에 관한 데라우치 백작의 명령에 관한 보고(1912. 5. 13) 
[67-1]	별첨 1ㅡ1912년 5월 14일 관보 요약 
[68]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관한 보고(1912. 6. 8) 
[69]	이용구의 장례식에 관한 보고(1912. 6. 11) 
[70]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관한 보고(1912. 6. 18) 
[70-1]	별첨 1ㅡ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대한 기소장 
[71]	일본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 조선총독에 관한 보고(1912. 6. 20) 
[72]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123명에 대한 소송에 관한 보고(1912. 7. 18) 
[73]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123명에 대한 소송에 관한 보고(192. 8. 1) 
[74]	1910~1911년 회계연도에 대한 조선 연차보고서 발송에 관한 보고(1912. 8. 23) 
[75]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123명에 대한 소송에 관한 보고(1912. 8. 26) 
[76]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123명에 대한 소송에 관한 보고(1912. 9. 1) 
[76-1]	별첨 1ㅡ조선에서의 기독교 운동을 반대했다는 주장 
[76-2]	별첨 2ㅡ조선에서의 기독교 운동을 반대했다는 주장 
[77]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123명에 대한 소송에 관한 보고(1912. 9. 2) 
[77-1]	별첨 1ㅡ조선의 민감한 소송 
[78]	데라우치 백작 암살 기도에 연루된 조선인 공모자들에 대한 소송과 판결에 관한 보고(1912. 10. 1) 
[79]	데라우치 백작의 귀환에 관한 보고(1912. 10. 5) 
[80]	조선에 2개 사단을 신설하는 계획에 대한 보고(1912. 10. 10) 
[81]	조선 내 인구 통계표에 대한 보고(1912. 11. 27) 
[81-1]	별첨 1ㅡ각 도(道)의 주민 수(필사본) 
[81-2]	별첨 2ㅡ각 도(道)의 가구 수 
[81-3]	별첨 3ㅡ국적별 주민 수 
[82]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에 관한 행정 명령과 규정에 대한 보고(1912. 12. 7) 
[82-1]	별첨 1ㅡ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의 통제에 관한 조선총독부령 123호(영역) 
[82-2]	별첨 2ㅡ조선총독부의 경무총감부령 제5호ㅡ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의 통제 관련 규정들의 강화를 위한 세부 규정들(영문) 
[83]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에 대한 보고(1912. 12. 16) 

1913년 

[84]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고등법원 심리에 대한 보고(1913. 1. 31) 
[85]	무쓰히토 천황의 기부금으로 시작된 조선의 학교교육 사업에 대한 보고(1913. 2. 16) 
[86]	데라우치 백작의 조선 남부지방 순시 및 일본행에 대한 보고(1913. 3. 13) 
[87]	일단의 조선인들이 이형 전 황제의 궁 입구에서 벌인 시위에 대한 보고(1913. 3. 21) 
[88]	데라우치 백작 암살 음모로 기소된 105인 항소심 소송에 대한 보고(1913. 3. 22) 
[89]	3월 16일의 덕수궁 앞 시위에 대한 보고(1913. 4. 10) 
[90]	데라우치 백작의 서울 복귀에 대한 보고(1913. 4. 20) 
[91]	조선 공증인회에 대한 총독부의 명령에 대한 보고(1913. 5. 17) 
[91-1]	별첨 1ㅡ조선공증령 
[92]	데라우치 암살 음모 관련하여 윤치호와 5명의 조선인 처벌에 대한 경성고등법원의 판결 파기에 대한 보고(1913. 5. 28) 
[93]	데라우치 총독의 계속된 지방 행차에 대한 보고(1913. 6. 2) 
[94]	조선의 공증임무 조직에 대한 전보문(1913. 6. 9) 
[95]	새로운 반란에 대한 보고(1913. 6. 13) 
[96]	한반도의 조선인, 일본인 농업인구에 대한 보고(1913. 7. 12) 
[97]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에 대한 대구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고(1913. 7. 17) 
[98]	조선 북동쪽 순시 후 일본행에 오른 데라우치에 대한 보고(1913. 7. 22) 
[99]	1912년 6월 20일 묘와 묘지에 대한 총독부령의 시행에 대한 보고(1913. 8. 11) 
[100]	한일병합 기념일에 대한 보고(1913. 9. 4) 
[101]	1911~1912년 조선에서 수행된 개혁과 발전에 대한 연차보고서에 대한 보고(1913. 9. 8) 
[101-1]	별첨 1ㅡ조선총독부 하의 조선인들 
[102]	데라우치 총독의 의주 및 황해도 시찰에 대한 보고(1913. 10. 6) 
[103]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에 대한 최종 판결에 대한 보고(1913. 10. 11) 

1914년 

[104]	조선 내의 일본인 인구에 대한 보고(1914. 2. 18) 
[104-1]	별첨 1ㅡ조선 내의 일본인 인구 표 
[105]	데라우치 백작이 주재한 도장관 연례회의에 대한 보고(1914. 4. 20) 
[105-1]	별첨 1ㅡ조선 도장관 연례회의 개회식에서의 데라우치 백작 연설문 요약 
[106]	아카시 사령관의 일본 귀국에 대한 보고(1914. 4. 28) 
[107]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병합 이후 조선 행정 3년의 성과』라는 책을 한 권 송부했다는 보고(1914. 5. 12) 
[108]	데라우치 백작의 서울 귀환에 대한 보고(1914. 6. 9) 

1915년 

[109]	일본 천황이 윤치호와 다른 5명의 조선인 음모자들을 사면 조치했다는 보고(1915. 2. 20) 
[109-1]	별첨 1ㅡ천황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윤치호와 5명의 조선인에게 내린 총독의 교시 
[110]	조선의 일본인 수에 대한 보고(1915. 3. 23) 
[110-1]	별첨 1ㅡ조선 내의 일본인 인구 표 
[111]	데라우치 백작의 일본행에 대한 보고(1915. 4. 6) 
[112]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보고(1915. 6. 1) 
[113]	데라우치 백작이 지난 도장관 연례회의에서 행한 연설에 대한 보고(1915. 7. 5) 
[113-1]	별첨 1ㅡ데라우치 백작이 지난 도장관 연례회의에서 행한 연설 요약문 

1916~1917년 

[114]	1915년 말 기준 조선의 인구에 대한 보고(1916. 6. 9) 
[115]	조선총독으로 임명된 하세가와 백작 원수에 대한 보고(1916. 10. 23) 
[116]	조선총독부 고위직 인사이동에 대한 보고(1916. 11. 10) 
[117]	하세가와 백작 원수의 서울 도착에 대한 보고(1916. 12. 14) 
[118]	하세가와 원수의 도장관 회의 개회식 연설문에 대한 보고(1917. 1. 19) 
[118-1]	별첨 1ㅡ도장관들에게 내린 총독의 훈시 
[119]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보고(1917. 5. 14) 

1897년 

[120]	조선의 국왕이 황제가 되고자 시도하는 사안에 대한 보고(1897. 4. 17) 
[121]	조선의 국왕이 황제가 되고자 시도하는 사안에 대한 보고(1897. 5. 23) 
[122]	황제로 불리려는 조선 국왕의 계획(1897. 6. 28) 
[123]	조선의 국왕이 황제가 되고자 시도하는 사안에 대한 보고(1897. 9. 27) 
[124]	조선 국왕이 황제의 칭호를 얻은 사실에 대한 보고(1897. 10. 14) 
[124-1]	별첨 1ㅡ의정 심순택과 다른 관료들이 국왕에게 보낸 상소문 
[124-2]	별첨 2ㅡ황제의 칙령 
[124-3]	별첨 3ㅡ황제로부터 초대를 받음 
[124-4]	별첨 4ㅡ황제 칭호 수락에 대한 통지 
[125]	대원군의 궁궐 침입 사건에 대한 보고(1897. 10. 17) 
[126]	왕후 민씨의 장례식에 대한 보고(1897. 11. 24) 
[127]	조선 국왕이 황제의 칭호를 얻은 사실에 대한 보고(1897. 12. 21) 
[128]	조선 국왕이 황제의 칭호를 얻은 사실에 대한 통보(1897. 12. 27) 
[129]	조선 왕비의 시해에 대한 보고(1897. 12. 30) 

1898년 

[130]	조선 국왕의 황제 선언에 대한 보고(1898. 1. 5) 
[130-1]	별첨 1ㅡ러시아 외무부 장관 무라비예프Mouravieff 백작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에게 보내는 편지 사본 
[131]	조선 국왕의 황제 선언이 러시아와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에 대한 보고(1897. 1. 6) 
[131-1]	별첨 1ㅡ명성황후 장례식 관련 일본 황궁의 서한 전달 
[131-2]	별첨 2ㅡ제130호 보고서 요약문 
[132]	조선 국왕의 황제 선언이 러시아로부터 인정받은 것에 대한 보고(1898. 1. 14) 
[133]	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내용과 한·중 간의 관계 회복에 대한 보고(1898. 1. 15) 
[134]	조선 국왕의 황제 선언에 대한 보고(1898. 1. 15) 
[135]	조선 국왕의 황제 선언에 관련한 의견(1898. 1. 19) 
[136]	대한제국 국왕의 황제 선언과 조선·중국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의견(1898. 1. 19) 
[137]	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1898. 1. 27) 
[137-1]	별첨 1ㅡ조선의 제국 선언에 대한 보고 
[137-2]	별첨 2ㅡ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 
[138]	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1898. 2. 3) 
[139]	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보고(1898. 2. 3) 
[140]	조선 국왕의 황제 칭호에 대한 보고(1898. 2. 3) 
[141]	옛 섭정의 사망에 대한 보고(1898. 2. 23) 
[142]	미국과 영국이 대한제국의 황제를 인정했다는 사실(1898. 2. 28) 
[143]	조선 군주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1898. 3. 4) 
[144]	조선 군주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1898. 3. 9) 
[145]	조선 군주의 황제 칭호에 대한 전달사항(1898. 3. 9) 
[146]	미국이 대한제국의 황제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보고(1898. 3. 10) 
[147]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보내는 전보문(1898. 3. 11) 
[148]	V. 콜랭 드 플랑시가 보내는 전보문(1898. 3. 13) 
[149]	조선 군주의 황제 칭호 인정에 대한 전달사항(1898. 3. 15) 
[150]	조선 군주의 황제 칭호 인정에 대한 전달사항(1898. 3. 15) 
[151]	대한제국 황제 중독 기도 사건에 대한 보고(1898. 9. 16) 
[152]	황제 중독 기도 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보고(1898. 10. 13) 
[153]	황제 중독 기도 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마튜닌의 항의에 대한 보고(1898. 10. 28) 
[153-1]	별첨 1ㅡ김홍륙의 처형에 대한 항의 표명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마튜닌의 서한 
[153-2]	별첨 2ㅡ외부대신 박제순에게 항의를 표하는 콜랭 드 플랑시의 서한 

1901~1902년 

[154]	황제의 50주년 생일에 대한 보고(1901. 9. 11) 
[155]	엄귀인에게 귀비 칭호가 내려진 이후 예상되는 음모에 대한 보고(1901. 9. 28) 
[156]	엄귀인을 황후 반열에 올리는 관인 수여식 거행에 관한 보고(1901. 10. 17) 
[157]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관한 보고(1902. 1. 12) 
[158]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관한 보고(1902. 3. 20) 
[159]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 관련 특사 파견에 대한 영사단의 결의에 관한 보고(1902. 5. 15) 
[159-1]	별첨 1ㅡ즉위 40주년 기념식 거행 일자에 관한 황제의 조칙 
[160]	1902년 대한제국에서 거행될 기념식에 대해 의전국에 보내는 정치국의 각서(1902. 5. 30) 
[161]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특사 파견을 청하는 공문 번역문의 전달에 관한 보고(1902. 7. 16) 
[161-1]	별첨 1ㅡ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특사 파견을 청하는 공식 통보 
[162]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프로그램의 전달에 관한 보고(1902. 8. 11) 
[162-1]	별첨 1ㅡ1902년 10월의 축연 프로그램 
[163]	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 특사 파견에 관한 각국의 동향과 전망에 관한 보고(1902. 8. 30) 
[164]	르두타블호의 서울 방문에 관한 전보 전달(1902. 9. 11) 
[164-1]	별첨 1ㅡ르두타블호의 서울 방문 관련 전보 
[165]	‘르두타블’호의 서울 방문에 관한 문의(1902. 9. 15) 
[166]	함대의 이동에 관한 지시사항 전달에 관한 보고(1902. 9. 19) 
[167]	대한제국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이 콜레라로 연기되었음을 알리는 전보 사본(1902. 9. 22) 
[168]	대한제국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연기와 그 여파에 관한 보고(1902. 9. 22) 
[168-1]	별첨 1ㅡ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연기를 알리는 최영하 외부대신의 통지문 번역문 
[169]	서울에서의 콜레라 발생과 10월 기념식 연기에 관한 편지(1902. 9. 23) 
[170]	기념식이 다시 가을로 연기되었음을 알리는 전보(1903. 4. 11) 

1903~1906년 

[171]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연기에 대한 보고(1903. 4. 12) 
[171-1]	별첨 1ㅡ천연두 발병으로 기념식이 연기됨을 알리는 황제의 조칙 전달 
[171-2]	별첨 2ㅡ교황 레오 13세가 이형 대한제국 황제께 보낸 축하 서한 
[172]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연기에 대한 보고(1903. 4. 24) 
[173]	대한제국 독립 기념일 축제 리셉션 취소 통보에 대한 보고(1903. 11. 9) 
[174]	태후 홍씨의 서거에 대한 보고(1904. 1. 3) 
[175]	태후의 장례식에 대한 보고(1904. 3. 15) 
[176]	경운궁 화재 소식을 알리는 전보(1904. 4. 15) 
[177]	경운궁 화재에 대한 보고(1904. 4. 17) 
[178]	황제 어진과 이용익의 초상화 대금에 대해 문의하는 화가의 편지(1904. 4. 17) 
[179]	황제 어진의 포장 및 발송에 관한 프랑스 외무부 회계국의 확인서(1904. 9. 7) 
[180]	화가 네지에르 씨의 문의에 대한 지시 사항(1904. 9. 10) 
[181]	황태자비의 서거에 대한 보고(1904. 11. 9) 
[181-1]	별첨 1ㅡ황태자비 서거 사실을 알리는 공문 번역문 
[182]	황궁의 장례식에 대한 보고(1904. 11. 14) 
[183]	네지에르 씨 건에 대한 보고(1904. 12. 17) 
[184]	황태자비 서거 관련 음모에 대한 보고(1905. 1. 18) 
[185]	드 라 네지에르 씨 건에 관한 프랑스 외무부의 각서(1905. 1. 23) 
[186]	네지에르 씨의 문의 내용에 대한 외교부의 답변(1905. 2) 
[187]	잠재적 왕위 계승자 의화군의 귀국에 대한 보고(1906. 5. 6) 
[188]	베르토 부영사의 전보문 제5호(1906. 5. 22) 

1907년 

[189]	일본 천황의 대한제국 황태자 혼례 관련 서울특사 파견에 대한 보고(1907. 1. 10) 
[190]	대한제국 황태자의 혼례식에 대한 보고(1907. 1. 25) 
[191]	박영효 대공의 대한제국 귀국에 대한 보고(1907. 6. 17) 
[191-1]	별첨 1ㅡ박영효 관련 칙령 
[192]	대한제국 황제의 양위에 대한 보고(1907. 7. 20) 
[192-1]	별첨 1ㅡ황제의 양위에 대한 칙령 
[192-2]	별첨 2ㅡ서울 통감부 총무장관 츠루하라의 통지 
[192-3]	별첨 3ㅡ서울 통감부 총무장관 츠루하라가 총영사 J.블랭에게 보낸 통지 
[193]	대한제국 새 황제의 즉위식에 대한 보고(1907. 7. 21) 
[193-1]	별첨 1ㅡ서울 통감부 총무장관 츠루하라가 총영사 J.블랭에게 보낸 통지 
[194]	새로운 치세의 연호에 대한 보고(1907. 8. 4) 
[195]	대한제국의 황태자 지명에 대한 보고(1907. 8. 7) 
[196]	이척 폐하 황제 즉위에 대한 보고(1907. 8. 28) 
[197]	황제의 거처 이전에 대한 보고(1907. 11. 16) 
[198]	대한제국 황태자의 일본행에 대한 보고(1907. 11. 24) 
[198-1]	별첨 1ㅡ1907년 11월 19일 관보 발췌 
[199]	대한제국 황제 어진 제작에 대한 보고(1907. 12. 1) 
[200]	대한제국 황태자의 일본행에 대한 보고(1907. 12. 6) 
[201]	대한제국 황태자의 도쿄 도착과 정착에 대한 보고(1907. 12. 26) 

1910~1917년 

[202]	조남승에 대한 보고(1910. 6. 4) 
[202-1]	별첨 1ㅡ이형 폐하의 재산관리에 대한 편지 
[203]	황제의 어진에 대한 보고(1910. 9. 20) 
[204]	이희 공의 사망에 대한 보고(1912. 9. 15) 
[205]	메이지 천황의 기일에 대한 보고(1913. 7. 31) 
[206]	일본 미망인 황후를 추모하여 서울에서 열린 장례식에 대한 보고(1914. 5. 28) 
[207]	이척 공의 일본 여행에 대한 보고(1917. 6. 10) 
[208]	대한제국 전 군주의 일본 방문에 대한 보고(1917.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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