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비판적으로 상대화시킬 수 있는 기술 프레임이 필요한 시대다. 여러 겹의 서로 다른 기술 프레임에서 테크노컬처를 정의하고 맥락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테크놀로지의 요소들을 테크노컬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작업은 그것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평가를 보완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사 연구자, 기계비평가, 미디어 비평가, 문화비평가로 구성된 젊은 학자 5인이 진단하는 한국 기술문화사의 적나라한 해부서인 동시에 더불어 사는 더 나은 사회를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두 번 놀랄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소소한 테크놀로지들의 사회학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으며 한 번, 이미 우리가 해답을 가지고 있음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구다!”
한국 테크노컬처의 역사는 아수라장이었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패와 파국의 조짐들이 처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 기술 문화에 대한 총체적 진단서이자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획서.
사람들의 우려대로 테크놀로지는 두려움의 대상인가
우리가 꿈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제어능력을 넘어서서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가져오게 될까? 우리에게 여전히 기술산업은 있지만 기술문화는 없는 건 아닐까? 네트 자유주의자들의 성지라고 할 《와이어드》가 통찰해낸 ‘테크노컬처’라는 용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꾸게 했고, 세상은 점점 더 매끄러운 표면으로 변해왔다. 이제 밀레니엄의 두 번째 십 년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해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정동을 가지게 된 모습이다. 최근 ‘유튜브’의 정교하게 취향을 저격하는 재생목록이라든지 ‘알파고 제로’의 등장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는 썩 개운하지만은 아닌 게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불길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터져 나오고 있다. 테크노컬처의 대명사인 스마트폰의 차세대 기술은 인간의 존엄과 자율, 건강한 사회 공동체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보다는 독점기업과 금융자본과 이윤 극대화를 뒤쫓고 있다. 인터넷 환경도 심각하게 오염됐다.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촉매제로서보다는 ‘집단저능 배양기’로 전락한 사이트들이 우글거린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그것에 의존하고 있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대본화되고 이미지화되어 끝없이 미끄러지는 형국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비판적으로 상대화시킬 수 있는 기술 프레임이 필요한 시대다. 여러 겹의 서로 다른 기술 프레임에서 테크노컬처를 정의하고 맥락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테크놀로지의 요소들을 테크노컬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작업은 그것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평가를 보완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사 연구자, 기계비평가, 미디어 비평가, 문화비평가로 구성된 젊은 학자 5인이 진단하는 한국 기술문화사의 적나라한 해부서인 동시에 더불어 사는 더 나은 사회를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두 번 놀랄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소소한 테크놀로지들의 사회학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으며 한 번, 이미 우리가 해답을 가지고 있음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기술문화의 실패를 겪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현재의 문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근대 초기부터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 이후의 기술사를 되짚어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를 추적한다. 이렇게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려는 이유는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실패와 파국이 어쩌면 처음이 아닐 수 있으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지난 시대에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 판결을 해야 하는 지난 시대의 어리석음, 무능, 탐욕, 부도덕의 장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에워싸고 상호 작용하는 산줄기와 강, 바다, 해류와 대기의 흐름, 동물, 식물, 광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뒤얽히고 와동하는 복잡한 시스템과 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과제 역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대표 저자인 임태훈은 이 책의 기획의도를 밝히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아수라장의 현장들을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지울 수 없으며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드러나 있는 상처인 ‘압축된 근대’로부터 이 모든 비극의 역사는 시작된다. 한국 테크노컬처의 역사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점철된 극한의 아수라장이었다. 임태훈은 “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2010년대에 벌어진 일만으로도 위기는 임계점을 넘어선 것으로 진단된다”고 말한다. “1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살처분했던 2010년 구제역 사태, 총체적인 부실이 확인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2013년 초 완료),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등등 해마다 기술재앙, 환경재앙, 사회 시스템 붕괴의 연속이었다. 이런 기조라면 지금까지 벌어진 일보다 더 한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새삼스러울 게 없을 지경이다. 정치적 이해와 시장논리에 휩쓸려 남용되고 왜곡된 기술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서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살기 어렵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많다. 가축을 비롯해 인간 아닌 모든 동물에게 이 나라에서의 생존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형편을 반전시킬 내재적 제어나 성찰을 기대하기에는 한국 테크노컬처의 철학과 윤리는 만성결핍 상태다. 돈만 되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던져야 할 질문, 그리고 ‘이 세계라고 하는 원동기 속’ 모래 되기
과학기술사 연구자, 기계비평가, 미디어 비평가, 문화비평가로 구성된 이 책의 저자들은 비관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이 기획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5인의 저자들은 적나라하게 한국 테크노컬처의 지층을 파헤쳐 뒤엉킨 뿌리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듯, 해부도를 펼쳐 보여준다. 독자들은 어느새 그 안에 녹아 있는 해결책을 손에 쥐듯 보고 또 느끼게 된다. 답은 명확하다. 이런 현실에 우리 모두 책임감을 느끼는 일부터 시작된다.
임태훈은 반성과 책임감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 모두가 이런 현실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못마땅한 대통령 욕하는 일쯤으로 면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작금의 현실은 2010년대 들어 갑자기 악화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 과정 전체를 통틀어 점진적으로 진행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누구도 지금의 위기와 무관할 수 없는 공범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이런 현실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디스플레이 화면에 넋을 뺏긴 채 집단저능의 행렬을 쫓는 일쯤을 두고 최첨단 운운하는 설레발은 어지간히 떨어야 한다.”
이 책은 이 시대에 필요한 다른 기술, 다시 말해 온갖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존공생의 기술을 준비하고, 그 일을 확산시킬 수 있는 테크노컬처를 구축하기 위한 기획서로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도 무작정 배제될 기술이 아니며, 두려움의 존재도 아니고, 자본의 요구에 복무하느라 억압되어 있던 해방적 역량을 발휘할 방법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도 충분히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가 수혜자인가?’의 질문의 단초를 놓치지 않으면서 매끄러운 표면에 흠집을 내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파멸적 테크노컬처로 말미암아 죽어간 온갖 존재, 부서지고 불타고 수장되어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귄터 아이히는 이 ‘머뭇거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세계라는 원동기 속의 기름이 되지 말고, 모래가 돼라!’”고 제안한다.
이 책은 인문학협동조합과 《주간경향》의 공동기획으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연재된 원고를 골자를 구성과 내용을 대폭 보강한 작업이다.
Information Provided B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