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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 : 오하기문 (4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황현 黃玹, 1855-1910 김종익 金鐘翊, 1954-, 역
서명 / 저자사항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 : 오하기문 / 황현 지음 ; 김종익 옮김
발행사항
고양 :   역사비평사,   2016  
형태사항
671 p. : 삽화, 초상화 ; 23 cm
ISBN
9788976962911
일반주기
이 책은 『동학농민전쟁사료대계』1권(여강출판사, 1994년 5월판)에 실린 「오하기문(梧下記聞)」의 수필(首筆), 2필, 3필, 오하기문 첨지(籤紙)를 옮겼으며, 번역본의 이름인『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는 梧下記聞의 한자를 풀어쓴 제목임  
해제: 롭게 탄생한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 기록 / 박맹수  
부록: 제도·기관·관직 등 주요 용어 사전, 인명록  
서지주기
참고문헌: p. 670-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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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9 2016z5 등록번호 111771676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오하기문>과 <매천야록>은 매천 황현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꼽힌다. 두 권 모두 황현 자신의 당대 역사를 편년체 서술 방식인 연월일별로 정리하면서,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고 써 내려간,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저작이다. 이미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다양한 판본이 있는 <매천야록>에 비해 <오하기문>은 1994년 역사비평사에서 펴낸 <번역 오하기문>이 유일한 한글판으로 있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절판된 상황이라 헌책방에서나 어렵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에 펴낸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번역 오하기문>과 원저가 같다. 또한 1994년에 번역했던 김종익이 다시 새롭게 옮겼다. 그러나 동일한 역자가 똑같은 원저를 번역했다고 해서 1994년의 개정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梧下記聞이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1994년판의 <번역 오하기문>은 직역에 가깝고,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문장이 많은 편이었다. 문명(文名)으로 이름을 드날린 황현은 수많은 고사(故事)를 인용하고 중국의 옛 역사에 비유하여 글을 썼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앞뒤 맥락을 파악하면서 행간을 읽어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펴내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방대한 고사는 물론이고 고어나 고지명, 고문헌 등을 일일이 고증해내고,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우리말 문장으로 풀어 쓰면서 '잘 읽히는 글'로 완전히 새롭게 번역했다.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한, 황현의 『梧下記聞』
한문학의 명문장가가 쓴 역사 기록이 쉽고 친절한 우리글로 거듭나다


『오하기문』과 『매천야록(梅泉野錄)』은 매천 황현의 대표적인 역사서로 꼽힌다. 두 권 모두 황현 자신의 당대 역사를 편년체 서술 방식인 연월일별로 정리하면서,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고 써 내려간,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저작이다. 이미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다양한 판본이 있는 󰡔매천야록󰡕에 비해 󰡔오하기문󰡕은 1994년 역사비평사에서 펴낸 『번역 오하기문』이 유일한 한글판으로 있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절판된 상황이라 헌책방에서나 어렵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에 펴낸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번역 오하기문』과 원저가 같다. 또한 1994년에 번역했던 김종익이 다시 새롭게 옮겼다. 그러나 동일한 역자가 똑같은 원저를 번역했다고 해서 1994년의 개정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梧下記聞이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1994년판의 『번역 오하기문』은 직역에 가깝고,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문장이 많은 편이었다. 문명(文名)으로 이름을 드날린 황현은 수많은 고사(故事)를 인용하고 중국의 옛 역사에 비유하여 글을 썼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앞뒤 맥락을 파악하면서 행간을 읽어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펴내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방대한 고사는 물론이고 고어나 고지명, 고문헌 등을 일일이 고증해내고,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우리말 문장으로 풀어 쓰면서 ‘잘 읽히는 글’로 완전히 새롭게 번역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물론이고, 『주한일본공사관기록』이나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또 중국 측의 자료 등과 철저히 비교하고 조사하여 황현의 오기나 오류를 각주에서 바로잡아 설명하고, 『한서』와 『후한서』 등 역대 중국의 역사를 집성한 24사와 경서 등을 섭렵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의 고사(古史)에 얽힌 이야기나 고사(故事)를 모두 상세히 풀어서 옮겼다. 그리하여 독자는 황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자,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매천 황현
그가 남긴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생생한 기록

황현의 기록은 임술년(1862, 철종 13)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만, 그에 앞서 순조·헌종 시대의 전반적인 세도정치를 논하고 들어간다. 이후 갑자년(1863, 고종 1)부터 임오년(임오군란), 갑신년(갑신정변)의 사건을 소상하게 기록한 뒤 갑오년(1894, 고종 31)에 이르러서는 월일별로 중앙정계의 정치적 상황, 지방의 정치·사회 상황, 동학의 창도,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1894년에 초점을 맞춰 서술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학농민전쟁의 기록은 그 어떤 사료보다 자세하고 생생하다. 황현 자신이 전라도 구례에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는 1883년 창간되고 열흘에 한 번씩 발간되었지만 1884년 갑신정변으로 종간, 근대적 의미의 관보는 1894년 6월부터 발간)도 변변히 없는 그 시대에 이렇게 치밀하게 기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문장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치를 포기하고 향리로 내려온 그는 독서와 역사 연구에 몰두하여, 마침내 당대의 역사 기록인 『오하기문』과 『매천야록』을 저술했다. 사실에 바탕을 두되, 저자 황현의 비판적 관점이 그대로 드러난 기록이다. 전통적 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개화파와 그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동학농민군에 대해서는 ‘도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소탕해야 할 무리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연암 박지원을 흠모한 인물답게 ‘실용’과 ‘실질’을 중시하기도 했다.

이 무렵 새로 정한 법과 조례는 모두 일본 사람이 의견을 내고 서양의 제도를 참고해서 형식적인 제도를 없애고 실질적인 것을 중시했다. 비록 선왕들이 세상을 다스렸던 법은 아니지만 현재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빨리 시행해야 할 것들이었다. 이러한 법과 조례를 처음 보는 까닭에 놀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한 그 옛날 관중과 상앙의 부국강병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실질을 중시하는 것이었다.(본문 284~285쪽)

또한 백성이 들고일어설 수밖에 없는 원인을 민씨 정권의 부정부패와 언로의 막힘으로 진단하면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더구나 동학농민군을 도적이라 하면서도 그들이 일반 백성의 지지를 얻는 모습을 가감 없이 서술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어도 언로가 막혀 있으면 장차 세상이 어지러워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비록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언로가 열려 있으면 간혹 난리가 수습되는 경우도 있다.(본문 77쪽) / 조선 팔도에는 원망하는 소리로 뒤덮였고, 세태를 풍자하는 동요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무슨 좋은 팔자라고 난리를 볼 수 있겠냐?”며 장탄식을 하기도 했다.(본문 93~94쪽) / 도적은 … 주변의 주민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 조금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심지어 행군하다가 주변에 쓰러진 보리를 보면 일으켜 세워 놓고 갔다. … 도적의 진영에는 음식 광주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관군은 굶주린 기색이 뚜렷했다.(본문 139쪽)

저널리즘의 원류, 역사 서술의 본보기,
그리고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통사


자신이 사는 당대의 역사를 사실에 기반하여 쓰되 날카로운 비평을 덧붙인 황현의 기록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 그 전범을 보여준다. 주관적 의견과 해석을 달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물론 여기서 정보의 제약 등 시대적 한계로 말미암은 오기나 오류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동학농민군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민심을 얻고 있던 사실과 점점 기강이 해이해지고 내부 갈등을 빚는 모습, 민씨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선 일본군의 비리와 만행, 농민군의 최후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였다.
소설가 김훈은 이를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서술’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한국일보>에 ‘당신이 뽑은 2010년의 책은 무엇입니까!’(2010-12-24)라는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김훈은 『번역 오하기문』을 꼽았다.

나는 요즘 나온 책보다는 옛날 책, 특히 기록물을 주로 읽는다. 그 중 하나가 조선 말기 문장가인 매천 황현(1855~1910)의 『오하기문』으로, 그가 자기 시대의 잡사(雜事)를 시시콜콜히 적은 책이다. 서양에서 도입한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저널리즘의 시초로 여기는 통념에서 벗어나, 이 책은 황매천의 다른 저서인 『매천야록』 등과 더불어 우리 저널리즘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황매천은 우국지사로서 시대를 보는 확고한 생각과는 별개로, 탄탄한 과정을 밟아 사실에 접근하고 그렇게 수집한 사실에서 거대한 역사를 읽어낸다. 주관적 의견을 말하더라도 사실을 바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섣불리 문장가나 우국지사가 되려고 하는 요즘 언론 행태를 이 책에 비춰볼 만하다.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더라도 이는 사실에 기반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저널리즘의 연원을 탐색하려는 사람은 물론이요,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도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단언컨대 이번에 새롭게 펴내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황현(지은이)

광양현 서석촌(현 전라남도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라 했다. 출신 가계를 보면 장수 황씨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기는 하나, 중간에 가세가 영락해서 그의 조부에 이르러서는 상업으로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이렇게 축적한 재산을 기반으로 황현은 1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황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나, 관력은 불우하여 34세에야 겨우 성균관의 생원이 되는 데 그쳤다. 그는 생원이 된 후, 조선 안팎으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거실에 구안옥(苟安屋)이라 이름을 붙이고 독서와 시작(詩作)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서울에 있는 여러 친구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구국 운동에 참가하라”라고 권유했으나, 황현은 그때마다 “그대들은 어찌 나를 귀신 나라에서 날뛰는 미친 사람들 가운데로 끌어들여 같은 귀신,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하고 도리어 엄절히 책망했다. 혼란한 세상에서 황현은 비록 은거했으나 망국상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못했다. 자신의 지기였던 김택영이 벼슬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것처럼 자신도 망국인의 방도를 생각한 듯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10년 8월 일본은 소위 한일병합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해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공식화했다. 이 소식을 듣고 황현은 애절한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했다.

김종익(옮긴이)

1954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국민은행 조사부, 심사부, 신용감리부 등에서 일했다. 태동고전연구소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꾸준히 동양 고전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며 수학했다. 그런 관심과 공부의 결과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이 되던 해(1994)에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을 번역 출간했다. 이번에 펴내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원저는 같지만, 사료의 고정(고정)과 인용된 고사(故事) 및 중국의 옛 역사(古史)에 대한 출전 작업 등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책이다. 2008년 KB한마음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중 이명박 정부 산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로 대표이사직 강제 사임과 지분 강제 이전을 당했다. 2016년 3월 대법원이 ‘정부의 불법 사찰을 인정하고 국가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관련자들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지만, 정작 중요한 국가의 사과 및 재발 방지에 대한 조치는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인문학 공부와 번역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일제 식민 통치 아래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선 독립 투쟁에 자신을 바친 조선 청년들의 삶을 추적한 『적도에 묻히다』(원제 : 赤道下の朝鮮人叛亂)를 번역하여 펴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책머리에 :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첫 번째 기록(首筆) / 두 번째 기록(二筆) / 세 번째 기록(三筆) 

부록 
해제 : 새롭게 탄생한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 기록(박맹수) 
제도·기관·관직 등 주요 용어 사전 / 인명록 / 참고자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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