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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일기 :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 (6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남평조씨 南平曺氏, 1574-1645 박경신 朴敬伸, 역주
서명 / 저자사항
병자일기 :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 / 남평 조씨 지음 ; 박경신 역주
발행사항
서울 :   나의시간,   2015  
형태사항
297 p. : 가계도 ; 22 cm
원표제
崇禎丙子日記
기타표제
한자표제: 丙子日記
ISBN
9791195353910
일반주기
해제: 전란의 일상  
남평 조씨의 실명은 '曹愛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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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897.8303 남평조 병 등록번호 111739265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노부인이 맞은 병자호란, 그후 3년 10개월의 고난과 일상의 시간들을 기록한 <병자일기>. 일기는 1636년 12월 병자호란 발발 직후 양식과 짐을 채 챙기지 못하고 한밤중 피란길에 오르는 급박한 장면부터 시작된다. 가솔을 이끌며 길을 떠나는 글쓴이는 63세의 노부인, 남평 조씨로 훗날 좌의정에 오르는 남이웅의 부인이다.

남이웅이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고 이후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심양에 가 억류되어 있는 동안 남평조씨는 홀로 집안을 이끌며 그 전후 4년 가까이 거의 매일 일기를 써간다. 우리 문학사상 민간 여성이 쓴 한글 일기로는 최초이자 최대 분량인 <숭정 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통칭 <병자일기>)이다.

병자호란에 관한 민간의 체험을 소상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실기문학(實記文學)으로 일찍이 문학사적 의의와 더불어 일기문학으로의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는다. 노부인의 섬세한 눈길이 빚어낸 병자호란 및 17세기의 작은 이면사이자 한 여성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장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오래 전에 현대역 된 바 있으나 절판되어 접하기 어려웠으나 이제 전면적으로 새롭게 옮겨져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노부인이 맞은 병자호란, 그후 3년 10개월 고난과 일상의 시간들
일기는 1636년 12월 병자호란 발발 직후 양식과 짐도 채 챙기지 못한 채 한밤중 피란길에 오르는 급박한 장면부터 시작된다. 여러 가속을 이끌며 길을 떠나는 글쓴이는 63세의 노부인 남평 조씨(南平曺氏)로 훗날 좌의정에 오르는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이다. 남이웅이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고 이후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심양에 가 억류되어 있는 동안 남평 조씨는 홀로 집안을 이끌며 그 전후 4년 가까이 거의 매일 일기를 써간다. 우리 문학사상 민간 여성이 쓴 한글 일기로는 최초이자 최대 분량인《숭정 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통칭《병자일기》)이다. 병자호란에 관한 민간의 체험을 소상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실기문학(實記文學)으로서 문학사적 의의와 더불어 일기문학으로의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는다. 노부인의 섬세한 눈길이 빚어낸 병자호란 및 17세기의 작은 이면사이자 한 여성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장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오래 전에 현대역이 된 바 있으나 절판되어 접하기 어려웠으나 이제 전면 새롭게 옮겨져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원본《병자일기》는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공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노부인이 맞은 전란, 세심한 눈길로 빚어낸 전후 3년 10개월 풍경
전쟁은 두 달 만에 끝나지만 나라 전체나 개인들의 삶에 미친 파장 또한 엄청났다. 전란으로 인한 비극과 민족적 수난에 비하면 《병자일기》에 담긴 주된 풍경은 양반가의 소소한 일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노부인으로서는 부단히 꾸려가야 할 소중한 삶으로, 주변을 챙기고 살피며 크고작은 일들을 기록하는 것 또한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노부인의 세심한 눈길과 별 꾸밈 없는 필치를 통해 당시 일각의 상황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4년 가까운 긴 시간을 담고 있는 만큼(현재 남아 있는 일기는 병자년 12월 15일부터 경진년 8월 9일까지인데 정축년에 윤4월, 경진년에 윤정월이 있었기에 만 3년 10개월간의 기록이다) 일기는 지은이가 머무른 공간과 시간에 따라 난중 피란기·여산 체류기·충주 체류기·서울 귀환기 등 네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난중 피란기(1636. 12. 15~1637. 3. 17):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급히 피난길에 올라 서산, 당진 등을 거쳐 난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산으로 거처를 옮긴다. 전쟁 발발의 급박한 상황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른 피난길에 겪는 갖가지 어려움 등이 주를 이룬다.

날이 새도록 길을 가니 서리와 눈이 말 위에 온통 얼어붙었다. 청호淸湖 큰길에 다다르니 군사들이 오른다고 하므로 청호 작은 길로 오다가 걸어오던 두 집의 종 여덟 명과 난추와 천남이를 길을 잘못 들어 잃고 아침이 되도록 찾지 못했다. 길마다 피란하는 사람들은 끝이 없고 길이 여러 방향으로 났으니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온 집안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마을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종들을 다 흩어서 찾으나 찾지를 못하니 갑갑하고 민망하기를 어찌 다 말하랴. (병자년1636 12월 17일, 본서 14면)

(2) 여산 체류기(1637. 3. 17~1638. 1. 25): 친척들의 보살핌 속에 연고지인 여산에 머무른 시기이다. 일견 여유있고 안정돼 보이지만 심양으로 떠난 남편 안위를 몰라 애태우고 죽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심경을 자주 드러낸다.

맑았다. 여주 며느리의 생일다례를 지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죽어서 나로 하여금 이런 일을 보게 하는가? 이 늙은 몸이 설워하게 하는가? 영감을 집에 모시고 있을 적에는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고 지냈는데, 만리이역에 이런 시절을 만나 들여보내고 이 늙고 병든 몸이 외로이 있어 밤낮으로 속을 태우며 실낱같은 인생이 견디며 지내나 천남이를 심양으로 보내고 나면 그후에는 더욱이 어찌 견딜까? (정축년1637 7월 29일, 39면)

(3) 충주 체류기(1638. 1. 26~ 5. 28):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농사일을 관리하며 집안을 꾸려가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맑았다. 어제 못다 삶았던 벗고개 논을 오늘 둘이 가서 마저 삶고 나머지 집의 종들은 고기잡이를 갔다. 고기를 잡아서 천계의 제사에 쓰려고 한다.밤의 꿈에 영감도 뵈었으나 잡몽雜夢이라 내 마음이 번거롭다. 용수가 돗골 논 열너 마지기와 또 두 마지기를 병작竝作으로 하기로 하고 씨를 가져갔다. (무인년1638 4월 4일, 82면)

(4) 서울 귀환기(1638. 5. 29 이후): 남편 남이웅이 심양에서 풀려나 환국하자 1년 6개월 만에 서울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여러 중책을 맡아서 분주하고 지은이 역시 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다른 시기들과는 달리 남편과 그 주변인물들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침에 흐렸다. 승지 허계가 새벽에 와서 다녀가시고 영안위와 남참봉도 와 다녀가셨다. 남영암이 가시는데 동관왕묘에 오이 안주 하여 나가셨다가 술을 조금 잡숫고 오후에 들어오셨다. 신시쯤 되어서 비가 오고 우박이 많이 왔다. 어두워질 무렵에 연양군께서 생일이라고 하면서 청하시니 가셔서 밤 들어서야 취하여 들어오셨다. 밤에 안개가 아득하니 지척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무인년1638 10월 10일, 108면)

사실 기록을 넘어 일기문학으로
《병자일기》는 일찍이 “작자와 창작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여성 실기문학(實記文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병자호란에 관한 민간의 체험을 소상하게 알려준다”는 점 등 “《산성일기》보다 더 큰 의의가 있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권)는 평가를 받은 이래 무엇보다 ‘사실 기록의 충실성’이 강조되고 주로 그런 관점에서 다뤄져왔다. 하지만 근래에는 《병자일기》가 사실의 기록성이라는 틀을 넘어서 지은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써 일기에서 ‘일기문학’으로 질적 전환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그날그날 일상사의 꼼꼼한 가정일지식 기록 한편에 지은이의 내면의 심리와 감정 변화 등이 드러나고 있음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는 특히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토로하는 데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지은이는 4남 1녀를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어, 노년의 부인에게 남겨진 친자식은 아무도 없다. 아들 둘과 딸은 어려서 죽은 듯하고 두 아들은 각각 13세, 25세에 죽는다. 13세에 죽은 큰아들은 미장가였으나 25세에 죽은 둘째 아들 두상(斗相)은 아내가 둘 있었지만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계유년1633에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난다. 일기에 죽은 아들과 며느리들의 생일날에도 빠짐없이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이 날들의 일기는 다른 날보다 좀더 길다.

오늘이 별좌[남두상]의 생일이라 다례를 지내니 무엇을 흠향할까. 계유년1609에 낳아서 경사롭던 일이 한 꿈이 될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어찌 이십오 년을 내 자식으로 빌려 있던 모자의 은정恩情을 하루아침에 없이 하였는가? 아이고 아이고 푸른 하늘아 푸른 하늘아 할 따름이다. 슬프다. 나마저 죽은 뒤에는 누가 잔이나마 정성껏 부어놓을까 강진사 모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아들을 두고 죽으시니 오죽이나 좋은 팔자랴. (기묘년1639 11월 8일, 166면)

일상의 기록에서는 주관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지은이지만 자식 며느리, 그밖의 주변 인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적극 반응하고 충격과 슬픔을 토로하며, 늙은 병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곤 한다. 대갓집 안주인으로 수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재산 관리, 각종 제사 준비, 손님 접대 등 분망한 일상생활 모습 한편에는 한많은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복잡다단한 감정과 심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피란지에서 남편의 첩 천남어미가 출산을 하는 대목이 있다. 자식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늘 외롭고 서글픈 64세 노부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비교적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더 여운이 남기도 한다.

천남어미의 기별을 듣고 넘어가니 유시에 아이를 낳았더라. (…) 갓난아이를 보니 얼굴이 영감을 닮은 곳이 많다. 영감께서 저리로 가서 쓸쓸한 때에 아이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 (정축년 4월 9일~10일, 28면)

이러한 점들은 당시 일자별 사실 나열 방식의 남성들의 한문일기와 비교되기도 하며, 지은이 남평 조씨에 대해 “당대의 일상과 생활을 충실하게 기록한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불안과 상실감 속에서 살았던 노년의 삶을 주관화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구성해낸 여성작가로서 조명되어야”(정우봉 <남평조씨의 《병자일기》를 읽는 법>) 한다는 심도 있는 문제제기와 연구를 가능케 한다.

17세기의 작은 이면사
《병자일기》는 당대에 씌어진 공식적인 역사기록, 정사(正史)가 담지 못한 이면의 진실을 보여주는 의의도 지닌다. 역사적인 의미가 큰 시기의 기록인 데다, 지은이의 남편 남이웅이 당시 고위 관직에 있었던 영향도 없지 않았다 하겠다. 중요한 한 예로 조선 조정과 청나라 사이의 갈등과 비사(秘史)의 일부도 엿볼 수 있다. 병자호란 패전의 결과로 조선의 삼공육경(三公六卿)의 적자(嫡子)들을 심양에 인질로 보내게 되어 있었는데, 일부 대신들이 적자 대신 서자(庶子)나 얼손 등을 인질로 보낸 것이 드러나서 외교문제가 된 사건, 이른바 가질사건(假質事件) 등이 그렇다. 소현세자가 일시 귀국하였을 때 청나라 측에서 이것을 문제 삼았고 그 결과 조선 조정에서는 이에 연루된 대신들을 형식적으로나마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 결과 완성부원군 최명길·병조판서 이시백·전前 판서 남이공 등이 삭탈관직 당하거나 중도부처하게 되는데, 당시 형조판서가 바로 남이웅이었다. 청나라와의 외교적 마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벌하는 시늉을 해야 하지만 조선 조정의 속내는 달랐다는 것이 일기에 드러난다. 조정 대신들이 새벽에 모여서 옥에 갇힌 동료들을 위로하러 가는 장면이라든가 귀양가는 사람에 대해 ‘얼마 가 있을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조선 조정 내에서 이들을 이내 복직시키기로 한 묵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인조실록》과 비교해보면 당시 크고 작은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날짜 하나 어긋나지 않고 거의 일치하거나 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가 정착되어가는 17세기에는 아들, 딸들이 번갈아 조상제사를 담당하는 윤회봉사(輪回奉祀), 딸의 자식인 외손이 제사를 담당하는 외손봉사(外孫奉祀) 등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여전히 존속한 사실 등이나, 돌아가신 조상들의 생신은 물론 죽은 자식들의 생일에도 빠짐없이 차례를 지내고 가까운 친척이나 절친한 친구가 죽으면 따로 날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치전(致奠)을 하였다는 사실 등은 다른 기록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들로 눈여겨볼 만하다. 이외에도 당시 사대부가의 선물 수수 목록 작성이 가능할 정도로, 17세기 생활의 소소한 일상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귀한 자료적 가치도 지닌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남평 조씨(지은이)

조선 인조(仁祖) 때에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시북(市北) 남이웅(南以雄)의 부인으로 정경부인(貞敬夫人)에 봉해졌다. 17세에 결혼해서 56년을 해로하였으나 자식 4남 1녀를 모두 일찍 잃었다. 병자호란 때에 남이웅이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고 이후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심양에 억류된 동안 홀로 집안을 이끌며 그 전후 4년(병자년1636~경진년1640) 가까이 거의 매일 한글로 일기를 써 남겼다(《숭정 병자일기》 세종시 유형문화재 제4호). 남편보다 3년 먼저 72세에 병사(病死)하였고,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에 부부 묘소가 있다. 최근 뒤늦게 신주 뒤면 구석에 새겨진 남평 조씨의 실명(조애중曹愛重)이 발견된 바 있다.

박경신(옮긴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졸업 후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동해안 별신굿무가》 1-5(국학자료원, 1993), 《한국의 별신굿무가》 1-12(국학자료원, 1999), 《한국의 오구굿무가》 1-10(국학자료원, 2009), 《대교 역주 태평한화골계전》 1-2(국학자료원, 1998)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병자년丙子年 1636 
정축년丁丑年 1637 
무인년戊寅年 1638 
기묘년己卯年 1639 
경진년庚辰年 1640 

원문 숭정 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 
해제· 전란의 일상 
나오는 인물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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