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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Salecl, Renata, 1962- 박광호, 역
서명 / 저자사항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 The tyranny of choice / 레나타 살레츨 지음 ; 박광호 옮김
발행사항
서울 :   후마니타스,   2014  
형태사항
254 p. ; 20 cm
원표제
Choice
ISBN
9788964372142
서지주기
참고문헌(p. 239-242)과 색인수록
일반주제명
Choice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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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153.83 2014z4 등록번호 111725973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1/ 청구기호 153.83 2014z4 등록번호 151324013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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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정보

책소개

오늘날 우리는 삶을 수많은 선택지로 보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대형 마트 선반의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체성들도 선택의 대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자유는 불안, 죄책감, 부족감을 낳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살레츨은 ‘너만의 모습을 찾아라’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권고가 어떻게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하는지 탐구한다. 선택은 순전히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떻게 사회 변화를 막는지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돋보인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은 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불안하고 탐욕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이 관념에 매달리는 것일까? 우리는 이로 인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살레츨은 이런 물음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통해 소비주의나 긍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현상적 분석을 넘어서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조건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이야기한다.

여자의 운명에 관한 오해는 나이 들수록 시든다는 거죠. 전 믿지 않아요.
운명도, 아름다움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___○○○ 화장품 광고 중에서

스타벅스에 가면 카페모카 한 잔을 선택하기까지 크기에서부터 카페인 여부 등 댓가지 조건을 선택해야 하나의 선택을 완성할 수 있다. 요즘에는 어떤 상품을 선택하든 마찬가지인데, 소위 ‘합리적인’ 소비자가 되려면 이런 다양한 조건들을 잘 숙지하고 선별해야 한다. 그래야 만족할 만한 선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선택지를 하나만 제시해 성공한 마케팅 사례는 선택지들의 범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 주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징후다.
이는 비단 상품 선택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 삶은 결국 이런 수많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상품을 선택하듯이 직업과 배우자에서부터 자기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데이트나 결혼, 출산이나 양육 등의 문제도 세심히 계획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본 뒤 결정하면 불확실성이나 리스크를 피해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사랑의 쾌락과 이별의 슬픔, 분노, 스트레스 같은 감정들도 관리와 선택의 대상이다. 이런 ‘선택 이데올로기’는 멘토와 힐링을 갈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 열풍에서부터 인터넷 중매 사이트, 각종 TV 리얼리티 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렇다면 폭발적으로 증가한 선택지들과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방법을 알려 주는 멘토들과 자기계발서들의 조언에 둘러싸인 우리는 과연 만족스럽고 행복한가?

라캉주의적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분석하는 살레츨은 역설적으로 이런 ‘선택의 자유’가 개인의 불안과 죄책감, 상대적 부족감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1980, 90년대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학파를 이끌었던 살레츨은 우리에게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는 친숙한 대중문화 사례들과 정신분석가를 찾은 환자들의 사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들을 특징짓는 정신적 징후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뿌리에 위치한 ‘선택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은 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불안하고 탐욕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이 관념에 매달리는 것일까? 우리는 이로 인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살레츨은 이런 물음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통해 소비주의나 긍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현상적 분석을 넘어서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조건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이야기한다.


1) 자수성가/자기계발 이데올로기의 역습 : 선택이 낳은 불안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한다


사례1. 안나 쿠르니코바와 마리아 샤라포바가 테니스 스타로 성공을 거둔 이후 러시아 전역의 시골 마을에는 테니스 코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어린 딸이 스포츠 스타가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가지고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부으며 자녀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조차 아동 1만 명 중 1명만이 대학에서 체육 특기자 장학금을 받고, 1만 명 중 6명만이 프로 선수가 될 기회를 얻는다.

사례2. 미국의 잡지 편집자 제니퍼 니슬라인은 각종 자기 계발서에 전적으로 의지해 살아 보기로 결심하고 2년간 다이어트, 집안 정리, 좋은 부모와 아내 되기, 내면의 평정심 유지하기 등 철저히 자기 계발서의 조언에 따른 삶을 산다. 하지만 2년 후 오히려 그녀는 자기가 이룬 그 어느 것도 즐기지 못한 채 심각한 공황 발작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사례3. 살레츨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미모의 젊은 여성은 자신이 선택의 문제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결혼식 드레스를 고르는 데만도 한 달이 걸렸고, 하룻밤 머물 호텔을 찾는 데는 몇 주가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자 기증자를 골라 봐야 한다고 했다. 살레츨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말이면 마흔이 되는데, 지금까지 매번 남자 선택에 정말 재주가 없었다고요.”


선택 이데올로기는 사실 해방적으로 보인다.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관념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매나 얼굴, 성적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요 모양 요 꼴이지만 내 자식은 스타가 된다면, 자신이 그리던 이상형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해방적인가! 살레츨에 따르면, 이런 선택 관념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선택 관념이 창조한 자수성가형 인간은, 처음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을 통해 자기 재능을 실현하면 자연스럽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이런 자수성가형 인간의 특징 가운데 도덕적 겸양이 강조될 때도 있고, 타인의 복리에 대한 책임성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적자생존의 전장과 같은 삶에서 경쟁자를 제거하고 전리품을 차지한다는 관념이 용인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그리고 이는 21세기 들어 삶 자체가 예술 작품, 혹은 도전적인 기업 경영이라는 관념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 이데올로기의 역설은,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을 부추기면서 각자의 선택과 그 결과에 엄청난 무게를 지운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개인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죄책감과 불만,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을 떠안게 되고,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실패에 대해서도 자기 잘못이라 치부하게 된다.


2) 불안을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 : 선택 이데올로기와 과로하는 주체


사례4. 윌 퍼거슨의 소설 '해피니스'는 사람들이 충족감에 이르는 참되고 쉬운 길을 일러 주는 자기 계발서에 푹 빠진 사회를 그린다. 이 책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 생활을 버리고, 옷을 더 간소하게 입고, 화장품을 사지 않으며,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 헬스클럽 등록을 취소하며, 자가용을 포기하고, 직장도 그만두게 만든다. 이들에게는 행복이 가득하다. 하지만 대중이 진정으로 행복해지자 자본주의의 토대가 흔들린다. 산업들은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 책을 낸 출판사는 겁에 질려, 자사의 주주들과 세계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대신해 이 행복 운동을 중단시킬 것을 결의하고, 저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내 저자는 인도의 구루가 아니라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또한 암을 선고 받은 이 남자가 손자에게 물려줄 돈을 마련할 요량으로 기존의 자기 계발서들을 짜깁기해 그 책을 썼다는 것도 드러난다. 이야기는 발행인이 저자에게 다시 한 번 자본주의가 번창할 수 있도록, 불행해지는 법에 관한 책을 새로 쓸 것을 권하면서 끝이 난다.

사례5.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자주 출입하는 중산층의 행동을 조사한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이들에게서 우울증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 대부분은 결국 카지노가 늘 이긴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었고, 자기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대부분 자신이 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가족과의 시간이나 취미 활동을 희생해 가며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또 쉽게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알뜰족이어서 몇 달러를 아끼려고 기꺼이 먼 거리를 운전해 할인점을 찾았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슬롯머신에 돈을 넣었다.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시 짠돌이가 되어 싸구려 뷔페식당 앞에 줄을 섰다.

선택 이데올로기는 방대한 자기 계발서 시장을 비롯해 다이어트와 성형 산업, 컨설팅, 의료 산업 등 자본주의의 각종 산업을 발전시켰다. 1972년에서 2000년 사이 미국에서는 33~50퍼센트가량의 미국인이 자기 계발서를 구입했는데, 이는 특히 20세기 말에 빠르게 성장해 1991~96년의 5년 사이 자기 계발서 출간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 또한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보는 의료 민영화의 경향 역시 부추겼다. 하지만 선택 이데올로기가 단지 이와 같은 산업의 번창과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살레츨에 따르면 이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작동 방식과도 관련된다. 불안감이 커질 때 우리는 ‘부인’(denial)이라는 기제를 선택한다. 소비자와 관련해 첫 번째 단계의 부인은 소비에는 제한이 없고 누구나 소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관점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의 부인은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소비했는지를 부인할 필요, 소비를 하고도 실제로 소비하지 않았다고 인식할 필요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절제하지 못하는 소비자는 소비를 하고도 곤란한 결과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즉,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부채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소비의 기초였다.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는 환영에 의지해 왔던 것이다. <사례 5>에서처럼 애써 돈을 모았다가 다시 날려 버리는 놀이는 우리가 돈에 있다고 생각하는 기이한 특성, 즉 분명 생물이 아닌데도 거듭해서 그것을 죽이고 또 죽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마치 돈을 날려 버리면 돈이 유발하는 불안이 완화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은 이내 다시 찾아들고, 그래서 또다시 강박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기업들도 신중한 행동과 리스크가 큰 행위를 반복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힘든 행동을 한다.
살레츨은 이런 선택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 노예조차도 주인처럼 생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노예가 자기 인생을 바꿀 힘이 자기한테 있다고 믿도록 하는 자수성가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결국에는 우리 스스로를 소비하게 만든다. 결과는 번아웃, 거식증과 폭식증, 기타 생활습관병들이다. 사회적으로는 인생의 진로를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워질수록 자기 운명을 지배하고 개척하라는 압박 역시 거세지는데, 이에 따라 현대인들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미 극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기 계발(직업 훈련에서부터 외모와 건강관리)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서들은 불안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은 어디에나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는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결점들과 부족함에 관심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늘 자기 결함에 노심초사하도록 만들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방식이 부지불식간에 집단과 개인의 정신적 약점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되새김으로써, 더 잘하고자 끊임없이 애쓰게 된다. ‘자기 계발’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더 많은 책, 더 많은 멘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존한다. 즉, ‘자기 계발’은 그것이 완화한다고 하는 바로 그 부족감과 편집증을 강화한다.
역설적으로 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조장한 강박적 태도는 선택의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무질서를 몹시 두려워하며, 죽어 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에 소스라치는 아주 조심스런 사람들은, 무한하다고들 하는 선택의 가능성 앞에서 거의 향락을 얻지 못한다. 그는 이상적인 ‘선택자’chooser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선택을 제한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만들어 낸다. 선택 이데올로기는 고통에서조차 쾌락을 느끼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3) 타인의 눈으로 하는 선택: 선택은 무의식과 사회의 지배를 받는다


사례6: 마냐는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자동차 딜러로 일했다. 그녀는 아무리 까다로운 고객을 만난다 해도 그의 라이프스타일, 그가 예상하는 가격대, 아이는 몇 명인지, 왜 차가 필요한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보통은 어떤 차가 좋을지 합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마냐는 고객이 집으로 돌아가 심사숙고해 보기 전에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사시려는 차는 완벽합니다. 하지만 이삼 년 지나면, 애들도 집을 떠날 거고, 수입도 좀 더 나아질 테니 다른 차가 아마 더 적합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사시려는 차는 지금으로선 완벽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고객들은 다음날 와서는 현재로선 필요도 없고 돈도 많이 드는 다른 차를 샀다. 자동차 딜러로 크게 성공한 마냐는 곧 비행기 딜러로 직업을 바꿨다. 그리고 현재는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 많이 알게 된 나머지 정신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도대체 마냐의 고객들은 왜 그토록 비합리적으로 행동했던 걸까? 사실 우리가 완전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타인이 나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며 선택을 하거나, 타인이 선택하는 걸 따라서 선택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선택지를 고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는 무의식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영향을 받는다.
합리적 선택이론은 사람들이 편익의 극대화와 비용의 최소화를 추구한다고 전제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자기 이익에만 입각해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증거 역시 꾸준히 제시되어 왔다. 정신분석가들은 사람들이 대개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것이 해롭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그것을 중단하지 못하거나 그 고통에서 일종의 만족감을 느낀다. 자신의 행복에 반하는 행동에서 이상한 쾌락을 얻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성적으로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의 수준에서는 그 반대의 것에 훨씬 끌린다. 또 자신에게 최상의 선택이 무엇인지 안다 해도 타인이나 무의식적 욕망 같은 내적 요인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선택은 사회적이다. 선택은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가치가 무엇이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무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대개는 유명인의 삶에서 가져온 대중적 모델을 따르는 경우가 많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수많은 타인들이 필요하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대타자’의 존재로 설명한다. 대타자에 대한 인식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70년대 라캉은 선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스스로를 주인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선택을 내리면 무제한적 ‘주이상스’(jouissance)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 찰나적 주이상스에 실제로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이상스를 얻으려는 충동은 온갖 중독, 광증, 과용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는 노예를 해방해 소비자로 만들지만, 무제한적 소비의 결말은 스스로를 소비해 버리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또 무제한적 만족과 자기 충족감을 조장하면서도 불만족이라는 토대에서 번창하는 사회에서 좌절감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르브룅의 지적대로 ‘주이상스를 향한 의지가 사회를 지배할 때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는 경쟁과 대립으로 바뀌고 사회의 증오는 심화된다.’ 인종주의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베’가 그 한 예다. 사람들은 타인이 향락을 누리는 방식을 반대한다. 예를 들면 다른 인종이 너무 시끄럽다거나 냄새 나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과도하게 섹스를 많이 한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이런 불만의 이면에는 타인이 어떤 주이상스에 접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여기서 불만은 단지 우리가 원하는 무엇을 타인이 소유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향락하는 바로 그 방식에 대한 반대이다. 타인이 향락을 경험한다고 추정하면서 느끼는 이 좌절은 이내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타인에게서 특정 욕망의 대상을 빼앗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누린다고 추정하는 향락을 망치고 그들의 인격적 품위를 손상하고 싶은 것이다. 주이상스를 얻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4)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 가난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사회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예측하지 못했던, 그리고 순응하고 싶지 않았던 요인들에 이끌려
현재의 처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___새뮤얼 존슨, '라셀라스' 중에서

사례7. 2014년 2월 26일 밤 박모씨(여·61)와 큰딸(36) 작은딸(33)등 세 모녀가 서울 송파구 석촌동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방에서 번개탄과 숯불을 피워 동반 자살했다. 이들은 하얀 편집봉투 겉면에 남긴 유서에서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고 그 속에 5만원짜리 14장을 넣었다.

사례8. 닷컴 버블 시기에 기업을 세운 한 인터넷 기업가는 거품이 꺼진 뒤 열정적인 젊은 직원을 해고하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가 해고 소식을 전하자 젊은 직원은 잠깐 동안 슬퍼하다가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어 왔다. 사장은 그의 업무 수행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더 자세한 답변과 의견을 달라고 고집했다. ‘스스로 노력해’ 다음에는 훨씬 더 나은 직원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장 사정으로 인해 회사가 구조 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과거에는 일자리를 잃거나 인생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강요된 것이거나 사회와 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한다. 사회문제라고 생각해야 하는데도 자아비판을 하는 이런 사회를 과연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선택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은 단지 소비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레츨은 그것이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자기 삶의 전적인 주인으로 생각하면서 정작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택들에 대해서는 잊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가난하다는 데 대한 수치심, 경제적 성공의 사다리를 좀 더 올라가지 못한 데 대한 수치심이 사회적 부정의에 대항한 투쟁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선택에 수치심을 느낄 때 전체 사회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회질서의 결함을 보는 대신 자신의 결함을 보고, 실패했을 때는 자신이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다. 이들은 삶에서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고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비난을 개인적으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 이데올로기는 왜 여전히 이토록 강력한 걸까? 심지어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조차 여전히 이 합리적 선택 관념에 동화되어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로또식 멘탈리티를 갖고 이렇게 생각한다. ‘난 부자가 아니지, 하지만 내 아들은 언젠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내가 왜 내 아들에게 세금을 물리겠어?’ 의료보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도 선택권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전 국민 의료보험을 거부한다.
실업이나 가난은, 그들을 낙오자로 만든 사회적 불평등에 도전하는 개인보다는 자신은 이 사회에 부적합하다는 생각과 자아에 대한 자동 반사적인 공격을 낳고 있다. 게다가 선택의 과잉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조직화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다른 사회가 가능할지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에게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이런 식으로 현대자본주의는 그 주체들을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환상 속에 묶어 두고, 그들에게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지우며, 사회적 변화의 문제에 관해서는 진정한 선택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살레츨이 선택의 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경우도 있기 마련이고, 또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해로운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선택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강력한 기제로 정치적 개입과 정치적 과정 전반의 토대가 된다. 개인이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곧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선택은 사회적 차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 살레츨은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는 선택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 선택이란 관념을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선택이 항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적인 변화도 가능하지만 사회적 변화도 일으킬 수 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결정도 할 수 있고, 신용평가기관을 바꾸겠다고 할 수도 있다. 기업이 우리를 통제하도록 하는 대신에, 우리가 기업을 통제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변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우리가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인민으로서 어떤 선택을 했듯이 우리는 장차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선택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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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레나타 살레츨(지은이)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적 라캉주의 철학자로 1980년부터 라캉주의 정신분석학과 독일 관념론 및 비판이론의 철학적 유산을 결합한 슬로베니아 정신분석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주로 법, 범죄학, 정신분석학을 결합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탈근대적 주체 내부에 일어난 변화를 ‘불안’에 대한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빌려 분석한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범죄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자 런던 대학교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있으면서 런던 정치경제대학, 뉴욕의 카도조 로스쿨 등에서도 정신분석학과 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The Tyranny of Choice(2010), 『성관계는 없다』Sexuation(공저)(2000),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Per)versions of Love and Hate(1998),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Gaze and Voice as Love Objects(공저)(1996), 『자유의 전리품』The Spoils of Freedom(1994) 등이 있다.

박광호(옮긴이)

대학에서 정치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불안들》,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 《노동계급은 없다》, 《섹스 앤 더 처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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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1. 선택은 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2. 타인의 시선으로 하는 선택

3. 사랑을 선택할 수 있을까? 

4. 아이,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5. 강제된 선택


결론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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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deley, Alan D. (2020)
メンタリスト DaiGo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