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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 대동의 길 (25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문중양, 저 염정섭, 저 오상학, 저 이경구, 저 한명기, 저 강응천, 편
서명 / 저자사항
17세기 : 대동의 길 / 문중양 [외]지음 ; 강응천 편저
발행사항
서울 :   민음사,   2014  
형태사항
269 p. : 천연색삽화, 도표, 연표, 초상화 ; 24 cm + 미니북 1책(150 p. ; 19 cm)
총서사항
민음 한국사. 조선 ; 03
ISBN
9788937437137 9788937437007 (세트)
일반주기
공저자: 염정섭, 오상학, 이경구, 한명기  
등록번호 '111721718'은 별책수록  
서지주기
참고문헌(p. 262)과 색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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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1 ▼a 문중양, ▼e▼0 AUTH(211009)12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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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14 3 등록번호 11172071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14 3 등록번호 11172171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민음 한국사 3권. 유목 제국의 발흥과 병자호란의 치욕, 대동법 실시와 예송 논쟁 등 17세기는 유교 문명의 위기를 맞아 조선이 스스로를 중화로 주창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간 시기였다. 또한 유럽 문명이 세계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명, 청이 교체되면서 국제 관계와 물질 교류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간 과도기로만 오해되었던 17세기의 역동성과 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을 살펴본다.

‘민음 한국사’ 세 번째 권, 『17세기, 대동의 길』 출간

학계와 독서계의 호평을 받으며 론칭했던 ‘민음 한국사’의 세 번째 권, 『17세기, 대동의 길』이 출간되었다. 유목 제국의 발흥과 병자호란의 치욕, 대동법 실시와 예송 논쟁 등 17세기는 유교 문명의 위기를 맞아 조선이 스스로를 중화로 주창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간 시기였다. 또한 유럽 문명이 세계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명, 청이 교체되면서 국제 관계와 물질 교류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17세기, 대동의 길』은 그간 과도기로만 오해되었던 17세기의 역동성과 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을 살펴본다.

새로운 세계관이 만났던 17세기의 세계

조선이 동아시아 7년 전쟁(임진왜란)을 수습하던 17세기는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정점으로 치닫던 세기였다. 유럽의 각국은 항해술과 함포, 전염병을 앞세워 아메리카를 정복했고 이어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로도 진출하고 있었다. 이는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중국 이름 이마두)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지도는 둥근 하늘 아래 평평한 땅의 모습을 관념적으로 그렸던[天圓地方] 전통적인 중국식 지도가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모습이 사실과 가깝게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그러나 지도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중화(中華) 사상을 반영한 지도였다. 마찬가지로 예수회 신부였던 아담 샬이 명 황제의 명을 받아 제작한 『숭정역서』 속 천문도 역시 서양식 천문도 위에 중국식 별자리를 담고 있었다. 서양식 절기선 12개와 중국식 구획선 28개를 겹쳐 그렸던 이 천문도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만나던 17세기 세계를 극적으로 담고 있다. 17세기는 이처럼 동서양 세력이 실제로 만나기 시작한 세계화의 출발점이었다.

몰락하는 명, 부상하는 청, 갈등하는 조선

조선에게도 17세기는 거대한 두 세계가 대립하는 혼란스러운 세기였다. 한편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파병해 ‘재조지은(再造之恩, 위기에 처한 나라를 다시 세우도록 도운 은혜)’을 베푼 ‘부모의 나라’ 명(明)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명은 서서히 몰락하고 여진족 추장인 누르하치가 동아시아의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미 임진왜란 당시 상당한 규모로 성장해 파병을 제의하기도 했던 여진족은 후금(後金)에 이어 청(淸)이라 이름을 고치고 스스로 중원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명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 종법 질서를 따르는 조선의 입장에서 청은 ‘오랑캐의 나라’일 수밖에 없었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명에 은혜를 갚고 오랑캐를 무찔러야 한다는 척화론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제의 명분에 사로잡힌 주장일 뿐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날카롭게 인식한 의견은 아니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서 ‘명은 임진왜란 당시 천하의 병력을 동원해 조선을 구원했다’고 말하자, 청이 답서에서 ‘명은 천하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답한 데서 이 두 세계관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

병자호란,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 조선

이 책에서 병자호란 부분을 집필한 한명기 교수는 병자호란을 “무력을 이용해 조선의 세계관과 인식을 강제로 바꾸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미 정묘호란을 통해 후금(나중의 청)의 위력을 확인한 바 있지만, 조선은 여전히 겉으로만 ‘형제의 나라’로 대할 뿐 속으로는 ‘오랑캐의 나라’로 낮춰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명과 후금 양측 모두 조선에게 자신을 택하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이런 두 세력 앞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속으로 힘을 키우려 했지만, 인조 대에 이르러 이런 갈등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결국 1633년 명과 후금에게 동시에 파병을 요청받았던 조선은 고민 끝에 유교적 명분과 의리를 택한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후금 쪽으로 넘어간 상태, 조선의 속마음을 알게 된 후금은 이제 스스로 청(淸)이 되어 자신의 세계 질서를 펴고자 하고,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1636년 철기군을 이끌고 질풍같이 남하한 청군 앞에서 조선의 인조는 미처 강화도로 천도할 틈도 없이 춥고 배고픈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결국 다음 해 1월 조선의 왕은 삼전도 흙바닥에서 홍타이지 앞에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겪는다. 또한 소현세자 등이 인질로 잡혀가고 5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포로가 된다. 조선이 구세계와 이별하며 고통스럽게 새 질서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북로남왜, 반도국의 슬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의리를 지키고자 했던 명의 몰락을 촉진했던 것은 바로 조선 자신이었다. 조선이 청에게 항복하고 맹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청의 번국이 되었다. 청은 이제 뒤통수를 걱정하지 않고 명과의 결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조선의 병력을 빌릴 수가 있었다. 이후 가도 함락, 금주 공략 등에서 조선은 실제로 청의 대명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고 청은 나름의 배려로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국제 정세의 변화는 비단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임란 이후 서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조선과 일본의 관계도 이런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 경제적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부쩍 조선에 국교 재개를 요청했으며 중국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의 사정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조선에게 일본은, 청에게 조선이 그랬듯이 ‘배후의 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을 달래가며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일본의 기세는 날로 등등해져 갔다. 이처럼 17세기 조선의 사정은 모두 국제적 질서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었고, 북쪽의 중국과 남쪽의 일본에 끼어 있던 반도국 조선은 그 어느 나라보다 험난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었다.

대동법, 시장으로 가는 길

비록 17세기 조선이 외환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 역사에서 비참한 시기로만 기억될 수 없는 것은 ‘조선 최대의 개혁’이라고도 평가되는 대동법의 실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임란의 상처를 회복하기도 전에 병자호란 등의 큰 홍역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척 궁핍한 지경에 있었다. 거기에 기존의 세제가 크게 왜곡돼 이른바 방납의 폐단이 극심한 상태였다. 임란 전후 생선 한 마리에 해당하는 방납가는 쌀 10말, 꿩 한 마리는 쌀 8말에 달할 정도였다.

이에 광해군 즉위 첫해에 경기도를 시작으로 실시된 대동법은 과도했던 공납을 쌀로 통일하는 한편 가구별로 배정했던 것을 토지의 결수 기준으로 바꿨다. 따라서 땅이 적거나 없는 일반 백성에게는 조세 부담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었고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사대부 등에게 조세를 더 걷는 이익이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쌀로 통일해서 받는 대신 국가가 직접 물품을 구매하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시장과 화폐 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세기 시장경제의 급성장 뒤에는 이처럼 17세기의 획기적인 개혁이 있었다.

예송 논쟁과 붕당의 탄생

17세기 조선이 외부의 신질서에 적응해나가면서 만들어간 관념 중 하나는 ‘조선중화(中華)’ 사상이다. 명이 몰락하고 ‘오랑캐’ 청이 득세한 당시, 유교질서의 법통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은 이제 조선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조선을 더욱 유교적 예법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조선은 청이라는 외부의 적 앞에서 북벌론 등으로 맞서기도 하고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키우자는 쪽으로도 기울었다. 또한 이런 명분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주자학을 넘어 일종의 주자주의로까지 발전해 나갔으며, 이는 복잡한 예송 논쟁 등으로 비화되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왜 그렇게까지 첨예한 갈등을 빚어냈을까? 그 배후에는 붕당의 성장이 있었다.

16세기가 사림이 성장해 왕권을 비교적 건강하게 견제해 나가던 시기였다면, 17세기는 사대부들의 세력화가 절정에 달해 구체적인 붕당의 모습으로 권력 투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초기에는 이념의 보편성을 내세우며 절차적 합리성을 꾀하던 붕당이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는 붕당 자체에 내재한 한계인 동시에, 역설적으로는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그리고 이는 여러 차례의 환국(換局)을 통해 물러설 수 없는 권력 게임으로 치달아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18세기 영정조 대 왕권의 성장과 탕평책의 대두는 이런 17세기의 그림자 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조선의 17세기

이처럼 명과 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조선, 북로남왜라는 반도국의 태생적 고난은 미국,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일본과의 관계도 꾸려나가야 하는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또한 그런 외환을 겪으면서도 붕당 등으로 쪼개져 권력 투쟁에 몰입하는 모습 역시 강한 기시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7세기, 대동의 길』은 그동안의 천편일률적인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17세기를 당시 사람들의 시각에서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다. 또한 병자호란을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예송 논쟁과 붕당을 유교적 명분과 보편성의 논리에서 파고듦으로써, 외적 조건이 주는 한계와 그 안에서의 합리성을 두루 돌아보고자 했다.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는 17세기의 조선, 그동안 과도기로만 치부되었던 그 소중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위치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한명기(지은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문중양(지은이)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에서 통계학과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한 후, 동 대학원에서 한국과학사를 공부했다. ‘조선의 수리학(水利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줄곧 조선 후기 서양 과학과 전통과학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주론을 중심으로 그 양상과 성취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요즘에는 세종대 과학의 성취를 중심으로 여말선초 조선 과학기술 전범의 형성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水利學과 水利담론』, 『우리역사 과학기행』,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서구 우주론과 조선 천지관의 만남』, 『의산문답―천지와 인물에 대한 우화적 일탈』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염정섭(지은이)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농업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농법 발달 연구』, 『아 그렇구나! 우리 역사』 조선 1·2·3권, 『서유구 : 농업개혁론을 제시한 임원경제지 편찬자』, 『18.19세기 농정책의 시행과 농업개혁론』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

오상학(지은이)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에 『고지도, 옛 삶터의 모습』, 『조선시대 세계 지도와 세계 인식』, 『한라산의 인문지리』(공저), 『천하도, 조선의 코스모그라피』 등이 있다.

이경구(지은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등에 재직하면서 17~19세기의 정치.사상.지식인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썼다. 2018년 현재 한림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로서, 한림과학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는 《원문역주 각사수교各司受敎》(공역), 《조선후기 안동김문 연구》,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조선 후기 사상사의 미래를 위하여》, 《정조와 18세기》(공저),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공저) 등이 있다.

강응천(엮은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나와 우리 역사 문화를 세계적, 보편적 맥락에서 자리매김하고 세계의 역사 문화를 우리 시각에서 풀어 주는 책을 기획하고 집필해 왔다. 『역사 오디세이』, 『만주에서 만난 우리 역사』,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역사』, 『세계사 일주』,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 '세계사신문'(3권), '한국생활사박물관'(12권), '지식의 사슬'(10권)을 쓰거나 만들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17세기의 서 
17세기의 세계

1장. 변화하는 동아시아
1. 위기의 중화 제국 
[17세기의 초점] 동아시아를 호령한 유목 제국 약사
2. 광해군식 외교
[17세기의 초점] 허균의 『홍길동전』과 율도국
3. 남한산성 
[17세기의 초점] 17세기 유럽의 운명을 가른 삼십년전쟁
4. 1637년 체제
[17세기의 초점] 조선통신사의 길 - 서울에서 에도까지
[17세기의 창] 중화의 세계와 신의 세계 - 두 세계의 만남 

2장. 대동의 길
1. 위기의 전후 경제 
[17세기의 초점]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자세 
2. 쌀로 통일하라
[17세기의 초점] 조운선 해난 사고와 안면도 운하 
3. 시장을 향하여 
[17세기의 초점] 17세기 동아시아의 상품화폐경제 
[17세기의 창] 인포그래픽으로 본 세금의 역사-조용조의 계보 

3장. 조선의 선택
1. 이제 조선이 중화다
[17세기의 초점] 17세기의 동아시아 
2. 예(禮)의 정치학 
[17세기의 초점] 17세기 전후 각국의 왕권 계승
3. 붕당의 전성시대 
[17세기의 초점] 17세기 조선의 붕당과 영국의 당파
4. 탕평을 향하여 
[17세기의 초점] 17세기의 절대군주
[17세기의 창] 조선 후기 유교 문화의 이모저모-‘홀로 남은 유교 왕국’의 시공간 

17세기를 나가며
17세기에 활약한 국가들 
17세기를 이끌고 간 인물들
17세기에 처음 나온 물건들 

참고 문헌 
찾아보기 
도움을 준 분들 
‘민음 한국사’를 펴내며

관련분야 신착자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술심포지엄 (202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1)
국립김해박물관 (2021)
어반플레이. 편집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