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임선기 시인의 시집.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환상적이고 순수한 시세계를 펼쳐온 임선기 시인이 6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지극한 섬세함과 순수함이 녹아 있는 세상의 만상을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내며, 가없이 투명하고 순수한 언어의 시원을 갈망한다. 간명하고 수사적 꾸밈이 없는, 리듬감 있는 언어로써 예술과 존재의 기원을 탐색하고 미지의 세계를 모색하는 내적 성찰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슐레겔의 말대로 낭만주의 시가 "세계와 삶을 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임선기 시인은 고도의 압축된 언어로 낭만주의 미학을 형상화하고 있다. 해설을 쓴 류신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낭만주의 본령이 가장 낭만적인 언어로 현재화한 시집으로서 한국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문예중앙시선' 21권.
로맨티시스트 적선(謫仙)의 만가
낭만주의 본령이 가장 낭만적인 언어로 현재화하다
여기 실린 시들은 로맨티시스트 적선(謫仙)의 만가이다. 형식의 불멸 대신 불멸의 형식을 겨눔으로써 적선의 낭만주의는 우리 시에 없는 낭만주의 본연의 내적 풍경을 낳는다.
―조강석 문학평론가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임선기 시인의 새 시집 『꽃과 꽃이 흔들린다』가 문예중앙에서 출간되었다.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환상적이고 순수한 시세계를 펼쳐온 임선기 시인이 6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지극한 섬세함과 순수함이 녹아 있는 세상의 만상을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내며, 가없이 투명하고 순수한 언어의 시원을 갈망한다. 간명하고 수사적 꾸밈이 없는, 리듬감 있는 언어로써 예술과 존재의 기원을 탐색하고 미지의 세계를 모색하는 내적 성찰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슐레겔의 말대로 낭만주의 시가 “세계와 삶을 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임선기 시인은 고도의 압축된 언어로 낭만주의 미학을 형상화하고 있다. 해설을 쓴 류신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을 “낭만주의 본령이 가장 낭만적인 언어로 현재화한 시집으로서 한국 문학사에 기록될 것”(해설, 「낭만주의 육각형」)이라고 표현하였다.
눈이 내린다
눈 속에는
시인이 되어가는 소년이 있다
가야 할 나라가 있다.
―「풍경 1」
위의 시는 눈 속에 한 소년이 서 있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순수하고 순결해 보이는 눈과 소년. “가야 할 나라가 있”는 소년은 어디론가 떠나야 할 운명이다. 아마도 눈처럼 ‘순수’한 소년은 ‘동경’하는 어디론가로 곧 ‘떠날’ 것이고, 걷다가 다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회상할 것이다. 해설을 쓴 류신 평론가는 임선기 시인의 시세계를 ‘낭만주의 육각형’이라고 명명하며 “순수, 리듬, 동경, 침잠, 떠남, 머무름이라는 여섯 가지 낭만주의의 본령을 농축한 시”라고 표현했다. 먼저 시인이 지향하는 순수는 “맨얼굴”(「너에게 1」) 같은, “순하디순한 양들처럼”(「창가에서」) 천진하고 단정하며 가난한 언어, 즉 언어적 차원에서의 순수를 말한다. “기성의 의미로 분칠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와 자본에 의해 도용되지 않은 언어의 처녀성에 대한 갈망의 표현인 것이다.”(해설, 「낭만주의 육각형」)
그 겨울 은사시나무가
떨림이
저 숲에 있는가
숲은 어둡고
밝다
눈[雪] 속에서 바라본다
―「나그네」 부분
“가야 할 곳이 있”(「풍경 1」)던 소년은 미지의 먼 곳과 고향을 ‘동경’한다. “두 눈 푸르게 멀어야 보이는/나는 바다만 보고 있”(「경포 1」)거나, 나뭇가지가 건네준 잎에서 “고향을 보고 있다”(「겨울 2)」. 그러나 그곳은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어서, 시인은 “아무리 걸어도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에/있었던 것이다”(「저녁 강변」)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임선기 시 속의 동경하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은 아련하고 슬프다. 소년은 다시 ‘떠난’다. 이제 눈 속에서 숲의 “떨림”을 듣고, “어둡고/밝”(「나그네」)은 표정을 읽는 방랑자가 되어 있다. “후배지에 걸려 있는”(「풍경 3」) 하늘을 배경 삼아 정처 없이 방랑한다. 그렇다면 임선기의 나그네가 방랑하는 동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류신 문학평론가는 “존재의 기원에 대한 탐색과 예술의 본적(本籍)에 대한 동경”이라고 말한다. “그의 방랑은 실의와 굴욕에 빠진 이의 현실도피와는 거리가 멀다. 풍류를 즐기는 유객(遊客)의 한가한 유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리를 초탈한, ‘구름에 달 가듯이’(박목월, 「나그네」) 가는 달관의 나그네도 아니다. 그의 방랑은 지식인의 자아 찾기 순례이자 예술가의 형이상학적 편력이다.”(해설, 「낭만주의 육각형」)
시간을 잠시 멈출 수 있을까 마음을 잠시 멈출 수 있을까
마음을 잠시 멈춘다
시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
―「최하림」 부분
임선기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머무름’이다. 방랑하는 나그네는 길을 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바라”(「눈[雪의] 처음과 끝」)본다. 멈춰 서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나간 시간을 회상한다. 내면을 향한 시인의 깊은 사색과 ‘침잠’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로 나가기 위한 몰입이다. 한편으로 멈춤은 회상하기 위함이다. 지나가는 흔적을 회상하면서 시가 남는다. 시인은 “시를 만나면 시간은 멈추”(「시가 반짝이고 있다」)고 시간이 머뭇거릴 때 시가 온다고 한다. 멈춤을 모르고 내달리는 현실의 시간을 마름질하는 회상을 통해 시인은 시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류신 문학평론가는 “이 머무름에서 그리움은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이 휴지의 지점에서 시작과 끝, 밝음과 어둠, 순간과 영원, 부분과 전체, 과거와 현재가 만나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룬다.”(해설, 「낭만주의 육각형」)
시집 『꽃과 꽃이 흔들린다』는 “낭만주의의 본령이 가장 낭만적인 언어로 현재화한 시집”이다. 하지만 오늘날 “산문의 시대”에 낭만주의는 이미 폐기되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앞에 임선기 시인은 외롭게 서 있다. 그는 낭만주의의 죽음 앞에 헌화한다. “들판에 나가 흔들리는 꽃 앞에” 꽃 한 송이 올린다. “죽음 가까이 그러나 죽음이 아닌 고요” 속에서 “꽃과 꽃이 흔들린다”(「弔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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