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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영화의 해부학 : 왜 그들은 친일 영화를 만들었는가 (25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강성률
서명 / 저자사항
친일 영화의 해부학 : 왜 그들은 친일 영화를 만들었는가 / 강성률 지음
발행사항
서울 :   살림터,   2012  
형태사항
264 p. : 삽화 ; 23 cm
ISBN
9788994445281
서지주기
참고문헌: p. 258-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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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791.430953 2012 등록번호 11167382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 청구기호 791.430953 2012 등록번호 15131108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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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791.430953 2012 등록번호 111673822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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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인문자료실2/ 청구기호 791.430953 2012 등록번호 15131108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친일 영화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극단적인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영화가 사용된 일제 말기에 조선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분석한다. 특히 조선의 영화인들이 동족인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전쟁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선전한 친일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그들의 상황과 심리 분석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1930년대 조선 영화계의 다양한 담론이 어떻게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의 친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조선 영화의 기업화와 해외 수출, 로컬 컬러와 시나리오 작가 양성 등 다양한 담론이 조선영화령을 옹호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친일 영화는 인류 평화와 어긋나는 파시즘의 영화이며,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중반부터 외국에서 유학한 젊은 세대들이 조선 영화계를 장악하면서 이들이 영화 미학과 산업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고 가며 국내외 정세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면서 의도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말한다.

왜 친일 영화는 파시즘의 탐욕을 선동하는가?
그들은 왜 친일 영화를 만들었는가!


《친일 영화의 해부학》은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친일 영화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친일 영화는 인류 평화와 어긋나는 파시즘의 영화이며,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중반부터 외국에서 유학한 젊은 세대들이 조선 영화계를 장악하면서 이들이 영화 미학과 산업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고 가며 국내외 정세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면서 의도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 체제 아래 있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일본보다 앞서 영화법을 정비해서 영화를 선전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간파한 일제는 같은 목적을 위해 조선영화령을 실시했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 영화가 활발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1935년의 관객은 당시 조선의 총인구 2,400만 명 가운데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무성 영화에서 토키 영화로의 전환이라는 상황을 맞아 급증한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는 등,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환경이 급작스럽게 변화하였다. 비평을 통해 기존 세대를 비판하고 나선 젊은 세대들은 조선 영화의 기업화, 로컬적 영화의 제작과 해외 수출, 문학과 영화의 관계 등을 논의했다. 카프를 중심으로 한 계급투쟁의 영화 담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통제법인 영화령이 발효되면 적국의 영화인 서양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져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일본의 발달된 기술이 조선의 인력과 결합해 더 좋은 질의 합작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영화보다는 일본의 지방으로서의 조선 영화, 더 나아가면, 아예 완전한 일본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이미 극장은 일본의 거대 배급사가 장악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이 일본 영화인이 되면, 오히려 더 좋은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통제가 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담론도 나올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조선 영화계의 새로운 세대들은 새로운 담론을 통해 조선 영화계를 장악한 뒤, 당시 조선영화령에 협조하는 논리를 담론으로 만들어 유포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일본 식민지배의 적극적인 선전 매체가 되었다.

식민 지배의 핵심은 지배와 착취이고, 영화는 그것을 선전하는 매체-친일 영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
“현대사의 왜곡이 심하게 뒤틀려 있는 근원이 친일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3.1 만세 운동과 임시 정부의 항일이 기본이 되어 역사의 정통성을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 내가 친일 영화를 공부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사실 친일 영화 연구는 그리 재미있는 분야가 아니다. 만든 지 오래 지난 영화를 어렵게 봐야 하고, 글씨도 잘 안 보이는,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글로 되어 있는 신문과 잡지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친일 영화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더 풍성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영화 분석이나 감독의 경향, 당시 영화의 흐름 등의 연구에 그치지 말고 영화와 사회의 관계, 영화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영화와 선전의 관계 등 다양한 형태로 연구가 발전해야 한다.”
이렇게 친일 영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친일 영화를 일제강점기 선전 영화, 정책 영화, 어용 영화라고 호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며, 친일 영화가 일제의 정책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면서 저항의 가능성에만 치중하여 ‘친일’이 아닌 ‘영화’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는 모습을 경계하는 것이다. 식민 지배의 핵심은 지배와 착취이고, 영화는 그것을 선전하는 매체였는데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제 말기 친일 영화의 담론-조선영화령(朝鮮映畵令) 옹호,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
일제의 조선 영화 통제가 적극적으로 실시된 것은 1937년의 만주영화령, 1939년의 일본영화령에 이은 1940년의 조선영화령을 전후한 시기이다. 조선영화령 이전에는 어떤 영화를 만들지 못하도록 검열하는 수준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일제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강력하게 통제한 것이다.
이 책은 극단적인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영화가 사용된 일제 말기에 조선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분석한다. 특히 조선의 영화인들이 동족인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전쟁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선전한 친일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그들의 상황과 심리 분석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 책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 8월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로 연구대상을 제한한다).
저자는 1930년대의 화려한 영화 담론이 결국 친일 옹호의 논리를 거쳐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권의 전쟁 동원으로 가는 과정이 하나의 ‘내적 논리’를 구성한다고 추론한다. 구체적으로 1930년대 조선 영화계의 다양한 담론이 어떻게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의 친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조선 영화의 기업화와 해외 수출, 로컬 컬러와 시나리오 작가 양성 등 다양한 담론이 조선영화령을 옹호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조선영화령 옹호는 곧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징병제 선포 전의 친일 영화
친일 영화는 대개 중일전쟁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징병제가 발표되기 전과 발표된 후가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대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해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보여준다면, 후자의 영화는 이미 내선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기쁘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용열차(軍用列車)〉(서광제, 1938)는 최초의 친일 영화로서, 중국의 봉건과 일본의 근대를 대비시켜 근대의 승리를 그렸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신파 양식, 군용열차의 시간을 알려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유혹 등이 등장하지만, 결국 조선의 비참한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군용열차이고 중일전쟁의 승리였기 당시 중일전쟁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원병(志願兵)〉(안석영, 1941)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1938년에 발표된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는 것이다. 내선일체(內鮮一體)란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천황을 위한 지원병이 되는 것이야말로 차별을 벗는 길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집 없는 천사(天使)〉(최인규, 1941)는 처음부터 조선영화령 하에서 기획된 영화로서 “이 아이는 장래의 지원병이지.”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한데, 조선의 고아를 제국의 군인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끝부분에 황국신민화의 국민의례와 일어로 교육칙어를 암송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는 “영화는 세계를 움직일 훌륭한 동력이 되며 탄환”이라고 말한 최인규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반도(半島)의 봄〉(이병일, 1941)은 극영화 〈춘향전〉을 촬영하면서 겪는 애환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 제작 관습이나 연출 방법, 연기법 등과 더불어 상영관의 풍경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볼 수 있는 매우 귀한 필름이지만 결국 조선총독부 중심의 통제 회사 등장을 준비하는 영화, 조선영화령을 선전하는 것이다.
〈그대와 나〉(허영, 1941)는 “제목인 〈그대와 나〉에서 ‘그대’라는 것은 일반 일본인의 총칭이오, ‘나’는 일반 조선인의 총칭으로서 그대와 나는 굳게 손을 잡고 대동아 공영권의 초석이 되자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고 감독이 직접 설명하고 있듯이, 어린 학생들을 지원병으로 이끌려는 의도가 있는 영화이다

징병제 선포 후의 친일 영화
1942년 5월 징병제가 결정된 이후의 친일 영화는, 내선일체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징병제의 실시로 병역을 나눠 받음으로써 조선이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중핵적 지도자로서 우위를 나눠 갖게 되었다고 선전했다.
〈조선해협〉(박기채, 1943)은 “영화기업에 입각한 최초의 작품”으로서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영화이며, 친일 영화 가운데 가장 큰 흥행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조선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일본인화된 조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총후부인(銃後婦人)으로서의 여성의 역할도 강조한다.
〈거경전(巨鯨傳)〉(방한준, 1944)은 멜로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산업 증강과 해양력 증강에 대한 선전 정책과 일을 전쟁처럼 수행하라는 무사도 정신이 있다.
〈병정님〉(방한준, 1944)은 지원병 훈련소의 풍경을 남성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림으로써 조선인의 지원병 지원을 노골적으로 선전한다. 최인규와 이마이 다다시(今井正)가 공동 연출한〈사랑과 맹세〉는 일제 말기 한국 영화 촬영과 편집의 빼어난 수준을 보여주지만, 결국 지원병 차출을 강조하기 위해 가미카제를 선전하는 극단적인 친일 영화이다.

조선 영화인의 입장에서 다시 쓰는 영화사를 기대하며
한국 영화사 서술에서 친일을 했던 이들은 해방 후 권력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변명하거나 부정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와 반(反)하는 담론은 생성되지 못했다.
“조선 영화인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른 시기의 한국 영화사는 철저하게 조선의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일제 말기의 영화사는 왜 일제의 통제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조선인은 왜 사라진 것일까?”
가리고 싶은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저자의 의문은 좀 더 정교한 연구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글투를 현대식 표현으로 고친 저자의 노고로 인해, 이 책은 읽기 어렵지 않은 근대 영화사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강성률(지은이)

서울시립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영화학회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이사, 대종상·백상예술대상·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인천영상위원회와 아리랑씨네센터 자문 등을 지냈다. 2008년부터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에서 문화 이론과 비평, 한국 영화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계간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2005), 『영화는 역사다』(2011), 『친일 영화의 해부학』(2012), 『은막에 새겨진 삶, 영화』(2014), 『한국의 영화감독 4인을 말하다』(2015), 『영화 비평: 이론과 실제』(2016), 『영화 색채 미학』(2017), 『한국영화에 재현된 가족 그리고 사회』(2018), 『상처의 응시』(2020)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들어가며 : 나는 민족주의자인가? = 4
제1장 왜 친일 영화인가? = 15
 1. 국가주의와 파시즘의 선전 수단 = 17
 2. '내적 논리' 라는 방법은 = 26
 3. 영화 '담론'에 주목하는 이유 = 37
제2장 1930년대 중ㆍ후반의 영화 담론 = 45
 1. 조선 영화인의 담론 연구 = 48
  1. 새로운 세대의 등장 = 48
  2. 조선 영화계의 현실 = 60
  3. 조선 영화 부진의 원인 분석 = 64
  4. 조선 영화 진흥의 담론 창출 = 69
   4-1 조선 영화의 기업화 = 71
   4-2 해외 수출 = 74
   4-3 로컬 컬러의 강조와 시나리오의 중요성 = 83
제3장 친일로의 방향 선회와 친일 담론의 창출 = 95
 1. 조선영화령 옹호의 논리 = 99
제4장 극단적 친일 담론의 형성 = 127
 1. 극단적 친일로의 전환 = 129
 2. 조선, 만주, 일본을 잇는 영화협동체 = 144
 3. '담론적 실천' 으로서의 친일 = 150
제5장 징병제 선포 전의 친일 영화 = 159
 1.〈군용열차〉, 중일전쟁과 근대화 = 165
 2.〈지원병〉, 동양 평화와 군국주의 전쟁 동원 = 170
 3.〈집 없는 천사〉, 천황제 가족주의 재현 = 177
 4.〈반도의 봄〉, 조선영화령을 선전하는 멜로드라마 = 183
 5.〈그대와 나〉, 내선일체와 황군 된 영광 = 188
제6장 징병제 선포 후의 친일 영화 = 197
 1.〈조선해협〉, 징병제와 총후부인 그리고 가족주의 = 202
 2.〈거경전〉, 해양 일본의 전력 증강 = 210
 3.〈병정님〉, 자발적 전투 요원 육성 = 216
 4.〈사랑과 맹세〉, 내선일체형 가족과 가미카제 찬가 = 223
제7장 해방 후 지배 담론과 권력의 결합 = 231
제8장 역사는 과거를 통제하는 것 = 247
참고문헌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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