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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내부의 적 :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32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Todorov, Tzvetan, 1939- 김지현, 역
서명 / 저자사항
민주주의 내부의 적 :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 김지현 옮김
발행사항
서울 :   반비 :   민음사,   2012  
형태사항
218 p. ; 23 cm
원표제
Les ennemis intimes de la democratie
ISBN
9788983714145
일반주기
색인수록  
일반주제명
Democracy Worl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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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21.8 2012z7 등록번호 111763013 도서상태 대출중 반납예정일 2022-12-23 예약 예약가능 R 서비스 M
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321.8 2012z7 등록번호 12122071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사회과학실/ 청구기호 321.8 2012z7 등록번호 15131040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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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사회과학실/ 청구기호 321.8 2012z7 등록번호 151310400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츠베탕 토도로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토도로프가 정치사회적인 언급을 직접적으로 쏟아낸 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하나의 독특한 정치사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번 책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혹은 자유가 민주주의의 내부의 적으로 떠오른 상황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참조한 것은 바로 자유와 사랑(애착)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토도로프는 사상사가답게 파스칼, 몽테뉴, 루소를 능숙하게 참조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타인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몽테뉴와 루소의 대결에서 논쟁의 결말은 루소의 승리다. 애착, 권위, 의존은 그 자체가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수용해야 한다.

인간은 결핍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다.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타인을 원하고 타인도 자신을 원하기를 바란다. 일찍이 루소는 “애착은 결핍의 표시이다. 인간에게 타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면, 서로 협력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라고 간파했다. 토도로프에 따르면, 자유의 이러한 속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성숙한 태도로 자유를 갈구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츠베탕 토도로프는 문학을 공부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20대 중반까지 불가리아에서 공부한 그는 프랑스로 건너와 러시아 형식주의를 서구에 소개하며 구조주의 서사론의 막을 열었고, ‘환상문학 서설’이라는 저작을 통해 장르 문학 비평의 토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후 토도로프는 플랑드르 파 회화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분석한 ‘일상 예찬’과 같은 본격적인 미술 비평 작업을 병행하고, 루소와 계몽주의 시대의 유산을 찬찬히 곱씹어보는 사상사적 저작들도 꾸준히 펴냈다. 하지만 정치사회적인 언급을 직접적으로 쏟아낸 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하나의 독특한 정치사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번 책이다.
불가리아 출신의 토도로프는 전체주의 체제, 특히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허상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는 여러 허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늘 ‘더 나은’ 체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종언 이후,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목도하며 그는 민주주의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심대한 위기에 처했음을 지적한다. 유럽 국가들은 주저 없이 고문을 승인하고, 미국에서는 기업이 선거 후보자들을 후원하는 것이 합법화한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흔한 수사에 대해, 그는 이것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핑계에 불과하며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는 내부에 잠재되었던 위험 요소들이 부각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심각한 단계라고 단언한다. 민주주의의 3요소를 진보, 자유, 인민(민중, 대중)으로 정리하는 이 책에서, 토도로프는 이 세 요소가 절대화하게 될 때 각각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고대와 중세 역사, 현실 정치를 오가며 명료하게 정리해낸다.
20세기 역사의 3단계, 즉 전체주의(불가리아 공산주의), 파시즘을 극복한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를 겪은 노장 학자 토도로프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그리스에서 ‘휴브리스’라고 불렀던 인간적 오만함의 귀환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생태주의를 비롯한 겸손하면서도 낙관적인 장기적 대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또 (도덕적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이상주의와 대립하지 않는, 즉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현실주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이는 인간의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의 특징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적 연구를 참조해서 얻어질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인 셈이다.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은 그들이 가한 타격보다는, 그로 인한 대응을 통해서 민주주의 사회에 생생한 흔적을 남겼다. 이 능숙한 도발에 미국은 눈앞의 붉은 천을 향해 황소가 혀를 내두르며 돌진하듯 대응했다. 그렇다면 뉴욕을 공격한 일회적인 테러와, 수년간 수백만의 희생자를 내고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소비했으나 그간 미국의 명성(돌려 말하면
안전)에 먹칠을 한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더군다나 미국의 대외 전쟁은 스로를 상처 입혔고, 유럽 동맹국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고문을 허용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며 이들의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법적으로 허용한 것이다.(11)

민주주의 역시 다른 정치체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활동에 대한 어떤 개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체제는 신정정치나 전체주의 체제와 달리 국민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지도, 거기에 이르는 길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상낙원을 창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 질서의 결함은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전통이 부과한 규칙에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체제와 민주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체념으로 점철된 운명론적 태도를 거부한다.

1. 자유는 어떻게 극우 파시스트들의 개념이 되었나

“나는 전에는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중 하나라고 믿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외부 적의 출현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징후일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이데올로기와 운동 내부의 위기일까?”(10)

“미국 대통령처럼 수천 년의 인류사를 무시하고 ‘자유의 가치는 모든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당하고 옳다.’라고 부르짖어도 될까? 우리는 정말로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마음껏 누리는 자유’를 비롯해 무조건적으로 모두의 자유에 찬성하는가? 여러 보편적 가치들 중에서 느닷없이 ‘자유로운 공격’을 내세우면서, 경제 부문을 국유화한 모든 나라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63)

진정한 자유를 찾아 고향 불가리아를 떠난 토도로프에게 최근 ‘자유’라는 말이 유럽의 극우 인종 혐오 정당의 슬로건이 되거나 열강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구실이 되는 현상은 특히 불길한 징후로 보였다.(물론 이는 아주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반유대주의자 드뤼몽은 자신의 매체를 <자유발언>이라 이름붙였다. 이때 자유란 유대인을 비방할 자유를 뜻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토도로프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경제적 차원이 사회적 차원에서 분리되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경제적 개인의 독재가 시작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계몽주의와 같은 출발점을 갖는 자유주의는 세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치며 마지막 단계인 극단적 자유주의(혹은 신자유주의)의 상태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경제적 자유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익으로 바뀐다는 신자유주의적 관념의 오류는 너무나 명백하다. 이렇게 ‘자유’를 지나치게 절대화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토도로프가 보기에 급진주의와 그에 따른 이분법적인 논리는 신자유주의와 전체주의 담론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경제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가 있으며, 개인주의적 삶만큼이나 공동체적 삶을 원하는데, 이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 자유주의와 속류화된 공산주의의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인 자유방임과도 다른 것으로 이들은 경쟁을 방해하는 모든 구속을 체계적으로 없애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장려한다. 가령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이론가인 하이에크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태도는,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잘 알아야 하는 정원사와 같다.” 자연과 역사 법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주어진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에게 공통된 과학주의의 특징이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고,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속류 과학주의야말로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치인인 대처, 레이건, 피노체트의 개혁을 관통하는 정신이며, 이를 뒤따르는 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에 적용된 충격 요법(일련의 갑작스런 민영화), 그리고 금융 위기 때 IMF가 강요한 일련의 구조조정들, 서구 국가들이 개입해 추진한 민간 은행 구제 등이다. 이제 이윤은 개인에게 돌아가지만 위험은 사회가 떠안는다. 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채택한 미국과 영국은 2001년 9.11 공격 이후 개인 경제 주체들에게는 자유를 허용하면서 시민의 자유는 점점 더 통제했다. 신자유주의에서 이런 아이러니는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다.

어떤 선택보다 정치적 선택을 중시한 공산주의 권력은 경제 활동의 자율성을 문제 삼는다. (그 결과 지속적인 경제난을 겪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정치적 자율성이 여러 영역의 압박 속에서 위협받는다. 오늘날 새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화는 경제 주체가 국내 정부의 통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만든다. 다국적기업은 정부의 개입에 맞서서 더 환경이 좋은 곳으로 공장을 옮긴다. 오늘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자고 외치던 옛 공산주의 슬로건을 실행하는 것은 바로 기업가들이다…….(106)

2. 사상사적인 참조: 민주주의 개념의 토대가 된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

토도로프가 신자유주의, 혹은 자유가 민주주의의 내부의 적으로 떠오른 상황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참조하는 것은 바로 자유와 사랑(애착)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토도로프는 사상사가답게 파스칼, 몽테뉴, 루소를 능숙하게 참조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타인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몽테뉴와 루소의 대결에서 논쟁의 결말은 루소의 승리다. 애착, 권위, 의존은 그 자체가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수용해야 한다. 인간은 결핍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다.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타인을 원하고 타인도 자신을 원하기를 바란다. 일찍이 루소는 “애착은 결핍의 표시이다. 인간에게 타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면, 서로 협력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라고 간파했다. 토도로프에 따르면, 자유의 이러한 속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성숙한 태도로 자유를 갈구할 수 있다.

“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믿지 않는 시대에 애착을 강조하는 것이 가족, 집단, 종족, 인종과 어린 시절부터 맺은 모든 관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과대평가하라는 뜻은 아니다. 몽테뉴의 말처럼 가장 소중한 관계는 “우리의 선택과 자유”에 달려 있는 관계이다. 그러나 신과 인간에 대한 애착도 책임도 없이 완전히 ‘자율적’인, 이상적이고 성숙한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무제한의 자유가 인간의 원 상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이상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117~118)

이런 사상사적인 참조는 책에 단순한 정치비평서 이상의 깊이를 부여함과 동시에 토도로프만의 독특한 해석을 낳는다. 토도로프는 또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원죄를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인간의 의지와 완결성을 강조한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꼽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운명론적인 입장과 펠라기우스의 주의주의적 입장(主意主義, volontarisme)은 모두 민주주의의 관념에 영향을 주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이단으로 밀려남으로써 민주주의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전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이 펠라기우스보다 더 비관적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부과되는 요구 사항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더 타협적이었다. 사제이자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민중들을 자주 만난 반면, 펠라기우스는 자기 연구와 관련해 선택한 제자들만 곁에 두었다.”(29~30)

실제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개선의 여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와 존재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였다. 대신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에 책임을 지는 체제를 고민했다. 결국 보수적인 운명론과 완전한 자기 통제에 대한 몽상 모두를 거부하면서 중도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인본주의는 주의주의와 중용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갖는다. 더 나은 것은 가능하지만 선은 우리의 능력 밖이다.”(36)

3. 좌우파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넘어선 민주주의의 역사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더불어 이 책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장점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인 대결이라는 식상한 구도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령 토도로프는 민주주의에서 ‘진보’의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던 세 시기를 비교한다. 첫 번째 시기는 18세기 프랑스에서 혁명을 절대화하던 시기다. 두 번째 시기는 소비에트 이후의 공산주의다. 세 번째 시기는 최근 이라크전쟁 이후 리비아 사태에 이르기까지 비서구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시기다.(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제3세계에 개입하는 것.) 펠라기우스의 유산이라 할 이런 정치적 메시아주의(이상주의)는 오만한 발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토도로프가 보기에 이 세 흐름은 좌우라는 차이보다 정치적 메시아주의라는 공통점이 더 뚜렷하다.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주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총괄 계획을 세우고, 능동적인 주체와 그의 수혜를 입는 수동적인 타자를 구성하여 불균형한 역할을 분배한 뒤 군사적 방법을 동원하여 계획을 수행한다. 특히 최근의 사례에서 더 우려스러운 점은 메시아주의 비전이 보편적이라기보다 국가주의적인 성격(다시 말해 미국의 의지를 다른 국가에 관철시키는 것)을 띤 관점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압제자들이 권력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며 안도하던 짧은 시기가 지나자 금세 환멸의 순간이 도래한다. 새로운 전제정치는 프랑스 밖 나라들의 전제정치만큼이나 가혹했다.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때 장교로 복무했던 앙드레 마세나는 “승리를 위해 잔혹한 행위가 벌어졌음”을 인정한다. 물론 이탈리아 쪽에서도 저항이 격렬했는데, 이탈리아 반란자들은 프랑스 편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산 채로 태워 죽였다……. 저항 행동을 가리키는 ‘게릴라’라는 말이 생겨난 스페인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점령자들은 선을 전파하려는 욕구보다 더 큰 분노를 가지고 점령을 이어갔다.(46)

나는 20년 동안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았다. 가장 깊이 각인된 기억은 일상생활에서 겪은 수만 가지 불편함이나 지속적인 감시, 자유가 결여된 상황이 아니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모든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되는 역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56)

또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친연성이 신보수주의자들의 개인적 이력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최근 이라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에서 미국과 서구가 벌인 ‘민주주의’ 혹은 ‘인도주의’ 전쟁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종종 공산주의 이데올로그에서 반스탈린주의로 전향한 사람들이다. 프랑스와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확인된다.

처음에는 ‘이상주의적인’ 젊은 공산주의자가 되고(1단계), 공산주의 강령 뒤에 은폐된 현실에 실망하여 정력적인 반대파로 변신한다(2단계). 그후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는 코소보 전쟁 중 베오그라드에,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 중 서구를 수호하기 위해 퍼부어댄 “인도주의적 폭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3단계).(57)

4. 대중 선동적인 정치를 조심하라

토도로프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결정적 징후로 꼽는 것은 바로 대중추수주의, 즉 포퓰리즘이다. 민주주의에서 ‘민’, 즉 인민, 대중, 민중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띌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 토도로프는 그 사례로 외국인 혐오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선동적인 정치를 꼽는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가 왜곡되고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중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최근에 유행하는 정치 기술이다. 책에는 특히 서유럽에서 이슬람교도들, 이민자들에게 가해지는 데마고기(특정 집단을 모략하는 허위 사실을 퍼뜨려 대중을 선동하는 것)의 사례들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이는 한국과는 무관한 현실일까? 토도로프는 모든 데마고기들이 바로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라 본다. 따라서 이런 딱지를 외국인, 이민자에게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 실업자, 비정규직과 같은 소수자에게 계속 확산시키는 정치는 포퓰리즘적이다.
포퓰리즘적인 정치와 민주적인 정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토도로프에 따르면 데마고그(데마고기를 활용하는 정치인들)들은 광장 집회에서 만난 사람, 텔레비전 시청자와 라디오 청취자와 같이 현재 접촉하는 집단에 직접 호소한다. 민주주의자는 다음 세대를 염려하기 때문에 인기 없는 가치를 주장하거나 희생을 권하기도 하지만, 선동가는 덧없는 순간의 감정을 이용한다. 또한 민주주의자는 보편 이익을 내세워 소수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선동가는 다수의 확실한 이익을 추구한다. 민주주의자는 법을 준수하고 찬반을 숙고하는 연구위원회와 검토위원회를 중시하지만, 선동가들은 그럴싸한 풍채로 언변을 과시하며 입에 발린 말로 지지를 얻어낸다. 선동가들은 식견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보다 군중의 즉각적인 지지를 추구한다.
물론 데마고기는 민주주의의 시작인 고대 사회부터 늘 문제가 되어왔다. 그리스 로마에서 웅변술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이 그 예다. 매체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말과 이미지를 퍼뜨리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매체의 영향력이 훨씬 강력해진 현대 사회에서 이는 이전보다 더 큰 폐해를 낳는다. 또 토도로프는 소셜네트워크 같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매체가 해방적인 도구가 되는 상황과 이것이 획일화된 대중들을 통해 다시 지배의 도구가 되는 상황을 검토한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는 무기와 다를 바 없다. 즉 인간의 잔인함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나, 오늘날 생명과 건물을 파괴하는 능력은 로마나 북방 야만인들 시대와 비교가 안 된다. 핵무기 문제가 터지면 몇 초 만에 전 세계로 방송되는 것처럼, 우리 눈앞에서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한 세기 동안 일어난 변화가 지난 2000년 동안 일어난 변화보다 심대하다. 지금까지는 정보가 특정 장소에 모인 청중이나 좀 더 예민한 집단에게만 전달되었지만 오늘날은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 식자층을 포함하여 문맹인들에게까지 순식간에 전달된다. 그렇다고 모든 정보가 같은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같지 않다.”(144)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원이 순순히 영향력 있는 인물의 의견에 따라 정보를 전달하면 사회 통념은 극복되지 않고 순응주의만 강화된다. 즉 피지배자들의 수중에 있던 자유의 수단은 지배자들의 수중에서 종속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147)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츠베탕 토도로프(지은이)

불가리아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문학이론가, 역사학자, 사회학자. 1939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태어나 소피아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공산당 정권을 피해 1963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1970년 프랑스 국가박사학위를 받고 1973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구조주의의 영향 아래 문예비평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 형식주의를 프랑스에 소개하여 동시대 문학 담론을 풍부히 하는 데 기여했으며 본 저서로 문학 연구의 장에서 환상문학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1980년대부터는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 문제에 비판적 관심을 두고 사상사, 기억, 타자 등의 문제로 연구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펼친 왕성한 연구와 저술을 통해 세계적 지성으로 평가받았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장으로 재직했고, 하버드대학교, 예일대학교, 뉴욕대학교 등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강의했다. 《문학이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텍스트들Theorie de la litterature, textes des formalistes russes》, 《산문의 시학Poetique de la prose》, 《구조주의란 무엇인가Qu’est-ce que le structuralisme?》, 《아메리카의 정복: 타자의 문제La conquete de l’Amerique: la question de l’autre》부터 2010년대의 《전체주의의 경험: 인간의 서명L’experience totalitaire: la signature humaine》, 《빛의 그늘 아래 있는 고야Goya a l’ombre des Lumieres》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2017년 2월 타계했다.

김지현(옮긴이)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프랑스어권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르지』, 『평범한 왕』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1 민주주의 내부의 위기
 자유의 역설 = 7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 10
 삐걱대는 민주주의의 위험 = 13
2 과거의 논쟁
 등장인물 = 19
 인간의 의지와 완벽함을 주장한 펠라기우스 = 21
 무의식과 원죄를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 = 27
 논쟁의 결말 = 30
3 정치적 메시아주의
 혁명기 = 39
 첫 번째 흐름 - 혁명 전쟁과 식민 전쟁 = 44
 두 번째 흐름 - 공산주의 기획 = 48
 세 번째 흐름 - 폭탄으로 강요된 민주주의 = 56
 이라크전쟁 = 59
 고문의 악영향 = 62
 아프가니스탄전쟁 = 65
 오만한 권력을 향한 욕망 = 68
 리비아전쟁 - 결정과정 = 71
 리비아전쟁 - 수행과정 = 74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 79
 도덕과 정의 앞에 선 정치 = 84
4 개인들의 전제정치
 개인을 보호하기 = 91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 94
 공산주의와 신자유주의 = 100
 체제 유지 = 105
 신자유주의의 맹점 = 111
 자유와 애착 = 116
5 신자유주의의 결과
 과학의 잘못 = 119
 법의 후퇴 = 124
 의미 상실 = 128
 매니지먼트 = 131
 미디어권력 = 139
 공적 발언의 자유 = 143
 자유의 한계 = 149
6 포퓰리즘과 외국인 혐오
 퓰리즘의 부상 = 155
 포퓰리즘 담론 = 158
 국가 정체성 = 164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다 - 독일의 사례 = 166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다 -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 = 170
 히잡을 둘러싼 논쟁 = 173
 권위의 변질이 야기한 집단적 불안 = 179
 외국인과의 교류 = 183
 더불어 살아가기 = 186
7 민주주의의 미래
 꿈과 현실 = 191
 우리 안의 적 = 198
 부흥을 향하여? = 203
주 = 209
찾아보기 =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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