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이렇다.”라는 ‘견해’가 법적으로 ‘악의적’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이 견해를 밝혔는데 감옥에 보낸다거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상통제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는 방송이나 교과서를 검열하려고 할 때,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이자 고려대 법대 교수인 법학자 박경신은 현 정권을 바라보며 그동안 느껴왔던 불편한 사안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며, 우리가 시민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평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제시한다.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답답함을 느껴왔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속 시원해지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장에서는 사람들의 소통을 제약하는 규제들이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저자가 지난 5년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3대 사례로 꼽은 ‘미네르바’, 광우병 보도, 언론소비자주권연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규제들이다. 2장에서는 시간·방법·장소·매체를 제약하는 규제들을 다룬다. 인터넷 실명제, 음반심의제도, 선거규제, 집회시위법, 방송 공정성 심의 등이 핵심적이다.
3장에서는 소통을 규제하는 주체들을 다룬다. 아무리 빛나는 표현의 자유 원리들도 국가기관들이 오독한다면 의미가 없다. 4장에서는 사생활로서의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새겨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을 짚어본다.
아무리 저속한 표현이라도
못하는 것보다 낫다!
이 책은 국민의 알 권리와 사법의 관점을 오가며,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표현의 자유’를 지금 중요한 담론으로 끌어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쾌한 보호이론은 개그우먼 정선희 씨가 펼친 바 있다(62쪽 참조). 최진실의 자살을 핑계로 여당이 ‘사이버모욕죄’를 만들어 네티즌들의 언어를 순화시키겠다고 했을 때, “인터넷은 호수와 같은 것이다. 새와 꽃과 나비만 살 수는 없지 않느냐. 미생물도 살아야 하고.”라며 말린 적이 있었다. 저질 농담을 자유롭게 하는 머리에서 셰익스피어도 나올 수 있고, 욕을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정부정책에 대한 맹렬한 연구와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시체를 본 사람들은 “Fuck USA!”라는 구호로 시청 앞 시위할 자유를 누려야 하고, 반전주의자가 베트남전에 강제로 징병될 위험에 처했을 때 “Fuck the Draft!”라고 말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Fuck”이란 단어를 쉽게 쓰는 것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Fuck”이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해야 “Fuck the Draft!”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가 아슬아슬할 정도의 단어까지 옹호하며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표현이 불쾌하다고 해서 그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것은 그와 관련된 감정을 표명하지 말라는 것이며, 이는 곧 사상통제가 된다고 저자는 분명히 표명한다.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 모욕죄까지
왜 지금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사상통제, 표현을 검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 모욕죄다.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인데 우리나라는 그 적용 범위가 거의 임의적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공포와 우려 때문에 ‘청산가리’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쇠고기 수입업체가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힘없는 일반 서민이 명예훼손죄로 타인을 고소하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고소고발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권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상위계급이 명예훼손죄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회적 약자와 하위계급이 제기하는 문제를 금전과 권력을 바탕으로 명예훼손죄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명예훼손죄는 결국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관료나 기업가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 사회적 강자가 아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허위사실유포죄도 마찬가지다. “BBK가 이명박 소유가 아니다.”라는 입증이 없는 상황에서 정봉주 의원에게 “네 말이 진실이라고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고 하는 식의 판결은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말 자체가 허위인지는 판시하지 않고 말한 사람이 얼마나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너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느냐?”, “네가 한 그 말은 틀렸다.”라고 해서 처벌하고 그 말이 진실인지를 ‘말한 사람’에게 지우는 논리라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야훼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죄로 모두 감옥에 가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침묵하라는 것인데, 이런 규범 아래서 어떻게 문명이 발전하고 사상이 발전할 수 있을지에 저자는 개탄의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관심 있게 봐야 할 곳은 ‘모욕죄’를 ‘혐오죄’로 대체하자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는 정작 규제해야 할 폭력은 방치한 채 규제할 필요가 없는 행위에 불필요한 개입을 하고 있다. 모욕죄라는 명목으로 쉽게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목소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는 기득권 세력이다. 오히려 평범한 시민이 ‘말할 기회’가 절절하지만, 그들이 모욕당했다는 이유로 검찰청에 찾아가서 고소하는 경우가 과연 몇 건이나 되겠는가? 정부의 고환율 정책 때문에 회사를 잃은 중소기업 사장이 정책권자에 대해 욕했다고 해서 모욕죄로 처벌받아야 맞는 걸까?
우리나라처럼 일반인 모욕죄로 확산된 국가는 독일·일본·대만뿐인데 그나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욕죄 기소가 활발히 이뤄지는 독일에서는 검찰이 개입하지 않는 사소私訴로 처리되고 있다. 모욕죄는 그 본질이 왕이나 귀족들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검찰이 개입할 경우, 현대사회에서는 권력층에 대한 비난을 위축시키는 제도로 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욕죄를 없애고 대신에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사회적 약자, 피학살 민족 등을 보호하는 혐오죄로 대체하자는 것이다(53쪽, 64쪽, 70쪽 참조).
‘진영 논리’에 빠진 비판이 아니라,
법률적 논리와 법 자체에 대한 비판
이 책은 이처럼 ‘정의’를 논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법적’ 시각을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극심한 진영 논리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어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영역임에도 그동안 법 비판, 즉 법이나 판결에 대한 비판은 대중에게 생소하게 여겨져왔다. 이 책은 권력의 잣대에 따라 이해되는 정치의 논리가 아닌, 올곧은 사법의 논리로 사회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한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은 추천사에서 이 책을 사회가 성숙해짐에 따라 제대로 된 법 비판, 즉 법의 정당성과 판결의 적절성을 따지는 논의를 앞당겨줄 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과 인터넷 실명제,
대한민국에서는 일기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곤 하나, 정부기관까지 나서서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하는 현실을 버젓이 보면서 그 법을 믿고 제 의견을 말할 용기를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현장을 목격한 네티즌들은 이제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투표를 독려했던 ‘좌파 연예인’ 김제동 씨가 ‘단독 내사 진행’이라는 문구로 분류돼 그동안 정부로부터 사찰당해왔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들은 최근 그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대거 인터넷을 떠났다.
그럼에도 ‘사이버모욕죄’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정부를 보고 네티즌 개개인을 지켜주리라 믿을 사람은 아마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근태 의원은 “규제는 규제의 틈을 막는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다. 규제는 위선을 만들고 인터넷의 활력을 빼앗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 법률로 보호받게 되는 것은 일반 시민이 아닌, 그것을 아주 잘 이용할 특수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분노는 하지만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폭력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이 책은 법의 정당성과 판결의 적절성을 따져든다. 우리 사는 사회가 성숙하려면 제대로 된 법 비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일반 시민과 사회적 약자의 발언권 보장과
참된 ‘민주주의’에 이르는 방법
북한 계정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농담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채 수감됐던 박정근 사진작가는 구속 40일 만에 겨우 보석이 허가됐다. “품위와 자질”이라는 우두머리의 한마디에, 튀는 입담 자랑하던 ‘가카새끼’ 이정렬 부장판사와 ‘빅엿’ 서기호 판사는 무너졌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자연이 남긴 유언장과도 같은 문서, 안기부가 본의 아니게 남긴 X파일, ‘청산가리’ 발언으로 파장을 몰고 왔던 여배우와 언론이 광우병에 대해 우려한 말, 누리꾼들이 황우석의 테라토마 사진을 보고 제기한 의혹들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그 의견을 묻거나 공유한다고 해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대체 누가 권력비리를 고발하려 할까? 아니, 권력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좋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거나 정권에 반하는 내용이라 해서 사소한 생각을 담은 자기 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다면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응당 누린다고 볼 수 있을까?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느끼는 순간은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했을 때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유권자들은 자신의 대표를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필요요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표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정확히 제시한다. “너희들이 직접 뽑았으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의식이 판치는 현 정권에서 ‘주권’을 가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시민으로서 진정 가져야 할 올바른 시각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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