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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1 | ▼a 久保田成子, ▼d 1937- ▼0 AUTH(211009)42494 |
245 | 1 0 | ▼a 나의 사랑, 백남준 : ▼b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 / ▼d 구보타 시게코, ▼e 남정호 지음 |
260 | ▼a 서울 : ▼b 이순(웅진씽크빅), ▼c 2010 | |
300 | ▼a 376 p. : ▼b 천연색삽화, 연표 ; ▼c 21 cm | |
504 | ▼a 참고문헌: p. 373 | |
536 | ▼a 이 책은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의 도움을 받아 저술, 출판되었음 | |
600 | 1 4 | ▼a 백남준 ▼g 白南準, ▼d 1932-2006 |
700 | 1 | ▼a 남정호, ▼e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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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1 0 | ▼a 구보타 시게코, ▼e 저 |
945 | ▼a KLPA |
Holdings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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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information
Book Introduction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을 담아낸 책. 백남준과 거의 반평생을 보낸 아내의 회고를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남준의 행적과 흔적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그의 예술에 더욱 풍성한 이야기, 1960년대 아방가르드 문화운동, 비디오 아트의 최전선에서 벌였던 생생한 일화와 함께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90여 컷의 자료 사진과 함께 공개되고 있다.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의 사적인 삶을 지켜본 아내이기도 하지만 예술적 동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1965년 전위예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구보타 시게코의 퍼포먼스 [버자이너 페인팅]의 진짜 기획자, 10년간 연인으로 지내면서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했던 백남준의 돌연한 청혼과 결혼식 이야기, [TV 부처] [TV 정원] [야곱의 사다리] 등 백남준을 현대미술의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들의 탄생 비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으로 달랬던 말년의 삶 등을 들려준다.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사이의 서사(敍事)와 서정(抒情)이 베일을 벗다
백남준은 일본, 독일, 미국, 한국 등을 무대로 활동했던 세계적인 예술가였지만 이제껏 그에 관한 전기적 사실이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다. 이 책은 백남준과 거의 반평생을 보낸 아내의 회고를 통해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백남준의 행적과 흔적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열여덟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세계를 떠돌며 유목민으로 살아온 백남준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드라마보다 극적인 삶이 드러난다.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의 사적인 삶을 지켜본 아내이기도 하지만 플럭서스(Fluxus: ‘흐름’이라는 뜻으로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등을 신봉하는 다다이즘과 맥을 같이한다. 의외성을 기초로 한 반反자본주의적 성향의 예술적 행동주의) 운동에서부터 비디오 아트를 함께한 예술적 동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의 회고는 단순히 백남준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쇤베르크에 심취했던 전위음악가에서 플럭서스 행위예술가로, 그리고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기까지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몇 가지 중요한 변곡점들을 거친다.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백남준을 처음 대면한 구보타는 그 자신이 백남준으로부터 강한 예술적 충격과 전율을 느낀 바 있다. 또 비디오 아트에 본격적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백남준의 엄청난 집중력과 탁월한 상상력, 그리고 한계를 모르는 정신세계를 지켜본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회고가 ‘추상’으로 머물던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살을 붙이고 온기를 불어넣어 그의 예술에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제공할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에 그녀와 백남준이 1960년대 아방가르드 문화운동과 이후 비디오 아트의 최전선에서 벌였던 생생한 일화들이 덧붙여진다. 비평이 덧대어지기 전,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현대예술과 직접 접속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밖에 이 책에는 1965년 전위예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구보타 시게코의 퍼포먼스 〈버자이너 페인팅〉의 진짜 기획자, 10년간 연인으로 지내면서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했던 백남준의 돌연한 청혼과 결혼식 이야기, 〈TV 부처〉 〈TV 정원〉 〈야곱의 사다리〉 등 백남준을 현대미술의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들의 탄생 비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으로 달랬던 말년의 삶 등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90여 컷의 자료 사진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본문에 수록된 이미지 가운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백남준의 드로잉, 구보타 시게코의 작품사진, 초상 등이 상당수 많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예술의 거장이라는 명성 뒤에 가려진 백남준의 땀과 눈물을 되살리다
세계인이 사랑했지만 정작 인간 백남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는 명성 뒤에 가려진 백남준의 가난, 외로움, 좌절의 장면까지 상세히 그린다. 이로써 그를 둘러싸고 있던 막연하고 난해한 이미지가 걷히고 그가 어떤 사연과 어떤 피를 가진 인간인지가 비로소 드러난다.
백남준은 한국 최초의 ‘재벌’로 불렸던 백낙승(白樂承)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국내에 딱 두 대밖에 없었다는 캐딜락 승용차 중 한 대가 백남준 집의 소유였을 정도지만 정작 그는 평생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과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을 때까지는 집안의 경제적 원조가 있었다. 그러나 구보타가 그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형들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가산이 탕진된 상태였다. 비디오 아트는 많게는 수십, 수백 대의 TV 수상기가 필요한, 말하자면 돈이 많이 드는 예술 분야다. 백남준은 후원자를 찾기 힘들었던 무명 때는 물론이고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쌓은 날까지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구보타는 전한다. 1984년 뉴욕, 파리 등 세계 주요도시에서 동시에 생중계된 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진행하고 이때 진 빚으로 몇 년 간 죽을 고생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 p. 252)
예술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했다. 작품 창작과 관련해서는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1972년, 그는 일본에 있는 형들을 방문해 1만 달러의 유산을 받아 온 적이 있다. 그러나 돈이 생기자 막상 눈앞의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기보다 맨해튼 시내 골동품 가게를 뒤져 불상 하나를 사왔다. “사바세계의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2년 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TV 부처〉로 탄생된다. (※ pp. 161~162) 뇌졸중과 싸워가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구겐하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꺾을 수 없는 창작의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병마와 싸워가며 만들어낸 〈야곱의 사다리〉에는 예술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 대가의 눈물겨운 투혼이 투사되어 있다. (※ pp. 306~320)
천진한 웃음으로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인간 백남준의 매력을 담다
지인들은 백남준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에 유쾌하고 낙천적인 정서를 갖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가 예술적 “아버지”로 생각했던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도 만약 당장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게 뭔가라는 질문에 “남준의 농담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을 정도다.
백남준은 컴퓨터처럼 정확한 두뇌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지만 반면 지독한 건망증이 있었다. 물건을 노상 잃어버려서 아예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커다란 주머니를 덧댄 셔츠를 입고 다녔고 그것을 친구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에게 선물하기까지 했다. 당뇨병 때문에 쉬이 피로를 느껴 아무 데서나 잠을 청했던 버릇이랄지, 한 끼 식사로 고기와 생선을 같이 먹거나 익지도 않은 베이컨을 집어 먹는 식습관 등 아내 구보타의 회고에는 허점마저도 매력적이었던 인간 백남준이 살아 있다.
백남준의 금전적 무절제에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궁핍함을 모르고 자란 배경이 있다. 하지만 이보다 무소유를 중요시하는 동양철학의 영향이 컸다. 굿판을 벌여 사람들을 소리치고 춤추게 만드는 무속은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만주벌판을 거침없이 달리던 기마민족의 유전자는 그에게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을 주었다고 스스로 믿었다.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에서 활약한 예술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과 내면을 가장 잘 보존한 사람”(이어령)이었던 것이다.
1984년 34년 만에 고향을 찾은 백남준의 상기되고 들뜬 표정에서 드러나듯이, 고향은 그에게 언젠가 돌아갈 따듯한 어머니의 품과 같았다. 그 때문에 형들이 일본인으로 귀화를 할 때도 그는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냉전시대에는 고국 땅을 밟는 데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동구권의 초청에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 구겐하임 전시회를 끝내고 이후 병세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 후에는 〈울밑에서 선 봉선화야〉 〈아리랑〉 등을 연주하면서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그와 들숨과 날숨을 함께했던 배우자가 전하는 백남준 최후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는 때로 코끝을 아릿하게 만든다.
우연과 운명 사이를 가로지르며 40년간 이어졌던 인연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의 인연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에서 플럭서스 행위예술가로 활약하던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컬러 TV와 로봇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 와 있었다. 1963년, 신문 기사를 통해 백남준을 알게 된 구보타는 “갸름한 얼굴에 우수에 젖은 듯 깊게 그늘진 눈매를 가진” 그에게 첫눈에 반한다. 대패로 피아노를 깎아내는가 하면 도끼로 피아노를 가차 없이 내리찍고, 먹물에 적신 머리를 붓 삼아 획을 긋고(〈머리를 위한 참선〉), 신고 있던 가죽구두를 벗어 물을 콸콸 따르고는 단숨에 마셔버리는(〈심플〉) 등 쇼게츠 홀 퍼포먼스(1964년)는 그의 데카당트한 문화 테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당시 일본 내에서 플럭서스 운동에 관여하고 있던 구보타는 이를 계기로 도미(渡美)한다. 그리고 맨해튼의 플럭서스 본부에서 운명처럼 백남준과 재회한다.
플럭서스 동료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1964년 9월 어느 날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한동안 일방적이었던 구보타의 연모와 그리움이 마침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이날을 계기로 백남준과 구보타의 관계는 깊어지지만 한 여자의 품에 들어앉히기에 백남준은 너무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백남준과의 퍼포먼스를 통해 ‘전위예술계의 잔 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은 아름다운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Charlotte Moorman, 1933~1991)이라는 존재도 거슬렸다. 남녀관계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가 없었을 리 없다. 그것이 오직 구보타의 몫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결국 백남준과의 관계를 포기한 그녀는 작곡가 데이비드 베어먼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여 첫 번째 결혼을 한다. 그러나 유태인 시부모와의 갈등과 그로 인한 이혼 등 결코 녹록지 않은 인생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본 순간부터 백남준의 연인이 되리라 다짐했다는 구보타가 한결같이 백남준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무심해 보였던 백남준의 태도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연인관계가 깊어지던 즈음 그가 선물하곤 했다는 향수, 적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1977년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된 배경(※ pp. 187~194)을 엿보면, 연인이자 아내였던 구보타에 대해 그가 가졌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읽힌다. 뇌졸중으로 투병 중일 때는 수많은 드로잉과 메모를 통해 아내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게코, 우리가 젊었을 때 당신은 내게 최고의 연인이었어. 이제 내가 늙으니 당신은 최고의 어머니, 그리고 부처가 되었어.” (※p. 300)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다
예술가로서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의 그림자에 눌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불행한 비디오 작가라는 평을 받곤 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일본인 아내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이 책은 한 남자에 대한 간단없는 사랑을 불태웠던 여자 구보타 시게코의 회고록일 뿐만 아니라 플럭서스 예술가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그녀를 재조명하는 책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부 편견과 오해로 점철되었던 그에 대한 시선을 교정하게 될 것이다.
니가타의 강인한 자연 속에서 자라난 구보타 시게코는 어려서부터 예술적이고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자라난다. 아버지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체계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그녀는 열입곱 살에 중앙미술전에 나가 입상을 하는 등 천재 미술 소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조소과를 택해 대학에 입학하지만 미술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그녀의 거침없는 성정이 억눌리고 부대끼었다. 이즈음 고루함과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식에 숨 막혀 하던 그녀는 오노 요코(小野洋子) 등과 교류하던 현대무용가인 이모 구니 치야(邦千谷)를 통해 플럭서스 운동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1964년 초 일본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설치작품 〈연애편지〉로 개인전을 갖고, 그해 뉴욕으로 떠나 플럭서스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플럭서스 아티스트에서 비디오 아티스트로 발돋움할 때는 “남편의 예술세계를 베껴먹는 얄팍한 날치기 작가로 매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더더구나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야 살 수 있다는 걸” 의식했다. 전쟁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 속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마르셀 뒤샹의 무덤〉 등 독창성과 심미성이 돋보이는 비디오 아트의 걸작이 탄생한다. 뉴욕의 3대 현대미술관인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진 걸출한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점은 그녀가 더 이상 백남준의 그늘로 존재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비디오 예술을, 아내는 남편에게 조형미술을 가르치다
예술가 커플로서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가 나눈 교감은 작게는 비디오를 나르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서로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고받기까지 폭넓고 다양했다. 구보타 시게코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거듭나기까지 연인 백남준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음은 물론이다. 그녀가 쓴 비디오 기법 자체가 백남준에게서 전수받은 것이고 출세작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는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라는 신천지를 개척하지 않았더라면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구보타도 백남준의 조력자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다. 쇤베르크에 심취했던 음악도로 예술을 접한 백남준은 미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실제로 그는 가깝게 지내던 한 일본인 교수에게 “나는 조형(造形)은 안 돼”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현재 비디오 조각은 백남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만, 이는 조각가 출신인 구보타 시게코가 개척한 분야이기도 하다. 존 핸하트(John G. Hanhardt)를 백남준에게 소개한 것도 구보타였다. 핸하트는 비디오 아트라는 예술 장르를 현대미술의 꽃으로 피우는 데 큰 기여를 한 큐레이터다. 그밖에도 백남준이 ‘홀리 솔로몬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발탁될 수 있도록 도운 점 등 구보타는 음으로 양으로 그의 예술활동을 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일화
① 〈버자이너 페인팅〉의 진짜 기획자
1965년, 전위예술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일어났다. 퍼페추얼 플럭서스 페스티벌에서 구보타 시게코가 선보인 〈버자이너 페인팅〉 때문이다. 그녀는 사타구니 사이에 붓을 꽂고 커다란 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다. 물감은 핏빛처럼 붉은색이었다. 잭슨 폴록이 화실 바닥에 페인트를 뚝뚝 흘리던 제작 방식을 빗대는 동시에 그것을 뒤집어버린 이 액션페인팅에 대해, 당시 많은 남성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플럭서스 동료들까지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오랫동안 구보타 시게코의 기획으로 알려져 있던 이 퍼포먼스의 진짜 기획자는 백남준이었다. 1965년 연인 관계를 맺고 있던 백남준이 퍼페추얼 페스티벌을 앞둔 어느 날 구보타 시게코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하고 그녀는 수치심을 이겨내고 오로지 백남준에 대한 “사랑”으로 이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백남준은 이것을 비밀에 부쳐두기를 원했다. (※ pp. 98~105)
② 조지 마키우나스와 오늘날 소호의 탄생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였던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1931~1978)는 1964년 〈오리기날레〉 공연 꺹제로 남준과 다른 동료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자 한 톨의 미련 없이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깨끗이 손을 씻는다. 그는 즉각 플럭서스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섰다. 예술가의 길에서 벗어난 마키우나스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삶을 시작한다. 부동산 개발이었다. 그는 버려진 공장지대였던 뉴욕 맨해튼 남부의 소호 지역 개발에 착수한다. 소호 일대 건물 27개를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아주 싼 값에 예술가들에게 팔아넘기는 방법이었다. 이 지역에 예술가들이 넘쳐나기 시작하자 아틀리에는 물론이고 이들의 구미에 맞는 싸면서도 제법 멋들어진 음식점, 옷가게, 술집 등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40년이 흐른 지금 뉴욕, 아니 세계에서 가장 전위적이면서도 세련된 지역으로 꼽히는 소호가 탄생하게 된다. (※ pp. 134~141)
③ 10년간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하던 백남준이 돌연 구보타 시게코에게 청혼한 까닭
백남준은 “난 아이 가질 생각이 없어. 예술하고 작품 만드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그리고 나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골치만 아프지”라고 말하곤 했다. 젊어서 혹독하게 가난했을 때는 엄두를 못 냈지만,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구보타는 아기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자궁암이었다. 아이는 둘째 치고 살기 위해 수술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다. 당시 보험이 없던 구보타는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 병을 치료하려고 짐을 싼다. 그때 백남준이 청혼을 한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백남준이 든 보험 혜택을 구보타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을 연인으로 지내면서도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하던 그 자유인이 구보타의 병 치료를 위해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 pp. 187~194)
④ 1998년 백악관 만찬장에서 벌어진 일
클린턴의 섹스스캔들로 시끄럽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부부의 미국 방문을 맞이하여 백악관에서 만찬이 열린다. 이때 초대받는 백남준이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 위해 휠체어에서 일어나면서 바지가 벗겨지는 사고가 났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부도덕한 행동을 비꼬는 행위예술이었다, 반신불수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의 단순한 실수였다, 장난기 많은 백남준이 근엄한 권력자들 앞에서 보여준 희대의 정치풍자였다”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백남준과 동행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정황을 보건대 구보타는 그것이 명백한 실수였다고 전한다. (※ pp. 301~305)
⑤ 간호사 스티븐과 도난당한 작품
1999년 백남준의 간병인으로 일을 하게 된 스티븐은 뇌졸중 치료에 큰 도움을 준 간호사였다. 왼쪽 신체가 마비된 백남준을 돌보는 것은 중노동에 비할 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불평 없이 백남준의 생활습관부터 재활운동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고, 그 덕에 건강을 회복한 백남준은 구겐하임 회고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러던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 테러가 일어난다. 참사 현장에서 백남준 부부의 아파트가 지척이었다. 스티븐을 뉴욕에 남겨둔 채 백남준의 건강을 위해 마이애미로 피신을 떠난 구보타는 이튿날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한다. 은행예금은 물론이고 현금과 수표, 신용카드 등 수십만 달러어치가 없어졌고, 머서 가 아파트 외에 다른 스튜디오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 상당수가 도난당한 것이다. 그들이 아들처럼 사랑하고 신뢰했던 스티븐의 짓이었다. 이후 도난당한 작품이 소더비 등의 경매에 나오기도 했지만 스티븐은 끝내 찾지 못했다. 스티븐에 대한 사랑이 컸기에 이 일은 백남준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 pp. 3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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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Introduction
구보타 시게코(지은이)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후 시나가와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에 합류한다. 1964년 당시 독일에서 활약해온 전위예술계의 총아 백남준의 공연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아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며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뉴욕에서 백남준과 운명처럼 재회한다. 이때부터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할 때까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예술가 커플로 40여 년을 함께한다. 다음 해 백남준을 기리는 ‘백남준과 함께한 나의 삶’ 전을 개최했으며, 2015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64년 초 도쿄 나이쿠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뉴욕 르네 블록 갤러리, 현대미술관 MoMA,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비디오 조각’ 개인전을 여는 등 뛰어난 현대미술가로 평가받았다.
남정호(옮긴이)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뒤 2020년부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언론 경력 33년째인 국제문제 전문기자다. 89년 입사 이후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거쳐 뉴욕?런던?브뤼셀 특파원을 지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고려대에서 유엔사령부에 관한 연구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광운대 겸임교수이며 유엔한국협회 산하 유엔글로벌연구센터장,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자문위원, 아시아소사이어티 자문위원, 한러대화 사회언론분과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과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및 자체평가위원, 관악언론인회 부회장으로도 일했다. 주요 저서로는 『반기문의 도전』(김영사, 2016),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김영사,2014), 『나의 사랑 백남준』(아르테, 2016), 『백남준: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아르테, 2020) 등이 있다.

Table of Contents
목차 추천사 = 5 서문 = 10 프롤로그 = 16 chapter 1 달콤한 테러리스트 1 이 남자를 꼭 잡고 말겠어 = 28 2 질풍노도의 소녀시대 = 39 3 전쟁과 파인애플 = 50 4 음악 지망생에서 문화 테러리스트로 = 56 5 비디오와 예술을 섞어라 = 61 6 당신 작품 참 좋았어요 = 69 chapter 2 거침없이 플럭서스 1 뉴욕에서의 재회 = 78 2 우리들의 실험, 코뮌 라이프 = 84 3 아방가르드 파트너, 백남준과 샬럿 무어맨 = 88 4〈버자이너 페인팅〉 = 98 5 외설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 106 6 잘못된 만남 = 117 7 캘리포니아 드림은 없다 = 129 8 소호 탄생의 비밀 = 134 chapter 3 뉴욕을 강타한 황색 재앙 1 큐레이터 시게코의 헌신 = 144 2 가난한 플럭서스 커플 = 150 3〈TV 부처〉의 탄생 = 158 4 달빛은 높은 예술, 백남준은 낮은 예술 = 163 5 나의 뒤샹을 질투한 남자 = 166 6 한국 남자를 좋아하는 유전자 = 182 7 슬픈 결혼식 = 187 chapter 4 세상이 기다리던 쇼를 하라 1 소름 돋는 천재와 세 살배기 아이 = 196 2 독일의 감격시대 = 214 3 34년 만의 금의환향 = 235 4 한국 무덤에 반하다 = 242 5 지상 최대의 쇼를 하라,〈굿모닝 미스터 오웰〉 = 246 6 남준 안에 무당 있다 = 254 7 타틀린을 위한 헌정,〈다다익선〉 = 259 chapter 5 부처, 야곱의 사다리를 오르다 1 초대받지 않은 손님, 뇌졸중 = 270 2 섹슈얼 힐링 = 278 3 나는 '욘사마' 열풍 1호 = 289 4 백악관 노출 사건의 진실 = 301 5 거장, 야곱의 사다리를 오르다 = 306 6 간호사 스티븐 = 321 7 고향에 가고 싶다 = 331 8 그가 떠나던 날 = 339 9 내 마음 속 부처 = 345 10 백남준의 귀환 = 356 에필로그 = 362 백남준 연보 = 365 구보타 시게코 연보 = 368 주 = 371 참고문헌 = 373 이미지 제공처 = 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