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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 역사를 돌아 흐르는 이슬람의 검은 피 (50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臼井隆一朗, 1946- 김수경, 역
서명 / 저자사항
커피가 돌고 세계史가 돌고 : 역사를 돌아 흐르는 이슬람의 검은 피 /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 김수경 옮김
발행사항
서울 :   북북서,   2008  
형태사항
262 p. : 삽화 ; 23 cm
원표제
コ-ヒ-が廻り世界史が廻る : 近代市民社會の黑い血液
ISBN
9788995919934
서지주기
참고문헌: p. 260-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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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11517283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학술정보관(CDL)/B1 국제기구자료실(보존서고5)/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1151728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의학도서관/자료실(3층)/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3103653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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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11517283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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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학술정보관(CDL)/B1 국제기구자료실(보존서고5)/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11517284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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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의학도서관/자료실(3층)/ 청구기호 641.3373 2008z8 등록번호 13103653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커피에 매료된 저자가 커피라는 상품의 역사를 현대문명의 하나의 우화로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커피라는 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관여했는지’를 살피며 자연스럽게 400여 년에 걸친 커피의 역사를 더듬어 나간다. 이슬람의 종교적 관념이 빚어낸 커피와 커피문화는 세계사의 주요한 장면마다 흐르고 있다.

이슬람의 종교적 관념이 빚어낸 커피와 커피문화는 서아시아 지방에서 ‘커피의 집’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그 후 런던으로 건너간 커피는 ‘커피하우스’로 변신하여 근대시민사회의 제도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며, 파리에서는 프랑스혁명의 거점이 된 카페의 모습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커피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착취와 인종차별에도 깊이 개입했으며, 급기야 독일에서 시민사회의 돌연변이라고 할 파시즘을 낳고 만다…. 커피에 매료된 저자는 이렇게, 커피라는 상품의 역사를 현대문명의 하나의 우화로서 서술하고 있다.

“그까짓 커피 한 잔이 역사를 움직였다고?”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울림으로 불리는 ‘커피’는 원유에 이어 세계 제2위의 무역상품이다. 모터리제이션이 일반화된 현대산업사회에서 석유는 없어서는 안 될 원료이지만, 기호식품에 불과한 커피가 2위라니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생활 속에서 흔해빠진 커피라는 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관여했는지’를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400여 년에 걸친 커피의 역사를 더듬어 나간다.
널리 알려진 커피의 기원전설 중 하나는 아라비아의 산양치기 칼디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칼디가 산양 무리를 새 목초지로 데리고 갔는데, 산양들이 흥분을 해서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다. 당황한 칼디는 근처 수도원을 찾아갔다. 수도원장 스키아들리가 조사해보니, 산양들이 어느 작은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열매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어보다가 한 번은 끓여서 마셔보았다. 그러자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도원에서는 밤에 예배를 볼 때마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수도원장은 그 열매 끓인 음료를 그들에게 마시게 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그 후로 수도원에서는 저녁예배 때마다 그 검은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동아프리카. 그곳에서 자란 커피콩을 원료로 이슬람 수피들의 종교적 관념이 빚어낸 커피는 서아시아 지방에서 ‘커피의 집’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피들은 마시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커피의 네거티브한 특성을 그대로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여서 밤늦게까지 기도하고 신과 합일을 이루고자 커피를 마셨다. 그런 커피의 항면작용과 사교장으로서의 문화적 효능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유럽 대륙으로 전파된다.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성지순례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순례는 그 자체가 거대한 상품수송기관이자 정보전달기관이었다. 머지않아 커피의 운반과 교환에 이슬람 세계의 거상들과 유럽제국의 상인자본가가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커피는 근대 상품교환사회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세계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그 후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지로 전파된 커피는 각 나라의 문화에 포함되면서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거친다.
커피교역은 처음부터 거창한 국제성을 띠었다. 상품교환은 공동체가 끝나는 지점에서 발생하게 마련인데, 그것을 알선하는 것은 상인들이다. 초기의 커피교역을 주도한 것은 모카나 아덴을 비롯한 남아라비아 소도시의 상인들이었다. 특히 옛날부터 아라비아에 살면서 상업 활동에 깊이 관여한 유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커피에 관한 노래도 17세기 예멘의 유대인 상인들 사이에서 불린 「커피와 카트」라는 것으로 아라비아 문자로 기록된 헤브라이어 노래이다. 덧붙여서 밥 딜런도 「ONE MORE CUP OF COFFEE」라는 노래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이스라엘 선율이 떠오르는 곡조로 노래했다. 미국의 미네소타 주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로버트 알렌 짐머맨(밥 딜런의 본명)의 핏속에는, 커피를 노래할 때는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것 같은 애절한 선율에 실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는 무언가가 흐르는 모양이다.

“저 계곡 아래로 길을 나서기 전에
커피 한 잔만 더.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만 더. 커피 한 잔 더.”
-밥 딜런, 「ONE MORE CUP OF COFFEE」

런던으로 건너간 커피는 ‘커피하우스’로 변신하여 근대시민사회의 제도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이라 불리며 런던 시민들을 공론 형성의 장으로 불러냈다. 드라이든, 포프, 스위프트 등의 수많은 문인이 이곳을 통해 배출되었고, 「테틀러」와 「스펙테이터」 등의 신문을 발행한 곳도 커피하우스였다. 세계 굴지의 보험회사 로이드도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커피하우스는 우체국, 주식거래소, 곡물거래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사무공간으로서도 한몫을 했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고 영국으로 건너오자 런던 시민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아라비아 말,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쓴 부적을 가슴에 품고는 쭈뼛쭈뼛 커피하우스를 찾아가 ‘커피가 페스트 예방에 좋다’는 등의 정보교환에 열을 올렸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그러나 영국의 커피하우스와 커피문화는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는다. 여성이 철저하게 배제된 탓인데, 영국에서의 커피의 몰락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자료가 있다. 1674년, 남편들이 허구한 날 커피하우스에 들락거리는 데 애태우던 아내들이 커피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자 발행한 진귀한 팸플릿이다. 정식 제목은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의 청원. 남자들을 사막처럼 메마르고 쇠약하게 만드는 음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그녀들의 섹스에 발생하는 거대한 불편을 공공의 사려에 호소한다」이다. 「여성의 청원」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커피는 힘세고 기세 좋던 영국인의 자손을 ‘원숭이와 피그미 계열로 왜소하게’ 만들었고, ‘자연을 다치게 하는 유해한 작용’이 있다. 그녀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남편들이 걸핏하면 커피하우스에 가서 여성의 특권이랄 수 있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여성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남편들은 커피하우스에서 ‘마치 웅덩이에 모여 있는 개구리처럼, 흙탕물 같은 액체를 홀짝홀짝 마시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워낙 정치가인양 행세하는 남편들이 한심했는데, 가장 중대한 화제라는 것이 ‘홍해는 무슨 색일까’, ‘터키 황제는 루터파인가 칼뱅교도인가’, ‘카인의 의부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심지어 결판을 낼 때 사용하는 무기가 그 옛날의 기개 넘치던 퍼포머의 모습이 아니라 여성들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혓바닥뿐인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커피와 카페를 시민혁명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 프랑스다.
파리로 건너간 커피는 프랑스혁명의 거점이 된 카페의 모습으로 자유와 평등, 박애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커피가 사람의 심신에 아주 해롭다는 풍설은 프랑스인 사이에서 독특한 커피문화를 발달시켰다. 바로 카페오레다. 커피가 몸에 나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 프랑스 땅에는 풍요와 청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암소와 우유가 있지 않은가! 우유를 섞어 마셔서 커피의 독성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카페의 발전도 결코 여성을 배제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받아들인 것이 베르사유의 귀족부인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들은 커피의 아로마에 흠뻑 취한 채 터키황제의 후궁이나 술탄 왕비의 머리모양 등을 떠올리며 저 먼 오리엔트의 파라다이스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훗날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베르사유 귀부인들을 목가적 취미에 빠지게 해서 성대한 ‘커피 모임’을 유행하게 만들고, 그것이 국가의 재정에 부담을 주기에 이른다. 프랑스 카페는 처음부터 여성의 출입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영국의 「여성의 청원」에서 호소한 것처럼 ‘섹스의 부재’를 한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의 존재는 프랑스의 카페문화를 국민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 내리게 했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의 작전사령부로 명성을 날린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는 그 대표격이다. 머지않아 프랑스 계몽주의와 미국의 독립, 프랑스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 이름을 떨친, 파리를 대표하는 카페이다. 프로코프의 개점은 16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100년 전이었다. 프로코프를 위시하여 파리의 파레 루아얄 광장 주변에 늘어선 카페들은 지식인들과 일거리가 없는 변호사, 의사, 배우, 문인들이 모여 ‘카페정치’를 꽃피웠고 프랑스혁명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독일 쪽을 바라보면 커피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 않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커피에 샴페인을 넣어서 끓인 뒤 후춧가루를 뿌려 마셨다고 한다. 이 모순 넘치는 대왕은 네덜란드에서 들여오는 수입커피에 거액을 지불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대용커피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는다. 치커리, 보리, 사탕수수, 무화과, 땅콩뿐만 아니라 땅에서 나는 모든 열매로 대용커피를 만들었다. 심지어 바다에서 나는 해초로도 커피를 만들었다.
특이한 것은, 군국주의가 판을 치던 프로이센의 수도에 생겨난 별난 카페에서의 커피와 설탕의 관계이다. 베를린의 카페는 콘디토라이(Konditorei, 과자점) 스타일이다. 이슬람 수피즘의 커피는 본래 쓴 것이었다. 유럽의 달콤한 커피와 케이크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베네치아이다. 18세기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광장 근처에는 지금도 남아 있는 카페 플로리안을 비롯한 커피집들이 앞 다투어 들어서기 시작했고 설탕을 넉넉하게 사용하면서 번성했다. 베네치아의 설탕과자점과 카페는 그 시대의 인기산업이었다. 특히 이곳에서 설탕과자와 카페테리아에 관련된 상업부문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확립한 것은 스위스 산악도시 엥가딘 출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업은 1766년까지 베네치아에서 번영을 누렸지만, 베네치아 당국과 마찰을 빚어 958명의 엥가딘 출신 과자업자와 카페테리아 경영자들이 도시공화국에서 추방당했다. 베네치아에서 쫓겨난 그들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남성적인 신흥도시 베를린으로 쇄도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독점을 형성했다. 그들은 상대국가의 사정을 면밀하게 파악했다. ‘이 나라는 나폴레옹 해방전쟁(1813~1815)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프로이센 군인이다…….’ 엥가딘 사람들은 프로이센 군인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들은 가게 안에 군복을 잘 차려입은 역대 프로이센 왕들의 초상을 걸어놓고, 비록 케이크 한 조각을 먹더라도 프로이센의 군국정신을 느낄 수 있게끔 연출했다. 그리고 해방전쟁 당시의 대포도 전시했다. 가게는 일요일이면 수많은 시민들로 붐볐다. 베를린의 번화가 운터 덴 린덴에 모여들어 웅장한 군대 퍼레이드에 흥분했고, 취악단이 잇달아 연주하는 요란한 음향에 취한 시민들은 피로와 공복감을 설탕을 듬뿍 담은 커피와 케이크로 달랬다.

아프리카, 아라비아, 자바, 네덜란드, 프랑스, 서인도를 거친 커피 아라비카는 브라질, 그중에서도 커피 생산량의 52퍼센트를 산출하는 상파울루 주의 해발 600~800미터 고지대의 비옥한 계곡에 이상적인 토지를 발견한 뒤로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브라질은 20세기 초부터 만성적인 생산과잉에 시달렸다. 커피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해서 생산을 억제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생각하지만, 커피의 경우에는 그것이 몹시 곤란하다. 새로 커피나무를 심으면 수확이 시작되는 것은 대략 5년 후의 일이다. 게다가 일단 열매를 맺기 시작한 커피나무는 그 후로도 30~40년은 계속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산출량은 커피나무의 숫자와 나이 등으로 단순하게 나눠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커피는 기후조건에 민감해서, 반대로 기후가 너무 일정해도, 그리고 과실수는 변함없다고 해도, 풍작 뒤에는 마치 힘을 다 쓰기라도 한 듯이 흉작이 몇 년이나 이어지곤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수요에 맞춰 생산을 유연하고 계획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커피는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해서 수요가 늘거나 하는 성격도 아니다. 불안정한 생산고, 심하게 등락하는 가격, 그리고 일반적인 경향이 되어버린 생산과잉. 이런 문제들은 브라질에 있어서 중대한 위협을 의미했다.
20세기 초 10년간, 브라질은 세계의 커피 총생산량의 3/4 이상을 생산해서 전 세계에 커피를 돌게 하는, 말 그대로 커피의 심장이 된다. 브라질에 있어서 커피는 결코 취미나 기호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다. 설령 커피가 유럽인에게는 기호품이었다고 해도, 20세기 초반의 브라질에 있어서는 국민의 90퍼센트가 커피생산에 종사했으며, 외화수입의 90퍼센트 이상을 커피에 의존했다. 커피와 브라질의 운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의 식민지 제국주의가 커피 생산지에 강요한 것은 극단적인 모노컬처였다. 그런 결과로, 이들 식민지 국가들은 커피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 예로 1979년의 아프리카 제국을 살펴보면, 커피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우간다 98퍼센트, 부룬디 82퍼센트, 에티오피아 75퍼센트, 르완다 71퍼센트의 극단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커피 모노컬처의 부자연스러운 생산 시스템은 해당 국가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렸다. 커피라는 상품생산의 역사는 ‘행복한 아라비아’ 예멘 이래로 ‘무슈 자본과 마담 대지’의 결혼의 역사였지만, 이들이 반드시 행복한 부부는 아니었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우스이 류이치로(지은이)

도쿄대학 명예교수. 1946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1972년 도쿄교육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니가타대학 교양부 조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도쿄대학 교양학부(종합문화연구과 언어정보과학 전공) 교수, 테이쿄대학 외국어학부 교수를 지낸 후 2014년에 퇴임했다. 지은 책에 『네티 라드바니에서 안나 제거스로』『바하오펜론집성』『빵과 와인이 돌고 신화가 돌고』『말라버린 나무의 언어』『기억과 기록』『고해정토론』『카를 슈미트와 현대』『아유슈비츠의 커피』등이 있다.

김수경(옮긴이)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에이전트로 근무하다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가 있고, 옮긴 책에『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기획서는 한 줄』『청춘이란』『마두금 이야기』『조금 다를 뿐이야』『여자 나이』『듣기: 직원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소통의 기술』『준비된 습관』 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01 수피즘과 커피
 아라비아 펠릭스-행복한 아라비아 = 9
 커피의 탄생 = 18
 메카 사건 = 30
 커피의 집 = 37
02 커피 문명의 발생적 성격
 아라비아 모카 = 47
 카이로의 거상 = 51
 레반토 상인 = 55
 네덜란드 상인 = 58
03 커피하우스와 시민사회
 커피하우스와 공공성 = 67
 자유에 깨인 국민 = 79
 시민의 영어회화교실 = 83
 갓 볶은 숯검정의 패퇴 = 87
04 검은 혁명
 루이 14세와 국제정세 = 101
 커피외교 = 110
 카페오레 = 115
 커피의 출현 = 120
 행복한 마르티니크 = 123
 '니그로의 땀' = 127
 배우의 첫 연기 = 131
 한겨울의 파리 = 137
 아지테이션 카페의 성쇠기 = 141
 검은 신주 = 151
05 나폴레옹과 대륙봉쇄
 나폴레옹 = 159
 프리드리히 대왕과 대용커피 = 162
 커피와 설탕의 세계사적 의의 = 168
 베를린의 콘디토라이 카페 = 172
 브라질 산지의 목소리 = 177
06 독일 동아프리카 식민지
 식민지를 찾아서 = 183
 독일산 커피 플랜테이션 = 186
 동아프리카의 임금노동자 = 189
 마지마지 봉기 = 195
 발터 라테나우 = 197
 킬리만자로와 모카 = 200
 커피재배의 성과 = 203
07 현대국가와 커피
 근대 전쟁과 커피 = 213
 독일판 검은 혁명 = 218
 광기, 암살, 폭동 = 223
 초열지옥 = 230
마지막 장 : 검은 홍수
 제2차 세계대전 = 243
 검은 격류 = 248
 커피, 다시 돌다 = 252
지은이의 글 = 256
참고문헌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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