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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선집. 4

모택동 선집. 4 (13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毛澤東, 1893-1976 김승일, 1955-, 역
서명 / 저자사항
모택동 선집. 4 / 모택동 ; 김승일 옮김
발행사항
파주 :   범우사,   2008  
형태사항
450 p. ; 23 cm
총서사항
중국문화총서 ;3-4
원표제
毛澤東選集
ISBN
9788908041974 9788908041936 (세트)
일반주기
"모택동 연보" 수록  
일반주제명
Communism -- China
주제명(지명)
China -- History -- 1949-1976
주제명(개인명)
毛澤東,   1893-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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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2자료실(3층)/ 청구기호 335.4345 2001 4 등록번호 111715053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사회과학실/ 청구기호 335.4345 2001 4 등록번호 15126114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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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세종학술정보원/사회과학실/ 청구기호 335.4345 2001 4 등록번호 151261147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컨텐츠정보

책소개

총 4 권으로 이루어진 모택동 선집은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모택동의 사상과 철학을 그가 발표한 저작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모택동 사상은 초기(1911 ~1920)와 중기(1921 ~ 1957) 그리고 후기(1958 ~ 1976)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1차 국공합작과 장정 등을 거쳐 1940년대에 많은 부분이 완성되었다.

이 책에는 유격전술, 대중조직 방법,토지개혁 방법, 민족통일전선의 형성과 구상, 신민주주의 의론, 사상개조운동, 실천론과 모순론 등 중국혁명의 각 시기에 있어서 모택동의 주요한 사상이 정리.집대성되어 있다.


◎ 모택동이 직접 편집과 교열에 참여한 선집 전4권을 8년에 걸쳐 완성!

범우사는 [모택동 선집] 제2판을 지난 1999년 베이징 인민출판사와 독점계약하여 번역작업을 착수하여 드디어 4권을 완간했다.
[모택동 선집](제1~4권)의 초판은 50년대 초부터 60년대 초를 전후하여 출판되었다.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난 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중국공산당 창건 70돌을 맞아 이를 수정하여 제2판을 출판키로 결정했다. 초판 편집은 모택동이 직접 참여하여 지도하는 가운데 출판된 것이기에, 제2판에서는 원래 수록한 글들을 그대로 두고 <서책주의를 반대하는가>라는 글 한 편만을 더 보충하였다. 이 글은 한때 분실되었던 것을 60년대 초에 다시 찾은 것으로, 찾은 후에 모택동이 교열을 거쳐 1964년에 출판한 <모택동 저작선>에 처음 공개적으로 발표한 글이다. 거기에다 제2판에서는 초판에서 잘못 밝혀진 집필 날짜와 발표일을 고쳤고, 본문에 있는 서술 가운데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 오식과 누락 등을 정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수정 작업은 모택동의 의견에 따라 1962년부터 착수하여 근 20~3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에 진행된 사료 수집과 학술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에 근거하여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이 선집에는 여타 저작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던 일부 중요한 연설이나 포고문, 기사 등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 모택동 사상의 정수, 대중지도 이론의 진수

《모택동 선집》은 총4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는 제1925년부터 1927년까지의 1차 국내혁명전쟁 시기와 1928년부터 1937년까지의 2차 국내혁명전쟁 시기의 저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2권에는 1937년부터 1941년까지의 항일전쟁 시기의 저작들이 수록되어 있고 3권에는 항일전쟁 시기의 저작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4권에는 제3차 국내혁명전쟁 시기의 저작들이 시대별로 체계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1권에는 유격전술, 대중조직 방법, 토지개혁 방법, 민족통일전선의 형성과 구상, 신민주주의 의론, 사상개조운동, 실천론과 모순론 등 중국혁명의 각 시기에 있어서의 모택동의 주요한 사상이 정리, 집대성되어 있다.
2권에는 일본에 대항하여 투쟁의 기치를 세우려는 모택동의 저작들과 항일을 위한 여러가지 전략들이 소개되어 있다. 국공 분열보단 다함께 항전의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모택동의 강한 의지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3권에는 확대되고 본격화 되어가는 항일전쟁을 수행하는 중국공산당원의 과제와 자세, 침략자인 일제에 투항하고 협조하던 매국노들에 대한 질타, 항일전쟁보다 도탄에 빠진 인민에 대한 수탈과 공산당 타도에만 힘을 기울이는 부패한 국민당 정권에 대한 항의, 그리고 앞으로 중국 인민 전체를 이끌어가야 할 중국공산당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 정리, 집대성되어 있다.
4권에는 제2차세계대전의 종료 후 패망한 일본의 잔재 세력과 국민당 세력,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공산당의 입장과 대중에 대한 선전, 성장해 가는 공산당 당원을 독려하고 어떻게 더욱 성장시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 여전히 유효한 모택동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반봉건?반식민지적인 중국사회에 접목시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술상의 요청으로 나온 혁명이론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의 기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적 전통도 함께 중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택동의 독창적 사상의 표현이자 중국 혁명의 지도이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으로 모택동 사상은 쇠락했으며 오늘날에도‘4대 현대화’정책의 추진으로 격하되어 가고 있지만, 그의 모순론이나 신민주주의론 등의 몇몇 이론들은 아직도 일부 이론가들에게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아직도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모택동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마오쩌둥(지은이)

중국의 정치가이자 공산주의이론가, 혁명가. 후난성(湖南省) 샹탄현(湖潭縣) 출생.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접하여 1921년 7월 중국공산당의 제1회 대표대회에 참가했고, 농민운동에 종사하다가 1931년 11월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의 중화소비에트 임시정부 주석을 맡았다. 대장정(大長征)을 거쳐 산시성(陜西省) 옌안(延安)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강화하는 전술을 취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동시에 중앙인민정부 주석이 된 후 1958년부터 대약진 운동 등 급진정책을 시행하다가 실패하여 1959년 류사오치(劉少奇)에게 국가주석을 넘겨주었다. 1966년부터 청년학생 중심의 홍위병을 앞세워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발동하여 중국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1976년 4월 오랜 독재 정치에 항거하는 텐안먼(天安門)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이 해 9월 83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1981년 6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의 공과(功過)에 대해 ‘공적이 1차적이고, 과오는 2차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승일(옮긴이)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대만(국립대만정치대학 문학석사[1987])과 일본(국립규슈대학 문학박사[1992])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국민대와 동아대 교수 등을 거쳐 현재 동아시아미래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세계의 문화ㆍ사회ㆍ경제 등의 교류사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正體性)을 재구성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 성과는『한민족과 동아시아세계』『[일문] 중국혁명의 기원(中國革命の起源) 』『[중문] 내 눈 속의 한중관계(我眼中的韓中關係)』등 40여 종의 저술과 「한중일 삼국의 근대화 좌절과 성공의 사상적 배경에 관한 비교연구」 등 200여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며,『모택동선집』『등소평문선』『한중관계사』『건건록(蹇蹇錄)』등 200여 종의 역서가 있다. 이러한 공로를 중국정부로부터 인정받아 2012년에 ‘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 중국국무원 신문판공실 해외이사로 피선되었으며, 2019년에 중국도서수출입총공사로부터 국제출판전문가위원회 위원, 2021년에는 ‘세계문학연합회’ 특별초빙전문가로 위촉되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제3차 국내혁명전쟁 시기
 항일전쟁 승리 후의 시국과 우리의 계획(1945년 8월 13일) = 15
 장개석은 내전을 도발하고 있다(1945년 8월 13일) = 30
 제18집단군 총사령이 장개석에게 보낸 두 통의 전보(1945년 8월) = 35
 장개석 대변인의 담화를 평함(1945년 8월 16일) = 42
 국민당과의 평화협상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지(1945년 8월 26일) = 47
 중경(重慶)협상에 관하여(1942년 10월 17일) = 52
 국민당 공격의 진상(1945년 11월 5일) = 64
 소작료 인하와 생산은 해방구를 지키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일이다(1945년 11월 7일) = 70
 1946년도 해방구 사업방침(1945년 12월 15일) = 73
 공고한 동북근거지를 구축하자(1945년 12월 28일) = 78
 현 국제정세에 대한 몇 가지 평가(1946년 4월) = 83
 자위전쟁(自衛戰爭)으로 장개석의 공격을 분쇄하자(1946년 7월 20일) = 85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과의 담화(1946년 8월 6일) = 91
 우세한 병력을 집중시켜 적을 각개 섬멸시키자(1946년 9월 16일) = 97
 미국의 '조정'의 진상과 중국 내전의 전망(1946년 9월 29일) = 103
 3개월의 총괄(1946년 10월 1일) = 106
 중국혁명의 새로운 고조기를 맞이하자(1947년 2월 1일) = 113
 연안의 일시적 포기와 섬감녕변구의 방위에 관한 중국 공산당 중앙의 두 문서(1946년 11월, 1947년 4월) = 122
 서북전장의 작전방침에 대하여(1947년 4월 15일) = 126
 장개석 정부는 이미 전 인민에 포위되어 있다(1947년 5월 30일) = 129
 해방전쟁 제2차년도의 전략방침(1947년 9월 1일) = 134
 중국인민해방군 선언(1947년 10월 10일) = 141
 3대 규율, 8항 주의(注意)의 재공포에 관한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부의 훈령(1947년 10월 10일) = 148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1947년 12월 25일) = 150
 보고제도(報告制度)를 확립하는 것에 대하여(1948년 1월 7일) = 170
 현 당정책 중의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1948년 1월 18일) = 173
 군대 내의 민주운동(1948년 1월 30일) = 181
 서로 다른 지구에서 토지법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의 서로 다른 전술(1948년 2월 3일) = 183
 토지개혁 선전사업에서의 '좌'경적 오류를 시정하자(1948년 2월 11일) = 186
 신해방구의 토지개혁 요점(1948년 2월 15일) = 189
 상업공정책에 대하여(1948년 2월 27일) = 192
 민족자산계급과 개명신사(開明紳士) 문제에 관하여(1948년 3월 1일) = 195
 서북지방의 대승리를 평하고, 아울러 해방군의 새로운 방식의 정군운동을 논함(1948년 3월 7일) = 199
 상황에 관한 통보(1948년 3월 20일) = 206
 산서ㆍ수원해방구 간부회의에서의 연설(1948년 4월 1일) = 214
 《진수일보(晉綬日報)》 편집자들에 대한 담화(1948년 4월 2일) = 228
 낙양(洛陽)을 다시 공략한 뒤 낙양전선 지휘본부에 보낸 전보(1948년 4월 8일) = 234
 신해방구에서의 농촌사업의 전술 문제(1948년 5월 24일) = 237
 1948년의 토지개혁사업과 정당(整黨)사업(1948년 5월 25일) = 239
 요심전역(遼瀋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1948년 9월, 10월) = 246
 당위원회제도를 건전화에 관하여(1948년 9월 20일) = 253
 9월 회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통지(1948년 10월 10일) = 255
 회해전역(淮海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1948년 10월 11일) = 264
 전세계의 혁명세력은 단결하여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자(1948년 11월) = 270
 중국 군사정세의 중대한 변화(1948년 11월 14일) = 274
 평진전역(平津戰役)의 작전방침에 대하여(1948년 12월 11일) = 277
 두율명(杜聿明) 등에게 투항을 촉구하는 글(1948년 12월 17일) = 284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자(1948년 12월 30일) = 287
 전범(戰犯)이 화평을 구걸하는 것을 평함(1949년 1월 4일) = 296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모택동 주석의 시국에 관한 성명(1949년 1월 14일) = 301
 남경행정원(南京行政院)의 결정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논평(1949년 1월 21일) = 306
 전 중국침략 일본군 총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의 재체포와 국민당 내전범죄자의 체포를 국민당 반동정부에 명령하는 것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담화(1949년 1월 28일) = 309
 화평조건에 일본인 전범과 국민당 전범의 처벌을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중국공산당 대변인의 성명(1949년 2월 5일) = 317
 군대를 공작대로 변화시키자(1949년 2월 8일) = 322
 사분오열된 반동파가 어째서 아직도 헛되이 '전면적 평화'를 외치고 있을까?(1949년 2월 15일) = 325
 국민당 반동파가 '평화 호소'에서 전쟁 호소로 바뀌었다(1949년 2월 16일) = 331
 전쟁 책임 문제에 대한 국민당의 몇 가지 답안을 평함(1949년 2월 18일) = 334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한 보고(1949년 3월 5일) = 343
 당위원회의 사업방법(1949년 3월 13일) = 359
 남경정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1949년 4월 4일) = 365
 전국으로의 진군 명령(1949년 4월 21일) = 369
 중국인민해방군 포고(1949년 4월 25일) = 378
 중국인민해방군 총사령부 대변인이 영국군함의 무도한 행동에 대해 발표한 성명(1949년 4월 30일) = 382
 신정치협상회의(新政治協商會議) 준비회의에서의 연설(1949년 6월 15일) = 385
 인민민주주의 독재에 대하여(1949년 6월 30일) = 390
 환상을 버리고 투쟁을 준비하자(1949년 8월 14일) = 406
 굿바이, 스튜어트(1949년 8월 18일) = 414
 무엇 때문에 백서(白書)를 토론해야 하는가?(1949년 8월 28일) = 423
 '우정'인가, 침략인가?(1949년 8월 30일) = 430
 관념론적 역사관의 파산(1949년 9월 16일) = 434
모택동 연보 =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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