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 화가로 꼽히는 '광포한 환쟁이' 최북의 일생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 소설이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정교함에 일차적 재미가 있고, 작가 임영태 특유의 과감한 생략과 함축적인 문체가 뛰어난 가독력을 확보한다.
최북은 중인 출신으로 신분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과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 전복적이거나 의식 전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최북은 자신의 허영심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기에 세간의 눈치를 보고, 눈치를 보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눈치 보게 만드는 세상에게 포악을 떤다.
하지만 단지 사회적 신분 상승과 명예 획득만이 그의 목표인 것도 아니다. 예인으로서 걸어야 하는 고독한 예술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 길은 현재 자신이 골몰하여 벗어날 수 없는 신분에 대한 열등감이나 분노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도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자학적인 인물의 모습이 소설을 통해 드러난다.
조선의 반 고흐
미치광이 화가, 최북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추운 나라의 사람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1994년 장편소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임영태의 새 장편 『호생관 최북』이 출간되었다. 사회의 주류 계급에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그려 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에서부터 꾸준히 보여 준 임영태 특유의 ‘쉽고 편안한 문체로 속내를 내보이는 진솔함’이 이번 작품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호생관 최북』은 김명국,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 화가로 꼽히는 ‘광포한 환쟁이’ 최북의 일생과 그의 예술 세계를 소설로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몇 가지 기행을 제외하고는 기록이 거의 없는 최북의 인생과 예술관을 그려 내기 위해 작가는 스스로 최북이 되는 신고의 과정을 거쳐 수수께끼로 점철되어 역시 수수께끼로 끝난 최북의 일생을 재창조해 내었다. 『호생관 최북』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정교함에 일차적 재미를 두고, 특유의 과감한 생략과 함축적인 문체로 뛰어난 가독력을 확보하는 임영태 문학의 미덕을 어김없이 보여 준다.
임영태 소설의 특징은, 시크하고 세련된 포스트모던이 유행하던 1990년대에는 결코 인정받지 못한 소재였던 1970년대의 우중충한 배경 위에 덧입혀지는 2000년대의 엽기적인 우울한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장편소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부터 소설집 『무서운 밤』까지 초지일관 이어져 온 임영태 문학의 특징인 ‘쓸쓸함, 적막함, 아득함’이 단지 1990년대 주목받았던 소재인 도시적 세련의 또 다른 이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근원적인 표상임을 엽기적 상상력과 차별화가 마음껏 펼쳐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이해받기 시작했다. 임영태는 등단 이후 줄곧 자신의 작품 안으로 시크함이 미덕인 현대에 환영받지 못할 소재인 과거의 우울함을 끌어들였지만 그 위에 흐르는 감성은 이미 2000년대 개인주의적 군상들의 자의적 고립감과 자처한 아웃사이더의 쓸쓸함이었다. “아웃사이더란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라는 콜린 윌슨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임영태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이미 ‘생의 아웃사이더’로서 독특한 위치를 굳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는 최북이다
거기에 산다, 거기재 최북 ― 유용, 성기, 칠칠이, 호생관
지금까지의 임영태 소설 속 배경 분위기는 일견 1970년대의 우울하고 허름한 스산함에 머무른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속 인물들의 정서는 이미 작품들을 발표할 1990년대 당시부터 2000년대적이었다. 이는 3류 변두리 인생들의 고단한 삶은 그의 소설 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삶의 권태로움 속에서 자신과 사회에 대해 시니컬하며 모호하다. 이 점은 『호생관 최북』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한 최북도 그러하다.
낭만적 반항이기는 했으되 인생을 너무 함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질서에 들어가기 위해 자존심과 열정을 죽였어야 한다거나, 세속의 명예 정도는 초월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웃사이더를 불편해하는 기득권자의 시선이다. 세상의 질서가 자기 존재성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을 때 당사자가 겪을 깊은 고독과 좌절의 마음을 짐짓 외면하는 말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최북은 중인 출신으로 신분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과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 전복적이거나 의식 전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최북은 자신의 허영심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기에 세간의 눈치를 보고, 눈치를 보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눈치 보게 만드는 세상에게 포악을 떤다. 하지만 단지 사회적 신분 상승과 명예 획득만이 그의 목표인 것도 아니다. 예인으로서 걸어야 하는 고독한 예술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 길은 현재 자신이 골몰하여 벗어날 수 없는 신분에 대한 열등감이나 분노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도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자학적인 인물이다. 그렇게 『호생관 최북』의 최북은 이미 역사 속의 전통적인 인물상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는 현재 자신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려야 하는 현대인과 동일하다. 여기에 오늘날 다시 최북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제 시대를 살지 못한 천재, 제 시대에 놓여 있지 못한 인물인 최북에게 ‘생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임영태의 관심이 쏠린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또한 『호생관 최북』은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흥미를 둘 다 놓치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잘 알려진 최북의 에피소드에 치중하지 않고 그 내면의 독백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힌다. 임영태 소설의 재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극적인 갈등을 부각시키지 않는데도 긴장감을 동반하며 흥미를 유지하는 것은 그의 소설에 담겨 있는 비감한 진정성이 문득 문득 삶을 관통하는 통찰로 와 닿기 때문이다. 작품 전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고요하고 관조적인 시각에서 오는 아련한 정서적 호소력은 다른 부연 없이 그 자체로 삶의 본질로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이 군더더기 없는 감각적인 문체 덕분에 쉽게 읽히는 것 또한 임영태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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