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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47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함규진
서명 / 저자사항
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 함규진 지음.
발행사항
서울 :   페이퍼로드 ,   2007.  
형태사항
383 p. : 삽도 ; 23 cm.
ISBN
97889929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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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1145282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1145282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3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2117380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4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2117380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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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1145282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1145282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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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 소장처 과학도서관/Sci-Info(1층서고)/ 청구기호 953.05 2007o17 등록번호 121173809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컨텐츠정보

책소개

500년이라는 조선사 속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라는 네 왕을 통해 죽을 때까지 투쟁해야하는 권력의 고독한 본질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 성군 부터 폭군까지, 조선을 대표할 수 있는 네 왕의 생애를 추적하고, 각 왕들의 비교를 통해 그들의 특징적인 권력 사용법과 그 명암을 바라보고 있다.

지은이 함규진은 조선의 왕좌가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도 투쟁이지만, 그 자리에 어렵사리 올라서서도 매일처럼 이어지는 신하와의 신경전, 가까이 있지만 백퍼센트 믿을 수 없는 비빈들, 비빈과 함께 언제 왕위를 위협할지 모르는 외척 세력을 견제하는 투쟁의 연속이라 지적한다.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에 관한 알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함과 동시에 '권력의 투쟁'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책을 써내려갔기 딱딱하게만 보였던 왕의 일생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모든 권력을 가진자, 하지만 그 권력으로 인해 씁쓸한 인생을 보내야했던 인간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살피고 있는 책이다.

세종, 권력위임과 프로젝트형 업무관리로 신하를 사로잡다
세종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왕은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과업으로 여겨지는 한글창제를 비롯해서 과학발전과 문치주의 확립, 그리고 새 나라에 대한 국가 홍보까지, 세종은 그의 생애 동안 내내 ‘조선’이라는 집을 제대로 짓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신하들에게 ‘넌 이거 하고 넌 저거 하고…’ 하는 식으로 말했다가는 일이 제대로 진행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경험 많고 나이도 지긋한 매서운 신료들에게 점잖은 말로 호되게 ‘깨질’ 수도 있다. 세종은 어떻게 이 난관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걸핏하면 별것도 아닌 일로 ‘이는 천부당만부당’하다며 엇나가는 관료들을 다스리고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세종이 취한 방법은 행정업무 위임과 혁신업무 추진이었다. 그는 위임할 수 있는 행정업무는 곁에서 오래 보아 신임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황희 등의 재상에게 위임하고, 위임으로 생긴 여유를 ‘혁신 업무’에 투자했다. 그는 혁신 업무의 실무자를 선발할 때도 능력만 보고 발탁하는 ‘파격’을 보였는데, 그가 아니었다면 기생 아들인 장영실, 까칠한 성품의 김문, 그저 그런 관료였던 박연이 그렇게 대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종의 문화대국 프로젝트는 그렇게 빛을 보았다.
그러나 성군 세종에게도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세종의 소극적인 외교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어린 시절부터 책만 들이팠기 때문일까? 그는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안전주의와 사대주의를 유지하는 소극적 모습을 보인다. 2차 대마도 정벌로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음에도 세종은 왜구의 침입을 걱정하며 형식적 종주권 인정에 만족한다. 북방개척에서는 파저강 토벌이라는 대규모 정벌 후 진을 설치하고 관리하려는 의지 없이 곧바로 회군한 것이 미련으로 남는다. 물론 세종의 다른 업적에 비하면 작은 오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외교부분을 빼고는 어떤 지도자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정치력을 보인 세종이지만 말년에는 그도 점차 지쳐갔다. 형인 양녕은 대놓고 난동을 부리며 세종을 힘들게 했고, 조선에서 둘도 없는 절절한 부부애를 보여주던 소헌왕후까지 승하하고 만다. 세종은 그 상실감을 불교로 달래려 했지만 신료들은 억불숭유를 들먹이며 세종의 내불당 건설을 반대한다. 결국 대립은 갈수록 험악해져 “착한 임금이라면야 너희 말을 따르겠지만, 나는 나쁜 임금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전하와 같은 성군께서도 이처럼 고집하시는 일이 있으실 줄 몰랐습니다” 라는 악담까지 나온다. 신하들이 임금의 이 ‘이상한 모습’에 못 참고 연대 총파업을 하자 세종 또한 단식투쟁에 ‘가출’까지 불사했고 그 줄다리기 끝에 결국 내불당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미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말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세종 시대를 전설의 시대로 부르는 것에 추호의 흔들림이 없다. 세종은 조선의 정점이었고 그 이후로 다시는 세종을 능가하는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천재로 소문난 정조마저도 세종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대왕’이라는 호칭이 더없이 어울리는 세종. 복수의 피바람이 불지 않고도 왕권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권력의 위임으로도 왕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조선사의 귀중한 예이다.

연산군, 언론 따위 조지면 된다?
연산군은 폭군의 대명사다. 똑같이 폐위당한 왕이지만 광해군은 현대에 와서 재평가가 되고 있는 반면 연산군은 그런 기미도 없다. 과거나 현재나 똑같이 폭군이요, 절대권력에 취해 이리저리 칼부림을 한 난폭자로 평가될 뿐이다. 그런데 연산군은 왜 그렇게 폭정을 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생모인 폐비 윤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피 묻은 금삼’을 보고 피가 솟구쳐 사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물론 ‘피 묻은 금삼’ 이야기가 허구이며, 그 이전부터 연산군이 생모의 폐비 사건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일은 연산의 가슴에 남아 폭정의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을까.
저자는 조심스레 성종대에 확대된 언론권력과 연산군 호전적인 기질의 합작으로 빚어진 언론전쟁이 그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처음에는 연산군도 열심히 일하려는 모습을 보인 ‘모범 청년’이었다. 그러나 ‘깜도 안 되는’ 문제, 예를 들어 왕의 유모에게 선물을 줘도 되냐 안 되냐 등으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왕의 언행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언론의 모습에 연산군은 차츰 반감이 생겼고 급기야는 언론과 밀고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서로 ‘버릇을 들이겠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 왕과 언론의 전쟁은 ‘엽기 어록’까지 낳는다. 새로 임용한 감사가 술을 많이 마시므로 적당치 않다고 딴지를 거는 언론에게 “그럼 물만 마시는 사람으로 뽑을까?”라고 말하거나 눈병이 나서 경연은 안 한다고 했으면서 왜 연회는 하냐는 질문에는 “너는 눈으로 먹느냐?”라고 대답했던 게 그것이다.
왕의 행동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는 언론과 정치적 미숙함으로 인해 오기만을 부리며 직설적으로 대응했던 연산군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계기는 무오사화였다. 우연히 발견된 김일손의 ‘볼손한’ 사초 때문에 벌어진 무오사화의 불똥은 어쩌다보니 언론3사에까지 튀게 되었고 결국 언관들이 ‘역모죄’의 이름을 쓰고 굴비 두름처럼 엮여 사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연산군이 작정하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일은 연산에게 교훈을 주었다. 언론 따위는 조지면 된다는 것이다. 시끄럽던 언론들이 역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조지니 조용해지고 벌벌 떨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연산은 무오사화라는 양들의 침묵을 통해 폭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조정은 한동안 피바람에 휩싸이게 된다.
무차별하게 형벌을 남용하고 잔인하게 신하들을 다스리던 연산군의 절대권력은 결국 중종반정으로 끝이 났다. 그는 아마도 왕권을 극도로 제약하고 시시콜콜한 논쟁만 거듭하던 신료들, 그리고 위선의 가면을 쓰도록 강요했던 체제의 모순을 뜯어고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개혁은 너무나 미숙하고 조급하게 대안 없는 도발만 거듭했다. 그것은 그의 방향성 없던 개혁과 공포정치의 한계였다.

광해군은 왜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친국에 열을 올렸나
광해군은 과거와 현재의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왕이다. 조선조 내내 폭군으로 찍혀 연산군과 함께 반면교사로 활용되던 그가 현대에 들어서는 국난을 극복한 실용주의 외교의 달인으로 재탄생했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평이 가능할까. 저자는 광해군을 이해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그의 들쑥날쑥한 실적보다는 그의 인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단 한마디로 압축한 그의 인성은 ‘안전제일주의’. 광해군은 안전에 대한 집착으로 재위기간 내내 신료와 친인척 모두를 의심했으며 자신의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을 제거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된다.
시작은 눈부셨다. 임진왜란을 맞아 피신한 선조 대신 조선에 남아 몸을 사리지 않고 활동하여 온 나라의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저자는 이를 상해임시정부에 맞먹는 ‘광해임시정부’라 비유하며 성공적인 그의 분조활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로 인해 선조의 눈 밖에 난다. 신하들 역시 ‘현재’ 왕위를 지키고 있는 선조의 편에 섰기에 광해군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만 갔다.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물려받은 광해군의 왕위는 처음부터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으로 무너져 내린 국가재건을 위해 대동법, 호패법, 양전 사업 등의 개혁조치를 단행한 광해군이지만 그의 개혁은 불완전했으며 그나마도 재위 5년, 즉 계축옥사 이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광해군의 개혁은 도중에 실종되고 만 것일까? 저자는 대신들의 ‘사표 쓰기 경쟁’때문이라 잘라 말한다. 예전에 선조가 자신의 왕위를 확고히 하고자 썼던 방법을 이제 신하들이 써먹게 된 것이다. 걸핏하면 사직하여 몸값을 높이고 책임을 회피하던 신료들 때문에 업무는 마비되어갔다. 여기에 점점 심해지는 당쟁도 한 몫을 했다.
광해군은 당파싸움과 사표 경쟁 사이에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다 불안의 싹으로 여겨지는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폐하고 만다. 그의 안전제일주의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광해군은 죄인을 추국하는 친국을 무려 210회나 단행했다. 조선 왕 중 최고의 수치이다. 피와 살이 튀는 고문의 현장에 왜 집착한 이유도 광해군의 안전제일주의로 통한다. 백성들의 경범죄마저도 혹여 자신을 폐하려는 역모사건의 단초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광해군. 직접 죄인들을 추국하며 사주한 자를 밝히라고 닦달했던 광해군. 결국 없던 역모도 만들어내어 줄줄이 역모죄를 뒤집어씌웠던 광해군.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 새어머니, 동생, 신료, 명나라 눈치를 살피던 광해군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조, 천재적 카리스마와 회전문 인사로 절대왕권을 꿈꾸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왕좌에 오르자마자 한 이 말 한마디는 신하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정조는 곧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을 방조한 일당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연산군처럼 홧김에 마구잡이로? 아니, 정조는 연산이 아니었다. 그는 신료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반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연산군이나 광해군과는 다르게 강경책과 유화책을 병행하여 죄인을 살려두되 ‘살아남은 죄인’들을 여봐란 듯이 방치하는 수법을 썼다. 조정의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잊지 않도록 365일 비상을 걸어둔 것이다.
정조는 재위기간 내내 왕권의 강화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카리스마는 그의 왕권강화를 돕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우선, 천부적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학문에 능통한 그는 신하와의 학문 경연에서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호학군주였던 세종도 초기에는 신하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었건만 정조는 이미 학문과 무예에 완벽히 통달했기에 거꾸로 신하들을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 저자는 그가 마치 ‘빨간펜 선생님’처럼 언론이 올린 상소문의 잘못된 표현이나 부적절한 문구를 지적하여 돌려보내곤 했다고 말한다. 또한 정조는 언론에서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면 “네 말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잘못이었다. 어찌하여 내 잘못을 전부 말하지 않느냐. 언관의 책임을 소홀히 한 너를 파직한다”라고 대응했다. 정조 때 언론의 활동이 저조했던 것은 아마 이런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 고개가 끄덕여질만 하다.
그가 신하의 목을 죄는 또 다른 방법은 인사권이었다. 실제로 정조는 조정의 인사 책임을 맡고 있는 중요직인 이조판서를 150번이나 갈아치우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른 왕들이 10~20번 내외로 바꿨던 것에 비하면 과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만에 파직하는 일도 많았다. 아침에는 노론이 앉았던 자리를 저녁에는 다시 소론이 앉는 식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직책을 맡을 만한 인원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정조는 파직했던 관리를 다시 불러왔다가 다시 파직시켰다가 하는 식의 회전문 인사를 단행했다. 그 결과 신권의 결속이 어려워졌으니 왕권 강화를 노린 정조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행정의 안정성이 떨어져 일이 늦어지는 폐단이 있었지만.
초기에 측근정치로 실패한 정조는 확고한 왕권을 위해 고독을 택했다. 여러 파로 갈라져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들에게 영조의 탕평책을 변형하여 사용함으로 왕권의 약화를 막았던 것이다. 진정한 ‘측근’이 전혀 없는 정치, 그리하여 어느 한 당파가 세력을 장악하는 일이 없는 정치, 그것이 그의 ‘탕평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독한 절대권력의 자리를 지키려 하면 할수록 정조는 인간적인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유배되어있는 동생을 만나러 ‘007작전’을 방불케 할 한밤의 탈주극을 벌인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조의 목마른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측근이 없는 정치는 정치체제 자체로는 완벽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서 항상 시달려야 하는 왕 개인에게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인간적으로는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그것은 그 자신이 방조한 일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정조는 울분을 억누르고 살아남아 다음 대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특유의 천재적 카리스마와 명분 있는 복수정치로 신하들을 쥐락펴락 했다. 그러나 그가 꿈꾼 절대왕권은 신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왕의 비교분석으로 알아보는 권력 이행 스타일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왕들을 객관적 지표로 비교하고 거기에서 유의미한 분석을 이끌어내는 2부에 있다. 저자는 크게 신권이 왕에게 요구했던 내용과 왕이 신권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했던 방침으로 나누어 살핀다. 우선 경연 참석, 취미생활 자제, 비빈 멀리하기는 신권이 왕에게 요구했던 내용이다.
경연으로 보았을 때 신하들이 성군이라 칭송할 만한 왕은 역시 세종이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무려 1,928회의 경연을 개최했는데 연산군 512회, 광해군 13회, 정조 395회에 비하면 경이롭게까지 보이는 숫자이다. 세종이 호학군주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연산군은 경연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광해군보다는 많이 벌였다. 광해군의 13회는 대인기피증까지 의심되는 숫자이다. 재미있는 건 경연은 13회밖에 벌이지 않은 광해군이 친국에는 210회나 나갔다는 점이다. 그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신료들은 ‘인간’인 왕에게 ‘인간 이상’을 요구했지만 왕은 ‘인간’이었기에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신료들은 그런 왕을 비난했고, 왕은 그들의 ‘명분 있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신권이 강한 조선의 왕이라는 자리가 가진 속성이기도 했다. 신료들은 평소에도 ‘사욕을 버려야 한다, 개인적 즐거움은 뒤로 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중해야 한다’ 등의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니 당연히 왕은 취미생활을 은밀히(?) 행할 수밖에 없었다.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까지도 시를 짓는 취미를 지적당하자 “그게 무슨 시냐? 그냥 몇 글자 끼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황급히 오리발을 내밀정도다. 개인적인 취미로 타지마할, 베르사유 궁전같은 건축물을 여러 채나 세우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외국의 왕에 비하면 조선의 왕은 시 한 수도 맘대로 짓지 못하고 비밀리에 하나 지었다가 들통나자 “이게 사실은 시가 아니거든요?”하는 식으로 변명이나 하다니, 참 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왕권이라고 해도 왕권은 왕권이다. 조선의 왕이 마냥 허수아비처럼 이리 당기고 이리 끌리면서 재위기간을 마쳤던 것도 아니었다. 왕들은 각각의 개성과 그 시대의 성격에 맞추어 조금씩 다른 방법을 썼지만, 정국 주도권을 손에 넣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만은 한결같았다. 저자는 그러한 왕들의 주도적 모습을 인사권의 활용, 형벌권의 활용, 성과물의 제시로 짚어낸다.
인사권과 형벌권은 왕의 고유권한이며 무력으로 리더십을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대로 신권이 강세였던 조선에서 왕의 인사권과 형벌권은 관료사회를 통제하고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인사권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임금은 역시 정조다. 이조판서를 150번 갈아치우고 대사헌의 평균 임기가 단 15일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과연 ‘인사의 제왕’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대사헌을 오전에 임명했다가 오후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무려 27회나 되고 하루 만에 교체한 경우는 61회에 달한 정조. 천재 군주 정조의 회전문 인사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언론기관을 약화시키고 탕평을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행정적으로는 만행에 가까운 인사라는 비판을 외면할 수 없다.
형벌 분야의 1위 타이틀은 연산군에게 돌아간다. 등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연산군이 가장 많은 형벌을 주었으며 그것도 심한 형벌을 가했다. 세종은 관대한 편이었고 정조는 앞서 말했던 파직을 즐겨했다. 광해군은 신료들보다 일반 백성이나 천민을 처벌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물론 전제군주에게 형벌은 무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반발을 불러오고 모자라면 깔보일 수 있다. 경직되지 않은 조정을 만들기 위해 형벌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지만 아무런 형벌 없이 나라를 이끌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이 네 사람은 이렇게 양면성을 가진 형벌이라는 ‘양날의 검’을 각각의 성격에 맞게 휘둘렀고, 그로 인해 각기 다른 다양한 결말을 맞았다.

현대에도 계속되는 왕의 투쟁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누구나 코흘리개 시절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어본 이름들일 것이다. 그 중 두 사람은 대표적인 위인으로, 나머지 둘은 대표적인 악인으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재평가의 대상으로. 그들의 일대기는 교과서에서 익힌 것도 모자라 TV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면 왜 또 다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그만큼 했는데도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네 임금의 생애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며, 그동안 상식처럼 통하던 주장들을 낱낱이 파고든다. 그리하여 “세종의 북벌은 정말 영광스러운 업적이었을까?” “광해군과 대북파는 한마음으로 중립외교를 펼쳤을까?” “정조는 오회연교를 통해 노론세력에 선전포고를 했을까?” 등의 의문에 하나씩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이야기, 우리 리더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방식과 지금의 방식은 같지 않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를 얻느냐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지는 점은 다름이 없다. 지도자의 자리에 선 사람이 어떻게 주어진 환경에 한편 적응하고 다른 한편 극복하며, 경쟁자들을 제어하고, 협력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든 이들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지, 그에 필요한 원칙과 기법도 별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보통 사극을 통하여 세종이나 정조를 본다. 그리하여 화려한 의상과 예스러운 무대에 매혹되고, 현대화되고 단순화된 스토리에 울고 웃는다. 그렇게 해서 한때의 엔터테인먼트로 이 네 왕을, 나아가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과 함께 아쉬움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희망과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극의 틀을 넘어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극이 놓치거나 왜곡해 버린 그들의 실상을 찾아내고, 꼼꼼한 비교를 통하여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손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정보제공 : Aladin

저자소개

함규진(지은이)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약용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위험한 민주주의』,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정치 질서의 기원』, 『대통령의 결단』, 『나는 죄 없이 죽는다』,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죽음의 밥상』, 『팔레스타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는 『100년 전 역사에서 통일을 묻다』, 『108가지 결정』,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리더가 읽어야 할 세계사 평행이론』, 『세계사를 바꾼 담판의 역사』, 『영조와 네 개의 죽음』,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 『유대인의 초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왕의 밥상』,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왕이 못 된 세자들』 등이 있다.

정보제공 : Aladin

목차


목차
프롤로그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쟁투의 자리 = 4
1부 사왕별곡(四王別曲) : 성군에서 폭군까지, 지난한 정치 투쟁의 드라마
 세종, 권력의 위임과 프로젝트형 업무관리로 대업을 완성하다 = 15
  세종, 조선이라는 집을 짓다
  호랑이와 곰
  아들은 책을 읽고, 아버지는 죽인다
  소중화(小中華)를 향하여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훈민정음과 백성, 그 먼 거리
  성군의 진면목
  제1차 전국민 여론조사
  세종 대외 정책의 빛과 그림자
  '양녕'이란 골칫거리
  세종의 강경책
  노인 세종 vs 신료집단
  전설이 되다
 연산군, 절대권력을 행사하다 측근에게마저 버림받다 = 76
  연산군, 창을 깨고 벽을 부수다
  순조로운 출발
  언론과의 전쟁
  이미 연산도 알았던 폐비 윤씨
  불임시대
  양들의 침묵
  태풍의 눈
  충격과 공포
  폐비 윤씨를 위한 복수?
  디오니소스 찬가
  황토에 묻힌 길손
 광해군, 안전을 최우선하다 나락에 떨어지다 = 147
  광해군, 주춧돌을 바꿔 끼우려 애쓰다
  '광해임시정부'
  광해임시정부, '시즌2'
  커져가는 틈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이다
  심판하는 자, 그리고 그를 심판하는 자리
  누가 중립을 말했는가
  불신과 환멸
 정조, 개혁군주는 어떻게 전제군주가 되어 개혁에 실패하나 = 197
  정조, 기울어진 집을 다시 세우려 하다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우현좌척(右賢左戚)
  이열치열(以熱治熱)과 만천명월(萬川明月)
  '조용한 아침'을 넘어
  정(正)이란 무엇인가
  24년 동안의 고독
  화성의 꿈
2부 왕 VS 왕 : 그 권력의 다양한 변주
 조선의 왕이 마땅히 해야 할 네 가지 노릇 = 263
 신하와의 경연, 매일 해야 할 토론과 공부의 장 = 272
 제왕의 취미생활, 왕은 취미와 오락을 멀리 해야 한다는데… = 280
 왕의 여자, 가까이도 멀리도 해서는 안 될 비빈과 외척 = 290
 왕과 언론, 관대한 비판 수용과 극형도 마다않는 탄압 = 311
 왕의 인사권 행사, 위임관리형에서 회전문 인사까지 = 321
 왕의 형벌권 행사, 관대함과 잔학함을 넘나드는 형사처벌 = 335
 서책 간행, 유교적 권력행사의 절정 = 346
 시대와 호흡하는 왕의 평가 = 360
에필로그 : 조선 왕의 투쟁사는 '갈등적 파트너십'의 귀한 소산 = 374
참고문헌 =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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