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세정보

상세정보

(국역)진사록 2 : 辰巳綠

(국역)진사록 2 : 辰巳綠 (9회 대출)

자료유형
단행본
개인저자
류성룡, 1542-1607 이재호, 1920-, 번역.감수.
단체저자명
서애선생기념사업회
서명 / 저자사항
(국역)진사록 2 : 辰巳綠 / [류성룡 저] ; 이재호 번역.감수.
발행사항
서울 :   서애선생기념사업회,   2001.  
형태사항
429 p. : 지도 ; 23 cm.
총서사항
(국역)서애전서 ;1-4
일반주기
색인수록(인명,지명별:p.414-428)  
부록 : 이두 일람표  
西厓는 柳成龍의 號임  
000 00000nam c2200205 k 4500
001 000000747490
005 20200611172603
007 ta
008 011228s2001 ulkb 001a kor
040 ▼a 211009 ▼c 211009 ▼d 211009
049 1 ▼l 111204623 ▼f 개가
082 0 4 ▼a 953.055
090 ▼a 953.055 ▼b 2001b ▼c 1.4
100 1 ▼a 류성룡, ▼d 1542-1607
245 1 0 ▼a (국역)진사록 2 : ▼b 辰巳綠 / ▼d [류성룡 저] ; ▼e 이재호 번역.감수.
260 ▼a 서울 : ▼b 서애선생기념사업회, ▼c 2001.
300 ▼a 429 p. : ▼b 지도 ; ▼c 23 cm.
440 1 1 ▼a (국역)서애전서 ; ▼v 1-4
500 ▼a 색인수록(인명,지명별:p.414-428)
500 ▼a 부록 : 이두 일람표
500 ▼a 西厓는 柳成龍의 號임
700 1 ▼a 이재호, ▼d 1920-, ▼e 번역.감수.
710 ▼a 서애선생기념사업회
900 1 0 ▼a 유성룡, ▼d 1542-1607
950 1 ▼a 가격불명 ▼b \12990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교육보존2/ 청구기호 953.055 2001b 1.4 등록번호 111546248 도서상태 대출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B M
No. 2 소장처 중앙도서관/제3자료실(4층)/ 청구기호 953.055 2001b 1.4 등록번호 111204623 도서상태 대출중 반납예정일 2021-08-20 예약 예약가능 R 서비스 M

컨텐츠정보

목차

권호명 : 2 


발간사(發刊辭) = 1 
범례(凡例) = 3 
차례(次例) = 4 
진사록(辰巳錄) 권이(卷二) = 1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벽제관(碧蹄館)에서 패전한 연유(緣由)를 논계(論啓)하는 서장(書狀) 계사년 3월 13일, 동파(東坡)에 있었다. = 1 
  우리 나라 군대의 양식이 다 떨어져서, 군사들이 곧 흩어지려고 하는 여유(緣由)를 급히 아뢰고 또한 전란(戰亂)을 겪은 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너그럽게 구율(救恤)하기를 청하는 서장(書狀) 계사년 3월 13일, 동파(東坡)에 있었다. = 5 
  종사관(從事官) 한 사람을 조속히 차송(差送)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16일, 동파에 있었다. = 9 
  왜적 속에서 나온 서간(書簡)을 봉(封)하여 올려보내는 서장 계사년 3월 16일, 동파에 있었다. = 11 
  김천일(金千鎰)의 서장(書狀)을 부록(附錄)하다. = 20 
  충청도와 전라도[兩湖]의 사세(事勢)가 위급 절박(切迫)하니, 여러 모로 헤아려 처치하기를 급히 아뢰는 성장 계사년 3월 10일, 동파에 있었다. = 32 
  군량과 백성들의 식량[民食]에 관하여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 37 
  명 나라 군대가 물러나서 평양(平壤)에 주둔한 후에, 군중(軍中)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事宜]를 조목별로 열거(列擧)해서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초3일 = 42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이내 왜적을 분열(分裂)시키는 계책을 시행하여[行間], 그 무리들을 이간(離間)시킬 사의(事宜)를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16일, 동파(東坡)에 있었다. = 51 
  왜적의 수급(首級)을 올려보냄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53 
  군인들의 군공(軍功)을 논공 행상(論功行賞)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54 
  심유격(沈遊擊)이 왜적(倭賊) 속으로부터 나왔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57 
  각도(各道)의, 난리(亂離)를 겪은 고을의 성묘(聖廟)의 위판(位版)을, 각기 사인(士人)을 정하여 받들어 지키도록 하고, 난리가 평정되기를 기다리게 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 60 
  전지(傳旨)를 삼가 받았음을 아뢰는 서장(書狀) 계사년 3월 21일, 동파에 있었다. = 61 
  전지(傳旨)를 삼가 받고서, 모든 죄를 범한 신하들에게 처벌을 집행한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2일, 동파에 있었다. = 62 
  왜적의 형세(形勢)를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2일, 동파에 있었다. = 63 
  우리 나라 군인들에게 명 나라 사람의 옷 모양으로 변장하여 입도록 한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2일, 동파에 있었다. = 65 
  적진(賊陣)에서 나온 [두] 왕자(王子)의 서간(書簡)을 보고, 이내 사총병(査總兵)과 적군의 형세를 의논함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4일, 동파에 있었다. = 68 
  왕유격(王遊擊)의 답서(答書)를 올려보내며 또한 이산겸(李山謙)으로 하여금 나아가서 [이]제독에게 이남의 적병(賊兵)의 진영(陣營)을 무찔러 공격할 형세를 몸소 진술하도록 하였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6일, 동파에 있었다. = 74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남로(南路)에 있는 왜적의 진영을 공격하는 것의 편리하고 마땅함을 아뢰고, 활을 내려보내줄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26일, 동파에 있었다. = 77 
  파주 목사(坡州牧使) 홍가신(洪可臣)을 체직(遞職)시키고 김명윤(金明胤)으로서 이를 대신하도록 하며, 여주 목사(驪州牧使) 남언경(南彦經)을 체직시키고 김억추(金億秋)로써 이를 대신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80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명 나라 장수가 강화(講和)를 하려는 것이 그릇된 계책임을 논하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81 
  왜적의 정세(情勢)를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83 
  자원(自願)하여 음식물을 바쳐서, 명 나라 군대를 접대한 사람들에게 논공 행상(論功行賞)을 할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85 
  전라 수사(全羅水使) 이순신(李舜臣)이 진상(進上)한 화살대[箭竹]을 남겨 두어서 전쟁의 쓰임에 대비(對備)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88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자기의 허물을 진술하여 스스로를 탄핵(彈劾)하고 [自劾] 처벌을 기다리는 서장 계사년 3월 28일, 동파에 있었다. = 89 
  선유관(宣諭官) 이귀(李貴)가 곡식을 모집한[募粟] 사연과, 우선 이귀를 머물러 두게 하여 종사관(從事官)으로 임명하고서, 군량과 마초(馬草) 등의 일을 살피고 검사하게 해주시도록 청함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7일, 동파에 있었다. = 91 
  우리 나라 여러 진영(陣營)의 군인들이 싸움에 이긴 연유(緣由)와 적병(賊兵)의 수급(首級)을 베어 바친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3월 29일, 동파에 있었다. = 95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후에 자신의 허물을 진술하여 스스로를 탄핵(彈劾)하는 서장 계사년 4월 초7일, 동파에 있었다. = 98 
  정릉(靖陵)에서 왜적이 일으킨 화변(禍變)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초9일, 동파에 있었다. = 107 
  명 나라 군대가 임진(臨津)에 나가서 주둔(駐屯)한 것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10 
  [이]제독(提督)의 하는 일이 헤아리기 어려움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11 
  싸움에 이긴 소식[捷報]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13 
  이기빈(李箕賓)을 형률(刑律)에 의거하여 죄를 논정(論定)하고 경기좌감사(京畿左監司) 성영(成泳)과 수원 부사(水原府使) 유대진(兪大進)은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15 
  투항(投降)해 온 왜놈[倭奴]을 곧 명 나라 장수의 영문(營門)으로 잡아 보내려고 함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19 
  전지(傳旨)를 삼가 받았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4일, 동파에 있었다. = 125 
  주참장(周參將)이 왜적의 진중(陣中)으로 들어간 연유와 경상도의 왜적이 그 병력을 증가해서 나오는 것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1일, 동파에 있었다. = 126 
  이여양(李汝讓)을 그대로 양근 군수(楊根郡守)로 임명해서, 용진(龍津)등처를 파수(把守)하여 끊도록 하고 또한 중신(重臣)을 보내어 강화(江華)를 진수(鎭守)하도록 청하는 서장 계사년 4월 16일, 동파에 있었다. = 130 
  충성스럽고 용감한 사람을 모집해 얻어서 정릉(靖陵)의 수의(수의)를 받들어 옮겨, 깨끗한 곳에 봉안(奉安)하기를 빨리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6일, 동파에 있었다. = 132 
  이제독(李提督)의 한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6일, 동파에 있었다. = 136 
  경상도에 있는 왜적의 형세를 급히 아뢰고는, 급히 무장(武將)을 보내어 경상 우도(慶尙右道[下道])를 막게 하고, 강릉 부사(江陵府使) 남부흥(南復興)을 교체하여 파견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4월 18일, 동파에 있었다. = 141 
  충청 감사(忠淸監司) 허욱(許頊)을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해서 충청도[本道]를 파수(把守)하여 적병의 침입하는 길을 끊도록 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4월 18일, 동파에 있었다. = 145 
  서둘러 송경략(宋經略)에게 간절히 요청하여, 진군(進軍)할 계획을 세우기를 청하였으며 또한 적병의 수급(首級)을 바침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148 
  명 나라 장수와 더불어 왜적과 강화(講和)하는 것이 잘못된 계책[非計]이라 하여 [그들과] 논쟁(論爭)한 일을 시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150 
  군인들이 세운 공로(功勞)를 급히 아뢰고, 이에 겹쳐서 적병(賊兵)의 수급(首級)을 바치는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19일, 동파에 있었다. = 156 
  이제독(李提督)이 서울을 향하여 길을 떠나므로, 그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0일, 임진(臨津)에 있었다. = 159 
  명 나라 장수를 따라 서울에 들어온 후에, 도성 안의 형상(形狀)과 그리고 여러 장수들에게 분부하여 적병을 맞아 끓도록 한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1일 = 161 
  여러 사람들에게 분부하여 서울의 흩어진 물자를 거두어 모으도록 한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3일, 서울에 있었다. = 164 
  명 나라 장수가 우리 군사들을 금하고 단속하여 왜적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함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3일, 서울에 있었다. = 166 
  송산(松山) 정릉(靖陵)의 영악(靈幄)을 받들어 보살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3일, 서울에 있었다. = 171 
  전지(傳旨)를 삼가 받았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4월 23일, = 173 
  병(病)을 얻어 아직 남방으로 내려가지 못함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5월 15일 = 174 
  명 나라 장수가 우리 나라의 여러 장수들을 구박(驅迫)하여 적병을 추격하지 못하게 한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5월 16일 = 175 
  서울의 굶주린 백성들을 구원하여 도와준[賑恤]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5월 16일 = 179 
  성영(成泳)을 파직(罷職)하였다는 전지(傳旨)를 삼가 받았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5월 16일 = 180 
  명 나라 장수에게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는 일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5월 19일 = 181 
  장관(將官)을 가려 정하여 서울을 진수(鎭守)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5월 19일 = 185 
  군량을 헤아려 처리하고 또 시급히 곡식을 모집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6월 12일, 서울에 있었다. = 186 
  정병(精兵)을 뽑고 가려서 뒷날의 계획을 세우기를 원하는 서장 계사년 5월 25일 = 190 
  병졸을 훈련하고 또 절강(浙江)의 무기(武器)를 본떠서 화포(火砲)등의 여러 가지 기구(器具)를 많이 만들어서, 훗날의 쓰임에 대비하기를 다시 청하는 서장 계사년 5월 25일 = 195 
  산성(山城)을 수즙(修葺)하여, 나아가 왜적을 공격하고 물러나 국토를 방어하는[戰守] 계획을 세우고 또한 수령(守令)을 신중히 가려 뽑아서, 인심을 수습하기를 청하는 서장(書狀) 계사년 6월 13일, 서울에 있었다. = 201 
  병졸을 모집하여 연습시키도록 청하고, 이내 [신(臣)의] 직임(職任)을 갈아서 다른 대신(大臣)으로써 대신하기를 원하는 서장 = 212 
  잔치를 베풀어 명 나라 장수를 대접하라는 전지(傳旨)를 삼가 받았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6월 초10일 = 215 
  서울에서 군졸(軍卒)을 모집하여, 절강(浙江)의 화포(火砲) 쏘는 법을 연습시키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6월 초5일 = 216 
  병을 앓고 난 뒤에 남방(南方)으로 내려감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6월 20일 = 219 
  군량의 형편을 아뢰는 서장(書狀) = 221 
  경상도(慶尙道)에서의 적세(賊勢)가 위급함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6월 20일 = 224 
  진주(晉州)에서 성(城)이 함락(陷落)된 일을 빨리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초5일, 고령(高靈)에 있었다. = 232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를 조속히 가려서 파견하고 충청 병사(忠淸兵使) 황진(黃進)의 대임(代任)도 또한 서둘러 파견해 주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초8일, 합천(陜川) 야로현(冶爐縣)에 있었다. = 336 
  유총병(劉總兵)의 접반관인 서성(徐성)이 급히 올린 보고로 말미암아, 송경략(宋經略)과 이제독(李提督)에게 자문을 보내어, 사세(事勢)가 위급하고 절박(切迫)한 상황을 힘껏 진술(陳述)해서 조속히 진군하도록 요청할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초5일 = 236 
  진주(晉州)가 함몰(陷沒)된 사실의 전말(顚末[形止])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초5일 = 240 
  진주(晉州)가 함몰된 후에, 경상도[本道]의 사세(事勢)가 위급하고 절박한 형상(形狀)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초8일, 합천(陜川) 야로현(冶爐縣)에 있었다. = 243 
  경상도의 적병의 형세가 위급하므로, 신속하게 사유(事由)를 갖추어 명나라 조정에 주문(奏聞)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 247 
  영남과 호남[兩南]의 위급한 형상을 상세히 갖추어서, 송경략(宋經略)과 이제독(李提督)에게 구원해 주기를 요청하고 또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성중(李誠中)이 죽었으므로 그의 대임(代任)을 속히 임명하여 내려보낼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11일, 합천(陜川)에 있었다. = 250 
  진주성(晉州城)이 함락된 곡절(曲折)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15일 = 255 
  임금님의 부르심[召命]을 받자와 경상 좌도(慶尙左道)를 향하여 길을 떠났음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15일 = 265 
  임금님의 부르심을 삼가 맏은 후에 곧바로 경상 좌도(慶尙左道)로 가서, 늙은 어머니의 안부(安否)를 살펴본 뒤에 올라갈 것임을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23일 = 266 
  군위 현감(軍威縣監) 유철(柳澈)을 그대로 유임(留任)시킬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23일 = 267 
  임금님의 행차[車駕]가 서울에 일찍 돌아와서, 백성들의 사방에서 우러르며 기다리는 마음에 보답하고 또한 동남(東南)지방을 경영하여 다스리도록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27일 = 270 
  왜적이 곧 경주(慶州)를 와서 침범(侵犯)하려고 하므로, 잠깐 동안 경상도[本道]에 머무르고 있다가 도원수(都元帥)가 옮겨오는 것을 기다린 뒤에 올라가고자 함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27일, 안동(安東)에 있었다. = 271 
  도원수(都元帥)가 이미 본도(本道)로 와서 도착하였으므로 즉시 길을 떠나 올라감을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7월 28일 = 274 
  지난 날에 보내온 은양(銀兩)을 도로 거두어 들여서, 공가(公家)의 용도로 쓰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7월 28일 = 276 
  병으로 말미암아 벼슬[職名]을 파면(罷免)해 줄 것을 청하는 서장 계사년 8월 16일 = 277 
  소금을 달여서 굶주린 백성을 진구(賑救)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8월 초10일, 충주(忠州)에 있었다. = 280 
  오유격(吳遊擊)의 서간(書簡)을 봉하여 올리면서, 적병(賊兵)을 방어하는 형세를 겸하여 진달하는 서장 계사년 8월 16일, 안동에 있었다. = 287 
  역관(譯官)을 내려 보내어, 명(明) 나라 군대에게 식량을 방급(放給)하는 상황을 명백하게 살피도록 하고, 하삼도(下三道)의 노비 공포(奴婢貢布)를 내어 명 나라 군대에게 겨울 옷감을 주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8월 = 292 
  군수 물자(軍需物資)를 조달(調達)하는 중신(重臣)을 시급히 파견하여 군량을 맡아 관리하도록 하고, 장흥 부사(長興府使) 유희선(柳希先)을 목베어 군율(軍律)을 엄숙하게 하기를 청하는 서장 계사년 8월 23일 = 295 
  송산(松山)에 봉안(奉安)한 정릉(靖陵)의 옥체(玉體)를 삼가 살펴본 후에 급히 아뢰는 서장 계사년 8월18일 = 303 
  경상도(慶尙道)를 막고 지키는 형세를 진달(陳達)하는 서장 계사년 9월 초3일 = 304 
  군량을 운반하는 데에 따른 폐단(弊端)을 진달하는 서장 = 305 
  전지(傳旨)를 삼가 받은 뒤에 곧 관직을 사임[解任]하고 돌아가서 노모(老母)를 뵈기를 청하는 서장 을미년(乙未年) 9월 = 314 
  안집도감(安集都監)의 둔전(屯田)에 딸린 소[牛隻]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농사를 짓도록 하기를 청하는 서장 병신년(丙申年) 2월 = 318 
  전 정포 만호(前井浦萬戶)인 이대남(李大男)을 죄를 다스리기 위하여 잡아 보내도록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 321 
  남양 부사(南陽府使) 이경함(李慶涵)과 이천부사(利川府使) 성영(成泳)을 칭찬하며 장려해야 할 일과, 진위현령(振威縣令) 유대형(兪大衡)을 파직[罷黜]시키고, 죽산 현감(竹山縣監) 강응문(姜應文)을 경질(更迭) 시키는 일을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 323 
  수자리할[防戍] 차례에서 빠진[闕防] 군인을 호송(護送)하지 않는 수령(守令)을 심문(審問)하여 그 죄상을 밝히도록 하고, 월곳 첨사(月串僉使) 박명수[朴命壽]를 칭찬하고 권장(勸奬)하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21일 = 325 
  의병장(義兵將) 허유(許유)의 군병(軍兵)에 대한 처치(處置)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 327 
  김포(金浦)의 군인들이 서울을 지나간 연유(緣由)를 아뢰는[陳啓] 서장 정유년 2월 = 329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수축(修築)하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초2일, 용진(龍津)에 있었다. = 331 
  조윤신(曺胤申)과 조윤희(曺胤禧)를 논공 행상하고 또 시기에 닿도록 곡식을 사서 군량으로 하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초9일 = 332 
  양근 군수(楊根郡守) 최보신(崔輔臣)을 그의 죄를 묻지 말고서 그대로 유임(留任)시키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초6일 = 334 
  대로변(大路邊)의 쇠잔(衰殘)하고 퇴락(頹落)한 고을의 노비 신공(奴婢身貢)을, 소원에 따라 그 수량을 감해주기를 청하는 서장 = 337 
  경기도의 군병을 평성(編成)하여 군대를 이루는 일과 성책(城柵)을 조치하는 형편[形止]을 진달하고, 또한 수원 판관(水原判官) 조발(趙撥)을 논공 행상(論功行賞)하며, 겸하여 인장(印章)을 주기를 청하는 서장 = 340 
  경안 찰방(慶安察訪) 남궁간(南宮○)이 관직을 그만두고 갔으니, 그 대임(代任)을 빨리 뽑아서 보내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2월 초2일, 용진(龍津)에 있었다. = 343 
  파사성(婆娑城)을 수설(修設)하는 이외에 또 다시 양근산성(楊根山城)과 충주(忠州)와 원주(原州)를 방수(防守)하는 일을 조치하기를 청하는 서장 = 344 
  파총(把總)과 초관(哨官)을 출근(出勤)한 날짜를 계산하여 관직을 옮겨 주어서, 인심을 격려, 권장하기를 청하는 서장 = 347 
  경기 우방어사(京畿右防禦使)를 조속히 차출(差出)하여 파견하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8월 = 350 
  군인들의 재주를 시험해서 우등(優等)을 한 자와 대포(大砲)를 쏘아 잘 맞히는 자에게 논공 행상을 하여, 권장하고 격려하기를 청하는 서장 = 351 
  겸 방수로 체찰부사(兼防水路體察副使) 노직(盧稷)마저도 [현지로] 내보내주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8월 = 354 
  음죽(陰竹)과 죽산(竹山)을 잠시 버려두고서 여주(驪州)의 방수(防守)를 먼저 조치할 것과 또한 우방어사(右防禦使) 오언량(吳彦良)을 조속히 임명하여 보내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8월 11일 = 357 
  서울의 상류(上流)를 방수(防守)할 기구(器具)가 대강 갖추어진 뒤를 기다려서, 강화(江華)의 뱃길[海道]을 순심(巡審)하려고 함을 아뢰는 서장 정유년 8월 = 362 
  남쪽 변방의 왜적의 형세를 진달(陳達)하고 여러 곳의, 방수(防守)하는 일을 시급히 처치하기를 빨리 아뢰는 서장 정유년 8월 15일 = 363 
  황해도의,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아직 벼슬하지 않는[出身] 사람 200명으로써 [한강] 상류를 나누어 지키도록 할 것과, 서울 안의 병기[軍器]를 수량을 넉넉하게 내려보내기를 청하는 서장 = 365 
  충청도와 경상도의 군병(軍兵)에 관한 일과, 유영경(柳永慶)의 [직명(職名)을] 분호조(分戶曹)로 고쳐 부르도록 하기를 급히 아뢰는 서장 졍유년 12월 초8일 = 368 
  경상 우도(慶尙右道)의 군량을 적절하게 처리할 일[事宜]을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초8일 = 371 
  유격장(遊擊將) 이화룡(李化龍)의 말한 내용을 급히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초8일 = 373 
  마제독(麻提督)과 양경리(楊經理)를 영접할 일과 군량의 현황(現況)을 급히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 378 
  오총병(吳總兵)의 군중(軍中)에서 근거 없는 풍설(風說)이 나도는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 381 
  양경리(楊經理)가 한 말로 인하여 신의 관직(官職)을 박탈하고 내쳐주시기를 청하는 서장 정유년 12월 = 381 
  경리(經理) [양호(楊鎬)]의 분부(分付)로 인하여 대구(大丘)의 군량운송을 재촉하고 독려한 연유(緣由)를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 386 
  군량 운반의 현황과 명 나라 군대가 울산(蔚山)의 적진(賊陣)을 진공(進攻)하여 싸움에 이긴 일을 급히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25일, 경주(慶州)에 있었다. = 388 
  명 나라 군대가 나아가 울산(蔚山)을 공격하여, 왜적과 대치(對峙)하고 있는 상황을 급히 아뢰는 서장 정유년 12월 = 390 
  적병의 근거지[巢窟]의 상황과, 우리 나라 군병(軍兵)의 죽고 부상함을 급히 아뢰는 서장 무술년(戊戌年) 정월 초2일, 울산(蔚山)에 있었다. = 391 
  명 나라 군대가 물러나서 [경주(慶州)로] 오게 된 연유(緣由)를 급히 아뢰는 서장 무술년 정월 초4일, 경주(慶州)에 있었다. = 394 
  명 나라 군대가 물러난 뒤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 것을 아뢰는 서장 = 395 
  명 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에 경주(慶州)와 울산(蔚山)의 우리 군사들이 적병의 머리를 벤 일을 아뢰는 서장 무술년 정월 = 398 
  삼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경상]도내(道內)의 군사와 백성들에 관한 일을 처치(處置)한 후에 올라갈 것을 아뢰는 서장 = 401 
  조도사(調度使) 성안의(成安義)가 직무(職務)를 거리껴서 피한 까닭이 아니었음을 아뢰는 서장 = 408 
부록(附錄) = 411 
  Ⅰ. 이두일람표(吏讀一覽表) = 411 
  Ⅱ. 색인(索引) = 414

관련분야 신착자료

박만순 (2021)
신정일 (2021)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 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2021)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 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2021)
박형열 (2021)
권연웅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