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玆山魚譜 / 筆寫本

玆山魚譜 / 筆寫本

자료유형
희구서(고서)
개인저자
정약전, 1758-1816
서명 / 저자사항
玆山魚譜 / 丁若銓(朝鮮) 編.
판사항
筆寫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19--].  
형태사항
3卷1冊 ; 25.8 x 17.4 cm.
일반주기
序: 嘉慶甲戌(1814)洌水丁銓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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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자산어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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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1 0 ▼a 윤주찬 ▼b 일사 ▼h 尹柱瓚, ▼d 1858-1917, ▼e 제1소장
900 1 0 ▼a 윤정하 ▼h 尹定夏, ▼d 1879-1951, ▼e 기증
991 ▼a 희구서(고서)

전자정보

No. 원문명 서비스
1
玆山魚譜 / 丁若銓 (404회 열람)
PDF

소장정보

No. 소장처 청구기호 등록번호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No. 1 소장처 중앙도서관/한적실/ 청구기호 대학원 C7 A1 등록번호 465000190 도서상태 대출불가(열람가능) 반납예정일 예약 서비스 O M

컨텐츠정보

초록

<자산어보 해제 - 고려대학교 도서관>


개요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 유배 당시 저술하고 정약용의 제자인 이청(李, 1792-1861)이 안(案)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한, 총 226종의 해양생물이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이면서 조선시대 만들어진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현재 원본은 없고 사본으로만 국내외에 12종 전하고 있는데,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오탈자와 누락된 내용이 없는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 명칭
≪玆山魚譜≫는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玆’가 ‘이것’이라는 뜻일 때는 음이 ‘자’이고 ‘검다’는 뜻일 때는 음이 ‘현’이니, ‘현산’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玆山’은 흑산도(黑山島)를 정약용이 바꿔 부른 명칭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되어, 정약전은 흑산도, 정약용은 강진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배되었다. 정약용은 바다 건너 형이 있는 흑산도를 삭막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흑산’을 꺼려했다. 이에 다른 이름인 ‘玆山’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정약용은 정약전의 ≪玆山易柬≫의 서문을 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유년(1801년) 겨울에 나는 강진으로 귀양가고 둘째형은 흑산도로 귀양갔다. ‘흑산(黑山)’이란 이름이 으스스하고 두려워 차마 그대로 지칭할 수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주고받을 때 ‘玆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玆’ 또한 ‘흑(黑)’의 의미이다.(辛酉冬, 余謫康津, 仲氏謫黑山島. 黑山之名, 幽黑可怖, 不忍斥言. 故書牘之間, 改之爲玆山, 玆亦黑也.)

정약전도 ≪玆山魚譜≫의 서문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도에서 귀양 살고 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두워 무서웠다. 가족의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칭하였는데, ‘玆’ 또한 ‘흑(黑)’의 의미이다.(玆山者, 黑山也. 余謫黑山, 黑山之名, 幽晦可怖. 家人書牘, 輒稱玆山, 玆亦黑也.) 

‘玆’에는 음이 ‘자’와 ‘현’ 두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정약용이 흑산도를 ‘玆山’으로 바꿔 불렀을 때, 당시 ‘玆’를 어떻게 읽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정약용이 35세이던 정조(正祖) 20년에 기존 운서(韻書)를 종합한 ≪규장전운(奎章全韻)≫이 편찬되었는데, ‘玆’를 ‘자’로 읽는 평성(平聲) 지(支) 부분에서는 “검다는 뜻이다. 이것이라는 뜻이다.(黑也, 此也.)”라 하였고, ‘현’으로 읽은 평성(平聲) 선(先) 부분에서는 “그윽하고 심원하다는 뜻이다. 적흑색이다.(幽遠, 赤黑.)”라고 풀이하였다. ≪규장전운(奎章全韻)≫의 풀이를 따른다면, ‘자’로 읽으면 흑색이고 ‘현’으로 읽으면 적흑색이 된다. 그리고 정약용 당시 대표적이면서 최대의 자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玆’에 대해 음을 ‘자’로 풀이한 후에 또 다른 설로 음이 ‘현’이라고 하여, 대표음이며 첫 번째 음이 ‘자’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볼 때, 정약용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흑색의 ‘현’이 아닌 흑색의 ‘자’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표음 ‘자’가 아닌 또 다른 설인 ‘현’으로 읽었다면 주석으로 설명을 붙였을 것이다. 게다가 정약용이 유배 당시 형이 있는 흑산도를 바라보며 지은 <9일에 보은산 정상에 올라 우이도를 바라보며(九日登寶恩山絶頂, 望牛耳島)>의 앞부분을 보면 ‘자’의 음은 명확해진다.

나해와 탐진이 이백 리 거리인데,

험준한 두 우이산을 하늘이 만들었던가.

삼년을 묵으면서 풍토를 익히고도,

‘玆山’이 여기 또 있는 줄은 내 몰랐네.

羅海耽津二百里, 天設巃嵷兩牛耳. 三年滯跡習風土, 不省玆山又在此.

 
정약용은 본인이 살고 있는 곳과 형이 살고 있는 곳의 산의 이름이 우이산(牛耳山)임을 밝히면서 ‘玆山이 여기 또 있는 줄은 내 몰랐네.’라고 한 것은 ‘이 산이 또 여기에 있는 줄 몰랐네’라는 뜻도 된다. 정약은은 이 시에서 자산(玆山)을 ‘흑산도’를 가리키는 동시에 ‘이 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을 쓴 것이다.

또한, 서유구(徐有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玆山魚譜’를 인용하며 ‘慈山魚譜’와 ‘玆山魚譜’를 혼용하여 표기하고 있다. 이것도 당시에 ‘자산어보’로 읽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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