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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시/해제

어제책문(御製策問) 해제(解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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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2-22 03:18
조회
1468
청구기호 신암 貴 591
서 명 어제책문(御製策問)
저 자 정조(正祖)
판 사 항 필사본(筆寫本)
발생사항 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1795(正祖 19)
형태사항 1冊 : 上下單邊 半郭 17.9 × 11.5 cm, 有界, 10行20字 小字雙行, 上黑魚尾; 27.0 × 19.0 cm.
일반주기 판심제(版心題) : 연암산방(燕岩山房)
1. 개요

이 책은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사용했던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에 필사된 정조(正祖, 1752-1800)의 어제책문(御製策問)이다. 이 어제책문은 정조가 1795년에 음관 및 초계문신에게 내린 책문으로, 당시 안의현감으로 재임 중이던 박지원도 이 책문을 받아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친필본은 아닌 것으로 보이나,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에 필사된 박지원 수택본(手澤本) 정조의 어제책문으로 그 가치가 있다.

 

2. 『어제책문(御製策問)』의 구성과 내용

어제책문은 정조(正祖)가 1795년(정조 19)에 음관(蔭官)의 응제(應製) 및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에 내린 환곡과 군향인 「환향(還餉)」 책문으로,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권51 책문(策問)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려있다. 다만, 제목 아래 작은 글자로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음관(蔭官)의 응제(應製) 및 초계문신(抄啓文臣)의 친시(親試)’로 적혀있고, 이 필사본에는 ‘1795년(정조 19, 을묘년) 9월 8일 출제, 기한은 20일 동틀 때까지.[乙卯九月初八日發策, 限二十日開東時.]’로 연암 박지원이 책문을 받은 날짜와 제출기한을 적어서 당시 책문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 필사본 어제책문은 이 책의 기증자인 신암(薪菴) 김약슬(金約瑟, 1913-1971) 선생이 소장하며 표지를 새로하고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표제인 ‘어제책문(御製策問)’을 김약슬 선생이 새로 써서 붙이고 본인의 장서인을 적었으며, ‘연암산방(燕岩山房)’이 박지원의 서재이름임을 표제 아래에 적었다. 그리고 내지에는 1956년에 김약슬 선생이 적은 박지원의 인적사항과 저서들을 적고 있다. 또한 이덕문(李德懋, 1741-1793)가 『청비록(淸脾錄)』에서 연암에 대한 평을 인용하였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燕巖古文詞, 才思溢發, 橫絶古今. 時作平遠山水, 踈散幽迥, 優入大米之室. 其行書小楷, 得意時作, 逸態橫生, 奇奇恠恠, 不可方物.

연암(燕巖)은 고문사(古文詞)에 있어서 재사(才思)가 넘치고 고금에도 통달하였다. 때로 평원(平遠)한 산수(山水)를 그리면 깊은 감회를 소산(疏散)시키어 송(宋) 나라 미불(米芾)의 경지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었다. 마음이 내킬 때 쓴 그의 행서(行書)와 해서(楷書)는 뛰어난 자태가 넘치며, 너무도 기묘하여 어떤 물건과도 비교할 수 없다.

 

김약슬 선생이 이와 같이 정리한 것은, 이 책이 바로 연암 박지원이 소장했던 수택본(手澤本)이기에 표제와 내지에 박지원에 대해 적은 것이다. 어제책문이 필사된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 원고지는 연암 박지원이 본인의 서재이름을 넣은 개인적인 원고지로, 본인의 저술 뿐 아니라 소장할만한 타인의 저술을 이 연암산방 판심제 원고지에 필사하였다. 본교 도서관에는 연암산방 판심제 원고지에 필사된 저술이 이 『어제책문(御製策問)』 뿐 아니라 만송문고 소장 『삼한총서(三韓叢書)』 3책도 있다. 박지원이 이 책문을 받았을 때인 1795년은 안의현감에 재임 중이었는데, 안의현감에 재임 중이던 1791년(정조 15)부터 1796년(정조 20) 사이에 연암산방 판심제 원고지를 사용한 필사본들이 많이 있다.

 

연암산방 판심제 원고지는 박지원이 사용한 원고지이지만 박지원의 친필은 아니고 전문 필사자들이 필사한 것이다. 위 삼한총서의 필사본들과 어제책문을 보아도 글씨체가 모두 각각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어제책문 「환향(還餉)」은 환곡(還穀)과 군향(軍餉)의 설립 취지와 역사, 그리고 현황 및 문제점에 대해 논하게 한 글이다. 이 책문은 현재 음관으로 지방관을 하고 있는 신하 및 초계문신들에게 출제한 것으로, 그 내용이 아주 자세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매우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전체 내용은 부록의 원문 및 번역문 참조.)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린 글은 문단 나눔없이 수록되었지만, 박지원은 어제책문을 내용에 따라 문단 나눔을 하여 읽기 편하고 내용 파악하기에도 수월하도록 정리하였다.

 

3. 『어제책문(御製策問)』의 가치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 시절인 1795년(정조 19) 정조(正祖)에게 받았던 책문을, 본인의 개인적인 원고지인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에 필사한 것이다.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대상이기도 했던 박지원이지만, 환곡과 군향 등 민생과 국가에 대한 정책을 논하는 글을 별도로 본인의 원고지에 필사하여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는 박지원의 실학(實學) 정신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필사본 『어제책문(御製策問)』은 연암 박지원의 친필은 아니나,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에 필사된 박지원 수택본(手澤本)으로 전하는 정조의 어제책문으로 그 가치가 있다.조선후기에는 개인적인 원고지인 본인의 서재명을 판심에 적은 판심제(版心題) 원고지를 장서가마다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도 그 중 하나이다. 연암산방(燕岩山房) 판심제(版心題) 원고지에 필사된 저술들을 통해 박지원이 어떠한 자료를 중시하여 정리하였는지, 당시 박지원의 학문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4. 참고문헌

박재경, 2014, 「조선시대 책문 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김영진, 2005a, 「조선후기 실학파의 총서 편찬과 그 의미」,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 대산 이동환 교수 정년기념 논총, 소명출판.

김영진, 2005b, 「박지원의 필사본 소집(小集)들과 작품 창작년 고증」, 『대동한문학』 23.

윤재민, 2002, 「문체반정의 재해석」, 『고전문학연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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