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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Books Cyber Collection & Bibliography

자산어보(玆山魚譜) 해제(解題)

Writer
한민섭
Date
2021-04-01 09:58
Views
5078
청구기호     대학원 C7 A1

서 명            자산어보(玆山魚譜)

저 자            정약전(丁若銓)

판 사 항       필사본(筆寫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刊寫年未詳

형태사항     3권 1책 ; 25.8 x 17.4 cm

 
  1. 개요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형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 유배 당시 저술하고 정약용의 제자인 이청(李𤲟, 1792-1861)이 안(案)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한, 총 226종의 해양생물이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이면서 조선시대 만들어진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현재 원본은 없고 사본으로만 국내외에 12종 전하고 있는데,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오탈자와 누락된 내용이 없는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이다.

 



<자산어보 표지>

 
  1. 자산어보(玆山魚譜)명칭
≪玆山魚譜≫를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玆’가 ‘이것’이라는 뜻일 때는 음이 ‘자’이고 ‘검다’는 뜻일 때는 음이 ‘현’이니, ‘현산’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玆山’은 흑산도(黑山島)를 정약용이 바꿔 부른 명칭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되어, 정약전은 흑산도, 정약용은 강진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배되었다. 정약용은 바다 건너 형이 있는 흑산도를 삭막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흑산’을 꺼려했다. 이에 다른 이름인 ‘玆山’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정약용은 정약전의 ≪玆山易柬≫의 서문을 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유년(1801년) 겨울에 나는 강진으로 귀양가고 둘째형은 흑산도로 귀양갔다. ‘흑산(黑山)’이란 이름이 으스스하고 두려워 차마 그대로 지칭할 수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주고받을 때 ‘玆山’이라 고쳐 불렀는데, ‘玆’ 또한 ‘흑(黑)’의 의미이다.(辛酉冬, 余謫康津, 仲氏謫黑山島. 黑山之名, 幽黑可怖, 不忍斥言. 故書牘之間, 改之爲玆山, 玆亦黑也.)

 

정약전도 ≪玆山魚譜≫의 서문에서 이를 밝히고 있다.

 

‘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도에서 귀양 살고 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두워 무서웠다. 가족의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칭하였는데, ‘玆’ 또한 ‘흑(黑)’의 의미이다.(玆山者, 黑山也. 余謫黑山, 黑山之名, 幽晦可怖. 家人書牘, 輒稱玆山, 玆亦黑也.)

 

‘玆’에는 음이 ‘자’와 ‘현’ 두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정약용이 흑산도를 ‘玆山’으로 바꿔 불렀을 때, 당시 ‘玆’를 어떻게 읽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정약용이 35세이던 정조(正祖) 20년에 기존 운서(韻書)를 종합한 ≪규장전운(奎章全韻)≫이 편찬되었는데, ‘玆’를 ‘자’로 읽는 평성(平聲) 지(支) 부분에서는 “검다는 뜻이다. 이것이라는 뜻이다.(黑也, 此也.)”라 하였고, ‘현’으로 읽은 평성(平聲) 선(先) 부분에서는 “그윽하고 심원하다는 뜻이다. 적흑색이다.(幽遠, 赤黑.)”라고 풀이하였다. ≪규장전운(奎章全韻)≫의 풀이를 따른다면, ‘자’로 읽으면 흑색이고 ‘현’으로 읽으면 적흑색이 된다. 그리고 정약용 당시 대표적이면서 최대의 자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玆’에 대해 음을 ‘자’로 풀이한 후에 또 다른 설로 음이 ‘현’이라고 하여, 대표음이며 첫 번째 음이 ‘자’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볼 때, 정약용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흑색의 ‘현’이 아닌 흑색의 ‘자’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표음 ‘자’가 아닌 또 다른 설인 ‘현’으로 읽었다면 주석으로 설명을 붙였을 것이다. 게다가 정약용이 유배 당시 형이 있는 흑산도를 바라보며 지은 <9일에 보은산 정상에 올라 우이도를 바라보며(九日登寶恩山絶頂, 望牛耳島)>의 앞부분을 보면 ‘자’의 음은 명확해진다.

나해와 탐진이 이백 리 거리인데,

험준한 두 우이산을 하늘이 만들었던가.

삼년을 묵으면서 풍토를 익히고도,

‘玆山’이 여기 또 있는 줄은 내 몰랐네.

羅海耽津二百里, 天設巃嵷兩牛耳. 三年滯跡習風土, 不省玆山又在此.

 

정약용은 본인이 살고 있는 곳과 형이 살고 있는 곳의 산의 이름이 우이산(牛耳山)임을 밝히면서 ‘玆山이 여기 또 있는 줄은 내 몰랐네.’라고 한 것은 ‘이 산이 또 여기에 있는 줄 몰랐네’라는 뜻도 된다. 정약은은 이 시에서 자산(玆山)을 ‘흑산도’를 가리키는 동시에 ‘이 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을 쓴 것이다.

또한, 서유구(徐有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玆山魚譜’를 인용하며 ‘慈山魚譜’와 ‘玆山魚譜’를 혼용하여 표기하고 있다. 이것도 당시에 ‘자산어보’로 읽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자산어보 권수제>

 
  1.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자산어보(玆山魚譜)와 사본 현황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에는 ‘보성전문학교도서관(普成專門學校圖書館)’, ‘윤정하씨기증(尹定夏氏寄贈)’, ‘윤정하인(尹定夏印)’, ‘일사(一史)’, ‘윤주찬인(尹柱瓚印)’ 등의 장서인이 찍혀있다. 윤주찬(尹柱瓚, 1858~1917)은 본관이 해남(海南), 자(字)가 사규(士圭), 호(號)가 일사(一史, 一蓑)이며, 주사(主事)를 지냈고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다. 을사늑약 시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하다 발각되어 진도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907년에 특별 사면되었다.

윤주찬의 아들 윤정하(尹定夏, 1879~1951)는 자가 응중(應中), 호가 두산(斗山)이다. 농상공부(農商工部) 위원을 지냈고 보성전문학교 교수, 계리사(計理士)로 일했으며, ≪조선세무요람(朝鮮稅務要覽)≫을 저술하였다. 윤정하(尹定夏)가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한 인연이 있어서, 이 책을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윤주찬의 조부, 윤정하의 증조부인 윤종억(尹鍾億, 1788-1837)이 바로 다산 정약용의 제자였기 때문에, 윤종억이 ≪자산어보≫를 전해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윤종억의 조부인 윤단(尹慱, 1744-1821)은 다산초당(茶山草堂)의 원주인이었다.

이 책은 반곽 왼쪽 하단에 ‘大村製(信)’이라고 인쇄된 용지에 필사되어 있다. 참고로 국립광주박물관에는 반곽 왼쪽 하단에 ‘大阪大村製(花)’라 인쇄되어있는 용지에 1913년에 작성된 최현상 토지 분할 계약서(崔晛相土地分割契約書)가 소장되어 있는데, 인쇄된 선의 색깔과 용지 모양이 같은 형태이다. 이것으로 보아 ‘大村製’가 인쇄된 용지는 구한말 일본에서 수입된 용지인 것으로 보인다.



<자산어보 서문>

 

≪자산어보≫는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사본으로만 국내외에 12종이 전하고 있다. 그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명칭 이전 소장자 필사연도 소장처
1 고려대본

(高麗大本)
윤주찬

(尹柱瓚, 1858~1917)

윤정하

(尹定夏, 1879~1951)
1900년 전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2 정씨본

(鄭氏本)
정문기

(鄭文基, 1898-1955)
1945 개인소장
3 가람본

(嘉藍本)
이병기

(李秉岐, 1891-1968)
1900-1940 서울대학교 규장각
4 일석본

(一石本)
이희승

(李熙昇, 1896-1989)
195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5 상백본

(想白本)
이상백

(李想伯, 1904-1966)
1950년대 서울대학교 규장각
6 국립본

(國立本)
김태준

(金台俊, 1905-1949)
1946 국립중앙도서관
7 서강대본

(西江大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8 부경대본

(釜慶大本)
김상기

(金庠基, 1901-1977)
1958 부경대학교 중앙도서관
9 호남본

(湖南本)
진기홍

(陳錤洪, 1914-2010)
개인소장
10 영남대본

(嶺南大本)
김상기

(金庠基, 1901-1977)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11 상민연본

(常民硏本)
오카무라 하루토

(岡村治人)
1916 日本 神奈川大學

日本常民文化硏究所
12 제어동본

(祭魚洞本)
시부사와 케이죠

(澁澤敬三, 1896-1995)
1945 日本 中央水産硏究所

圖書資料館
위 사본들을 비교 검토하면, 금린사(錦鱗鯊) 항목의 맨 끝에 ‘亦今補’란 구절이 없는 사본이 있고, 해(蟹) 항목에 ‘故謂之螯, 今俗之稱蟹爲跪.’란 구절이 없는 사본이 있다. 또한 복(鰒) 항목에는 설명 중 219자, 해대(海帶) 항목에는 설명 중 165자가 누락된 사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필사본에는 모두 이상의 글들이 갖춰져 있는 점과 필사시기로 보았을 때,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필사본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1. 자산어보의 구성과 내용
≪자산어보≫는 3권 1책으로 해양생물 총 55류 226종을 담고 있다. 이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구별 류(類) 종(種)
1 린(鱗, 비늘 있는 어류) 20 72
2 무린(無鱗, 비늘 없는 어류) 19 43
개류(介類, 껍데기가 있는 것) 12 66
3 해충(海蟲, 바다벌레) 1 4
해금(海禽, 바다새) 1 5
해수(海獸, 바다짐승) 1 1
해초(海草) 1 35
55 226
 

먼저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 동기와 과정 등을 서술한 서문이 있고, 권1에서는 비늘 있는 어류, 권2에서는 비늘없는 어류와 껍데기가 있는 것, 그리고 권3에서는 바다벌레, 바다새, 바다짐승, 해초류 등을 설명하고 있다. 분류를 체계적으로 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임을 목차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정약전이 서문에서 밝힌 저술동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뒤에 오는 군자(君子)가 이 책을 근거로 수정하고 보완한다면, 이책은 병을 치료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재산을 잘 관리하는 데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진실로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또한 시인들에게는 이제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넓게 참조하도록 도와줄 것이다.(後之君子, 因是而修潤之, 則是書也, 於治病利用理財, 數家固應有資, 而亦以補詩人博依之所不及云爾.)

 

정약전은 이 책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약재와 식재료 등의 유용성, 그리고 재산관리 뿐 아니라 시의 소재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는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식자층의 문학 소재로도 쓰일 수 있도록 그 효용성을 광범위하게 택한 특징이 있는 것이다.

현재 전하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1814년에 완성한 원편(原編)에 이청(李𤲟)이 70항목에 안(案)을 추가하고 16종을 새로 추가한 것으로 1822년 이후에 완성한 것이다. 서술 형식은 먼저 명칭을 제시하고 속명(俗名)과 트기, 형태, 색, 생태, 맛, 어획시기와 방법, 문헌 고증을 서술하였다. 경우에 따라 이청(李𤲟)이 안(案)을 덧붙인 것이 있다.

 
  1. 자산어보의 가치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흑산도 유배 당시 체계적으로 저술한 해양생물에 대한 책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이면서 조선시대 만들어진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정약전은 1814년 완성하였고, 후에 다산 정약용의 제자인 이청(李𤲟, 1792-1861)이 증보하여 현재의 3권 1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현재 원본은 없고 사본으로만 국내외에 12종이 전하고 있는데, 여러 사본들을 비교검토한 결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오탈자와 누락된 내용이 없는 원본에 가장 가까운 사본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조창록(2017), ≪자산어보≫ 원편(原編)과 이청의 재편집에 대한 고찰, 한국실학연구 33.

김문기(2016), ≪자산어보≫와 ≪해족도설(海族圖說)≫, 역사와경계 101.

中野泰(2015), 海峽を越えた朝鮮半島の魚譜 - 神奈川大學 日本常民文化硏究所所藏 ≪玆山魚譜≫の解題を中心に, 神奈川大學 國際常民文化硏究機構年報 5.

허태용(2005), 정약전의 ≪자산어보≫ 연구, 한국인물사연구 4.

김언종(2003), ≪자산어보≫ 명칭고, 한문교육연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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