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자료 관리 업무와 자료 열람실로 쓰이던 딱딱한 사무 공간은 리모델링을 통해 한국적인 멋을 담은 전통문화 갤러리처럼 변신했다.
국내 대학 최대 고서·귀중서의 보고, 한적실
중앙도서관 구관은 1978년 중앙도서관 신관이 준공된 이후 대부분의 장서가 신관으로 옮겨지면서 귀중서와 희귀서, 고지도 등 주요 고문헌 자료를 담당하는 보존 전문도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서 자료 관리 업무와 자료 열람실로 쓰이던 공간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보다 쾌적하고 편안하게 바뀌었다. 딱딱하고 평범한 사무실이 한국적인 멋을 담은 전통문화 갤러리처럼 변신해 고서 자료 열람 및 전시, 세미나, 회의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적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항온항습서고는 25℃, 45%의 습도를 항상 유지하도록 설정돼 있다.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모든 귀중서를 다 보관할 수 없어 우선 국보·보물급이나 임진왜란 이전 출간본, 유일본 등 6천 권 정도만 자리를 만들었다.
한적실을 담당하고 있는 한민섭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서·귀중서의 기준은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한다. 당시 많은 서적들이 화재로 소실돼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규장각을 이어받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을 제외하고 그 자료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고려대 도서관이다.
중앙도서관 신관 로비에는 기획 전시 공간을 마련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서들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모두 복제본이지만 원본과 매우 가까운 형태와 질감으로 인쇄된 것이 특징. 국보로 지정된 용감수경과 함께 용비어천가, 삼국유사 등의 보물급 고서들이 전시돼 있다.
중앙도서관 신관 로비에 마련된 귀중서 전시 공간
귀한 손님에게 보물창고를 열어 보이듯, 도록 <카이로스의 서고> 발간
고려대 도서관 귀중서고에는 모두 16점의 문화재가 있다. 전체 고서 12만여 권 가운데 귀중서는 약 1만 권 정도. 대학 도서관으로는 희귀본 소장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이 의미 있는 지적 유산을 보다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도서관은 지난 7월 귀중서 50점을 엄선한 도록을 만들었다.
<카이로스의 서고>라는 이름이 붙은 이 책은 전형적인 도록 형태가 아닌, 고서의 특징을 부각한 과감한 사진 배치와 쉽고 간결한 해제 등을 곁들여 단행본처럼 술술 읽히는 것이 특징이다. 소장 고서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했고, 모든 내용에 국문과 영문을 병기해 외국인들도 접할 수 있게 했다.
일반인에게는 접근이 금지된 국보 <용감수경>을 비롯해 <홍무정운역훈>, <중용주자혹문>, <동인지문사륙>, <삼국유사>, <해동팔도봉화산악지>, <청구도>, <용비어천가>와 같은 보물급 고서, 유일본 및 회화 자료 중 가치가 높으나 그동안 대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이 한꺼번에 공개된 것은 이번 도록을 통해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중 국보 <용감수경>은 중국 요나라 승려 행균이 997년 편찬한 한자 자전으로 국내에서는 11세기 전라도 나주에서 출간됐다. 요나라 시대 음운법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원본은 고려대 도서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도서관 개관 이후 최초의 도록 발간’이라는 의미 있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석영중 도서관장은 “귀한 손님에게 보물창고를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도록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귀중한 서고에서 만나는 시간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했던 ‘카이로스’, 즉 의미로 가득찬 시간”이라며, “책 제목을 ‘카이로스의 서고’로 지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위) 항온항습서고의 모습.
(아래) 보존처리 중인 한적자료